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현안진단> 

'당중앙위 전원회의 경제분야 평가: ‘자력갱생’ 기조 하 국가경제운영의 새로운 판짜기 착수'

양문수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대개의 북한 신년사에서 경제분야의 정책은 그다지 새롭지 않다. 경제문제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경제정책 변화는 이른바 ‘체제’의 문제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정치적 부담감 때문에 기존의 방식이나 틀을 답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구호는 요란하지만 막상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재탕삼탕이요, 그 나물에 그 밥인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다른 것 같다. 물론 통상의 신년사가 아니라, 당중앙위 전원회의 결과 보고를 신년사로 대체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전대미문의 혹독한 도전과 난관”이라는 표현으로 대변되듯이 현재의 상황이 매우 엄중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북미간 대치의 장기화, 따라서 대북 제재 장기화를 기정사실화했기 때문이지만 이 문제에 대해 나름 진지한 대응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김정일 시대와 구분되는, 김정은 시대의 특징이기도하다. 

하여튼 북한은 이제 국가경제운영의 새로운 판짜기에 착수한 것으로 보인다. 아니, 김정은 위원장은 실무진에게 국가경제 운영틀의 리셋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제 실무진들은 그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본격적인 고민을 하기 시작한 것 같다.  

우선 기존에 국가 전체적으로나 최고지도자 개인적으로나 매우 소중하게 여겼던 두 가지를 잠시 접어두거나 포기했다.

하나는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2016~20년)이다. 이는 김위원장이 36년만에 처음으로 개최한 당대회에서 정상적인 사회주의 국가 경제 운영의 상징으로 야심차게 내세웠던 것이다. 이후 이 전략의 목표 수행은 국가경제의 최대 과업으로 부상했다. 그래서 신년사를 비롯해 중요한 공식석상에서 지속적으로 언급되었다. 또한 공식매체들은 이 전략의 진행상황에 대해 수시로 보도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 전략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 2020년이 ‘5개년 전략’의 마지막 해라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인상적이다. 물론 추후에 ‘5개년 전략’을 다시 공식 거론하면서 더욱이 ‘성공적인 목표 수행 완수’라고 주장할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만 실제로 목표 달성 자체는 이미 물건너 간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는 ‘인민생활 향상’ 슬로건이다. 이는 애민(愛民)적 지도자라는 이미지와 직결된다. 김위원장은 집권 이후 ‘인민생활 향상’을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그는 집권 초기 태양절 100주년 기념일(2012.4.15.) 연설에서 “우리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고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게 하자는 것이 우리 당의 확고한 결심”이라고 말해 주위의 눈길을 끌었다. 이후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인민생활 향상’을 역설했고, 매년의 신년사에서는 ‘인민생활 향상’이 빠지는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의 전원회의에서는 ‘인민생활 향상’이라는 표현이 사라졌다. 대신 “허리띠를 졸라매더라도 기어이 자력부강, 자력번영하여... ”라는 표현으로 대체되었다. 취임 직후의 “인민이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겠다”던 약속을 8년 만에 뒤집으면서 이제는 인민들의 희생이 불가피함을 공식화한 셈이다. 

이런 목표들을 접으면서까지 무엇을 추구하는가? 물론 큰 틀로서는 체제 혹은 국가의 생존이다. 이는 한편으로는 ‘국방력 강화’이며, 또 한편으로는 경제 분야에서의 ‘버티기’이다. 하지만 표면적으로는 국가의 목표라는 게 있어야 한다. 그래서일까, 이번 회의에서 경제분야의 ‘10대 전망목표’라는 게 새롭게 나왔다. 이와 관련, 김위원장은 “나라의 경제를 안정적, 전망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10대 전망목표의 지표별 계획들을 과학적으로 정확히 타산하여 세우고”라며 “전망목표가 확정되면 국가적으로...  반드시 점령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따라서 ‘10대 전망목표’는 극히 최근에 새롭게 제시된 범주인 것으로 보인다. 이제 목표부터 수립하는 과정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경제 전반에 대한 ‘10대 전망목표’이고 또 하나는 과학기술부문의 ‘10대 전망목표’이다. 물론 국가 전체적으로는 전자가 더 중요하다. 이것이 기존의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을 대체한 것인지 여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또한 이것이 앞으로 국가경제 운영에서 어느 정도의 위상을 차지할지도 확실치는 않다. 이는 향후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의 운명에 달려 있을 것이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우선 기강부터 쇄신해야 한다고 본 것일까. 김위원장이 경제 일꾼들에 대해 ‘타성, 폐단’ 등의 어휘를 사용하며 강하게 질타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그 “자력갱생, 자급자족하자고 계속 말하고 있지만 이를 실행하는 우리의 사업은 지난날의 타성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국가관리 사업과 경제사업이 “자립, 자강의 거창한 위업을 견인하고 추동하기에는 불충분하며 대담하게 혁신하지 못하고 침체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현재 나라의 경제 상태가 좋지 않으며, 특히 “중요한 경제과업을 해결하기 위한 국가의 집행력, 통제력이 미약하다”고 지적했다. 김위원장은 특히 “경제사령부로서의 내각이 자기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심각한 현 실태”를 엄중히 질책했다.

