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러 외교관 추방의 정책적 함의와 국제관계 전망, 제주평화연구원>

(고상두 연세대학교 교수)

러시아와 서방의 외교 전쟁

  영국에 기밀을 넘긴 혐의로 체포되어 복역을 마친 러시아 출신 첩보원이 영국 영토에서 독살시도를 당했다. 이러한 암살의혹 사건에 대응하여 영국정부는 러시아 외교관 23명을 추방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독살사건에 사용된 신경작용제 ‘노비촉’이 러시아 군사당국이 개발하는 화학무기 물질이라는 점에서 러시아의 소행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영국을 지지하는 차원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내 러시아 외교관 60명을 추방하였다. 자국이 아닌 동맹국을 위해 미국이 타국의 외교관을 대규모로 추방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조치로 해석된다. 영국과 미국의 주도적 행동에 약 30개 서방국가가 동참하였고, 도합 150여 명의 러시아 외교관이 추방되었다. 주로 나토 회원국인 이들 국가들은 독살사건을 동맹국에 대한 노골적인 화학무기 공격으로 간주하고 단합하여 대응하였다. 이러한 공동대응은 나토조약에 명시된 자동개입 조항의 정신을 충실히 이행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정부는 자국의 소행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서방 외교관에 대한 동수추방의 조치를 취하였다. 그동안 러시아와 서방국가 간에 서로 외교관을 추방하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이처럼 대규모적으로 벌어진 적은 없다. 따라서 냉전 이후 가장 심각한 외교 전쟁이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신냉전이 도래했는가?

  국내외 언론에서는 미러 간에 신냉전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재 상황이 신냉전의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신냉전의 조건은 러시아의 강대화, 러시아 진영의 결속, 대안적 체제모델의 제시 등 3가지인데, 러시아의 현실은 이러한 조건과 거리가 있다.

  첫째, 러시아 경제가 약화되고 있다. 서방제재와 유가하락의 이중영향으로 3년간 마이너스 성장을 하였고, 작년에 겨우 1.7%로 회복하였다. 그리고 과도한 에너지 의존 경제에서 탈피하겠다며 내세운 경제 현대화 정책은 실패하였다. 2000년 푸틴 집권 당시 러시아 경제의 자원의존도는 80%였고 현재는 83%이다. 

  둘째, 친러 성향의 구소련 공화국을 결집시키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는 유라시아경제연합(EEU)을 출범시킴으로써 경제적으로 진영을 구축하는 데에는 성공하였지만, 정치안보적 진영화에는 실패하였다. 원래 러시아는 유라시아연합을 출범시키려고 했지만, 카자흐스탄의 반대로 유라시아경제연합의 출범에 만족해야 했다. 또한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벨라루스는 크림합병 사태 이후 자국이 유사한 전철을 밟게 될 것을 우려하고 경계하는 실정이다. 

  셋째, 러시아의 체제가 국제사회에서 주요 발전모델이 되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는 발전모델의 경쟁에서 중국에게 뒤지고 있으며, 서구의 패권을 비판하면서 탈서구적 비자유주의 국제질서의 필요성을 함께 주창하였던 브릭스마저 크게 약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신냉전이 본격적으로 발발하였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최소한 서방과의 대결 분위기는 푸틴에게 정치적인 이득을 주고 있다. 푸틴의 국내정치적 기반은 서방과의 갈등이 심해질수록 공고해지고 있다. 금년 3월 18일에 치러진 러시아 대선 직전에 일어난 외교관 맞추방 사건은 러시아 국민의 애국주의 정서를 자극하였고, 푸틴은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압박을 국내정치에 활용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푸틴은 76.7%라는 역대 최다득표로 압승하면서, 자신의 최고 기록의 갱신하였고, 향후 2024년까지 장기 집권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푸틴은 선거기간 동안 미국의 MD를 뚫는 첨단무기의 개발을 공언하는 등 러시아의 군사력을 과시하고, 옛 소련에 대한 강한 향수로 국민을 결집함으로써, 러시아의 수호자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하지만, 그의 강한 러시아 건설 정책은 서방의 지속적인 제재로 인하여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따라서 대선에 승리한 푸틴으로서는 이제 서방과의 화해와 협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러시아와 미국의 관계 개선 전망

