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전쟁의 함의와 전망

이성현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 겸 통일전략연구실장)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G20 정상회의 기간 중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트럼프와 시진핑의 만남 이후 국회외교통상통일위원장을 지낸 어느 인사는 필자에게 “미·중이 결국 타협을 모색하게 될 것이다. 무역전쟁은 결국 양쪽 다 손해니까”라고 내다 봤다. 경제논리에서 보면 미·중 양쪽 다 파국을 피하는 ‘합리적 선택(rational choice)’을 할 것이라는 것이 그의 논지였다.

국내 유수 한 경제연구소의 선임 연구자는 생각이 조금 달랐다. “우리처럼 경제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미·중이 타협을 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보면 경제논리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많다. 연구소 내부에서도 솔직히 혼동이 있다. 경제논리로만 훈련을 받은 우리들의 한계인지도 모른다”고 소회를 밝혔다.

·중 무역전쟁이 경제논리로 통쾌하게 해석이 되지 않고 있다면 다른 요소가 작동하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다른 요인들 (non-economic factors)’의 영향력이 제법 상당한 수준이어서 경제 문제여야 할 무역분쟁의 본질을 흔들리게 할 정도다. 조금 더 사고를 개연성 차원에서 넓혀 보자면, 어쩌면 미·중 무역전쟁의 본질은 ‘무역’이 아닐 수도 있다. 다시 말해, 무역전쟁은 이제 막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미·중 구조적 갈등의 ‘일각’인지도 모른다.

섣부른 결론은 지양할지라도, ‘싸워봤자 둘 다 손해’인데도 불구하고 미국은 ‘왜 중국에게 무역전쟁을 걸고 있는가’란 질문을 할 수 있다. 여기서 부터가 흥미로운 부분이다. 무역전쟁을 시작한 쪽은 미국이니 원인제공자는 중국이 될 것이다. 과연 중국이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

여기에 대해서도 제법 많은 논의가 이미 전개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대상이 소위 중국 정부가 내놓은 ‘중국제조 2025(中國製造 2025, Made in China 2025)’라는 구호다. 처음에는 단순히 중국이 기술혁신을 하자는 하나의 슬로건인줄 알았다. 독일도 근년에 독일의 '인더스트리 4.0'란 제조업 부흥 정책을 내건 바 있다. 한국도 경제도약 과정에서 '증산-수출-건설' 혹은 ‘세계화’ 등의 슬로건을 사용해서 산업화를 장려했다. 한국도 산업화 과정을 겪으면서 기술 혁신을 하는 과정을 겪었고, 그 결과 삼성이나 LG 같은 세계 유수의 기업을 가지게 된 경험상 중국제조 2025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일견 중국 제조업이 단순히 ‘세계 공장(world’s factory)’이란 기존 역할에서 한 단계 더 올라서려는 모습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런데 내막을 살펴보니 이것이 그리 간단한 구호가 아니라 실로 야심찬 국가 프로젝트란 사실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중국제조 2025'는 리커창 총리가 2015년 3월 ‘양회(兩會)’ 기간 처음 언급하고 이어 5월에 정식 발표한 것이다. 2025년이 되는 10년 내 중국을 ‘제조업 대국'에서 ‘제조업 강국'으로 탈바꿈시키고, 다시 10년 후인 2035년에는 제조업 선두주자인 독일, 일본을 초월하겠다는 구체적 시한과 달성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다시 2049년에는 세계 1위의 첨단 제조국이 되는 것이다비록 미국을 명시하고 있지는 않지만중국의 목표는 미국을 초월하는 것이다.

2049년은 중국공산당이 국공내전에서 승리하고 소위 ‘신 중국(新中國)’을 건설한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시진핑이 19차 당대회에서 2050년까지 ‘사회주의 선진국’을 건설하겠다고 한 것은 이러한 시기를 염두에 둔 것이다. 그리고 이는 경제적으로 또 군사적으로 명실상부한 세계 1등 국가가 되는 것이고, 시진핑 정부의 야심인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의 꿈’을 이룩한다는 시대정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중국제조 2025’는 그 주력 분야가 첨단 제조업을 중심으로 하는데 빅데이터, IT, 항공산업, 신소재, 인공지능, 생명과학 등 사실은 현재 미국이 최고의 경쟁력을 갖고 관련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분야에서 중국이 경쟁하고 심지어 따라 잡겠다는 아주 야심찬 계획이다. ‘미국이 갖고 있는 것이면 중국도 갖겠다’는 경쟁 심리는 마오쩌둥이 핵무기를 개발한 원초적 동기 중 하나였고, 2012년 중국이 구 소련의 중고 항공모함을 사들여 전면 개보수한 다음 재취역 및 실전배치시킴으로써 본격적인 항모 보유국 시대를 연 것도 미국과의 미래 패권 경쟁을 준비하는 작업의 서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의 신경망'이라는 5G(5세대) 통신산업 경쟁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대표적인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의 2인자인 멍완저우 부회장(CFO)이 최근 대이란 제재 위반 혐의로 전격적으로 체포된 사건에 대해 미 상원의 테드 크루즈 의원은 “화웨이는 통신회사의 베일을 쓴 중국 공산당 첩보 기관”이라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민주당 마크 워너 의원은 화웨이가 “중국 정부의 끄나풀이며 미국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이라고 했다. 이러한 언급들은 사실 여부에 상관없이 미국이 중국에 대해 느끼는 위협인식의 단면을 투영하고 있다.

