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북미 정상회담으로 가는 길목에서: 2019년 한국 외교 과제

전재성

동아시아연구원

하노이 협상 결렬 이후 북한이 협상 시한을 1년으로 정하면서 올 한 해가 중요한 기간으로 부상했다. 만약 내년 초 북미 3차 정상회담이 순조롭게 개최될 상황이 조성되지 않는다면 2020년은 북한 비핵화 과정에서 힘든 한 해가 될 것이다. 북한은 이미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하여 비핵화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을 경우 핵무력 증강의 대안을 모색할 것이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또한 활발한 대중, 대러 접근 및 경제발전 전략을 통해 안팎으로 내실을 다시고 지구력을 키워나갈 것이다. 

이미 대통령 선거의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는 미국 정치 상황 속에서 비핵화를 위한 트럼프 대통령의 과감하고 선제적인 대북 조치도 기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오랜 경험으로 볼 때, 대북 협상이 미진할 경우 대통령 지지도에 큰 결함이 되는 반면, 상당한 성공으로 이어지더라도 국내정치적으로 결정적 득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내년 한 해가 북미 간의 대치 속에 흘러간다면 북한의 핵무력 증강 수위와 미국 대선 이후 차기 대통령의 대북 전략에 따라 중장기적인 상황이 결정될 것이다.

결국 3차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적인 개최 여부는 올 한 해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달려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14기 최고인민대회에서 세대교체를 통해 정권을 안정시키는 한편, 군부의 힘을 상대적으로 줄이고 경제와 과학, 교육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치적 차원에서 정권은 안정되었지만, 핵무력 완성 선언 이후 괄목할만한 경제성과가 있어야 장기적으로 안정된 집권이 가능할 것이라는 계산에 따른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는 정권과 체제의 안정을 대외적으로 보장받는 과정이자, 경제발전을 통해 김정은의 리더십이 가시적 성과에 기초하여 자리잡는 과정이다.

미국은 북한 핵능력의 완전한 동결이 보장되지 않은 현 상태에서 대북 압박과 제재를 유지하고 있다. 빅딜을 내걸고 하노이 협상을 결렬시켰지만 현실적으로 북한의 핵, 미사일 능력이 증강될 것이 확실한 가운데 추후 협상이 불가피하다. 북미 양측이 비핵화에 대한 합의된 목적을 제시하고 동결을 위한 핵시설의 완전한 신고와 적절한 검증 절차를 밟는다면 완전하고 검증가능한 비핵화가 진전될 것이다. 미국의 많은 전략가들 역시 합의된 비핵화 개념 하에 최대한으로 압축된 비핵화 실행절차를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과정이 신뢰구축과 각자의 합리적 대안 모색이라는 일정한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한미 정상회담, 북러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확실한 합의와 명확한 진전이 이뤄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북한의 비핵화 과정이 정상 수준(summit-level)의 다양한 대화를 수반하고 있고, 각자의 대안이 얼마나 현실성이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고 있으며, 국제적으로 합의될 수 있는 협상의 수준이 무엇인가에 대한 모색의 과정이 이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협상 테이블 밖에서 힘겨루기(off-the-table negotiation)를 하는 것도 의미 있는 노력의 과정이다. 잘만하면 신뢰구축의 과정이 될 수도 있다.

뚜렷한 진전이 없어 보이는 올 한 해의 노력이 신뢰구축과 합리적인 대안 모색으로 이어지기 위해서 현재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가? 첫째, 비핵화 로드맵의 기본 원칙을 재확인해야 한다. 비핵화와 평화체제는 병행적으로 진행되어야 하는데, 평화체제가 북한의 체제를 보장하는 중요한 과정이고, 이를 통해 북한이 비핵화를 실현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평화체제는 평화협정 체결을 핵심으로 하지만 그보다 훨씬 긴 과정이다. 남북한, 미국, 중국 등 주요 행위자 간 신뢰가 구축되어야 하고, 이는 오랜 기간의 상호 협상과 성과에 기초할 수밖에 없다. 평화체제 구축에 필요한 불가침, 군비축소, 평화보장 등 다양한 요소들은 신뢰구축에 따라 다르게 진행된다.

둘째, 북한의 체제보장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와 협상이 필요하다. 북한 비핵화는 완전 신고와 검증, 그리고 대북 경제 완화의 중간 단계를 거쳐야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북한에 대한 정치군사안보적 보장이 마지막에 가장 중요한 안건으로 등장할 것이다. 북한은 작년 자신의 선제적 비핵화 과정에 대해 군사적 안전보장을 요구했다. 종전선언, 한미 군사훈련의 완전 중단과 같은 안보 대 안보의 프레임이다. 그러나 종전선언이 어려워지면서 경제제재 해제와 같은 안보 대 경제의 프레임으로 옮겨갔다. 