  일련의 외교관 맞추방 사건에도 불구하고 서방국가들은 러시아와의 대화와 교류의 여지를 열어두고 있다. 금년 6월에 열리는 월드컵에 영국이 참가할 예정이고, 5월에는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하여 푸틴 대통령이 연례적으로 참석하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경제포럼에 함께 동참할 예정이다. 하지만 서방의 가장 큰 관심사는 미러 관계의 개선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러 관계의 개선을 시도할 가능성은 있지만, 성공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구소련 붕괴 이후 미국과 러시아는 관계 개선에 번번이 실패하였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은 취임과 함께 관계 개선을 시도하였지만, 임기 후반에는 관계가 악화되는 경험을 되풀이하였다. 클린턴 대통령은 러시아의 체제개혁을 지원하고, 옐친 대통령은 친 서방 외교로 화답하였지만 나토의 코소보 공습으로 양국관계는 악화되었다. 부시 대통령은 당선 직후 가장 먼저 러시아를 방문하였고, 푸틴 대통령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적극 지원하였지만 미국이 구소련 지역의 색깔혁명을 지원하면서 다시 악화되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직후 러시아와 새로운 출발을 한다는 의미에서 리셋정책을 추진하였지만 우크라이나 사태로 최악의 관계가 되었다.

  이처럼 그동안 3차례에 걸쳐 관계 개선에 실패하였다는 것은 양국 간에 근본적인 장애가 있다는 것을 말한다. 트럼프의 대러 관계 개선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의회의 반러 정서이다. 미 의회는 러시아 정부의 언론통제, 인권탄압, 부정부패 등 권위주의적 통치 거버넌스를 지속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미 상원에서는 러시아의 미 대선개입을 징벌하기 위해 야당인 민주당과 여당인 공화당이 함께 대러 제재를 확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트럼프 행정부는 역대 행정부와 달리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시도조차하기 어려운 처지에 있다고 하겠다.

한반도에 대한 시사점

  비록 미국과 러시아는 가치와 이익의 차이로 인하여 갈등을 빚고 있지만, 주요 국제문제의 타결을 위해 협력할 수밖에 없는 이해관계자이다. 러시아는 미국에게 공동협력의 이득이 큰 나라이며, 테러와의 전쟁, 전략핵 감축, 핵확산금지, 사이버 해킹방지 등에서 중요한 협력국이다. 특히 우리에게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미러 관계의 개선이 필요하고 러시아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푸틴 대통령의 북핵에 대한 인식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한반도 위기 이슈가 서방의 관심을 러시아로부터 동방으로 돌리게 해준다고 생각한다. 둘째, 러시아는 평화적인 중재자로 나서기를 원한다. 셋째, 북한의 비핵화 방안으로 대화와 제재를 함께 강조하되 대화에 방점을 둔다. 넷째, 과도한 비핵화 시도로 북한정권이 붕괴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러시아가 북한, 시리아, 이란 등과 같은 독재국가를 지원하는 이유는 자국의 안보유지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러시아 연방보안국장 출신인 파트루세프 국가안보실장은 “서방이 권위주의 국가를 붕괴시키는 노력의 최종 목표는 러시아이다. 서방은 러시아의 자연자원을 탐내고 체제의 약화를 원한다”라고 말하였다. 

  이러한 러시아의 한반도 인식을 토대로 우리는 첫째, 중재자를 자임하는 러시아의 역할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둘째, 북한은 비핵화의 전제조건으로 체제보장을 원하는데, 미국 단독의 약속으로는 미흡할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체제보장을 위한 한반도 주변 4강의 국제협약 체결을 선도하는 역할을 러시아에게 맡길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가 북핵문제에서 성공적인 문제해결 능력을 보여준다면,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서도 진일보하게 될 것이다. 

  금년은 한국과 러시아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된 지 10주년이 되는 해이다. 양국정부가 북한의 비핵화라는 전략적 목표를 위해 동반자적 협력을 성공적으로 이룩한다면 올해를 계기로 한러 관계는 질적으로 재도약하게 될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 문제에서 운전석에 앉아 있는 한국에게는 적극적인 조력국이 필요한 실정이고, 서방의 압박을 받고 있는 러시아가 우리와 협력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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