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의 적반하장과 南의 선택

신범철 안보통일센터

아산정책연구원

 

북한의 발언 수위가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한국에 대한 오지랖 발언도 계산된 행보로 봐야 한다. 지난 한·미 정상회담이 보여주듯 한국이 미국을 설득하지 못하자 그 효용가치가 다한 것으로 본 것 같다. 한발 더 나가서 이젠 북한 편을 들라고 하니, 소위 ‘적반하장’이 아닐 수 없다.

도둑이 오히려 몽둥이를 든다는 의미의 이 말에 대해 조선시대 학자 홍만종은 평론집인 ‘순오지’에서 “도리를 어긴 사람이 오히려 스스로 성내면서 상대를 업신여기는 것을 비유한 말”로 해석했다.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한 북한의 대응이 바로 그러하다. 기껏 배려해주면서 대화의 판을 깔아주었더니 오히려 성내면서 우리를 업신여기고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 이전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와도 정상회담을 갖지 못하는 철저한 고립을 겪고 있었다. 그런 북한을 평창에 부르고 평양에 특사를 파견하면서 분명치 않았던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우리 정부가 담보해주었다. 이 기회를 활용한 북한은 외교적 고립을 탈피했다. 그러나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후 드러나는 북한의 행보는 과거와 달라진 것이 없다.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의 협상이 아니면 대화를 않겠다는 것인데, 결국 핵무기를 가지고 가겠다는 의도가 명백하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아직도 북한의 속내를 읽지 못하는 것 같다. 여기에는 잘못된 판단이 자리하고 있는 모습이다. 대화가 지속되기만 하면 평화가 오고 대화가 중단되면 큰일나는 것처럼 걱정하는 ‘대화만능주의’적 사고다. 동시에 운전자니 중재자니 하는 거창한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자기최면에 빠져 있는 듯하다.

하지만 작금의 한반도 정세는 정부의 생각과 반대로 돌고 있다. 먼저, 문제는 대화 자체가 아니라 북한의 의도다. 북핵 문제는 대화로 풀어야 하지만 대화만 갖는다고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북한의 전략적 결단이 있어야 하고 그 순간까지는 지난한 과정이 불가피하다. 때로는 압박을 통해 북한에 국제관계의 냉엄한 현실을 깨닫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북핵 협상의 운전자나 중재자가 아니다. 북핵 문제의 당사자 중 우리를 제외한 누구도 운전이나 중재를 부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중요한 역할을 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스스로를 멋지게 포장하려 했다. 평화세력임을 과시하려는 국내 정치적 목적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국제관계에서 우리의 위치를 몰랐다. 그러다보니 상황 변화에 따라 운전자에서 중재자로, 그리고 다시 촉진자로 이름만 바꾸게 되고, 끝내 북한에 오지랖 넓다고 훈계나 듣는 처지가 된 것이다.

정부가 제대로 일하려 했으면 스스로를 낮추고 조용히 접근했어야 했다. 독일 통일 과정을 보라. 서독의 헬무트 콜 총리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에도 스스로를 낮추고 미국과 소련의 목소리에 더욱 귀 기울였다. 당시 그가 운전자나 중재자를 자처하며 자신의 입지를 내세웠다면 독일은 아직도 분단된 상태로 있을지 모른다.

우리가 대화를 주도하지 않았다면 이만한 진전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대화의 시작도 그리고 지금 대화의 문이 닫히고 있는 것도 모두 북한의 선택이었다. 이미 북한은 큰 손실 없이 주변 관계를 개선했다. 중국과는 순치(脣齒)의 관계를 회복했고 이제 곧 러시아와도 정상회담을 갖는다. 북한의 비핵화 개념도 확인하지 않고 섣불리 판도라 상자를 열어본 성급한 행보로 인해 북핵 문제는 이제 더 어려운 상황으로 흘러갈 전망이다.

정부는 훗날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 위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음을 알아야 한다. 과거의 행보를 반복하면 북한만 바라보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정부로 기록될지 모른다. 당장의 욕심을 버리고 반대를 봐야 한다. 거창한 역할보다는 겸손한 실리를 찾아야 한다. 북한이 아닌 동맹 및 파트너와의 관계를 먼저 심화시켜야 한다. 북한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 변화를 만들거나 때론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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