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I 특별기획논평]인도·태평양을 둘러싼 미중의 포석 전개와 한국의 4대 미래 과제 하영선, 전재성

EAI동아시아연구원

 

인도·태평양 전략과 일대일로 전략

21세기 아시아·태평양 질서는 미중의 본격적 포석 전개에 따라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2013년 6월 오바마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서니랜드(Sunnylands) 정상회담에서 서로 군사적 충돌을 피하고, 핵심 이익을 존중하며, 공동 번영을 위해 협력하는 신형대국관계를 구축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신형대국관계를 표방한지 6년 만에 미국과 중국은 인도·태평양 전략과 일대일로 전략이라는 전략적 경쟁을 본격적으로 벌이기 시작했다.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가 5월 31일 싱가포르 샹그릴라 호텔에서 개최한 아시아안보회의에서 미국의 패트릭 섀너한(Patrick Shanahan) 국방장관대행과 중국의 웨이펑허(魏鳳和) 국방장관은 향후 양국이 추구할 지역전략의 비전을 제시하면서 날선 공방을 주고 받았다. 같은 시기에 발간된 미 국방부의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Indo-Pacific Strategy Report)”와 중국의 “무역협상에 관한 중국의 입장(关于中美经贸磋商的中方立场)” 백서는 양국의 현실에 대한 인식과 실천 전략 간의 갈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중국은 미국과 신형대국관계를 추구하기 시작하던 2013년에 신형주변국관계의 핵심으로서 일대일로 전략을 발표하였다. 이 전략은 일차적으로 아시아의 인프라 건설 네트워크를 조성하는 한편, 유럽, 아프리카 국가들을 연결하는 통상, 투자, 사회문화 네트워크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사업이 진행되면서 중국은 100여개에 달하는 국가들과 공동사업을 추진하고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설립하여 1조 달러 이상의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또한 2차 포럼을 통해 640억 달러의 추가 기금을 출연한 것으로 발표된 바 있다. 40개국에 달하는 국가들의 정상과 국제기구 수장들을 초청하여 일대일로 전략의 원칙과 성과, 중요성을 피력하는가 하면, 관함식을 동시에 개최하여 중국의 증강된 군사력을 과시하기도 하였다.