중국은 산업 업그레이드 과정에서 미국의 첨단 과학기술을 해킹하거나 중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들에게 중국에서 사업을 하려면 핵심 기술을 이전(사실상 강제 기술이전)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중국이 이러한 미국 첨단 기술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여 ‘기술 굴기’를 통해 중국의 오랜 열망인 ‘미국을 초월하는(超越美國)’ 강국을 2050년까지 이룩하겠다는 것이 결국 시진핑이 주창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中華民族的偉大復興)’인 ‘중국몽(中國夢)’을 실현하겠다는 것이라고 미국은 보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미국은 중국제조 2025’가 단순한 산업정책 슬로건이 아니라 경제와 산업 발전을 중국의 미래 패권국 부상의 중요한 수단으로 삼겠다는 불순한 동기가 담긴 전략목표라고 본다.

다시 말해, 미국 입장에서 보면 중국이 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첨단산업 기술혁신 경쟁이 아니라 ‘패권 경쟁’을 위한 저돌적인 준비다. 첨단 기술 분야인 드론, 인공지능, 안면인식 기술 등은 정찰위성, 무인정찰기 등 군사 기술 분야에도 응용될 수 있다. 공교롭게도 최근 중국은 ‘군-민간 협력’을 부쩍 강조하고 있다. 게다가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는 중국이 이러한 기술 획득을 공정한 경쟁을 통해서 하지 않고 불법적인 해킹이나 산업스파이 행위를 통해, 그리고 중국 시장에 진출하려는 외국 기업들에게 기술 이전을 조건으로 걸고 있다는 점이 문제시 된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지난 10월 허드슨연구소에서 행한 연설에서 “내가 오늘 여기에 온 이유는 중국이 정부 차원에서 미국 안에 영향력을 심어 중국 이익을 도모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그리고 프로파간다 수단을 총동원하고 있다”고 비판의 포문을 열었다. 한 마디로 중국이 미국 체제의 위협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려 40분 간의 연설을 오직 ‘중국’이라는 한 국가에 할애하여 조목조목 여러 문제점을 비판했다.

이런 펜스 부통령의 연설은 한국에서는 그 중요성이 제대로 인지되지 못했다그런데 사실 그의 연설 준비 과정에서 트럼프 행정부 각 부처간 광범위한 조율이 있었다일부 미국 전문가들은 이 연설을 가리켜 심지어 미·중 관계의 변곡점(inflection point)’이라고 보기도 한다. 즉, 미·중 관계는 펜스 연설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것이다.

미·중 무역전쟁이 멈추려면 중국이 미국측의 요구 사항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것이 쉽지가 않다는 점이 문제다. 우선 중국측이 수용할 용의가 있는 것은 (그리고 중국이 희망하는 것은) 중국의 자금력을 동원한 조치다. 바꿔 말해 ‘미국산 제품의 대량 구입’을 통해서 미국을 달랠 수 있다면 중국은 그렇게 할 용의가 있다. 문제는 미국이 그 정도 선에서 중국과 악수를 할 용의가 있느냐이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아시아정책 수장이었던 커트 캠벨(Kurt Campbell) 전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에 의하면 현재 미국 내에서는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바라보는 입장과 관련해 ‘강경파’와 ‘온건파’ 등 두 가지로 나뉜 것이 아니라 더 복잡하게 세 가지 그룹으로 나뉘어 있다. 첫째는 (중국이 원하는 대로) 미국산 제품을 중국이 ‘대량 구입’하면 중국과 타협을 하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그룹이다. 둘째는 중국의 불공정·불량 행위를 총체적으로 바로 잡기 위한 ‘규칙(rule)’을 지정해야 한다는 그룹이 있다. 셋째는 아예 이번 기회에 중국이 다시는 미국에 도전할 수 없도록 근본적이고 철저하게 중국의 ‘기술 굴기’를 억제하여 중국이 미국의 패권 지위를 넘보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그룹이 있다.

여기서 유념할 것은 현재 미국에서는 공화·민주당이란 정파에 상관없이 중국에 대한 경계심과 반중정서가 전반적으로 고조·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갈수록 미국사회를 반영하는 나름의 ‘시대정신’이 되고 있다.

