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정권과 일본 헌법 개정, 동아시아재단>

(이정환 서울대학교 교수)

[편집자 주]

아베 일본 총리가 이끄는 집권 자민당이 지난 3월 25일 전당대회를 열고 개헌안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주요 쟁점 중 하나였던 ‘자위대’ 관련 조항에 대해서는 현행 헌법 제9조를 그대로 유지하는 가운데 9조 2를 신설해 자위대 위헌 논란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합의가 이뤄졌습니다. 그러나 당초 계획대로 연내에 개헌안을 발의해 내년 상반기에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이에 대해 이정환 서울대 교수는 헌법 개정은 아베 정권의 정치적 안정과 직결된 문제로, 현재 잇따른 사학 스캔들로 당내 아베 지도력에 대한 구심점이 약해지고 있어 개헌 가능성도 함께 낮아지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본문]

ISBN 자민당 헌법개정추진본부 논의의 결착

현행 일본국헌법(日本國憲法) 시행 70주년이 되던 2017년 5월 3일(헌법기념일), 아베 신조(安部晋三) 총리는 비디오 메시지를 통해 신헌법 시행 목표 시기를 2020년으로 제시하면서 정치권이 헌법 개정에 관한 논의를 진행할 것을 촉구하였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아베 총리의 제안에 호응해 당내 헌법개정추진본부에서 헌법 개정의 핵심 사항에 대한 당론을 확정하기 위한 논의를 진행하여 왔다. 2018년 3월 22일 자민당 헌법개정추진본부는 전체회의를 통해 4대 사항에 대한 조문안을 실질적으로 확정하였다.

 

자민당 헌법개정추진본부에서 논의된 4대 쟁점 사항은 ‘자위대’, ‘긴급사태’, ‘교육충실’, ‘합구해소’이다. 각 사항에 있어서 개정이 필요한 논리는 다음과 같다. ‘합구해소’ 관련 개정 사항은 현재 참의원 선거구에 존재하고 있는 두 현으로부터 1명의 지역구 의원 선출, 즉 도도부현(광역지자체)의 경계를 넘는 합구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선거구 규정과 관련된 47조의 개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교육충실’의 경우, 국민의 교육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26조의 규정을 개정하여 국민의 교육에 대한 권리를 보다 넓혀야 한다는 주장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긴급사태’ 관련 조항은 지진과 같은 사태가 발생하였을 때 선거를 연기하거나 내각에 특별 권한 부여가 필요하다는 논리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일본 헌법 개정 논의의 가장 핵심적인 사항인 ‘자위대’ 관련 부분은 전력불보유 규정이 담긴 9조의 개정을 통해 자위대 위헌성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는 논리에 기반을 두고 있다.

 

3월 24일 자민당 당본부에서 개최된 지방의원 강연회에서 헌법개정추진본부는 4대 사항에 대한 개정안을 발표하였다. ‘합구해소’ 관련 조항은 47조에 ‘참의원 의원의 전부 또는 일부의 선거에 있어서, 광역 지방공공단체의 각 구역을 선거구로 하는 경우에는, 각 선거구에 적어도 한 명을 선출해야만 하도록 하는 것이 가능하다.’라는 문구를 추가하는 것으로 발표됐다. ‘교육충실’ 관련 조항은 26조 3항을 신설하여 ‘국가는 각 개인이 경제적 이유에 관계없이 교육 받을 기회를 확보하는 것을 포함해, 교육 환경의 정비에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의 내용을 추가하는 방안이 제시되었다. ‘긴급사태’ 관련 조항은 64조 2에 ‘대지진과 기타 비정상적인 대규모의 재해에 의해, 중의원 의원의 총선거 또는 참의원 의원의 통상선거의 적정한 실시가 곤란하다고 인정될 경우, 국회는 그 임기의 특례를 정하는 것이 가능하다.’를 추가하고, 73조 2에 ‘대지진과 기타 비정상적인 대규모의 재해에 의해 특례의 사정이 있을 때 내각은 국민의 생명, 신체, 재산의 보호를 위해 정령을 제정하는 것이 가능하다’를 추가하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일본 헌법 개정 논의에서 가장 핵심적이라 할 수 있는 ‘자위대’ 관련 조항은 9조 2를 신설하여 ‘전 조(9조)의 규정은, 우리나라의 평화와 독립을 지키고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자위의 조치를 가지는 것을 방해하지 않으며, 이를 위한 실력 조직으로서 자위대를 보유한다.’는 내용을 추가하는 것이 자민당 헌법개정추진본부의 안으로 제시되었다.

