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경축사의 북한‧통일 분야 평가와 과제, 통일연구원>

(조한범 통일연구원 통일정책연구실 선임연구위원)

한국주도의 평화적 해결의지 천명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8‧15경축사의 1/3가량을 북한‧통일문제에 할애할 만큼 한반도문제를 강조했다. 북한의 괌 주변 타격발언으로 고조된 북‧미 간의 대립과 일촉즉발의 한반도 위기를 감안한다면 당연한 행보라고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이 경축사에서 가장 강조한 부분은 평화이며,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평화의 가장 큰 도전이라고 밝혔다.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는 이유는 한반도의 평화를 근본적으로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쟁이나 무력분쟁의 방법이 사용된다면 한반도의 평화는 파괴되고 말 것이며, 결국 해결의 의미는 퇴색되고 말 것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가 반드시 평화적으로 해결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어떠한 경우에도 전쟁만은 막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 점이다. 한반도에서의 군사행동은 한국만이 결정할 수 있으며, 누구도 우리의 동의없이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다고 강조한 의미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지난 7월 북한이 화성-14호를 두 차례 발사한 이후 고조된 ‘한반도 8월 위기설’의 진행과정에서 북한과 미국은 상호 전쟁불사의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인민군 전략군 사령관인 김락겸은 7월 9일 발언을 통해 중거리 탄도미사일로 괌 주변을 타격할 수 있다는 고강도의 발언으로 미국을 압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 우리의 핵무기는 어느 때보다 강하다”고 언급한 데 이어 북한이 “화염과 분노”에 직면할 수 있다는 강력한 경고로 맞받아쳤다. 이와 동시에 트럼프 행정부 외교안보라인의 주요 인사들의 입에서는 북한에 대한 군사적 옵션에 대한 언급들이 쏟아져 나왔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할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한국에 전가될 것이며 물적, 인적 손실은 헤아리기 어려운 천문학적 규모에 달할 것이다. 더군다나 북한과 미국은 핵전쟁의 가능성까지 언급하고 있는 판이 아닌가. 

한반도의 현재와 미래 모두를 절망에 빠뜨릴 수 있는 전쟁불사의 발언들이 북‧미 고위층 간에 오가는 상황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문 대통령이 한국만이 한반도에서 군사적인 결정을 할 수 있다는 발언에 힘을 준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어떠한 경우에도 전쟁의 참화는 막아야 하며, 아무리 불가피한 경우라 하더라도 한국의 허락없이 군사행동이 허용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북한뿐만 아니라 미국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메시지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은 한국과 미국 모두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 일이며, 한‧미동맹은 이 같은 목적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라는 점을 주지해야 한다.

비핵화와 남북관계의 투 트랙 견지

문재인 정부 대북정책의 핵심적인 두 기둥은 ‘비핵화’와 ‘남북관계’라고 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7월 두 차례 이루어진 북한의 화성-14호 발사에 대해 즉각 탄도미사일 발사 훈련 지시로 대응했으며, 논란이 되고 있는 사드의 잔여 발사대 4기의 임시배치를 전격적으로 결정했다. 

전례없는 신속한 대응이며, 북핵문제 해결에 대한 단호한 의지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어떠한 경우에도 북한의 핵무장을 막고 궁극적으로 비핵화를 견인해내겠다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입장이며, 이를 위해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포괄적 구상을 제시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번 8‧15 경축사에서 비핵화를 위한 첫 단계의 조치로 동결을 제시했다. 한반도 상황의 복잡성과 핵 폐기의 실무적 난제들을 고려할 경우 비핵화협상은 장기적이고 지루한 과정이 될 것이다. 현 단계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상황의 악화를 방지하고 협상의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며, 동결은 그 출발점이 된다. 

