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한 주요 권력엘리트 변동의 함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이준혁 북한연구실)

4. 27 남북 정상회담과 5~6월 북미 정상회담이라는 역동적 변 화 속에서 북한의 지도부가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4. 11 최고 인민회의 제 13기 6차 회의를 공표하고도 이틀 전에 노동당 정치 국 회의를 열어 남북, 북미 관련 의제에 관한 “중대한 토의”를 진 행하였다. 3월 북중 정상회담 시 김정은 옆에 배석하였던 김영철 당 부위원장 겸 통전부장이 정치국 회의에서 중심원탁에 앉지 못 한 것을 두고 김영철이 권력서열 10위권에서 밀린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있었다. 당연히 참가해야 할 김정각 총정치국장이 빠지고, 빨찌산 출신 후손들 중 최룡해 당부위원장이 내각총리 박봉주에 앞서 호명되는 등 권력서열 2위를 굳건히 지켰다.

4. 9 정치국 회의에서 김영철 통전부장이 중심원탁에서 배제된 것은 그가 권력 10위권에서 밀려 났다기보다 핵심부서 순으로 자 리를 배치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아야 타당할 것이다. 중심원탁 에서 김정은을 중심으로 오른쪽은 당 핵심간부, 왼쪽은 정부 핵심 간부 순으로 배치하였다. 김정은 오른쪽으로 당부위원장 겸 조직 지도부장 최룡해, 선전선동부장 박광호, 당 국제부장 리수용, 당 간부담당 부위원장 김평해, 당 군수담당 부위원장 태종수가 자리 했고, 왼쪽으로는 김영남 상임위원장, 박봉주 내각총리,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이 자리했다. 당 핵심간부 5명, 정부 핵심간부 2명, 군 핵심간부 2명이 중심원탁을 차지하였다. 김영철이 맡고 있는 통전부의 순위가 조직지도부, 선전선동부, 간 부부, 국제부, 군수공업부, 근로단체부보다 후순위에 있기 때문에 중심원탁에 자리하지 못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또한, 인민무력상 박영식은 당 간부 라인에, 총참모장 리명수는 정부 간부 라인에 배치하여 군의 “수령보위, 혁명보위, 국가수호”의 사명과 지위를 재확인하였다. 그리고 김정각 총정치국장이 정 치국 회의에 불참한 것은 현재 당직이 정치국 위원이 아니고 당 중앙위원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빨찌산 출신 후손들 중 최룡해 만이 유일하게 최고 권력층에 등극하였다. 이것은 권력의 중추세력이었던 빨찌산 2세 대들의 전반적 후퇴이자 위상과 역할의 약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승승장구하는 빨찌산 1세대 최현의 아들 최룡해와 달리 오진우의 아들 오일정은 2016년 5월 노동당 7차 대회에서 당 민방위부장 과 정치국 위원직에서 물러난 후 아직까지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호위국장 출신 전문섭의 아들 전휘도 군에서 두각을 나타내 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오백룡의 아들 오금철이 총참모부 공군 담당 부총참모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정도다. 이것은 김일성 정권 과 김정일 정권 당시와 사뭇 다른 현상이다. “아버지가 혁명가라 고 해서 자녀들도 저절로 혁명가가 되는 것이 아니다”, “혁명성은 유전되지 않는다”는 인사원칙 기준이 김정은 정권에서 더욱 강화 되고 있고, 실력을 기준으로 간부대열을 구성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다. 충성심과 능력이 부족하면 아무리 빨찌산 후손이라 도 권력의 문턱을 넘기 힘든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빨찌산 2세대 못지않게 체제유지의 핵심적 역할을 담당해 온 군부 엘리트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김정일 시기와 비교하여, 김정 은 집권 이후 총정치국장들은 대부분 단명에 그쳤다. 김정일은 총 정치국장직에 정치장교 출신이 아닌 군사지휘관 출신을 기용하였 다. 그 이유는 정치장교 집단인 총정치국 역시 전시에 전투병력으 로 편재되어 군사지휘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또 다른 이유로 는 군대 내 정치사업을 전문으로 하는 총정치국의 기강이 해이해 지는 것을 막기 위한 고려였다. 반면, 김정은은 집권 초기인 2012년 4월 노동당 비서였던 최룡해를 총정치국장에 임명하였다 가 2년 후인 2014년에 조직지도부 군사담당 1부부장이었던 황병 서로 교체하였다. 이렇게 보면, 최룡해는 2년 만에, 그리고 황병서는 3년 10개월 만에 교체되었다. 이것은 김정일 시기에 조명록 전 총정치국장(공군사령관 출신)이 1995년부터 2010년 사망 시 까지 15년 동안 역임하였던 것과 대조를 이룬다.

김정은이 야전지휘관 출신인 김정각을 총정치국장에 발탁한 것 은 조직지도부가 지난 해 10월부터 진행한 총정치국에 대한 집중 지도검열사업의 후속조치로 보인다. 2008~2011까지 김정은 후계 체제 구축과정에서 총정치국 1부국장직을 맡아 군대 내 후계자 우상화 작업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김정각은 2007년부터 총정치국 제1부국장직을 맡으면서 와병 중인 조명록 총정치국장을 대신하여 4년 동안 총정치국을 운영한 경험을 갖고 있다. 이러한 연유로 인해 조직지도부 검열과정에서 드러난 총정 치국 간부들의 해이해 진 기강을 바로 잡고자 김정은이 야전지휘 관 출신 김정각을 총정치국장으로 발탁한 것으로 보인다.

4. 11 최고인민회의에서 김정각 총정치국장을 국무위원에 임명 하고 무력기관을 별도로 호명하는 등 ‘군 힘빼기’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분석은 일면 타당하나 그 이면을 들 여다보면 다른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지난 해 10월부터 시작된 당 조직지도부의 총정치국에 대한 검열이 아직까지 진행 중임을 알 수 있다. 4. 9 정치국 회의에서 김정각 총정치국장을 정치국 상무위원에 임명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다 는 사실이 이를 방증해 주고 있다. 둘째로 국무위원회 부위원장직 은 국무위원장 김정은이 국무회의를 개최하여 발탁하고 최고인민 회의에서 추인하게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최고인민 회의에서 전임자인 황병서와 달리 김정각을 국무위원회 부위원장 에 임명하지 않고 국무위원에 보선한 것은 총정치국에 대한 당 조직지도부의 검열을 마치는 대로 비공개 정치국 회의와 국무위 원회 회의를 열어 김정각을 정치국 상무위원과 국무위원회 부위 원장에 기용할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다.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에 입성해야 정치국 상무위원과 국무위원회 부위원장에 기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2014년 4월에 황병서가 정치국 상 무위원에 오른 직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된 사례가 김정 각의 중용 가능성을 뒷받침해 준다. 따라서 김정각에 대한 인사조 치를 ‘군 힘빼기’로 해석하는 것은 다소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과연 군의 힘을 빼는 것이 북한 지도부에 유리한 것인지 의문이다. 북한 지도부는 오히려 군을 재정비하여 군 본연의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 주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라고 판단할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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