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중국으로 향하는 미얀마: 동남아에서 중국의 입지는 강화되는가?, 제주평화연구원>

(장준영 한국외국어대학교 벵골만연구센터 연구교수)

2017년 11월 19일, 미얀마를 방문한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로힝자족(Rohingya) 문제로 수세에 몰린 미얀마를 유엔안보리에서 적극 옹호해 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미얀마와 방글라데시 양국이 폭력사태가 재발하지 않고 지역에 안정을 도모할 수 있도록 합의를 제안했다. 나아가 지역 갈등의 주요 원인을 빈곤으로 평가하고 중국이 빈곤퇴치를 지원하도록 약속했다. 중국이 미얀마 인프라 사업에 참여함으로써 경제발전의 일익을 담당한다는 계획인 셈이다.

  이윽고 미국은 미얀마 군부의 로힝자족에 대한 군사행동을 “인종청소”(ethnic cleansing)라고 규정하고, 이번 사태를 초래한 책임자들에 대한 표적 제재(targeted sanctions)를 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미 미국을 포함하여 유럽연합 등 서방세계는 미얀마 군부 또는 미얀마에 대한 제재안을 예고한 터였기 때문에 미국의 결정은 연쇄적이고 집단적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미얀마의 대응은 빨랐다. 24일 민아웅흘라잉(Min Aung Hlaing) 미얀마 군총사령관이 중국을 방문했다. 표면적으로는 양국 간 군사협력의 강화가 방문 목적이었으나 이례적으로 시주석이 민아웅흘라잉 사령관을 만났다. 그는 ‘바오보’(脯波, paukphaw)라는 특수한 양국관계를 거론하며 평화공존 5원칙에 근거한 소통과 긴밀한 협력을 강조했다.

  또 다시 5일 뒤 아웅산수찌(Aung San Suu Kyi) 국가고문은 ‘중국 공산당과의 대화’ 개막식에 특별 초청 자격으로 참석했다. 그의 방중은 2017년 5월 일대일로(一帶一路) 포럼 뒤 6개월 만이며, 2016년 집권 후 세 번째에 달한다. 군총사령관과 마찬가지로 국제적 비난에 대한 중국의 방어를 우회적으로 요청한 것과 민간정부 이후 저조한 경제성장을 만회하기 위한 대안으로 중국과의 경제교류 확대 등을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한 달이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양국 고위인사의 방문은 2011년 이후 소원해진 양자관계를 복원하는 전환기로 평가할 수 있다. 미얀마 입장에서는 국제적으로 심화되는 고립을 탈피하고 경제부흥을 위해 또 다시 중국과의 협력을 선택해야만 했다. 이에 반해 중국은 경제협력뿐만 아니라 미얀마와의 긴밀한 관계를 복원함으로써 일대일로의 성공적인 추진과 인도, 일본, 미국 등 잠정적 경쟁국보다 우월한 지위를 선점하고자 한다. 과연 두 국가의 이익을 동등한 수준에서 비교 평가할 수 있는가?

  미얀마가 자발적으로 군부통치를 종식한 배경에는 지나친 중국의 종속화에 대한 우려였다. 1993년부터 시작된 서방세계의 대 미얀마 제재와 미국이 주도한 유엔안보리에서 미얀마 제재안을 상정할 때마다 중국은 미얀마를 보호해왔다. 그러나 2007년 미얀마에서 발생한 샤프론 혁명 당시 중국은 종전의 입장을 우회하여 미얀마 군부의 유화적인 입장 변화를 요구했다. 이로 인해 미얀마 군부는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대폭 낮추면서 체제변화를 위한 수순으로 접어들었다.

  중국은 미얀마를 보호하는 조건으로 서부지역 개발전략과 연계하여 미얀마의 자원을 독점하고, 미얀마 중동부지역을 중심으로 중국 자본의 거대한 유입이 발생했다. 서방의 압력으로부터 군부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군부의 선택은 중국 종속이라는 기대치 않는 결과로 이어졌다.

  2011년 떼잉쎄인(Thein Sein) 대통령이 첫 방문지로 중국을 채택했듯이 미얀마 외교정책의 핵심국가는 변치 않았다. 그러나 외교정책의 기조와 달리 미얀마의 대 중국 전략은 기존의 종속이나 편승보다 주체적인 행태로 변화한다. 미얀마는 정치 및 경제적으로 중국에 대해 민감성(sensibility)이 높지만, 중국은 경제 및 안보전략 차원에서 미얀마에 대한 취약성(vulnerability)이 높은 상호의존이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중국전력투자집단공사(China Power Investment Corporation)가 주도하여 36억 달러를 투자한 밋송(Myitsone)댐 개발공사를 2011년 9월 떼잉쎄인 대통령이 중단시킨 사례가 대표적이다. 자연 재해나 환경오염 등을 댐 건설 중단의 이유로 들었으나 미얀마 내 팽배한 반중정서가 그 본질이었다.

  대신 미얀마는 지속적인 경제성장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미국과 유럽연합 등 서방에서 실시하는 경제제재 해제를 필요로 했다. 이를 위해 정치범 석방, 2012년 성공적인 보궐선거의 실시, 서방과 관계 개선 등 군부정권 당시 행하지 않았던 개혁을 추진했다. 2013년 유럽연합을 시작으로 대 미얀마 경제제재가 해제됨에 따라 미얀마는 정상국가로의 복귀와 함께 사회경제적 성장을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 미국의 아시아 복귀 전략(pivot)과 연계하여 미얀마의 외교정책 또한 헤징(hedging)으로 향했다.