일대일로 전략은 단순한 해외경제개발 지원전략이 아니라 중국이 강조하고 있는 신형국제관계에서 신형대국관계와 함께 쌍벽을 이루고 있는 신형주변국관계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많은 공동사업들 중에, 중국의 자본을 빌려 대규모 사업을 벌인 국가들이 부채를 청산하지 못하는 경우도 출현하고 있다. 소위 “부채의 덫”에 빠진 고위험 국가들은 주요 항만 등 주권적 자산의 일부를 중국에 양도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논란에서 중국이 지원 대상국가의 경제발전보다 중국 기업의 이익을 더 중시하고, 상대국 환경을 해치는 공동 사업방식도 문제로 제기되었다. 중국의 부채외교를 보면서 많은 국가들이 중국과의 사업을 취소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중국의 의도가 단순한 지원 건설을 넘어 지정학적 팽창이 아니냐는 문제까지 제기되고 있다. 중국은 이러한 비판을 의식하여 질적으로 향상된 투자와 개방성을 추구하고, 환경을 보호하고 투명한 일대일로(green and clean BRI)를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이 진행되는 가운데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상당한 시간을 거치면서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에 따라 기존의 다자주의 제도에서 탈퇴하고 중국과 무역분쟁을 치르는 가운데, 2017년 11월 트럼프 대통령은 아시아 순방에서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Free and Open Indo-Pacific)’의 안전, 안보, 그리고 번영에 대한 미국의 약속을 지키겠다는 비전을 밝히면서 인도·태평양 지역 개념을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인도나 호주에서는 인도양과 태평양을 하나의 전략공간으로 보려는 노력이 이루어져 왔고, 일본의 아베 총리도 2007년 인도 연설에서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2018년에 들어서서 미국은 군사, 경제, 외교 무대에서 인도·태평양 전략 개념을 활발하게 사용했다. 2018년 5월 미국은 기존의 태평양사령부를 인도태평양사령부로 개칭하여 인도·태평양의 군사적 전략 개념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인도·태평양 사령관은 이 개념이 경제적 함의만큼 군사적 함의를 가지는 것은 아니라는 견해를 밝혔다. 따라서 인도·태평양 전략이 중국을 군사적으로 봉쇄하거나 본격적으로 견제하려는 개념은 아니라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2018년 7월 30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윌버 로스(Wilbur Ross) 미 상무장관, 릭 페리(Rick Perry) 미 에너지장관, 카를로스 구테레즈(Carlos Gutierrez) 전 미 상무장관, 카란 바티아(Karan Bhatia) GE 회장 등 15명의 정부 및 산업 대표 고위급 인사들이 참석한 인도·태평양 비즈니스 포럼(Indo-Pacific Business Forum)에서 인도·태평양 전략의 보다 구체적인 경제적 내용을 제시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미국이 과거 기초 분야에 기금을 공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디지털 경제, 에너지, 사회기반시설 등 미래의 토대가 되는 새로운 구상에 1억 1,300만 달러를 투자하고, 이 자금은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추구하는 미국의 새 시대에 대한 착수금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정부의 노력이 미국 기업의 투자를 위한 촉매제 역할을 하여, 국가 주권, 법의 지배, 지속가능한 번영이 뿌리내리는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에 대한 지원이 확대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보다 구체적으로 우선, 디지털 연결성 및 사이버보안 파트너십에 대한 투자로 시작된다. 협력국의 디지털 연결성을 제고하고 미국 기술의 수출 기회를 확대하고자 미국은 2,500만 달러의 투자 계획을 세웠다. 미국은 기술 원조와 민관 합동 파트너십을 통한 통신 인프라 개발을 지원하고 시장에 기반한 디지털 규제 정책을 확대하며 공동 위협에 대처하는 협력국의 사이버 보안 능력을 구축할 계획을 제시하였다.

둘째, 에너지를 통한 아시아 개발 및 성장 구상(Asia EDGE: Enhancing Development Growth Energy Initiative)으로 2018년 한 해 동안 5,000만 달러를 투자하여 인도·태평양 파트너 국가들이 자국의 에너지 자원을 수출·생산·이전·저장·구현하는 내용이다. 미국은 방대한 천연 자원, 세계를 선도하는 민간 기업, 정교한 개발금융 수단,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술 전문성을 포함하는 풍부한 에너지 역량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러한 역량을 총동원해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을 모색하고 에너지 시장을 확보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미국은 셰일 혁명 이후 에너지의 자급자족은 물론 수출국이 됨에 따라 에너지 수입국인 중국에 대해서 비교 우위를 확보하고 이러한 전략을 구상하게 된 것이다.

세 번째는 사회기반시설 개발 촉진을 위한 인프라 사업 및 지원 네트워크로, 3,000만 달러의 자금을 투입하고, 프로젝트 발굴, 파이낸싱, 기술 원조를 지원하는 수단을 조율하고 강화하며, 이를 공유하는 부처 간 기구를 신설하고, 파트너 국가들이 민간 법률 및 금융 자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인도·태평양 사업 자문 기금도 신설하는 계획이다.

펜스 부통령은 2018년 11월 APEC 회의에서 전략적 해외 민간 투자를 지원할 목적으로 미국 정부의 개발 금융 규모를 600억 달러로 두 배 이상 증액하는 ‘개발 유도 투자 활성화 개선법(BUILD: Better Utilization of Investments Leading to Development)’을 소개했다. 또한 일본과 협력해서 출연하여 100억 달러를 지역에너지에 투자하고, 미국-아세안 스마트시티 파트너십, 파푸아뉴기니의 전기제공을 위한 5개국 파트너십 체결 등의 사업도 소개했다.

