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분석 틀을 통해 본 한반도 대화국면, 제주평화연구원>

(이동휘 한국외교협회 부회장)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ㆍ북 간 그리고 북ㆍ미 간 정상회담 개최가 합의됨에 따라, 그간 북핵문제를 둘러싸고 고조되어 왔던 한반도 위기국면은 일단 대화국면으로 전환되고 있다. 여기에 최근 열린 북ㆍ중 정상회담과 향후 개최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는 북ㆍ러 및 북ㆍ일 정상회담들도 성사될 경우, 북핵문제의 해결 모색 과정이 중ㆍ장기적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전략지형의 변화도 가져올 수 있음을 예견케 하고 있다. 

  최근의 상황 전개에 대해 수많은 분석과 예측이 나오고 있는데 대부분이 정치적 해석에 치중되어 있다. 그러나 향후 일련의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점차 대화와 협상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게 될 것임을 고려해 본다면 최근의 상황전개를 협상론을 통해 조망해 볼 필요성도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견지에서 이 글은 다양한 협상분석 틀 중에서, (1) 협상국면으로의 전환 배경, (2) 한국의 협상 당사자로서의 입장 및 (3) 한국의 역할을 최대화할 수 있는 방안 모색 등에 적용할 수 있는 세 가지의 관점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대화국면이 전개 되고 일련의 정상회담이 계획되게 된 배경에 대한 설명으로써 ‘협상 밖 선택지(alternative)’의 균형도달 문제를 살펴볼 수 있다.

  하버드 협상프로그램(Program on Negotiation)에서는 협상을 하지 않고 추구할 수 있는 결과를 ‘협상 밖 선택지(alternative: 代案)’, 협상에 임하여 취할 수 있는 카드를 ‘협상 안 선택지(option: 對案)’로 구분하고, 협상에서 당사자에게 유리한 결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당사자의 ‘협상 밖 선택지’는 강화하는 한편, 상대방의 선택지는 약화시킬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 때 본인에게 있어 최고의 ‘협상 밖 선택지’를 BATNA(Best Alternative Toward Negotiated Agreement)라고 함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러한 주장에서 합리적으로 도출할 수 있는 추론은 양측이 협상을 앞두고 유리한 결과를 쟁취하기 위하여 각자의 BATNA를 상대방의 그것보다 강한 수준으로 올리는 경쟁적 노력을 하게 되나, 이러한 노력이 더 이상 진전되지 못하는 수준, 즉 균형상태에 도달하게 되면 자연히 협상에 임하고 ‘협상 안의 선택지(option)’를 둘러싼 흥정, 즉 본격적인 협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북핵 문제에 대입해 보면, 북한은 미국 본토에 도달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탄의 개발완성을 BATNA로써 주장해 왔으나, 국제제재의 강화와 점증되는 미국의 군사적 조치의 현실화 가능성 증대로 한계를 인식하게 된 한편, 미국도 코피작전을 포함한 선제적 군사공격을 BATNA로 활용하였으나 실질적으로 이를 실천하기에는 확전의 위험, 대중국 관계 악화 우려 등의 부담이 커지는 어려움을 인지하게 되어 ‘협상 밖 선택지’를 둘러싼 경쟁은 일단락되고 실질협상 국면에 접어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둘째, 남ㆍ북 정상회담의 개최를 이끌어내고 이를 북ㆍ미 정상회담으로 연결시킴으로써 한반도에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정착을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한국정부의 입지를 평가해 보기 위해서는 양면게임(Two Level Game)을 원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양면게임에서 협상 당사자는 통상적 의미의 상대방과 협상(레벨1 협상)을 하는 한편, 이 협상에 이해관계를 가지는 내부관계자와도 동시에 협상(레벨2 협상)을 해야 하는데, 양 상대방의 특성과 주장의 강도 등에 따라 협상 당사자의 협상수행능력(win-set)이 확장될 수도 있고, 반대로 위축될 수도 있다는 논지이다.

  비록 내외의 구분이라는 점에서 적확한 응용은 아니겠으나, 작금의 미ㆍ북 사이의 ‘중재자’로서의 한국의 입장에 이 논지를 대입시켜 보면,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해체)’ 원칙의 관철로 북핵 문제를 ‘일시’에 해결하고자 하는 미국과 ‘단계적이고 동시적’인 진행을 의도하는 북한이라는 양 이해 당사자 사이에서, 건설적 역할을 해야 하는 한국의 win-set은 확장될 수도 있고 반대로 위축될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관찰은 한국이 미국의 비핵화 의지를 기본토대로 북한을 설득하되, 북ㆍ중의 요구 사항도 동시에 미국에 전달하고 이를 협상안으로 담아낼 수 있는 해법을 가지고 있다면 한국의 win-set이 양방향으로 확충될 수 있을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입장에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의 문제를 생각해 보기 위해서는 창의적 선택지(creative option)의 창안 문제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창의적 선택지란 양측의 ‘협상 밖 선택지’가 균형 상태에 도달함으로써 실질협상에 돌입하였을 때 협상에 임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우리의 이익을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협상 안 선택지(option)’를 고안하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앞서 언급한 유사 양면게임의 상황에 처한 한국으로서 win-set을 최대화할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할 것이다.

  현재 알려지고 있는 바로는 북한과 중국은 암묵리에 중국이 주장하여 온 소위 ‘쌍궤병행’인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단계적이고 동시적’으로 진행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반면, 미국은 CVID에 입각하여 ‘일시적’으로 비핵화를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여기에서 창조적 선택지의 하나로, 북ㆍ중의 소위 ‘쌍궤병행’의 대강을 원칙목표로 하여 협상구조를 형성하되, 미국의 ‘완전한 핵폐기’ 요구를 실천계획으로 하는 협상과정을 고안하여 이들을 하나의 패키지로 묶는 방안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실천계획으로는 미국이 그간 각국에 적용하여 왔던 ‘협력적위협감축조치(Cooperative Threat Reduction)’를 활용할 수 있는데, CTR은 완전한 폐기를 대전제로 하되, 각국에 신축적으로 적용되어 왔으므로 현재의 한반도 상황에 맞추어 최단시한을 설정하고 단계를 최소화하는 한편, 보상조치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등의 필요한 요소들을 포괄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소기의 목적에 최적화 된 한반도형 협력적위협감축조치(KCTR)를 창안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원칙으로서의 비핵화’와 ‘과정으로서의 CTR’이 하나의 조합으로 이루어지게 됨으로써 시간 지연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감소시키고 비핵화 실천의 가능성을 높여주게 될 것으로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며, 이를 통틀어 ‘한반도모델(Korean Model)’이라 명명해도 무방할 것이다.

  협상에서의 최종승자는 힘의 우열과 협상과정의 주도력 등을 넘어서서, 결국 당사자에게 유리하면서도 상대방이 수용할 수 있는 ‘협상 안 선택지(option)’를 창의적으로 만들어 제공할 수 있는 협상자라는 사실을 상기해 볼 때, 한반도 대화국면이 전개되는 지금은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 최상의 지혜를 모아 나가야 할 때임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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