 

자민당 헌법개정본부에서 제시한 헌법 개정의 4대 쟁점 사항은 논의의 등장 배경부터 갈등의 구도까지 모두 다르다. 우선, 선거구 문제와 관련된 ‘합구해소’ 사항은 각각의 도도부현에서 참의원 통상선거마다 최소 1인의 지역구 당선자가 필요하다는 폭넓은 공감대를 바탕으로 큰 갈등 없이 논의가 이뤄졌다. 둘째, ‘교육충실’ 사항은 일본 유신회가 당론으로 주장해 온 교육 무상화를 자민당이 수용한 것이다. 이 사항은 헌법 개정에서 일본 유신회의 협조를 얻기 위한 수단적 측면이 강하다. 다만 자민당 헌법개정추진본부는 ‘무상’의 표현을 적시하지 않는 것으로 문안을 조정하였다. 셋째, 대규모 재해라는 특별 상황에서 선거를 연기하거나 의회를 통한 입법이 아닌 내각에 의한 정령으로 행정조치를 할 수 있는 규정을 담고 있는 ‘긴급사태’ 조항에 대해서는 내각의 정령제정권이 광범위할 수 있다는 당 외부로부터의 반발이 있었다. 그러나 당내 일부 보수적 인사들은 재난뿐만 아니라 테러 등의 상황에서도 동 조항을 확대 적용될 수 있도록 문구를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처럼 각 사항 별로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자민당 헌법개정추진본부의 논의 과정에서 이들 3개 사항은 문구의 조정에 가까웠으며 당내 첨예한 노선 차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와 달리, ‘자위대’에 관한 9조의 개정에 대해서는 자민당 내의 의견이 쉽게 통일되지 않았다. 결국, 3월 22일 전체회의에서 9조 개정 문제를 헌법개정추진본부의 본부장인 호소다 히로유키(細田博之)에게 일임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9조 개정에 대한 자민당 내의 논쟁
    
자민당 당내 9조 개정에 대한 논쟁 구도는 9조 1항과 2항을 유지한 채 9조 2를 신설하는 헌법개정추진본부의 개정안과 9조 2항을 삭제해야 한다는 개정안의 대립 속에서 진행되었다. 헌법개정추진본부의 논의 과정에서 호소다 본부장과 고무라 마사히코(高村正彦) 부총재 겸 헌법개정추진본부 특별 고문이 전자를 대표한다면,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간사장이 후자를 대표하고 있다. 하지만 헌법개정추진본부의 개정안은 2017년 5월 아베 총리의 비디오 메시지에 이미 담겨져 있었다. 즉, 9조 개정에 대해 아베 총리를 중심으로 하는 자민당 주류에서 9조 존치 및 9조 2 신설안에 대한 암묵적인 합의가 있었고, 헌법개정추진본부의 논의는 이를 당론으로 공식화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이시바가 원론적인 문제를 제기하면서 대립구도가 형성되었다.

지난 1년여 동안의 자민당 내 9조에 관한 논의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점은 아베를 필두로 한 주류파가 9조 존치안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자민당은 이미 당론으로 확정된 헌법 개정안을 갖고 있었다. 2005년 창당 50주년에 발표한 ‘신헌법 초안’이 자민당이 공식화한 첫 개헌안이었다. 그리고 2012년 4월 28일 ‘주권 회복의 날’에 발표한 ‘일본국 헌법개정 초안’은 자민당의 공식 개정안으로서의 위상을 지니고 있다. 2012년에 채택한 ‘일본국 헌법개정 초안’에는 현행 9조 2항의 ‘전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육해공군과 그 기타의 전력은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은 인정하지 않는다.’의 조문을 ‘전항의 규정은 자위권의 발동을 방해하지 않는다.’로 수정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또한 9조 2를 신설하고 ‘국방군’을 보유한다는 문구를 추가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즉, 2012년 초안에는 전력보유 금지의 문구를 삭제하고 국방군이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현재의 자위대를 일반 군대로 공식화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는 다니가키 사다카즈(谷垣禎一)가 총재로 재임하던 야당 시절에 당론으로 정해진 것이나, 2012년 자민당 헌법개정 초안 내용은 아베를 비롯한 현재의 자민당 내 주류파가 동의하고 주도했던 것이었다.

2012년 초안과 비교해 봤을 때, 현재 아베를 중심으로 한 주류파가 택한 9조 내용 전체의 존치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 9조 2항의 ‘전력을 보유하지 않는다.’는 규정이 남아있는 한, 자위대는 군대가 아니다. 또한 9조 2를 신설하는 것만 동일할 뿐, 2012년 초안의 9조 2의 국방군 규정과 2018년 헌법개정추진본부 조문안의 자위권과 자위대 관련 규정은 내용상 의미가 다르다. 현재 아베가 이끄는 주류파는 헌법 개정의 목표를 자위대를 위헌 상태에서 명백히 벗어나게 하는 데에 두고 있다.