그런 이후에는 대책과 방향을 제시했다. 그는 경제분야에서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서 “경제사업 체계와 질서를 합리적으로 정돈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지난 시기의 과도적이며 임시적인 사업방식을 계속 답습할 필요는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러면서 “나라의 경제를 재정비하자면 결정적으로 경제사업에 대한 국가의 통일적 지도와 전략적 관리를 실현하기 위한 강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당부했다. 아울러 “국가경제사업체계의 중핵인 내각책임제, 내각중심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정도만 놓고 보면 지금까지의 경제개혁적 기조의 후퇴를 암시받을 수 있다. 실제로 현재의 제재 국면에 돌입할 때 일각에서 예상했던 것처럼, 보수적/퇴행적 정책기조로의 전환 시도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반드시 그런 것인지 의아한 대목도 있다. 무엇보다도 이번 회의는 김정은 시대의 대표적인 기업분야 경제개혁 조치이며, 지난해 헌법개정에서 김일성시대부터의 전통적인 사회주의 계획경제 기업관리방식이었던 ‘대안의 사업체계’를 대체해서 큰 주목을 받았던,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의 지속적 실시를 주장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뿐만 아니다. 그는 “혁명적인 사상과 정신은 시대를 앞서나가야 하지만 경제사업은 현실에 발을 든든히 붙이고 진행하여야 한다”고 했다. 더욱이 현실적 요구에 맞게 계획사업을 개선할 것도, 인민경제계획의 신뢰도를 결정적으로 높일 것도 주문했다. 여기서 눈에 띄는 단어는 ‘현실’과 ‘계획’이다.

또한 그는 경제분야의 전반적인 기구체계의 정비도 지시했다. 그리고 ‘경제관리의 개선사업을 강하게 밀게 나갈 것’ 또한 지시했다. 김위원장은 아울러 △국가상업체계, 사회주의상업의 복원, △불필요한 절차 및 제도 정리, △사업능률을 저하하는 요소들의 바로잡기, △전문 건설역량 확대 강화와 건설장비 현대화,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의 현실성 있는 실시 등을 주문했다. 물론 경제관리 이외의 여러 문제도 언급했다. 농업 및 공업분야의 여러 과제들을 제시하고 투자 방식의 개선도 요구했다. 또한 “과학은 경제발전을 견인하는 기관차”라며 과학기술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주목할 만한 것은 구체적 과제로서 가장 먼저 거론한 것이 “국가상업체계, 사회주의상업을 시급히 복원할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제시한 것이 “사회주의상업의 본태를 고수하면서도 국가의 이익과 인민들의 편리를 다같이 보장할 수 있게 상업봉사사업을 개선하기 위한 방법론을 연구대책”하라는 것이다. 또한 앞에서 언급했던 “현실적 요구에 맞게 계획사업을 개선” 및 “인민경제계획의 신뢰도 제고”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김정은 시대의 대표적 경제개혁 조치인 ‘우리식경제관리방법’의 주된 특징을 떠올리게 한다. 즉 시장을 계획의 체계 내로 편입시키는 것인데 내용적으로는 시장경제적 요소를 더 많이 수용하면서 외관상으로는 계획경제를 강화하는 것처럼 포장하는 것이다.

한편 이번의 새로운 판짜기에서 가장 큰 정책기조는 자력갱생이다. 그런데 자력갱생은 국가 단위의 자력갱생뿐 아니라 지역 및 기관·기업소, 심지어 개인 단위의 자력갱생도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고 지역/기관·기업소/개인 단위의 자력갱생은 기본적으로 분권화의 힘을 가진다. 사실상의 각자도생에 가깝다. 따라서 김위원장이 이번에 강조한 ‘국가의 경제조직자적 역할 강화’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뿐만 아니다. 그는 내각책임제, 내각중심제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군사력 강화와 “혁명의 참모부인 당의 강화”를 주장하고 있다. 이 또한 모순적이다.

결국 연구와 기획을 담당해야 하는 실무진들의 고민이 이만저만 아닐 것 같다. 방향성과 조건들이 적지 않게 서로 충돌하는 속에서 제도 개선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또한 제도만 바꾼다고 해서 성과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새로운 그림이 나올지 쉽게 예측하기 어렵고, 그래서 북한의 움직임에서 눈을 떼기가 더욱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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