  2016년 정권 교체 이후 왕이 외교부장이 최초의 고위급 방문인사가 되는 등 중국은 멀어진 양자 관계의 복원에 집중했다. 민간정부 출범 후 5개월 만인 2016년 8월, 아웅산수찌는 중국 방문길에 올랐다. 미얀마 외교부에서 중국 방문을 적극 추천했다고 한다. 중국은 밋송댐 건설 재개를, 미얀마는 중국 국경지역에서 활동하는 반군들이 정전협상에 임할 수 있도록 중국의 지원을 요청했다. 두 국가는 민감성과 취약성을 확인하는 수준에 그쳤다.

  그러나 이번 고위급 방문의 결과 이익의 중심은 중국으로 향하는 듯하다. 미얀마 국정의 최우선 과제인 정전협정을 통한 국민통합은 두 번의 회담에도 불구하고 성공을 낙관할 수 없다. 중국계인 꼬깡족(Kokang)과 와족(Wa)의 반발이 심각하며, 미얀마는 중국만이 이들을 설득할 수 있다고 믿는다. 여카잉주(Rakhine State)에서 발생한 폭력사태와 이에 대한 정부의 허술한 대응으로 국제사회의 비난에 직면한 미얀마는 다시 전통적 우방국인 중국의 등 뒤로 숨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두 사례는 미얀마 민간정부의 허약함을 드러내고 있다. 엄격히 말해 모든 권력을 장악한 아웅산수찌의 정치력은 평가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미약한 수준이며, 권력의 행사 또한 역대 군부정권의 양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웅산수찌를 지지했던 국제사회는 떼잉쎄인 정부의 개혁으로 미얀마와 정상적인 외교관계로 전환했으나, 역설적이게도 아웅산수찌는 외교의 축을 다시 중국으로 돌리는 실험을 감행한다. 여기서 위험부담은 미얀마가 경제적으로 중국에 종속되는 구도이며, 이로 인해 미얀마 내 주춤했던 반중정서가 다시 확대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중국의 경제적 이익 추구는 일대일로를 빙자한 군사적 영향력 증대로 이어질 수 있다. 지난 5월 일대일로 회담 당시 아웅산수찌는 중국의 전략에 긍정적 입장이었다. 그리고 민아웅흘라잉 군총사령관은 최근 방중기간 일대일로 건설의 참여를 희망했다. 일주일 전 미얀마를 방문한 왕이 외교부장이 제안한 쿤밍에서 미얀마를 횡단하는 경제회랑 건설안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회랑은 2014년 완공된 천연가스 및 원유 수송관의 경로와 일치하며 그 시작(끝)은 짜욱퓨(Kyaukphu)이다. 미얀마는 이 지역을 더웨(Dawei), 띨러와(Thilawa)와 함께 경제특구로 지정했으나 두 지역과 달리 아직 짜욱퓨는 개발 진척도가 느리다. 중국은 짜욱퓨를 독점적으로 개발하고자 하며, 송유관과 가스관의 안전적 유지를 위해 군대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미얀마 정부에 지속적으로 요청해 왔다. 미얀마에 대한 군사적 접근이 성공한다면 중국의 ‘진주목걸이전략’도 탄력을 받게 된다.

  미얀마는 외국 군대의 주둔을 헌법으로 금지하고 있으나 짜욱퓨는 로힝자족 문제가 발생한 인근 지역으로서 지역의 안정과 질서가 회복되지 않는 한 경제특구 개발도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중국 입장에서 중동 및 아프리카산 원유와 천연가스의 안전한 수송로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여카잉주의 폭력사태가 확대된다면 그들의 연계성 확대와 일대일로 전략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중국병기공업집단(NORINCO)을 포함하여 윈난성은 미얀마로 진출하려는 노골적 의지를 포기하지 않았으며, 그 핵심에는 밋송댐 건설 재개의 희망이 자리한다. 지지부진해진 미얀마의 평화협정의 완성이 중국의 중재로 가능해 진다고 판단한다면, 미얀마 정부의 중국과 밀월관계는 더욱 긴밀해 지면서 또한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다. 

  외부의 비난과 달리 미얀마 국내적으로 아웅산수찌에 대한 지지는 맹목적이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주창하던 소위 민주화운동가들조차도 로힝자족을 자국민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중국으로의 회귀도 국민의 반대와 부딪히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정치적으로 군부를 극복하지 못하는 현 정부를 국민이 지지함으로써 민간정부의 성공을 우회적으로 지원하고자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정부의 행태를 볼 때 중국을 국내 문제 해결의 지렛대로 활용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오히려 군사정부 시기와 유사하게 중국에 종속적인 구도가 심화될 가능성이 더 크다. 자유주의권 국가들이 미얀마에 대한 비난의 수위를 높일수록 중국과 미얀마는 더욱 가까워질 것이며, 미얀마의 중국에 대한 보은은 경제적으로 확대될 것이다. 로힝자족 난민 송환과 재정착, 정전협정을 보이콧하는 일부 무장집단에 대한 군부의 부정적 견해와 독자적인 군사작전은 정부의 노력을 무력화시킨다. 관료사회와 퇴역 군부 사이에 뿌리 내린 친중파는 민간정부의 잠재적 장애요인이지만 이들도 군부처럼 정부의 견제의 대상이 아니다.

  아웅산수찌와 미얀마 정부는 현재 외교적 교환(barter)으로서 중국을 택했다고 주장하겠지만, 갈택이어 (竭澤而漁)에 가깝다. 중국의 지원이 필요한 만큼이나 문제해결을 위한 독자적 방안을 수립하고 시행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능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중국은 간파한 듯 하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은 군사정부 당시 미얀마를 활용했던 그들의 외교 전략을 재가동했고, 그 성공 가능성은 높아졌다. 최소한 동남아지역에서 경쟁하는 인도, 미국, 일본보다 더 유리한 고지를 점령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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