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18-38

제73차 UN총회와 보건외교

조은정 (안보전략연구실)

대북제재와 인도적 지원

2018년 남북관계는 다소의 진전을 이루었으나, 강력한 대북제재 조치의 장벽에 막혀 큰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UN의 대북제재와 2016년도에 제정된 미국의 「대북제재강화법」의 영향 때문이다. 특히 후자는 북한과 거래하는 제 3국의 개인이나 기업에 대해 제재를 가하도록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대북제재강화법」에 서는 인권, 민주주의, 법치주의 옹호와 긴급한 인도적 지원에 한해서는 대북지원 및 교류 사업이 가능하도록 예외 조항을 두고 있다(Sec.  203, 208).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할 수 있고 북한이 필요로 하며 향후 남북관계 발전에 있어서도 파급효과가 큰 부문으로 공중보건을 꼽을 수 있다. 

북한의 공중보건부문에서 우선적으로 개선되어야 할 점으로 크게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북한 주민의 영양불균형 개선, 기생충 퇴치, 감염병의 예방과 퇴치이다. 비교적 적은 비용을 들여 빠른 개선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영역이다. 그러나 남북관계의 부침에 따라 지속적인 지원이 이루어지지 못한 결과, 결핵을 포함한 북한의 공중보건 실태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

북한의 결핵 현황과 제73차 UN총회

2017년 세계보건기구(WHO)가 펴낸 결핵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결핵 고부담국가(TB High Burden Country)’로 분류될 정도로 감염 율과 치사율이 매우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2016년 북한 내 결핵 환자 수는 13만 명으로 한 해 전인 2015년 조사결과와 비교하여 2만 명이나 늘었으며, 결핵으로 인한 사망자는 2016년 한 해 동안 1만 1천명 발생하였는데 이는 2015년보다 2배가 넘는 숫자이다. 

물론 세계인구의 1/3이 결핵균에 감염되었다고 추정되고(일반적으로 보균자의 1/10만이 발병한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인구 80%가 투베르쿨린 검사에서 양성 반응을 보인다고 알려져 있다.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결핵 발생 건수 및 사망자 수가 줄어드는 추세이지만, 북한은 오히려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2018년 6월 <에이즈, 결핵 및 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세계기금>이 북한에 지원을 중단한 상태로 약물 내성으로 인해 북한 내 다제내성 결핵균(Multidrug-resistant Tuberculosis, MDR TB 슈퍼 결핵)이 창궐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WHO에 따르면 2016년 북한 내 결핵 환자 13만 여 명 중 5천 700여명이 결핵 치료제 리팜피신이나 최소 2가지 이상의 치료제에 내성을 가진 결핵균에 감염된 것으로 조사되었다. 만약 조사결과가 사실이라면 이는 전체 북 한 결핵 환자 수의 1/3에 해당하는 엄청난 규모이다. 따라서 이 내성균 역시 호흡기로 전염되는 만큼 북한뿐만 아니라 주변국에도 높은 주의를 요한다.

마침, 이번 제73차 UN총회 기간인 오는 9월 26일 에스피노사 UN 총회 의장 주재 「결핵 퇴치를 위한 회의(The Fight to End Tuberculosis)」 가 개최될 예정이다. 17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중 하나인 “감염질환의 종식”을 위한 공동의 지혜를 모으기 위해 열리 는 이 회의에서 한중일러가 북한과 함께 극동아시아 지역에서 결핵 퇴 치를 위한 본격적인 논의의 장을 열 필요가 있다. 향후 북한의 개혁개방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면, 북한에서 이미 창궐한 것으로 알려진 슈퍼 결핵균의 주변국 확산을 막기 위해서라도 더 이상 논의를 미룰 수 없 는 일이다. 

