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수석부소장 겸 한국 석좌, 미라 랩-후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동아시아-오세아니아 담당 선임보좌관.(CSIS 홈페이지 갈무리)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수석부소장 겸 한국 석좌, 미라 랩-후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동아시아-오세아니아 담당 선임보좌관.(CSIS 홈페이지 갈무리)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고위 당국자가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에서 '중간 단계'(interim steps)를 논의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가운데 그 의미를 두고 각종 분석이 제기된다.

미라 랩-후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동아시아-오세아니아 담당 선임보좌관은 전날인 4일 '중앙일보-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포럼 2024' 특별대담에서 '중간 단계'라는 언급을 내놨다. 미국 당국자가 이런 언급을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빅터 차 CSIS 수석부소장이 북한이 '핵보유국'인 만큼 비핵화 대신 위협 감소, 군축 등을 시도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있다고 언급하자 "미국의 목표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면서도 "그러나 만약 전 세계 지역을 더 안전하게 만들 수 있다면 비핵화를 향한 중간 단계도 고려할 용의가 있다"라고 답했다.

랩-후퍼 선임보좌관은 '중간 단계'의 구체적 내용을 밝히진 않았으나 "현재 한반도 상황을 고려해 북한과 '위협 감소'(threat reduction)에 관해 논의할 준비가 돼 있으며 그렇게 하길 원한다"라고 말해 '중간 단계'가 '위협 감소'와 관련이 됐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021년 취임 100일 만에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전제로 '잘 조정된 실용적 접근'과 단계적 접근을 통해 외교적 공간을 모색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대북정책을 발표했다.

이후 여러 계기에 미 국무부와 주유엔 북한대표부 간의 비공식 대화 창구인 '뉴욕 채널'을 비롯해 물밑 교섭 루트를 활용, '조건 없는 대화'에 나설 것을 제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북한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등 현재까지 대화에 나서지 않고 있다.

대화 제의를 거부한 북한은 대신 2022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강행하며 지난 2018년 비핵화 협상 당시 약속한 '핵·ICBM 시험 모라토리엄'(잠정 유예)을 깼다. 이후 지속해서 군사 도발의 강도를 높이며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선 랩-후퍼 선임보좌관의 언급이 바이든 행정부가 새로운 대북 접근법을 모색하거나 또는 이미 새 접근법이 확립됐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당시 북한은 비핵화 협상에서 '단계적·동시적 접근법'을 요구한 전례가 있는 만큼, 그에 대한 '맞춤형' 정책이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이는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최종 목표로 하지만, 추가적인 핵·미사일 능력 확정을 막기 위한 '잠정 핵동결', 또는 '핵무기 감축' 등을 중간 단계로 염두에 두고 있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다.

ⓒ News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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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바이든 행정부가 오는 11월 미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북한 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시도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분석에 아직은 힘이 실린다. 현직 당국자가 '중간 단계'라는 표현을 쓴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그렇다고 정책 변화를 의미하는 건 아닐 것이라는 게 합리적 관측이라는 얘기다.

또한 핵무기 감축 등을 염두에 두고 북한과의 협상을 모색하는 건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셈이 되기 때문에 바이든 행정부의 기조와는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특히 랩-후퍼 선임보좌관은 "이러한 진전을 이루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면서도 "하루빨리 북한의 불안정한 행위로 인한 위협을 줄이고 궁극적으로 위협을 제거하는 길로 돌아가야 한다"라고 강조했는데, 그가 당장 북한의 변화를 기대하고 '중간 단계'를 언급한 것이 아니라는 걸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는 분석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중간 단계라는 표현은 바이든 행정부가 공식적으로 얘기만 안 했을 뿐 새로운 내용이라고는 볼 수 없다"라며 "바이든 행정부는 그간 한 번에 북한의 핵을 다 없애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걸 인정하면서 '완전한 비핵화'의 과정에서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기조를 이어왔다"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어 "바이든 행정부 2기가 시작되면 모르겠지만, 그것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남은 기간 북한과 의미 있는 접촉을 적극적으로 시도할지는 여전히 의문"이라며 "북한 역시 미국과의 대화는 대선 결과를 보고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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