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논평> 북한 고위급 대표단의 방남 평가와 남북정상회담 추진 방향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 SPN 서울평양뉴스 자문위원)

북한의 공식 서열 2위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단장으로 하고 김정은 노동당 및 국무위원회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최휘 국가체육지도위원장,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 등 22명으로 구성된 북한 고위급 대표단이 지난 9일부터 11일까지 한국을 방문했다. 이들은 방남 기간 동안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참가하고 문재인 대통령과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조명균 통일부 장관, 서훈 국가정보원장, 이낙연 국무총리 등 한국 정부 관계자들을 폭넓게 접촉해 한국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확인하고 김정은 위원장의 남북 화해 메시지를 전달했다.

김여정 제1부부장은 특히 지난 10일 고위급 대표단과 함께 청와대를 예방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그의 친서를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문 대통령을 이른 시일 안에 만날 용의가 있다. 편하신 시간에 북을 방문해줄 것을 요청한다”는 김 위원장의 초청 의사를 구두로 전달했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앞으로 여건을 만들어 성사시켜나가자”고 대답했다. 이와 관련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기자들에게 “정상회담이 성과 있게 이뤄지려면 남북관계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한반도 분위기·여건·환경이 무르익어야 한다. 두 개의 축이 같이 굴러가야 수레바퀴도 같이 가는 것”이라며 “북미대화의 중요성을 언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도 북한 대표단에게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서도 북미 간에 조기 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미국과의 대화에 북한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김여정 제1부부장 등은 경청했다고 청와대 관계자가 전했다.

김영남은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이고 김여정은 정치국의 위원보다도 낮은 후보위원에 불과하지만 김영남이 공식석상에서 김여정에게 자리에 먼저 앉을 것을 권유한 것은 김여정이 ‘백두혈통’으로서 공식 지위를 넘어선 실세임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북한의 다른 고위 간부들과는 다르게 김여정은 자신이 방남 기간 보고 느낀 것을 김정은에게 있는 그대로 장시간 허심탄회하게 전달할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에 김정은이 김여정을 특사로 파견한 것은 그만큼 그가 남북관계 개선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북한이 평창동계올림픽 개최 전날인 2월 8일을 인민군 창건 70주년 기념일로 지정하고 열병식을 준비할 때만 해도 많은 전문가들은 열병식이 평창동계올림픽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북한은 열병식에 해외언론을 초청하지 않았고 생중계 대신 오후 늦게 녹화중계로 열병식을 보여주면서 과거와는 다른 절제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북한 예술단도 강릉과 서울에서 남한 사람들에게 친숙한 노래들을 부르고 북한 노래의 경우도 체제를 찬양하는 가사는 수정해서 부르는 등 남한사람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 매우 노력했다.

이처럼 북한이 최근에 보여준 유연성과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단순히 ‘한미 이간 책동’이나 ‘시간벌기’ 시도로만 해석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그 이유는 첫째, 한국정부가 미국과 관계가 악화되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북한과 관계를 개선할 수는 없고, 둘째, 북한이 남한과의 대화를 진행하는 동안에는 오히려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 등으로 핵과 미사일 능력의 고도화를 진전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최근 북한의 대남 정책 전환에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과 국제사회의 초강력 대북 제재 그리고 국제적 고립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김정은의 의도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작년 6월 15일 제1차 남북정상회담 17주년 기념식 축사에서 “북한이 핵과 미사일의 추가 도발을 중단한다면 북한과 조건 없이 대화에 나설 수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7월 6일 베를린에서는 김 위원장과 만나 “핵 문제와 평화협정을 포함해 남북한의 모든 관심사를 대화 테이블에 올려놓고 한반도 평화와 남북협력을 위한 논의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특히 베를린에서 북한 흡수통일을 추구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강조해 북한 급변사태를 기대했던 이명박, 박근혜 정부와는 다른 대북 접근을 보였다.

그러나 북한은 작년까지만 해도 북핵 문제 논의를 위한 남북정상회담에는 결코 응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북한은 세 차례에 걸쳐 ICBM을 시험발사하고 제6차 핵실험을 강행해 심각한 국제적 고립과 초고강도 경제제재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 결과 김정은 위원장은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결정하고 고위급 대표단의 청와대 예방을 통해 문 대통령에게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핵 문제를 주로 논의하고자 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을 모를 리 없는 김정은 위원장이 문 대통령 초청 의사를 밝혔다면 북한이 핵과 미사일 문제에 대해 한국정부가 긍정적으로 검토할만한 새로운 타협안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두 정상이 만나서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에 대해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아무런 성과도 도출하지 못한다면 북한 내부에서도 그런 정상회담을 왜 개최했느냐는 의문이 제기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도 ‘대화를 위한 대화’는 원치 않을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고위급 대표단을 보내 청와대를 예방하게 했으므로 문재인 대통령도 평창동계올림픽 종료 후 고위급 대표단을 북한에 파견해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북한의 협조에 대해 김 위원장에게 감사를 전달하면서 제3차 남북정상회담 개최 준비를 진전시킬 필요가 있다. 북한이 특히 청와대와의 대화 채널을 중시하고 있으므로 한국 고위급 대표단의 단장은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맡게 하고 대표단에 통일부 장관 및 국가정보원장 등을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계기로 마련된 남북대화의 동력이 약화되기 전에 남북정상회담은 연내 특히 9월 9일 북한의 정권 수립 70주년 기념일 전인 8월 15일 광복절을 전후해 개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 대통령은 고위급 대표단 파견과는 별도로 비공개리에 북한에 특사를 파견해 북한이 핵과 미사일 문제에 대해 어떠한 타협안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고 협상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정부에는 북한과의 논의 사항을 상세하게 전달함으로써 남북대화와 국제공조 간 균열 논란이 벌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만약 북한이 핵과 미사일 문제에 대해 계속 비타협적인 입장을 고수한다면 한국정부는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기대를 접어야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심각한 외교적 고립과 경제난에서 탈피하기 위해 국제사회와 타협할 의사가 있다는 것이 확인된다면 대북 특사 파견을 통해 접점을 마련하고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핵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대해 김 위원장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등과 대북정책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지 치밀한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서도 문 대통령은 청와대 내 북핵 T/F 구성을 더는 미루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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