제재 해제는 경제적 실익을 얻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한미의 대응의 진정성을 확인하고 체제보장감을 얻으려는 것이다. 이 기간이 지나면 결국 안보 대 안보, 군사안보적 체제보장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설사 하노이에서 스몰딜로 연변 핵시설의 완전 해체와 부분적 경제제재 해제가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시 군사적 체제보장, 즉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를 보장하는 물리적 담보를 요구하게 되었을 것이다. 만족할 만한 체제보장이 없을 경우 북한은 재제 해제 이후 경제적 보상을 받고 협상을 다시 중단할 것인데, 이는 미국에게는 협상 조건 위반으로 인식될 것이고 북한에게는 불완전한 체제보장의 불가피한 결과로 인식될 것이다. 따라서 평화체제 수립의 긴 과정에서 정치, 군사, 안보적 체제보장의 조건을 병행적으로 논의해 나가야 한다.

기존의 핵무기 전체를 폐기하고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남북 간 군사합의만으로는 부족하고 미중을 포함한 동북아의 안전보장체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더욱이 미중 간 지정학 경쟁이 가속되는 상황에서 국제적으로 북한에 대한 군사적 안전보장을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한국이 미중 양국은 물론 동북아 국가들과 다층적이고 다차원적인 전략대화를 활성화하여 평화체제 논의를 해나가야 한다. 

현재 미국 내에서는 베네수엘라 문제 및 내년 대선에 따른 복잡한 국내정치 문제로 북핵 문제의 우선 순위는 빠르게 내려가고 있고,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회의론이 확산되고 있다. 제재 강화의 목소리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비핵화 전체 로드맵 마련을 위한 한국의 노력이 절실하다. 특히 현실적인 대북 협상을 주장하는 미국 전략가들과 저변을 넓히는 전략대화가 필요하다.

셋째, 비핵화가 정체된 현 단계에서도 신뢰구축을 위한 대북 조치들이 필요하다. 대북 경제제재의 유지와 인도적 지원, 사회문화적 교류가 반드시 상충하는 것은 아니다. 북한은 제재조치가 완화되지 않기 때문에 국제사회에 대한 강한 불신감을 드러내면서 군사적 수단을 강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제재와 상충되지 않는 조치들을 찾아서 실행해야 한다.

비핵화 출구 이후 북한의 모습을 어떻게 그려 보이는가가 북한에게 인센티브로 작용한다. 밝은 미래와 경제적 잠재력의 실현 등과 같은 수사로는 북한을 움직이기 어렵다. 가시적이고 구체적인 전략적 관여의 패키지가 마련되어야 한다. 지난 주한미군 사령관이었던 빈센트 브룩스 장군이 제안한 북한 펀드(North Korea Fund)와 같은 대안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실제로 국제적 차원에서 상당 자금을 모아 펀드를 만들고 이 과정과 노력을 북한에게 보여줌으로써 신뢰를 강화할 수 있다는 제안이다. 북한에게 자금을 주지 않더라도 가시적 보상이 목전에 마련되어 있다면 유익한 도움이 될 것이다.

넷째, 비핵화 및 남북관계 개선과 한국의 강대국 외교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현재 한국 외교는 북핵 일변도 외교라는 비판에 직면해있다. 물론 한국 정부가 주변국 외교를 수행해 오고 있기는 하나, 문제는 동북아 및 아시아의 외교판도가 미중 경쟁을 중심으로 숨 가쁘게 재편되는 상황에서 한국 외교가 얼마나 선제적으로 변화를 읽고 대처하는가이다. 즉, 여기서 상대적 속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충분히 빠르게 대처하지 않으면 나름대로의 노력은 평가 받지 못한다.

비핵화만 이루어지면 주변 강대국 외교에서 큰 외교적 자산을 획득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시아 판도가 변화하는 가운데 그 자산이 결정적일 수는 없다. 오히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위시한 동맹, 연합구도의 변화와,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을 중심으로 한 주변국 전략의 대치 속에서 비핵화 문제는 지역적 함의를 잃고 분리되기 쉽다. 주변국 외교가 순조롭게 되지 않을 때 결국에는 비핵화 과정 역시 표류하게 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아시아 지역외교, 주변 강대국 외교를 현명하게 해 나갈 때, 비핵화 역시 고비를 넘기고 진전을 이룰 수 있다. 양자는 제로섬 관계에 있지 않으므로, 외교의 지평과 외교수단 모두를 넓히고 강화해야 한다.

결국 핵심은 내년 상반기까지 비핵화의 중간 단계를 넘어서는 합의를 마련하기 위해 지금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이다. 당장은 가시적 성과를 낼 수 없는 시기이다. 주변국 외교를 체계적으로 강화하면서 북한과 신뢰 기반을 다지는 동시에 대북 체제 보장을 위한 국제적, 중층적 대화를 이끌어 가야 한다. 완전한 비핵화의 길에 북한의 신고, 핵동결과 검증을 비롯한 로드맵 합의, 이에 따른 한미의 적절한 수위의 제제완화 및 대북 체제보장의 로드맵 제공이 결합될 수 있도록 올 한 해를 내실 있게 보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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