또 다른 한편으로, 최근 격화되고 있는 무역 분쟁에서, 미국은 6월 1일부터 2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물품에 25%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중국 역시 60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제품에 최고 25% 관세를 부과하였다. 트럼프 정부는 관세 인상 조치에 더해 이미 화웨이 및 68개 계열사를 국가안보라는 명목 하에 거래제한 기업 리스트에 올렸고 인텔, 구글 등 많은 기업들이 화웨이와 거래를 중단하기 시작했다. 또한 미국은 동맹국들과 전략적 협력국에게도 동참을 요구하고 있다. 향후 중국도 관세 인상에 더해 시행할 수 있는 추가 조치들, 즉, 미국 제품불매 운동, 희토류 수출 제한, 미국 국채 매각 등의 수단을 고민할 것으로 보여 양국 간의 대치는 심화될 전망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외교 무대에서도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미국은 인도·태평양 지역 개념에 관심을 가져온 일본, 호주, 인도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일본과 호주는 중국의 부상을 염두에 두고 인도·태평양 전략 개념을 적극적으로 검토하여, 2017년 이전에 이미 국방백서 등 정부 문서들을 통해 인도·태평양 개념을 사용했고, 관련 국가들의 협력을 강조하고 있었다. 인도 역시 인도·태평양 지역의 협력을 강조하고 있었지만 중국과 다양한 협력관계를 추구하고 있었으므로 명백한 견제 개념으로 인도·태평양 전략을 사용하고 있지는 않았다. 미국은 중국, 호주, 일본 등과 함께 이미 2007년 4개국 전략 협력을 추구한 바 있다. 그러나 호주가 중국과 우호관계를 추진하면서 중국의 견제로 4개국 협력에 미온적 반응을 보이면서 4국 전략 협력은 오래가지 못했다. 2017년 이후 미국은 일본, 호주, 인도와 새로운 4국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네 국가는 적극적인 상호 협력은 물론 인도·태평양 전략의 한 축을 담당하면서 다자구도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미 국무부의 정책기획국장인 키론 스키너(Kiron Skinner)는 최근 중국의 부상에 대한 미국의 인식을 보여준다. 스키너 국장은 중국이 비서구 세력으로서 미국의 전략과 대결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국가이익의 충돌이 아닌 ‘자유주의 대 권위주의’ 간의 문명의 충돌이라는 견해를 밝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미국은 중국과 무력대결이나 적대적 충돌을 추구하지는 않지만 치열한 경쟁을 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년부터 진행된 미중 무역경쟁은 물론, 에너지를 축으로 한 아시아 개발전략, 중국의 기술발전전략에 대한 강력한 견제, 그리고 중국의 남중국해 팽창에 대한 자유항행작전의 본격화 등이 이러한 변화의 배경이 되고 있다.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이 점차 본격적인 대중 견제전략으로 변화한다는 사실을 감추지 않고 있으며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에 대한 미국의 대응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새너한 국방장관 대행은 샹그릴라 대화의 기조연설에서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의 내용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군사 분야를 중심적으로 다루고 있지만 전략의 전체적 포석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우선 머리말의 결론에서 이 인도·태평양 전략의 경제, 외교, 안보의 세 기둥을 강조하고 있다. 다음 서론에서 미국이 역사적으로 인도·태평양 세력이었던 것을 지적한 다음에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의 비전을 보다 구체적으로 주권과 독립의 존중, 분쟁의 평화적 해결, 자유롭고 공정하며 호혜적인 무역, 투자관계 및 지적재산권 보호, 자유항행과 상공통과의 자유를 포함한 국제규범과 규칙의 수호라고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다음으로 보고서는 인도·태평양 지역이 당면하고 있는 4대 핵심 도전으로서 수정세력(revisionist power)인 중국, 다시 소생한 악의 주인공인 러시아, 부랑(rogue) 국가인 북한, 테러같은 초국가적 도전을 들고 있다. 그 중에도 역시 중국을 가장 강조하고 있다. 중국은 규칙기반 국제질서를 저해하는 국가로 다양한 강제수단을 동원해 주변국가 등의 자유롭고 개방적인 활동을 방해한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국제규범 준수의 약속을 어기는 것도 문제이지만 애초에 규범 준수의 약속 자체를 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중국에 대해서 미국은 필요하다면 규칙에 따라서 중국과 ‘반드시 충돌을 의미하지는 않는 경쟁’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미국은 새로운 인도·태평양 전략 지평 속에서 미 국민을 보호하고, 미국의 번영을 증진하고, 힘을 통한 평화를 유지해야 하는 핵심 국가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미국 본토를 방어하고, 세계 최강의 군사대국의 위치를 유지하고 핵심 지역에서 세력 균형을 유지하고, 안보와 번영을 위한 국제 질서를 건축하기 위한 국가안보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는 다른 지역과 비교해서 4배 이상 큰 사령부를 중심으로 37만의 미군을 배치하고, 강력한 무기 체계와 다면전투작전으로 만반의 준비태세를 취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더해서 미국은 일본, 한국, 필리핀, 호주, 태국에 이르는 군사동맹국들의 연합군사력과 인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몽골리아, 대만, 팔라우 등의 전략적 파트너, 그밖에 프랑스, 캐나다, 영국, 독일, 스페인 등 유럽과의 안보협력을 확보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의 새로운 아시아안보질서 건축의 핵심 개념으로 네트워크로 연결된 지역 형성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8년 만에 국방장관을 샹그릴라 대화에 보낸 중국은 시진핑 주석의 인류운명공동체 비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웨이 장관은 미국이 군사블록을 만들거나 중국의 이익을 저해하려는 노력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미국이 일방주의적 보호주의 하에 세계 회의 흐름을 반대하고, 국제조약과 기구에서 탈퇴하고 자국 이익을 앞세우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반면 일대일로에 현재 150개 이상의 국가들과 국제기구들이 참여하고 있고 2차 포럼에는 150개 국가와 92개의 국제기구에서 6천명 이상의 대표단이 참여했다고 말하고 있다. 동시에 최근 개최되었던 아시아문명대화회의를 언급하면서 문명다원주의 원칙에 따라 중국은 타국을 침략하지 않을 것이며 평화적 발전을 추구하며, 패권을 추구하거나 영향권을 만들지 않겠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중국의 군사전략은 적극 방어전략이며 모든 군사력은 방어 중심이라고 말하고 있다.

