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북한에서도 오(誤)경보가 발생한다면?, 제주평화연구원>

(한인택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

하와이는 작년 12월 1일 미국의 50개주 가운데 처음이자 유일하게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에 대비하는 주민대피훈련을 실시하여 국내외로 관심을 받았다. 지난 주말에는 하와이에서 탄도미사일이 접근하고 있다는 오(誤)경보가 발령되어 주민들과 관광객들을 공포와 혼란의 도가니에 빠뜨리는 사건이 발생하여 다시금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끌었다. 그런 가운데 이번 주에는 일본의 공영방송인 NHK 도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오경보를 발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하와이에서 오경보의 발령은 주정부 직원이 근무교대 중 범한 실수로 밝혀졌고 일본 NHK의 오경보는 기기의 잘못된 조작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신속하게 확인되었다. 미군이나 자위대에서는 미사일 발사가 실제상황이 아니라는 것이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군사적 대응조치는 따르지 않았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하와이나 일본에서 오경보가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와 절차가 개선될 것이라고 한다.

  오경보는 주정부나 언론사만 범하는 실수가 아니다. 얼마 전 “세상을 구한 남자” 라는 다큐멘터리의 실제 인물인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가 타계하였는데, 냉전 중이던 1983년 페트로프는 소련군 소령으로서 핵전쟁 관제센터에서 근무하였다. 페트로프가 당직을 서고 있던 1983년 9월 26일에 미국이 소련을 향해 대륙간탄도미사일 5기를 발사하였다는 경보가 발령되었다. 하지만 페트로프는 발령된 경보가 위성경보 시스템의 오류에 기인한 오경보라고 판단하고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 만약 페트로프가 오경보를 실제상황이라고 판단하여 상부에 보고하였다면 미소 간에는 핵전쟁이 발발하였을 것이다. 냉전 기간 중 미국과 소련은 ‘경보 즉시 발사 (launch on warning)’를 전략으로 채택하고, 레이더가 경보를 발령하면 모든 지상배치 핵미사일을 발사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를 소재로 삼은 다큐멘터리가 “세상을 구한 남자”라는 제목을 갖게 된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페트로프는 우발적인 핵전쟁의 발발은 막았지만 당일 일지를 기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책임추궁을 당한 뒤 조기 전역되었다. 페트로프는 훗날 그날의 판단이 직감에 따른 결정이었으며, 그의 판단이 맞을 확률을 50 대 50 이라고 생각하였다고 술회하였다. 이날의 사건은 냉전이 끝날 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이런 사건은 기밀로 가려져 있기 때문에 소련에서, 그리고 오늘날 러시아에서 그날과 같은 오경보 발령이 더 있었는지, 나아가 더 있었다면 얼마나 더 있었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오경보는 소련군에 국한된 사건이 아니다.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에서 국방장관을 지닌 윌리엄 페리는 자서전에서 1979년 11월 9일 그가 국방차관으로 재직할 시 북미대륙방공군사령부 당직 사관으로 전화를 받고 잠에서 깬 일화를 소개하였다. 당직사관은 페리 당시 국방차관에 컴퓨터에 미국을 향해 날아오는 2백대의 소련 ICBM이 나타나고 있다고 보고하였다. 그리고 그 당직사관은 그러한 경보가 잘못된 경보라고 결론을 내렸다고 페리 차관에게 보고하였다. 결과적으로 그 당직사관은 판단은 맞았다. 오경보는 실수로 컴퓨터에 훈련용 테이프를 설치해서 발생한 것으로 나중에 판명되었다. 이 일화를 회상하며 페리는 만약 그날 당직 장교가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했으면 무슨 일이 터졌을지 질문을 던지고, 예나 지금이나 핵 경보 결정과정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고 지적하였다. 당시 미국도 소련과 마찬가지로 ‘경보 즉시 발사’ 전략을 채택하고 있었다.

  미사일 공격은 발사에서 목표도달까지 길어야 수십 분밖에 안 걸리기 때문에 경보의 정오(正誤)를 따질 겨를이 없다. 잘못된 경보이든 정확한 경보이든 구분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 앞에서 언급한 사례에서 오경보에도 불구하고 핵전쟁이 발생하지 않은 이유는 페트로프 소령이나 미국의 당직 사관이 경보가 오류일 것이라고 직감적으로 판단하고 상부에 즉각 보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상부에 즉각 보고하였다면 소련의 유리 안드로포프 서기장이나 미국의 카터 대통령은 10분 남짓한 시간 내에 반격 미사일의 발사를 결정해야 했을 것이다.

  1979년 미국 북미대륙방공군사령부의 사례나 1983년 소련 핵전쟁관제센터의 사례, 그리고 이번에 발생한 하와이와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이, 오경보는 국가나 시기를 가리지 않고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당연히 오경보는 북한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고 추론할 수 있다.

