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차 UN 인권이사회  ‘북한인권 결의안’통과와  대북 인권정책의 과제,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김원식 안보전략연구실)ㆍ(김상걸 신안보연구실)

1948년 세계인권선언의 채택을 기점으로 하여 수백 년 동안 ‘국가’ 와 ‘주권’이란 양대 개념이 지배하던 국제관계는 큰 변화를 겪게 된다. 개인의 ‘인권’을 헌장 상 기본 원칙의 하나로 적시한 UN의 설립 이후 어느덧 국제사회는 ‘인권’이란 가치 아래 주권 국가의 내정에 간섭하는 것이 더 이상 어색하지 않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국제사회의 변화 속에서, 3월 23일 제37차 UN 인권이사회에 서 다시 한 번 ‘북한인권 결의안’이 표결절차 없이 통과되었다. 금번 결의안 통과를 계기로 하여 향후 우리 정부의 대북 인권정책 추진과 관련한 몇 가지 고려사항들을 제안해 보고자 한다

사실 UN 인권이사회와 총회의 북한인권 결의안 통과는 연례행사화 되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북한의 심각한 인권상황에 대한 국제사회 의 우려가 고조되면서, UN 총회는 2005년부터 이미 13년에 걸쳐 북한 인권 결의안을 지속적으로 통과시켰다. 또한 (舊)인권위원회를 대체한 UN 인권이사회도 설립 이후 2008년부터 이번 결의안까지 11번에 걸 쳐 지속적으로 북한인권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물론 그간 UN 북한인권 결의안의 내용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던 것 은 아니다. 특히 제22차 인권이사회 결의에 기초하여 출범한 ‘북한인권 조사위원회(COI)’의 보고서가 2014년 제출된 이후 UN 북한인권 결의 안은 그 내용과 성격에서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된다. 동 보고서 발간 이 전 UN 결의안들은 대체로 북한인권 상황의 심각성에 대한 우려와 북한 정부에 대한 비난 및 권고, 그리고 UN과 관련국들의 관심을 촉구하 는 데에 집중하였다.

그러나 COI 보고서 발간을 계기로 UN 북한인권 결의안들은 북한의 인권침해 상황을 ‘반인도적 범죄(crimes against humanity)’로 규정하 고, 국제법상 개인형사책임 규명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기 시작했다. 반 인도적 범죄의 범죄구성요건인 ‘광범위하고 체계적인(widespread and systematic) 민간인 집단에 대한 공격’이라는 문구는 어느덧 북한인권 상황을 나타내는 일반적 표현이 되었다. 요컨대, 북한의 인권침해 상황 을 반인도적 범죄로 규정한 이후 국제사회는 김정은의 국제형사재판소 (ICC) 제소 혹은 특별재판소(ad hoc tribunal) 설립을 추진하게 된 것 이다. 이후 UN 북한인권 결의는 안전보장이사회로 하여금 ICC에 김정 은을 제소할 것을 반복적으로 요구해 왔지만,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 국과 러시아의 반대를 고려할 때 당분간 이러한 시도가 현실화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COI 보고서 발간 이후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UN의 접근은 투트랙 전략을 취해왔다. 즉, 한편으로는 북한 인권침해 상황에 대한 개인형사 책임 규명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당국과의 대화 및 협력을 통한 북한인권 상황 개선을 지속적으로 병행해왔다. 전 자가 북한정권에 대한 국제적 압력 행사의 한 방식이라면, 후자는 북한 정부에 대한 접근과 협력을 통한 인권상황 개선 방식이라고 할 수 있 다. 후자의 방식은 UN 차원의 각종 인도적 지원은 물론 아동ㆍ장애인 ㆍ여성 등 각 분야별 협력과 노력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UN의 노력에 대해서 북한정권 역시 일종의 투트랙 대응, 즉 한편으로는 강력히 반발하면서도 경우에 따라서는 가능한 범위 내에서 부분적인 협조를 시도하는 이중적인 행태를 지속해 왔다. 북한은 인권 침해 상황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과 공격, 특히 북한 지도부에 대한 책임규명 요구에 대해서는 정치적 공격이나 완전한 날조라고 주장하면서 강력하게 반발하였다. 동시에 북한은 각 인권분야별 협력 시도들에 대해서는, ‘보편적 정례검토(UPR)’ 보고서를 제출하고 장애인이나 여 성 인권 관련 UN 활동들에 협조하는 등 긍정적인 노력과 협력도 병행 해 왔다.

금번 제37차 UN 인권이사회 회기 중에도 킨타나 북한인권 특별보고 관의 보고서가 제출되었으며, 3월 23일 유럽연합과 일본의 주도로 제 출된 북한인권 결의안이 표결 절차 없이 통과되었다. 이번 결의안 역시 심각한 북한인권 상황의 개선을 촉구하면서 국제사회의 북한인권 책임 규명 시도를 환영하고, 북한 정부의 태도변화를 요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금번 결의안 통과를 계기로 북한인권 상황에 대한 국제사회 및 국내 의 우려 역시 다시 한 번 환기될 것이다. 최근 미국이 북한인권 문제를 북한에 대한 ‘최대한의 압박’ 정책의 일환으로 활용하면서 북한인권 문 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도 확대되고 있다. 미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2017년 11월 방한 당시 국회연설을 통해 북한정부의 인권침해를 강력 히 비판한 바 있다. 또한 2018년 1월 31일 연두교서 발표 시에는 탈북자 지성호씨를 초청하여 북한의 열악한 인권상황을 부각시켰고, 곧이어 탈북자 9인과의 면담을 가졌다. 