동시에 웨이 장관은 주요 현안 문제들에 대해 언급하면서, 무역 분쟁에서 중국이 대화와 경쟁 모두에 준비되어 있으며, 대만문제에서 분리를 조장하는 미국의 개입을 용납하지 않겠고,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를 지지하며 미국의 개입은 중국의 영토주권에 대한 도전이며, 북핵 문제에서 중국은 지속적인 기여를 해왔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미중 군사관계에서도 실용적인 부분에서 협력을 유지해 오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중국 국무원은 6월 2일 웨이장관의 연설에 맞추어 ‘무역협상에 관한 중국의 입장’ 백서를 발간했다. 무역전쟁의 책임은 온전히 미국에게 있고 관세 전쟁은 미국의 경제에 타격을 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백서는 미중 경제관계가 양국 관계의 축으로 관세 전쟁은 양국은 물론 세계의 안정과 번영에 영향을 미치는데, 트럼프 정부가 관세 인상을 무기로 위협을 가했고 파트너들과 긴장을 조성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무역전쟁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지 못할 것이라고 예견하면서, 중국은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 합법적 권리와 이익을 지키면서 앞으로도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중 전략 포석의 전개 방향

21세기 아태 신질서의 건축을 위한 미중의 포석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첫째,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이 추상적인 지역전략이 아니라 전략적 경쟁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이 보다 명확해지고 있다. 섀너한 장관대행의 연설이나 인도·태평양전략보고서는 중국을 규칙기반 질서의 저해세력, 현상변경세력으로 명시적으로 부르면서, 2017년의 “국가안보전략보고서”에서 규정했던 전략적 경쟁자보다 더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또한 미국은 중국과의 경쟁을 피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명확히 했다.

