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패러다임변화와 ‘분권형’ 대북정책

신 종 호 (국제협력연구실 연구위원)

남북․북미 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의 패러다임이 평화와 협력 중시 기조로 전환되고 있다. 현재와 같은 ‘한반도 비핵․평화 프로세스’ 초기 국면에서는 중앙정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지만, 향후 남북 교류협력의 활성화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지방정부를 포함한 다양한 비국가행위자의 자율성과 권한을 확대하는 ‘분권형’ 대북정책이 필요하다. 

‘분권형’ 대북정책의 핵심은 중앙-지방-민간의 협력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것이다. 중앙정부는 남북관계 제도화 및 지속가능한 대북정책 수립과정에서 기획․ 조정자(coordinator) 역할을 수행하고, 법령 개정을 통해 지방정부의 자율성과 권한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지방정부는 해당 지역 특성에 부합하는 교류협력 사업을 발굴함과 동시에 지방정부 간 협의체 운영과 같은 공동협력을 강화함으로써 중앙정부가 수행하기 어려운 교류협력 사업들을 추진해야 한다. 


남북․북미 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4·27 판문점선언’에서 남북은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전쟁위협을 감소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한다”고 합의함으로써 뿌리 깊은 대결과 갈등의 남북관계가 평화와 협력 중시 기조로 전환되고 있다. 북미정상회담에서도 “북미관계 정상화를 통해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완전한 비핵화’를 이룬다”는 점에 합의함으로써 ‘한반도 비핵․평화 프로세스’를 본격화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아직까지는 비록 한반도 비핵․평화 프로세스가 속도감 있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지만, 향후 우리의 능동적이고 주도적인 역할과 함께 북미 간 협상이 성공적으로 남북관계 패러다임변화와 진행된다면 한반도는 평화정착과 공동번영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될 것이다. 한반도에 주어진 역사적 기회를 맞이하여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함으로서 평화정착과 공동번영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기존과 다른 새로운 사고와 새로운 접근이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교류협력의 활성화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국가(중앙정부) 주도의 ‘중앙집권적’ 방식의 대북정책이 갖는 한계에서 벗어나 지방정부를 포함한 다양한 비국가행위자의 자율성과 권한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이에 ‘분권형’ 대북정책의 필요성과 실천방안을 제시한다. 

중앙집권적 대북정책의 한계

그동안 대북․통일정책분야는 외교․안보․국방분야와 마찬가지로 중앙정부 고유의 업무 영역으로 인식되어 왔다.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제2장에서는 남북관계 발전을 정부의 책무로 규정하고 있고, 실제로 중앙정부는 대북․통일정책을 주도해 온 핵심적인 행위자였다. 이는 곧 남북관계가 갖고 있는 특수성과 시급성 및 불안정성 등으로 인해 정보와 재정 및 인력운용상의 강점을 보유하고 있는 중앙정부가 대북정책을 추진하는데 훨씬 수월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러다 보니 남북한 정치․군사적 변수가 교류협력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특히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이 지속되고 이에 따른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진행되면서 개성공단을 포함한 모든 남북경협사업이 전면 중단되었고 중앙․지방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추진되던 최소한의 인도적 지원사업도 끊겼다. 또한 정부가 바뀔 때마다 대북정책이 변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 과정에서 ‘대북지원 vs 퍼주기’ 논란이 야기되는 등 교류협력의 방식과 내용을 둘러싼 남남갈등도 끊이지 않았다. 

지방정부와 민간을 포함한 비국가행위자들 역시 각자의 이익과 목적에 따라 남북 교류협력에 참여해왔으나 법률적인 제약과 정보 부족 및 인력․재정상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교류협력 사업의 직접적인 행위자 역할을 수행하기가 어려웠다. 1990년 「남북교류협력법」 제정 당시 대북 교역 당사자로 지방자치단체를 포함했지만, 남북관계 경색의 영향을 받아 이 조항은 2009년에 삭제되었다. 

통일부가 제정한 「자치단체 남북교류협력사업 추진 지원지침」에도 통일부가 지자체 남북교류를 실질적으로 관리하도록 되어 있고, 통일부가 1999년 제정한 「인도적 대북 지원 사업 및 협력사업 처리에 관한 규정」을 적용하는 과정에서도 지자체를 대북지원사업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지방정부들은 자체적으로 ‘조례’ 제정 및 ‘기금’ 운용을 통해 별도 법인을 설립하거나 민간 위탁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결국 그동안 중앙정부는 대북․통일정책 추진의 핵심당사자로서 교류협력 전반을 조정하고 관리하기를 선호한 반면, 지방정부로 대표되는 비국가행위자들은 여러 가지 제약조건 속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자율성과 권한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중앙-지방-민간 행위자 간 상호연계와 협력이 미흡했다.

‘분권형’ 대북정책의 필요성

‘4·27 판문점선언’에도 나타나듯이 남북관계 개선은 한반도의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출발점이다. 판문점 선언 이후 한반도의 평화와 협력 분위기에 편승하여 각 분야에서 남북 교류협력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7월에 새롭게 출범한 민선 7기 지방정부 차원에서도 남북 교류협력 전담 부서가 설립되고 다양한 사업 프로그램이 기획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남북 교류협력에 지방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기에는 법적, 제도적으로 제약이 많다. 