한편, 이시바는 자위대의 존립근거를 실질적인 군대로 명확히 규정한 2012년 자민당의 당론을 다시금 제기하고 있다. 전력불보유 내용이 남아있는 한 자위대의 존립근거를 헌법 조문에 추가한다고 해도 전력불보유와 자위대의 근본적인 갈등 구조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모를 리 없는 주류파가 전력불보유 내용의 9조 2항을 존치하고자 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연립여당인 공명당을 배려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개헌을 함에 있어 현행 헌법의 3대 원칙인 국민주권주의, 항구 평화주의, 기본적 인권 보장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고, 시대 변화에 맞춰 환경권 등의 인권 규정을 추가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 공명당으로서는 9조 2항의 삭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변화이다. 또한, 2014년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헌법해석 변경과 2015년 안보법 재개정으로 인해 자위대의 실제 군사활동에 있어서 이미 현행 헌법이 별다른 제약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배경으로 작용한다. 이는 곧 자위대의 국방군 변경 여부가 안전보장 측면에서는 큰 차이점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현행 헌법의 평화주의 성격은 이미 사실상 무력화되어 있다. 따라서 전력(군대)이 아닌 자위대의 존립 근거만 추가해 자위대를 위헌성에서 벗어나게만 하자는 것이 자민당 주류파의 입장이라고 볼 수 있다.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헌법 해석 변경보다 헌법 9조의 개정을 통한 집단적 자위권의 공식화를 선호했던 이시바에게 아베 주류파의 9조 존치와 9조 2의 자위대 근거 규정 추가 시도는 안전보장에 대한 편법적 우회를 위한 선택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일본 정국과 헌법 개정의 가능성

2017년 5월 아베 총리가 2020년 신헌법 시행을 목표로 제시했을 당시, 2017년 가을 임시국회에 자민당 중심의 헌법개정안을 제출하여 양원의 심의를 거쳐 발의 후 2018년 상반기에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일정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2017년 불거진 모리토모 학원 문제, 가케 학원 문제, 이나다 도모미(稲田朋美)를 비롯한 내각 인사들의 부적절한 언행으로 인해 내각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7월 도쿄도 의회 선거에서 자민당이 참패하는 위기를 맞았다. 이에 대한 돌파구로  2017년 하반기 아베 총리는 중의원 해산과 총선거를 선택했다. 비록 중의원 조기 선거 실시로 헌법 개정 일정이 지연되기는 했으나, 중의원 선거결과 개헌세력이 2/3 이상을 유지하는데 성공함으로써 헌법 개정의 모멘텀은 유지되었다.

올해 자민당 내 아베 주류파의 구상은 3월 당대회 이전에 당내 헌법개정 논의를 마무리 짓고, 그 후 총무회를 통해 당론을 확정하고, 가을 임시국회 때 개정안을 발의하여, 2019년 상반기에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것이었다. 자민당이 3월 25일 당대회를 기점으로 당내 헌법개정 논의를 마무리 지으려는 이유는 일정 때문이다. 늦어도 2019년 참의원 선거에서 헌법개정 국민투표가 동시에 치러져야 한다는 판단에서이다. 내각에 대한 높은 지지도를 바탕으로 헌법 개정을 밀어붙이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하지만 3월 2일 모리모토 학원 관련 조작 문제가 불거진 후 아베 정권은 흔들리기 시작했고, 내각지지율도 급격히 떨어졌다. 이러한 와중에 당대회가 개최된 것이다. 지난 3월 25일 도쿄 그랜드 프린스 호텔 신타카나와에서 개최된 자민당 제85회 정기 당대회에서 아베 총리는 아베노믹스의 성과와 생산성 향상, 임금상승, 농업개혁, 관광진흥 등의 정책과제에 대해 자화자찬을 늘어놓은 후, 자위대의 위헌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헌법 개정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하면서 연설을 마쳤다.

그러나 당대회 당일 이시바 전 간사장은 헌법 개정에 대한 당내 의견수렴 절차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자민당 내 차세대 주자로 꼽히는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郎)도 모리모토 학원 사태로 빚어진 정권의 신뢰하락 문제를 제기하며, 국민의 신뢰 없이 헌법 개정은 없다고 언명하였다. 

헌법 개정은 아베 정권의 정치적 안정성과 직결된 문제이다. 아베 정권에 대한 높은 지지도는 아베의 지도력에 대한 자민당 내의 높은 구심력이 기반이었지만, 현재 아베 총리는 그 구심력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다. 올해 초만 하더라도 9월에 있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아베의 승리는 당연한 것으로 보였지만, 이제 더 이상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일본 국내정치적 상황은 헌법 개정의 가능성을 더욱 어둡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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