중국 역시 미국이 시진핑 주석의 미래 운명공동체 비전에 위해를 가하는 세력이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미국은 패권을 지향하며 다른 국가들의 주권을 침해하고 일방주의적으로 무역보복을 단행하고 자국의 이익만을 앞세우는 강대국이라는 것이다. 기존의 국제질서에서 탈퇴하고 국제규범을 무시하는 세력이며 규칙기반 질서를 저해하는 것은 오히려 미국이라고 비판한다. 웨이 국방장관이 논하듯이 무역경쟁, 대만, 남중국해 등 중국의 중요한 이익을 미국이 저해할 때 중국은 강력하게 미국에 저항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둘째, 미중 간의 경쟁이 무역 분야를 넘어 직접적 군사 충돌이 일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전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펜스 부통령은 2018년 10월 4일 허드슨 재단 연설을 통해 중국의 다면 공세를 지적한 바 있다. 펜스 부통령은 미국이 중국을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포용하고자 WTO 가입, 미국 시장 개방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여전히 권위주의를 유지하며 국민 감시, 인권탄압 등을 시행한다고 주장한다. 고관세 및 쿼터 유지, 환율조작, 기술이전 강요, 지적재산권 절도, 외국투자자본 유치를 위한 산업보조금 지급 등 비자유주의 정책을 지속했다고 비판한 바 있다. 더 나아가 국방력 강화를 통한 주변국 위협, 부채 외교를 비롯한 미국의 정치과정에 대한 개입, 문화, 학술 영역에서의 친중 영향력 강화 등 전방위 전략을 시행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작년 한 해 동안 미국은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경제, 인프라, 개발협력, 에너지 지원 등 범정부적 경제지원 전략을 발표하여 출범시켰고, 이번 샹그릴라 대화에서 국방장관대행은 인도·태평양 전략의 국방, 안보적 골간을 발표하였다.

중국도 경제무대에서는 미국의 일방주의적 보호무역 요구에 대응하면서도 미국이 대결을 원한다면 끝까지 싸우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중미 무역협상에 관한 백서를 발간하여 미국의 관세압박을 비판하는 한편, 장기적인 대응을 예고하고 있다. 일대일로 2차 포럼에서 보이듯이 한편으로는 국제적 비판을 수용하면서 참여 국가를 늘리고 더 많은 프로젝트 계약을 체결하여 시행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일대일로에 기존의 참가국들뿐만 아니라 유럽 국가로는 이탈리아가 참여의사를 새롭게 밝혔고, 20여개 주변국과 통화 스와프를 체결했으며, 7개국과는 위안화 결제에 합의하였고, 과학 기술, 교육, 대외원조 등에서도 성과가 있었다고 발표하였다. 중국은 상대적으로 열세인 군사 무대에서는 국방 현대화에 박차를 가해 강군몽(强軍夢)을 장기적으로 꾸준히 추구하고 있으며, 대만, 남중국해, 동중국해 등 지역 분쟁 지역에서는 중국의 군사력을 투사하기 위해 항공모함 개발, 대함탄도미사일 개발, 초음속 비행체 개발 등의 첨단 무기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리고 인류운명공동체라는 장기적 명분 외교를 강조하기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미중 경쟁은 모든 분야에서 같은 수준으로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경쟁 정도는 크게 세 분야에서 다르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미중 상호 간에 공동 이익 또는 공동 손해를 볼 수 있는 무역분쟁은 어느 한 국가의 일방적 승리로 끝날 수는 없다. 그러나 미국이 비대칭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군사무대에서는 중국은 상당 기간 직접적 군사충돌이나 대항을 회피하는 화평발전 원칙을 지킬 것이다. 다만 미중의 직접적 군사 대결로 확대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지역적 군사 긴장의 위험성은 충분히 상존한다. 그리고 미국과 중국은 서로에 대해 상대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는 무대에서는 보다 공세적인 자세를 취하게 될 것이다. 미국은 에너지와 첨단기술 무대를 특별히 중시하고 있고, 중국은 희토류나 농산물과 같은 천연자연 무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셋째, 미중 간의 경쟁이 가열되면서 아시아 국가들은 선택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샹그릴라 대화를 개최한 싱가포르의 리센룽 수상은 기조연설에서 미중의 본격적 대결의 막이 오르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양국 간의 근본적인 신뢰부족이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시아 국가들의 딜레마를 절감하면서 싱가포르와 같은 작은 나라들도 연대를 이루어 경제협력 심화, 지역통합 강화, 다자주의 제도 건설과 같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이러한 딜레마는 아시아 국가들 모두가 절실히 체감하고 있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동맹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강조하면서 미국의 막강한 군사력과 기술혁신을 바탕으로 이들 국가들과 긴밀한 연대를 이루어가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에 이어 한국을 언급하고 있는 보고서는 한미일 3각협력, 미일호 3각 협력, 미일인도 3각 협력도 차례로 명시하고 있다.

