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남북 정상합의를 부정하는 북한 외무성 미국 국장의 대미 사대주의적, 반민족주의적 담화 비판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

북한 외무성의 권정근 미국 담당 국장이 6월 27일 개인 명의의 담화를 발표해 “조미[북미]대화가 열리자면 미국이 올바른 셈법을 가지고 나와야 하며 그 시한부는 연말까지”라고 주장하면서 미국의 대북정책 전환을 요구했다. 권정근은 또한 “미국과 대화를 하자고 하여도 협상자세가 제대로 되어 있어야 하고 … 온전한 대안을 가지고 나와야 협상도 열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북한 외무성은 스스로 대안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고, 미국과의 실무협상을 통해 접점을 찾기 위한 노력도 거부하며, 일방적으로 미국에게만 대안을 제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이는 결코 주체적인 태도가 아니며 매우 대미 의존적인 입장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권정근은 “조미[북미]대화의 당사자는 말 그대로 우리[북한]와 미국이며 조미 적대관계의 발생 근원으로 보아도 남조선 당국이 참견할 문제가 전혀 아니다.”라고 남한과의 대화 거부 입장을 밝혔다. 권정근은 이어서 “우리가 미국에 연락할 것이 있으면 조미 사이에 이미 전부터 가동되고 있는 연락통로[채널]를 이용하면 되는 것이고 협상을 해도 조미가 직접 마주앉아 하게 되는 것만큼 남조선 당국을 통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남한에 대한 철저한 배제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처럼 미국하고만 대화하고 남한과의 대화는 거부하겠다는 권정근의 ‘통미배남(通美排南)’ 입장은 공식적으로는 ‘미제국주의’를 반대한다고 하면서도 동족인 남한을 외면하고 미국만을 바라보는 북한 외무성의 대미 사대주의적(事大主義的)이고 반민족적인 태도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북한의 이 같은 입장은 내부적으로 비핵화 협상 주도권이 노동당 중앙위원회 통일전선부에서 외무성으로 넘어가면서 나타난 결과이다.

주지하다시피 2018년 6월의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개최는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북한이 미국과의 정상회담 개최에 대해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던 작년 2월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과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의 방한 시 북미정상회담 추진을 적극 제안한 것도, 동년 3월 김정은 위원장의 북미정상회담 추진 의사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한 것도, 그리고 5월에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취소 입장을 밝혔을 때 김정은 위원장과 판문점에 만나 제1차 북미정상회담이 다시 추진될 수 있게 한 것도 문재인 대통령과 한국 정부였다.

뿐만 아니라 작년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이후 개최된 제1차 북미고위급회담의 결렬로 북미 관계가 냉각되었을 때 다시 북미 대화의 불씨를 살린 것도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와서 북한 외무성 미국국장이 “조미관계는 우리 국무위원회 위원장 동지[김정은]와 미국 대통령 사이의 친분관계에 기초하여 나가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한국은 대화에서 빠지라고 요구하는 것은 매우 배은망덕한 행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남북 정상은 지난해 4․27 판문점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위해 적극 노력하기로”합의했다. 남북 정상은 또한 9.19 평양정상선언을 통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진해나가는 과정에서 함께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로 합의했다. 그런데 북한 외무성의 미국 담당 국장이라는 핵심 간부가 이처럼 김정은 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 간의 합의를 부정하는 발언을 한 것은 북한 최고지도자의 권위를 무시한 것이고 김 위원장의 대외적 약속에 대한 신뢰도를 실추시킨 것이다.

따라서 만약 김정은 위원장이 진정으로 남북 및 북미 관계 개선 의지가 있다면 이처럼 겉으로는 반미 입장을 보이면서 실제로는 대미 사대주의적이고 반민족적인 입장을 보이는 양봉음위(陽奉陰違), 면종복배(面從腹背)하는 인사를 보다 민족주의적이고 대외 협상에 적극적인 인물로 교체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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