2017년 8월에 이루어진 통일부의 대통령에 대한 업무보고에서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국민 의견을 반영한 공론화를 통해 대북정책 결정추진 과정에 지자체와 민간이 참여하는 것을 제도화하겠다”고 설명했다. 이미 통일부는 중앙-지방 간 남북교류협력 추진방향을 공유하고 상시적 소통을 유지하기 위하여 2017년 9월부터 지자체 남북교류협력 협의체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2018년 3월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헌법 개정안 제안 설명자료에 따르면 ‘분권형 개헌’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바, 이 경우 대북정책 추진과정에서도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지방정부와 민간의 참여가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비록 한반도 비핵․평화 프로세스가 난관을 겪고 있지만, 향후 성공적으로 진행된다면 한반도는 평화정착과 공동번영의 새로운 시대로 전환될 것이다. 중앙정부 차원의 교류협력은 정치․군사적 상황에 따라 쉽게 영향을 받을 수 있지만, 지방정부와 민간은 중앙정부에 비해 정치적인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덜 민감하기 때문에 운신의 폭이 넓다. 

따라서 중앙정부 차원에서 한반도 비핵․평화 프로세스의 성공을 위한 능동적이고 주도적인 노력은 지속하되, 향후 남북 교류협력이 본격화될 경우를 대비한 새로운 방식의 대북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결국 향후 남북교류 활성화를 통한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서는 중앙정부의 기획․조정 역할이 강화되고 지방정부로 대표되는 비국가행위자들의 자율성과 권한은 대폭 확대되는 ‘분권형’ 대북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 

중앙정부의 기획․조정, 지방정부의 자율성․권한 확대

‘분권형’ 대북정책의 핵심은 중앙-지방-민간, 중앙-지방, 지방-지방 등 다양한 형태의 협력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협력 거버넌스 과정에서 중앙정부의 역할이 축소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북․통일정책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많은 정보 및 예산을 확보하고 있는 중앙정부 입장에서는 남북관계 제도화 및 지속가능한 대북정책 수립과정에서 기획․조정자(coordinator) 역할을 더욱 강화할 수 있고, 지방정부와 민간이 수행한 사업에 대한 평가를 통해 차년도 예산지원을 차등화하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법률 개정 혹은 ‘지침’ 수정 등을 통해 지방정부를 대북지원 사업자로 인정하는 조치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방정부 역시 해당 지역 특성에 부합하는 교류협력 프로그램을 발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그동안 많은 교류협력을 추진해온 자신들의 경험을 타지방정부와 공유할 필요가 있다. 우선적으로 접경지역 지방정부(경기, 강원, 인천 등) 간 공동 협력사업을 발굴․ 추진함으로써 교류협력 사업의 중복과 편중 현상을 극복해야 한다. 나아가 서울~평양 포괄적 협력을 포함해서 광역 지방정부 간 공동협력이 필요하다. 한반도 신경제 구상의 구체화를 위해 환동해권과 환황해권 지방정부 간 협의체도 운영할 필요가 있다. 

남북한 지방정부 간 협력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전국시도지사협의회에 ‘남북협력위원회’를 상설화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민간 역시 정보력과 재원 등에서는 어려움이 있지만, 소규모․소지역 단위의 교류협력 사업에 집중할 수 있는 경험과 노하우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중앙․지방정부와의 협력을 통해 이러한 장점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남북 교류협력 과정에서 지방정부의 역할이 늘어나면, 그만큼 민간단체나 NGO들의 활동 범위도 확대될 수 있다. 

현재와 같은 비핵․평화 프로세스 초기 국면에서는 중앙정부의 역할이 매우 필요하지만,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여전히 유지되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중앙정부가 추진하기 어려운 교류협력 사업들을 지방정부와 민간이 수행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산림협력, 관광, 인적교류, 교육교류, 체육교류, 역사․문화교류, 인도적(보건․의료․육아)지원, 농업협력, 지식개발사업 등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엄연히 존재하는 상황에서도 추진할 수 있는 영역이다. 

향후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해제 내지 완화되거나 남북 교류협력이 본격 추진 단계에  진입할 경우에는 지방정부 차원에서도 개성공단 재개 등과 같은 경제협력사업과 에너지협력 및 대북 개발협력사업 등에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특히 남북 교류협력과 관련된 기존 합의 및 선언(남북기본합의서, 6․15 공동선언, 10․4 선언 등)의 이행 상황을 점검하여 이미 착수․완료된 사업, 중단된 사업, 재개 가능 혹은 불가능한 사업 등으로 구분하고, 이행 정도와 원인 등을 파악함으로써 중앙-지방-민간의 역할 분담을 통한 협력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또한 북한이 지난 4월 노동당 전원회의를 통해 “경제건설 총력 집중이 새로운 전략적 노선”임을 강조한 바 있고, 기술결합 교육강국 및 첨단산업을 중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의 최근 경제․사회 변화 추세가 반영된 새로운 교류협력 사업을 발굴할 필요가 있다. 

결국 남북관계가 교착상태에 처했을 때, 정상회담과 같은 ‘Top-down’ 방식으로 타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상 간 합의가 동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방정부를 포함한 비국가행위자의 자율성과 권한을 확대한 ‘Bottom-up’ 방식의 일상적인 교류협력도 매우 중요하다. 이것이 바로 ‘4·27 판문점선언’과 ‘6·12 북미정상회담’이 가져온 ‘평화공존과 공동번영’이라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길이고, 향후 한반도 비핵․평화프로세스 과정에서 남북관계의 안정적 관리 및 평화공존은 물론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의 공동 번영에도 기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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