중국 역시 아세안 국가들과 협력과,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한국과의 긴밀한 협력 등을 강조하면서 아시아 국가들과 공조를 이루어가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은 북한을 제외하고 동맹국이 있지는 않지만 친성혜용(親誠惠容)의 정신에 입각하여 주변국에 위협을 가하지 않으면서 기회를 제공하고 평화로운 경제발전을 함께 이루겠다는 비전을 제시한 바 있다.

넷째, 미중의 각축이 본격화되고 있지만 양국 모두 다른 국가들의 주권 존중, 국제사회와 함께 만들어온 다양한 규칙의 준수, 개방적이고 공정한 국제경제질서의 수호 등을 강조하고 있다. 섀너한 장관대행은 중국과의 경쟁을 피하지 않겠다고 주장하면서도 규칙에 기반한 경쟁을 추구할 것이며 대결을 피하는 것을 중시한다는 뜻을 비추고 있다. 중국 역시 미국이 다자주의에서 이탈할 때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수호하는 강대국이 되겠다는 견해를 누차 강조한 바 있다. 이러한 언급들이 적나라한 세력경쟁을 합리화하기 위한 논리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이제 경제, 안보 아키텍처 건설에서 다른 국가들의 지지와 동의가 중요한 시대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미중 양국이 서로를 비판할 때 자유주의 국제질서라는 같은 비전을 기준으로 비판하고 있으며, 상호 협력 가능성과 미래 신뢰구축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군사력과 동맹 및 파트너십의 지원 등 군사적 분야, 무역분쟁과 환율, 기술혁신과 같은 경제분야, 미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중국의 문명공동체 등 철학과 이념의 분야에서 경쟁하면서도 기존의 규칙을 원용한 경쟁을 강조하고 있다.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이루는 요소들과 내용에 대한 미중 간의 견해가 모두 같을 수는 없지만 적나라한 대결보다는 규칙에 근거하여 국제사회의 눈을 의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세력전이와는 다른 양상을 읽을 수 있다.

 

한국의 4대 미래 과제

심화되고 있는 미중의 경쟁 구도 속에 한국은 빠른 속도로 어려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단기적으로 한국의 개별 이익을 챙기면서 장기적으로도 미중 모두와 협력할 수 있는 묘수를 찾으려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미 한국은 화웨이 5G 기술의 사용 여부, 남중국해 항행의 자유에 대한 입장, 그리고 사드 실전 배치에 대한 정책 등과 같은 미중 양국의 경쟁 분야에서 한국은 계속해서 입장 표명을 미룰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한국이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골몰해서 한반도 문제를 풀면, 한반도가 21세기 아태 신질서 무대에서 훨씬 유리한 배역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소박한 기대는 버려야 한다. 한국은 당면한 4대 미래과제를 하루 빨리 제대로 풀어야 21세기 아태 신질서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한반도 문제보다 훨씬 시급한 21세기 아태 신질서 문제를 제대로 풀어야 한다. 한국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신질서 바둑판의 형세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자중지란의 어리석음을 겪으면서 이미 역사적으로 두 번의 뼈아픈 매를 맞았다. 한국은 19세기 후반의 서세동점이라는 문명사적 변화 속에서 건축된 제국주의 신질서 하에서 20세기 초에 국망의 비극을 맞이한 바 있다. 20세기 중반에는 새로운 냉전질서가 동북아에 자리잡으면서 미국은 한국을 제외하고 일본을 거점으로 하는 애치슨 라인(Acheson line)을 설정하고, 소련은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세였으나, 마오쩌둥의 중국 통일과 소련의 원폭실험 성공이라는 국제적 환경 변화에 따라 북한 김일성의 전쟁통일론을 조심스럽게 지원하면서 한반도는 한국전쟁의 비극을 겪었다. 21세기에 세 번째 비극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21세기 아태 신질서 건축을 위해 빠르게 전개되고 있는 미중 포석의 의미를 제대로 해석하고 그 속에서 한반도의 21세기 생존 번영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 미중 간 전략적 선택을 서둘러서 개별 사안에서 한국의 입지를 좁혀서는 안 된다. 한국은 중견국으로서 보편 규범에 입각한 외교를 추구해온 전력이 있는 만큼, 미중 어느 한 쪽에 치중하는 이익 외교를 넘어서 동시에 21세기 규범외교를 추구하는 공간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앞서 논의한 바와 같이, 미중은 경쟁구도 속에서도 규칙에 기반한 경쟁과 포용적 국제질서와 규범을 중시하는 만큼, 한국의 규범 외교가 설 땅도 마련할 수 있다. 한국은 수출에 의존해서 번영해야 하는 국가로서 자유롭고 개방적인 자유주의적 국제경제질서를 지지하고 추구하는 규범을 준수해야 한다. 미중 양국의 이기주의를 넘어서서 한국의 이익에도 부합하고 규범적으로도 옳은 외교사안을 개발해야 한다.

