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김석진 통일연구원 박사, 정구연 강원대 교수, 손혁상 경희대 공공대학원장, 이우영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차승주 통일부장관 정책보좌관, 김주한 국제기아대책기구 대북사업본부장(사진=SPN)

향후 남북‧북미 관계 정상화에 앞서 대북 개발협력의 체계를 대내외적으로 정비‧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통일연구원과 20일 ‘대북개발협력의 경험과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제로 개최한 연구 세미나에서 정부기관 및 학계 전문가들과 시민들이 지난 대북개발 사업의 경험을 검토하고 향후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Ⅰ. 지난 대북 개발협력 사업의 문제점

강원대학교 정구연 교수는 “지난 대북 개발협력 사업은 창구의 다원화로 지나치게 분절됐으며, 단발성 구호에 집중돼 지속가능한 개발협력이 불가능했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1999년부터 2016년까지 대북개발협력 사업 참여 단체는 96개로, 사업 규모도 총 8천억 원으로 증가했다. 개발협력 영역도 일반구호, 보건의료, 농업복구에 집중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공여국인 우리는) 지원받는 북한 내부의 개발협력 수요를 파악하고 (개발 영역을 검토해) ‘퍼주기식 논란’을 불식시킬 사업의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통일연구원의 김석진 박사는 “근대화에 성공한 적이 없는 저소득 국가인 북한의 실정을 반영하여 개발 목표와 우선순위를 정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박사는 아프리카 최빈국들의 사례를 들며 북한과 같은 “정부, 제도, 정책이 나쁜 나라(Difficult Partnership Countries)”에서는 경제 분야보다 사회 분야의 개발협력이 성공하는 사례가 많았다“고 덧붙였다.

또 “(거버넌스가 미흡한 지원받는 국가에서도) 사회 분야의 개발협력으로 인적 자본을 보호하고 육성해 개발 목적과 인도적 목적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며 “정부는 그동안 경제 분야(기반시설 건설)에 뒀던 우선순위를 사회 분야(보건, 교육 등)에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정 교수는 ‘시민단체 간 그리고 민관 협력 부족’,'모니터링 과정 부재로 인한 투명성 부족', ‘물자지원 방식의 한계’, ‘정경연계 원칙에 따른 사업의 지속성 결여“를 구조적인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Ⅱ. 향후 개발협력 전망과 구조적 개선 방향

정 교수는 “비핵화가 일괄 타결돼도 완전한 비핵화 및 제재의 해제까지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제재 국면 속에서는 정부 차원의 대규모 개발지원 사업보다는 인도적 지원 사업 위주로 협력이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정 교수는 “남북‧북미 관계가 정상화하고 북핵 문제까지 해결되면, 대북 개발협력 사업에 뛰어들려는 이들이 급증해 혼란이 야기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정부와 시민단체는 신속히 실천체계 정비에 나서고 시범사업 의제와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면서 "모니터링을 통한 투명성을 제고할 수 있도록 '대북지원 민관정책협의회’를 남북 양측에 구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김 박사도 "주요 공여자들이 모두 참여하는 국제협력체"를 구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금까지는 공여자들이 개별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프로젝트별 접근법’을 취했지만, (협력체를 구성하면) 부문별 그리고 더 나아가 다부문(multi-sector)이 결합한 프로그램별 접근법에 따라 효율적으로 전략과 계획을 세우고 자원을 배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Ⅲ. 논의의 출발점-북한은 보편적 취약국 vs. 특수국

이날 토론의 좌장을 맡은 경희대학교 공공대학원 손혁상 원장은 “북한을 ‘보편적인 취약국’으로 볼 것인가, ‘근대화를 완성했다 실패한 특수국’으로 볼 것인가”를 논의의 출발점으로 제시했다.

토론에 참여한 이우영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근대화를 완성했다 좌초한 북한은 아프리카의 최빈국들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개발협력은 체제와 밀접히 연결돼 있기 때문에 개별 협력사업의 전체적인 목표에 대한 지원받는 국가의 합의와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 독자적 체제를 완성했던 북한이 이를 내정간섭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동안의 대북지원은 정서나 감정에 의존하는 면이 많았는데, 북한과 개발협력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앞서 정 교수가 언급했던 ‘퍼주기식 논란’이 생기는 이유도 사회적 합의가 약해 사업적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이날 북한을 보편적인 최빈국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근대화 중 좌초한 특수국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북한의 보편성과 특수성에 대한 논의는 향후 대북개발협력 사업의 가이드라인을 수립하기 위한 출발점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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