북한에게 당장 비핵화 조치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며, 미국의 경우에도 북한 핵 개발을 멈출 수 있다는 점에서 북핵문제 해결의 입구로서 북핵의 핵‧미사일 개발 동결 조치는 가장 현실적 대안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어떠한 경우에도 출구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이어야 하며, 이 같은 목표의식이 희석화되는 상황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한국과 주변국의 전략적 목표는 상이하다. 미국과 중국의 경우 비핵화를 포함한 한반도 문제의 안정적 관리만으로도 목표의 달성이 가능하다.1) 그러나 한국은 비핵화를 넘어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를 달성해야 하며, 이를 토대로 중장기적인 통일로드맵을 실현하는 것이 국가적 목표이다.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이다. 문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북한의 붕괴 또는 흡수통일을 추구하지 않을 것임을 명백히 했으며, 남북합의의 상호이행과 아울러 국회동의라는 제도화 절차까지 언급함으로써 남북관계에 대한 현 정부의 진의를 강조했다. 아울러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을 통해 남북경협이 일방적 차원이 아닌 남북한의 공존 공영을 도모할 수 있는 방안임을 제시했다.

이산가족 상봉과 평창올림픽 참가를 재차 촉구한 점은 인도적 및 비정치적 사안의 협의를 통해 시급한 사안을 해결하고 남북한 간 대화 창구를 마련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핵위기의 엄중성과 장기적인 남북관계의 교착국면을 고려했을 때 단기간에 남북대화를 정상화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인도적 사안과 스포츠 교류는 연성이슈로서 남북접촉에 있어서 유연성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사안을 통해 남북한 간의 초기적 신뢰구축 과정을 진행시키는 것은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이 운전사가 되기 위한 과제

북한을 포함해 주변국의 한반도문제에 대한 이해관계는 상이하며, 국가적 위기구조에 직면한 북한의 현실을 고려할 때 비핵화와 통일이라는 양대 목표를 추구하는 것은 사실상 한국이 유일하다. 또한 한국은 북핵 위협의 가장 직접적 당사자이며, 한반도 무력 분쟁시 가장 큰 피해를 감당해야 하는 지역이다. 

바로 한국이 남북관계의 운전석에 앉아야 하는 당연한 이유이다. 그러나 당면한 북핵문제의 심화국면에서 대립구조가 북‧미를 중심으로 형성되면서 한국의 역할에 한계가 노정되고 있다. 아울러 사드배치에 대한 중국의 반발 등 북핵문제의 여파가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미치고 있다.

‘운전석에 앉았는데 자동차가 움직이지 않는 상황’, 한국이 처한 현실을 비유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자동차’는 북핵문제의 주요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 그리고 나아가 중국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북한과 주변국들이 한국의 의도대로 움직여주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주변국들에 대한 한국의 주장은 규범적이고 당위적이지만 공허하다. 북핵문제의 주요 당사자들을 실질적으로 압박할 수 있는 레버리지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전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북한의 핵무기가 실전 배치될 경우 이를 막을 수 있는 완벽한 수단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자각이 필요하다. 킬체인(kill chain), 미사일방어망(KAMD), 대량응징보복(KMPR) 등 한국형 3축 체제는 자주국방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나 북핵 대응에는 한계가 있다. 

핵추진 잠수함은 한국이 필요로 하는 전략무기이지만 실전배치까지 최소 수년 이상이 걸린다는 제약이 있다. 전술핵 반입이나 핵확장억지력도 동맹에게 안보를 전적으로 의지해야 한다는 점에서 제약이 있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이외의 대안이 없는 이유이다.

북핵문제가 임계점에 도달한 시점에서 이제 필요한 것은 북한을 포함한 주변국들이 한국의 입장을 이해하고 주장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창의적 수단을 확보하는 일이다.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전력을 기울이되 북한이 핵무기를 실전배치함으로써 레드라인을 넘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한국 자체의 대응 시나리오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핵무장은 어떠한 경우에도 용인될 수 없으며, 비핵화 과정은 평화적이어야 한다. 금번 문 대통령의 8‧15경축사는 이 같은 차원의 강한 의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남은 것은 한반도 문제를 한국의 국가적 목표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향후의 노력과 의지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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