  만약 북한에서 오경보가 발생한다면 어떻게 될까? 공격이 임박했다는 오경보가 발생할 때 북한의 당직자도 과거 미국과 소련의 당직자가 그랬던 것처럼 신중하게 판단하고 상부에 대해 보고를 미룰 수 있을까? 만약 오경보가 검증이 되지 않은 채 그대로 북한의 지도부에 즉시 보고된다면 북한의 지도부는 어떠한 결정을 내릴 것인가? 북한의 경보 시스템이 완벽하지 않은 이상 오경보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고민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오경보가 발령되었을 때 미국이나 소련이 즉시 반격을 개시하지 않고 신중하게 경과를 지켜볼 수 있었던 이유 중에는 당직자의 직감이라는 개인적 요인도 있었지만 미소가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을 이루고 있었다는 구조적 요인이 있다. 미소는 당시 선제공격을 당한 후라도 여전히 상대국을 초토화시킬 수 있는 충분한 핵능력 (2차 타격능력: second strike capability)을 보유하고 있었다. 따라서 미소는 상대국에 대한 선제공격에 성공하더라도 결국에는 선제공격을 한 자신도 초토화되는 상황을 벗어날 수 없었다. 이는 지금 미러 간에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공포의 균형은 만약 핵전쟁의 발발할 경우에는 인류의 전멸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선제공격을 했다가는 결국에는 자기 자신도 불가피하게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발생시킨다. 따라서 공포의 균형은 역설적으로 선제공격의 유인을 감소시켜서 미소간의 핵전쟁 발발을 막는 결과를 낳았다고 평가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사례에서 미소의 당직자가 미사일 공격을 오경보일 것이라고 판단하고 즉각 상부에 보고를 하지 않음으로써, 유리 안드로포프 서기장이나 카터 대통령이 10분 내 반격 미사일 발사여부를 결정하도록 만드는 위험한 상황을 미연에 방지한 것은 그러한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공포의 균형 아래서는 미국이든 소련이든 선제공격을 개시할 유인이 실질적으로 없거나 매우 낮다. 따라서 경보가 발령되었다면 그 이유는 실제로 선제공격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기기가 오작동하였을 확률이 더 높을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논리적이다.

  지금의 한반도 상황은 미소나 미러 간의 상황과는 대단히 다르다. 북한은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가 상대적으로 많지 않고, SLBM 기술이나 SLBM 용 잠수함도 아직 완성단계에 이르지 못하였다. 따라서 북한은 선제공격을 당하고도 여전히 상대방에 대해서 보복할 수 있는 핵능력, 즉 2차 타격능력이 취약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한편, 남한은 미국의 핵우산 아래는 있으나 자체적으로는 핵무기를 배치도, 보유도 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만약 북한의 공격이 임박했다면 기다리다가 북한의 핵무기에 맞아 죽느니 북한의 핵무기가 발사되기 이전에 선제타격을 해서 핵무기를 파괴하거나 지도부를 무력화하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이렇듯 북한은 선제공격에 취약한 한편, 남한은 유사시에 선제타격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있는 가운데, 미국 내 대북강경파와 한국의 일각에서는 북한의 핵기술과 핵능력이 완성되기 전에 서둘러서 선제공격/예방공격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주장에만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 실제로 1994년에 미국은 북한의 핵시설에 대한 공격(surgical strike)을 계획한 적이 있었다. 그때 만약 카터 대통령이 방북을 통해 제1차 북 핵 위기를 풀지 못했다면 북한을 공격하는 계획은 실제로 실행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은 남한이나 미국의 실제 의도와 상관없이 자신에 대한 선제공격의 가능성이 높다고 인식할 수 있다. 따라서 오경보가 발생할 경우에 인간에 의한 실수나 기기의 오작동이 아니라 실제공격이라고 생각하고 군사적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스텔스 무기의 발달로 인해 공격의 탐지가 어려워지면서 레이더에 나타난 새나 구름을 스텔스 무기에 의한 공격으로 오인하는 실수를 범할 수도 있다. 북한의 지도부는 핵무기를 상실하거나 자신들이 제거 당하는 위협을 감수하기 보다는 과거 미국과 소련이 그랬던 것처럼 ‘경보 즉시 발사’를 전략으로 채택하였을지도 모른다. 물론 외부에서 북한의 핵전략을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으나, 미국과 소련이 ‘경보 즉시 발사’를 전략으로 채택한 사실에 비추어서 북한도 동일한 전략을 채택하였을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만약 이러한 추론이 맞는다면 북한 지도부는 보고를 받는 즉시 갖고 핵무기를 총동원하여 반격하라고 명령을 내릴 것이다. 

  미소간의 공포의 균형은 우발적인 전쟁을 방지하는 데 기여하였다. 하지만 북한과의 우발적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서 미소 간에 존재했던 공포의 균형을 한반도에 재현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따라서 한반도에서 오경보에 의한 우발적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접근과 발상이 필요하다.

  올 들어 남북 간의 대화가 재개되었다. 지금 남북 간 논의의 초점은 평창올림픽의 성공에 맞춰져 있지만 향후 의제로서 오경보에 의한 우발적 전쟁을 방지하는 방안에 대한 공동연구를 제안해 볼만하다. 만약 북한에서 오경보가 발생한다면 지난 주에 하와이나 이번 주에 일본에서 그랬던 것처럼 에피소드로 끝나지 않고 심각한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북한의 비핵화에 대해서 남북 간의 입장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우발적 전쟁의 방지는 남북 모두에게 공통적 이익이다. 따라서 남북 간에 대화가 필요하고 실제로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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