특히 미중이 합의할 수 있는 규범과 규칙의 영역 중에 한국이 중요한 이해관계상관자(stake-holder)가 될 수 있는 분야를 찾아야 한다. 예를 들어 북핵 문제와 한반도 평화의 문제는 미중 양국에게도 중요한 문제이자 한국이 참여하여 문제 해결의 규범을 제시할 수 있는 이슈이다. 한국이 단지 자의 이익만을 위해 단기적으로 해결을 도모할 수도 있지만 해결 과정에서 미중의 협력 규범을 부분적으로라도 이끌어 내는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미중은 핵 비확산 규범에 기초하여 양국의 경쟁과 대결이 심화되는 중에도 협력을 계속하고 있고, 북핵 문제 해결과정이 더 진행되면 한반도 평화문제를 함께 다루게 될 것이다. 여기에는 비핵화된 북한의 외교지향, 한반도 평화를 보장하는 미중 협력체계, 한미동맹의 미래와 같은 핵심 과제가 포함될 것이다. 이때 미중이 단기적인 국가이익을 넘어 동북아 지역질서를 위한 공동의 규범을 창출할 수 있도록 한국의 외교력이 발휘돼야 한다.

셋째, 미중 대립 구도에서 같은 위치에 있는 국가들과의 협력이 중요하다. 섀너한 장관대행은 아세안의 중심성을 말하고 있고, 중국도 이웃 국가들의 주도권에 대해 긍정적인 발언을 하고 있다. 물론 이 발언들이 자국의 지원세력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지만, 미중 경쟁구도 속의 아시아 국가들이 협력해서 미중의 협력 공간을 넓히는 세력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 한국은 상호 이익이 되는 이슈에서 미중이 협력할 뿐만 아니라 합의할 수 있도록 협력의 규범과 합의 규칙을 제정하는데 기여해야 한다. 미국이나 중국의 일방적 주도가 아닌 미중을 비롯한 공동 주도의 아태 신질서를 건축해서 모든 구성원들의 포괄적 이익이 보장되도록 해야 한다.

넷째, 이슈별로 보편 규범을 추구하고 논리를 개발하려면 국내의 21세기 역량을 총 결집해야 한다. 미중은 자국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여러 이슈들을 새롭게 정의하고 분쟁의 해결을 주도할 표준을 설정하려는 포석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그 속에서 한국이 새로운 규범을 제시하여 미중 뿐만 아니라 다른 중견국들의 합의를 이끌어 내어 규범의 역 전파를 성공시키려면 지구적 차원의 지식 추적과 논리 개발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20세기 구세대들의 이분법적 진영논리를 뛰어 넘어서 21세기 신세대들의 복합적 공동진화 논리를 추진하도록 하는 미래지향적 세대 청산이 시급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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