미국 대학들이 중국 유학생들에 대한 비자 심사 강화, 미국 내 중국 정부의 예산 지원으로 운영되는 ‘공자학원’ 폐쇄 움직임, 중국 기업인들의 미국 첨단기업 투자나 인수·합병 및 산·학 협업에 대한 관리감독 강화, 그리고 최근 화웨이 부회장 체포 등 일련의 조치들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모든 것의 배경에는 전반적인 국력 면에서 미국과 중국의 격차가 갈수록 좁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20여 년 전만해도 미국의 1/8 정도에 불과했던 중국의 경제 규모는 트럼프 행정부 들어서 미국의 3/4 수준까지 급속도로 쫒아왔다. 이 상태의 추세로 가면 오는 2030년에서 2035년 사이에 중국이 세계 1위의 경제대국이 되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라고 ‘미국국가정보위원회(National Intelligence Council, NIC)’는 보고 있다.

경제뿐만이 아니다. 군사적으로 보면 미국의 중국 경계 모습은 더욱 확연하다. 미국은 2017년 말 발간된 미국의 국가안보전략(NSS: National Security Strategy) 보고서는 중국을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 도전하는 ‘수정주의(revisionist)’ 국가로 이미 규정한 바 있다. 2018년 2월 초 발간된 핵태세검토보고서(NPR: Nuclear Posture Review)에서 중국 관련 부분의 첫 문단은 다음과 같이 시작하고 있다. “중국은 시진핑 주석이 제19차 당대회에서 중국의 군은 2050년까지 '일류 군대로 완전히 탈바꿈 할 것이다'라고 말했던 방향에 맞춰 핵전력에 필요한 군 병력의 숫자, 역량, 그리고 핵전력 방위 능력을 향상 시키고 있다”면서 큰 경계심을 드러냈다. 요컨대, 중국이 경제굴기 뿐만 아니라 군사굴기까지 하고 있다는 것이다.

종합적으로 볼 때·중 무역마찰은 경제적 측면의 문제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양국간 마찰이 경제 차원을 넘어서고 있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설사 미·중 간 무역전쟁에 대한 잠정적인 타협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미국의 대중국 압박은 다양한 영역에서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펜스 부통령의 연설이 G20 트럼프-시진핑 정상회담에 한 달 앞선 시점에 나온 것이란 사실도 주목해야 할 점이다. “백악관은 미·중 무역전쟁에서 긴장을 낮추는 것이 가까운 시일 내에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시그널을 보낸 것”이라는 라이언 하스(Ryan Hass)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의 말은 특히 귀담아 들을 만하다.

미국의 요구 가운데는 중국 국영기업 개혁이 포함되어 있는데 중국에서 국영기업은 중국공산당에게 자금을 제공하는 ‘혈관’과도 같은 존재이다. “국유기업을 구조조정하라는 것은 공산당 보고 팔에 칼 긋고 자살하라는 얘기”라는 한 중국학자의 진단은 의미심장하기까지 하다. 공교롭게도 시진핑 정부에 들어와서 국유기업의 위상은 더욱 강화되고 있는 판국이어서 미국의 의심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한국에게 주는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만약 현재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미·중 무역전쟁이 단순히 ‘무역’ 분쟁이 아니라 양국의 미래 패권을 둘러싼 경쟁이라면 이것을 분명히 직시해야 한다. 둘째, 미·중 패권싸움이라고 볼 때 이는 단기적인 소용돌이가 아니라 중·장기적인 갈등의 부침 과정이 될 것이다. 즉 금방 끝날 사안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셋째, 미·중 관계가 악화될 때 나올 수 있는 지정학·지경학적 리스크가 적지 않고 그 파장 또한 클 것이므로 이에 대비해야 한다. 미국의 요청으로 화웨이 부회장을 체포한 캐나다가 중국으로부터 “즉시 석방하지 않으면 심각한 결과(後果)가 있을 것”이라고 중국이 강력히 반발한데서 볼 수 있듯이 미·중 사이의 갈등에 제3국이 노출되거나 연루될 수 있다.

이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과 같은 중견국가도 미·중 사이에서 포지셔닝이 더욱 힘들어 질 수 있다. 이미 큰 파동을 겪은 사드 배치 문제가 대표적인 사례다. 중국이 적극 추진하고 있지만 미국은 눈살을 찌푸리는 ‘일대일로’ 사업 역시 우리에게는 잠재적인 폭탄이 될 수 있다. 한국이 표방하는 ‘중견국가론’은 미·중 사이에 딱 가운데서 기회주의적으로 처신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때처럼 유사 이래 강대국들은 중간에 위치한 국가들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오랜 버릇을 버리지 못할 것이다. 2019년 한국의 전략적 유연성과 운신의 폭이 더욱 좁아질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고 선제적으로 준비하는 한 해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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