UN총회시 극동아시아 개발 이니셔티브 제안

이를 위해서는 북한 당국의 적극적인 협력이 필수적이다. 2010년 이 래 5천만 달러에 달하는 대규모 북한 결핵 사업이 진행되었음에도 불 구하고 북한 당국의 비협조로 사업의 계획과 평가에 필요한 기초적인 조사도 이루어질 수 없어 국제기구들이 사업을 철수하고 있기 때문이 다. 뿐만 아니라 WHO, <세계기금>, <유진벨재단>과 같은 북한 내 결핵퇴치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국제기구와 비정부단체들간에 지원체계를 일원화하는 작업도 서둘러야 한다. 대북 의료 지원 사업들의 난립이 자원의 낭비 및 비효율적 환자 관리로 이어져 내성균에 의한 슈퍼결핵 환자들의 수가 북한에서 빠르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와의 공조 또한 중요하다. 이번 UN 「결핵 퇴치 회의」를 계기로 한국 정부는 극동지역의 주요국들과 연대하여 국제사회에 지속 적으로 대북 의료사업 지원을 요청하는 한편, 북한 대표와 함께 보다 효율적인 보건의료지원체계를 북한 내에 설립할 수 있도록 설득할 필 요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번 UN총회 중에 북한을 포함한 ‘극동아 시아 개발 이니셔티브’를 제안함으로써 UN의 SDGs 비전을 공유한다 면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북한을 시작으로 간도, 몽고, 캄차카 반도, 사할린, 알래스카와 마주하고 있는 동시베리아 지역에 이르는 극동지역은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 러시아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정책, 미국의 ‘인도·태평양 구상’ 모두에 포함되어 있지만 동시에 주된 관심으로부터 비껴난 지역이다. 지정학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지역인 만큼 한국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이 지 역에 대한 연계전략을 펼칠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 

만일 극동지역을 하나의 생활권으로 하는 지속가능한 경제개발 방식이 정착된다면 북한 주민의 생활 여건도 함께 나아질 수 있으며, 반대로 북한의 개혁개방이 극동지역의 물류와 인적교류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자유로운 이동 이전에 이 지역의 공중보건 수준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인구유인 국가들에서 사회적 비용 증가의 부담과 함께 사회갈등의 소지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반드시 유념해야 한다. 따라 서 조화로운 공존을 위해서라도 극동아시아 개발 이니셔티브는 공중보건위생과 같은 인도적 지원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결론

북미 관계가 경색되고 북한 비핵화 협상이 교착되면서 “강대국은 하고 싶은 바를 하고 약소국은 해야 하는 바를 따를 뿐”이라는 현실주의 의 자조적 명제가 다시 한반도에서 힘을 얻고 있다. “약소국”은 정말 할 수 있는 일이 없는가? 달에 가기 위해서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아니라 달을 봐야 하듯, 한국 정부가 한반도 평화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현재 직면한 어려움이 아니라 그 너머를 보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평화협력의 동력을 살리기 위해 보건외교처럼 정치적으로 덜 민감하지만 인간안보 측면에서 중대하고 또한 한국이 현재의 위치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해 나갈 수 있는 영역을 지속적으로 발굴 할 것을 제안한다. 사업 추진 방법에 있어서는 닫힌 양자관계가 아니라 열린 다자관계를 지향함으로써 한반도 평화에 대한 국제적 지지 기반을 확대하려는 노력 역시 필요하다. 이런 점들을 고려했을 때 이번 제 73차 UN총회가 한국 정부에게 중요한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결핵퇴치를 위한 UN의 노력에 적극적으로 동참함으로써 한 국정부는 책임 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하고, 북한의 공공보건환경 개선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생명과 직결되는 인도 적 사업들이 북한에서 가시적 성과를 이루고 지속적인 지원으로 북한 당국과 북한주민들의 신뢰를 얻는다면, 미국의 제재 해제가 지연되더라 도 북한이 한국과 그리고 국제사회와 교류를 이어갈 길을 터줄 수 있 는 유용한 기회가 될 것이다.@


본 내용은 집필자 개인의 견해이며,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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