북한은 토지개혁법 78주년을 맞아 '최고지도자들'의 업적이었다고 선전했다.(사진=노동신문/뉴스1)
북한은 토지개혁법 78주년을 맞아 '최고지도자들'의 업적이었다고 선전했다.(사진=노동신문/뉴스1)

35일은 78년 전, 북한에서 토지개혁법령을 발표한 날이다. 김일성이 사실상 북한의 중앙집권적 통치기관인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의(1946.2.8.) 위원장과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책임비서가 된 지 한 달 뒤쯤 일이다. 토지개혁 직전 31일에 김일성은 신탁통치를 반대하는 평양 장대현교회에 모인 5천여 명의 군중들을 강력진압하여 소련군정의 환심을 사게 되었고 곧바로, 당명을 북조선 공산당으로 개칭하고 당수의 자리에 올랐다. 실권을 잡은 김일성이 첫 번째 한 일이 바로 토지개혁이었다.

5일자 노동신문 1면기사(토지는 피어린 계급투쟁의 고귀한 전취물이다)는 토지개혁에 대해서 다루면서, 착취계급인 악질지주를 몰아내는 계급투쟁이라고 주장했다.

세세년년 농민들은 괴롭히던 저주로운 종살이에 종지부를 찍고 그들에게 참다운 새삶을 안겨준 세기적인 변혁이 바로 력사적인 토지개혁이였다.”

토지개혁과정은 우리 인민들에게 피로써 찾은 땅은 피로써 지켜야 한다는 계급투쟁의 진리를 새견준 나날이였다.”

기사는 토지개혁을 통해 김일성이 농민들에게 땅을 무상으로 분여’(分與)하여 농민들이 땅의 진정한 주인이 되었다고 하면서, 토지개혁법령안에 땅을 농민들의 영원한 소유로 넘긴다고 했다고 소개했다.

과연, 그렇게 했을까. 당시 토지개혁을 통해 무상분배는 이뤄졌지만, 소유권이 아니라 경작권만 주어졌던 것은 이미 다 아는 사실이다. 물론, 토지개혁 이후 김일성에 대한 대중적 지지도는 급격히 상승했고 공산당원 가입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1945124,530명이던 당원이 다음 해 12월에는 366,000명으로 증가하였다. 소련군정과 김일성의 의도대로 광범위한 농민계층이 혁명계급으로 편입되어 김일성의 권력 기반이 되었던 것이다.

김일성은 토지개혁을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의 가장 중요한 과업으로 여겼다. 2단계로의 혁명 즉, ‘사회주의 혁명으로 전환하기 위한 예비적 성격으로 보았다. 당시, 북한지역에서 몰수된 토지는 약 100만 정보(1정보 3천평)였는데, 이 중에 지주 소유지는 약 86만 정보로 몰수된 땅의 80%를 차지하였다.

토지몰수 후, 일차단계에서 김일성 세력은 98만여 정보를 농민들에게 무상분배하였다. 72만 호의 농민들이 평균 1.35정보의 토지를 분배받았다. 앞서 기술한대로, 소유권을 넘겨준 것은 아니었다. 분배된 토지에 대해 매매는 물론 임대, 저당 및 상속할 수 없었으며 자신이 경작할 수 없을 때는 국가에 반납하도록 했다. 사실상 토지이용권, 즉 경작권의 분배였던 것이다. 결국, 북한의 토지개혁은 사회주의 협동체제(협동농장화)로 이행하는 과도기적 조치였고 농민들과의 통일전선 구축 차원이었다. 당시 농민은 인구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처럼, 김일성 세력의 토지개혁 목적은 사회주의 협동체제(협동농장화)로 이행하는 과도기적 조치였다. 김일성은 1953년부터 개인농에 대한 협동농장화를 추진하기 시작했으며, 195411월부터는 농업협동화운동를 본격적으로 추진하여 1958년에 100%의 집단농장화를 시켰다.그 수가 약 38백 개에 다다랐다. 하나의 협동농장에는 평균 300호의 농가와 500정보(150만평)의 토지가 주어졌다. 협동조합 밑에는 작업반들이 설치되었고 작업반 밑에는 다시 20명 내외의 분조가 편성되어 감시통제시스템이 자연스럽게 작동되었다. 북한이 완전한 통제사회로 전환되는 시점이었다. 색출된 반동분자들을 격리시키기 위해 이때부터(1958년 말) 완전통제구역인 정치범수용소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1958년은 정치적으로도 대대적인 숙청이 자행되던 시기였다. 1956년부터 촉발되었던 종파사건에 대한 숙청(처형)작업이 한창 진행되던 해였다. 순서상, 정치적으로 권력을 독점하고 난 이후에 토지를 완전히 국유화시킨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김일성 정권이 토지개혁을 했지만, 그 후, 토지를 국유화시킨 것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그래서, 노동신문 기사에서 토지개혁에 대해 어떻게 선전하며 과거와 오늘을 어떤 방식으로 연결시키는지 자못 궁금했다.

기사는 과거의 농민들의 땅’(토지)을 현재의 사회주의 전야공화국의 영토로 치환시키고 있었다. 과거 농민들이 토지를 쟁취한 것처럼, 오늘날에는 제국주의자들로부터 영토를 지켜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었다.

우리의 주권이 행사되는 이 땅을 0.001mm라도 침범하려든다면 그가 누구든 절대로 용서치 안으려는 우리 인민의 투철한 대적의지의 힘있는 과시이며... 공화국의 촌토를 목숨바쳐 지키려는 우리 인민의 강렬한 애국정신이 세차게 맥박치고 있다.”

농민의 땅이, 공화국의 영토로 바뀌고 주인의식을 애국심으로 전환시킨 것이다. 북한에서만 가능한 선전선동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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