또한 미 펜스 부통령이 평창 올림 픽 축하를 위해 방한했을 때, 미국으로 송환된 후 사망한 미국 청년 故 웜비어씨의 부친을 동행하기도 하였다. 물론 최근 남북 정상회담과 북 미 정상회담이라는 거대 이슈가 제기되고 있어 이번 결의안의 파장이 더 이상 확대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상황 변화에 따라 북한인권 이슈는 언제든 다시 불거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간 북한인권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는 지속적으로 고조되어 왔다. 특히 지난 해에는 북한의 지속적인 핵ㆍ미사일 도발로 인해 북한의 국제적 고립이 심화 되었고, 김정남 암살과 미국 청년 웜 비어 사망으로 북한의 국가이미지도 심각하게 악화되었다. 이와 같이 북한인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 여론이 강화되면서 북한이 느끼는 압박감 역시 더욱 증가할 수밖에 없다.

이제 북한인권 문제를 둘러싼 이러한 상황과 향후 예상되는 남북관 계의 진전을 염두에 두면서, 우리 정부의 대북 인권정책 방향과 관련하 여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고려사항을 제안하고자 한다.

먼저, 우리의 대북 인권정책과 관련하여 UN의 투트랙 전략을 차용한 우리 나름의 투트랙 전략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두 개 의 트랙이란 ‘국제사회와의 공조’와 ‘남북관계 차원의 접근’을 의미한 다. 우리 정부는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는 그 어떤 유보도 없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이제 북한인권 문제가 더 이상 소모적인 이념적 논란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수용하고 민주국가로서 대한민국의 국격을 제고하는 차원에서 도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적극 지원하고 동참할 필 요가 있다. 특히, 책임 규명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북한인권 기록보존 과 같은 작업에는 한 치의 소홀함도 없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원칙적 입장을 통해 북한인권 문제를 둘러싼 소모적인 내부 갈등을 먼저 해소 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남북관계 차원에서 우리 정부는 북한인권의 실질적 개 선을 위해 ‘접근을 통한 변화’ 전략을 새롭게 모색해야 한다. UN이 책 임규명과 더불어 북한 당국과의 협력을 병행하는 것처럼 우리 정부도 북한 당국과의 협력을 통한 실질적 북한인권 개선 전략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실질적인 북한주민들의 인권개선을 위해서는 북한 당국과의 협력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북한 당국의 협력 없이는 북한 취 약계층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나 이산가족 문제를 해결하는 것조차 불 가능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북한 주민들의 인권의식 변화를 도모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남북한 주민들 사이의 직접적인 접촉 기회를 확대하는 것이다. 남 북한 주민들 사이의 직접교류와 방송교류를 확대하고, 북한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고 강화하는 방식의 경협을 확대하는 것보다 더 효율적 인 인권의식 개선 방법은 없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남북관계 개선과 교류ㆍ협력 확대를 북한 주민들의 실질적인 인권 개선이라는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제고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인도적 지원과 관 련한 모니터링 수단을 확보하고, ‘권리에 기초한 접근’을 참조하여 기 존의 대북지원이나 경협 방식을 개선하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향후 남북관계가 개선된다면, 이러한 인권 친화적인 대북접근을 통해 북한 주민들의 실질적인 인권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다.

실질적인 북한인권 개선을 위해서는 외부의 압력 및 감시와 더불어 ‘접근을 통한 변화’ 전략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북한인권 상황을 외면하고 침묵해서도 안 되지만, 그러한 상황에 대해 비난만 한다고 해 서 북한의 인권상황이 당장 개선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인권을 고려하 지 않는 접근을 통한 개선도 쉽지 않다. 이제 어느 한 측면만을 강조하 면서 내부적인 이념적 갈등을 반복하기보다는 북한인권 개선이라는 공 동의 목적 하에서 다양한 전략을 모색하고 추진하는 것이 필요할 때다.

마지막으로, 북핵문제로 인한 한반도 위기상황을 고려할 때, ‘인권과 평화’의 매개 전략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원칙적으로 보자면, 인권 없는 평화도 평화 없는 인권도 불가능하다. 이미 칸트가 『영원한 평화 를 위하여』(1795)에서 지적했던 바와 같이, 전쟁을 막는 궁극적인 원 천은 바로 시민들의 인권 의식에 있다. 시민들이 스스로 평화에 대한 의지를, 보장된 권리에 입각하여 표출하고 그러한 의지가 민주적으로 수렴될 수 있을 때 국가 간의 법적 평화도 비로소 가능하다. 이런 점에 서 인권의 보장은 평화를 위한 출발점이다. 그렇지만 이와 동시에 평화 없이는 그 어떤 인권 개선도 불가능하다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 실이다. 오늘날 5백만 명 이상의 난민을 양산하고 있는 시리아 사태에 서 볼 수 있듯이, 전쟁은 그 자체로 이미 대규모 인권 침해를 초래한다. 한마디로 평화 없는 인권이란 없다.

이런 점들을 고려한다면, 한반도 위기를 고조시키는 인권 원리주의적 인 접근도, 인권에 침묵하는 유화주의적인 접근도 모두 신중함을 기해 야 할 것이다. 한반도에서 전쟁과 평화의 가능성이 교차하고 있는 상황 에서 북한의 실질적 인권 개선을 도모할 수 있는 균형 잡힌 대북 인권 정책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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