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지역주의에 대한 이론적 고찰, 제주평화연구원>

(이무성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지역통합연구부: 동북아의 미래 전략과 ‘지역 간 주의(Inter-regionalism)’ 시리즈 1 (이론)

<목차>

      1. 지역 협력과 이론적 논의의 태동
      2. 기능적 통합의 가능성과 한계점
      3. 정치적 리더십의 필요성
      4. 타자와 자아의 논란
      5. 대안적 논의


1. 지역 협력과 이론적 논의의 태동

  지역주의 태동과 발전은 유럽연합의 역사와 대동소이하다고 볼 수 있다. 역내 회원국 간의 지역 협력을 통해 전쟁의 재발을 막기 위한 정치적 의도가 통합의 주요 동인이었다.1) 유럽에서 꽃 핀 지역 협력의 논의는 유럽을 넘어 아시아 지역에서도 목도되었고, 한반도에서도 평화 정착을 위한 6자 회담을 위시해, 동북아 통합 논의가 시작된 지도 20년 이상 되었고, 그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지 오래다. 지역 협력 논의의 정책적 시사점이 큰 만큼 그 이론적 논의도 오래되었다.2) 지역 협력 및 통합의 이론적 논의는 유럽 통합 사례를 기반으로 태동되었다. 지역 협력의 논의가 하나의 이론적 논의만으로는 그 복잡하고 다면적인 현상을 다 보여주기 어렵다는 일각의 논의처럼3) 지역 협력 형태가 다양한 만큼 그 이론적 논의도 복잡하다. 특히 국가주의 논의에 대항하여 지역주의 담론이 거세게 일어났던 탈냉전이후 시기에 그런 특징은 뚜렷이 나타났다. 이런 배경 속에, 본고는 지역주의의 다양한 형태와 그에 기반을 두고 발전하고 있는 간지역주의(inter-regionalism)등에 대한 이론적 논의를 기존 지역주의 이론의 시각에서 재정립하고자 한다.


2. 기능적 통합의 가능성과 한계점

  간지역주의의 발생 원인을 설명하는 이론 중 가장 오래된 이론 중 하나가 바로 (신)기능주의다. 기능주의는 경제, 문화, 사회 분야 등에서 기능적 통합이 우선되면, 군사, 안보, 정치 분야와 같은 고위 정치 분야에 파급효과가 기대될 수 있다는 것이 논의의 주요 골자이다.4) 기능적 통합과 파급 효과라는 두 주제를 통해 기능주의자들의 논의는 현재 동북아 지역에서 부상하고 있는 지역주의 담론뿐만 아니라, 아시아와 유럽 간의 간지역주의에 대한 논의에도 적용 가능하다.

  첫째, 현재 아시아에서 목도되는 지역 협력 현상이나, 아시아와 유럽 간의 지역 간 협력, 그리고 유럽에서 진행되고 있는 지역 협력 모두 기능적 통합에 기반을 둔 지역 협력 및 통합 현상임은 분명하다. 그 이유가 규모의 경제나 해외 투자 증가를 위한 경제적 이유이든, 분쟁 해결이나, 국제 사회에서의 규모의 정치 (scale of politics)와 같은 정치적 이유이든,5) 국가 주체는 타 국가와의 기능적 협력과 통합은 분명히 긍정적 함의가 있다고 간주된다. 둘째, 파급 효과가 실제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기능주의적 논의가 적실성이 있다. 경제적 통합으로 시작된 지역 통합이나, 지역 간 협력이 정치적 협력으로 이전되는 파급 효과는 심심치 않게 목도되고 있다. 예를 들어, 아시아와 유럽 지역 간의 상호 의존도가 높아지고, 그 결과 경제적 협력이 효율성을 최대화하기 위해서는 지역의 안정이 선결 조건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시아에 진출을 모색했던 유럽연합의 근본 입장이었다.6) 경제와 정치의 연계성을 인정하는 이런 입장이 실제 지역 간 협력체의 성격을 규정하며, 그 과정에서 파급 효과의 경로를 상술하면서 파급효과가 어떻게 실제로 발생하였는지를 설명하는데 있어 기능주의 논의가 실효성이 있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상기의 두 가지 이론적 함의에도 불구하고, 실제 지역주의나 간지역주의를 이론화하는 작업 과정에서 신기능주의의 한계점이 묵과되지는 않았다. 대표적인 비판 중 하나가 바로 기능적 통합만으로 견고한 지역 협력을 이끌어 낼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지역 협력은 정치적 결정이고, 그에 따른 제도화가 뒤따라야 하는데, 이 점이 미완의 문제로 남아있다. 실제 아시아 지역의 다수의 지역 협력이 갖는 제한적인 정치적 영향력이나, ASEM 같은 지역 간 지역 협력이 단순히 대화를 위한 수다의 장(talk shop)이란 비판은 여전히 유효하다.


3. 정치적 리더십의 필요성

  경제적 상호의존성의 증대와 같은 저위 정치 분야의 협력과 통합으로 인해 기능적 통합의 파급 효과에 대한 논의에 있어 그 의의는 부인할 수 없지만, 지역 협력의 주된 동력은 결국 정치적 결정이다. 냉전 이후 탈국가주의가 급속히 진행되어 국가의 역할이 쇠퇴할 것이라는 탈국가주의 담론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지만, 여전히 국가주의의 복원력(resilience)은 무시할 수 없다. 지역 협력의 시작과 끝은 결국 제도화의 수준과 맞물려 발전할 것으로 예상 되는데, 이는 국가의 의지가 중요한 결정 변수로 작동한다.

  국가가 내부적 결정을 내리면, 이후 결국 정부 간 회의(intergovernmental conferences)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표출하는데, 그 과정은 개별 국가들의 이해를 조정하는 장이 될 것이라는 현실주의자들의 논의도 나름 일리가 있다.7) 만약 우리가 지역 협력 논의에 있어 국가의 역할의 우위성을 부정할 수 없다면, 국가의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정부간주의 논의의 함의도 함께 재조명되어야 한다.

  자유주의적 정부간주의자들은 세 가지 전제를 바탕으로 자신의 논리를 펼치고 있으며, 이를 본 주제에 대별해서 다음 세 가지 사항으로 재해석할 수 있다.8) 첫째, 국가는 이성적 행위자이며, 지역 협력이나 통합의 중심축은 (민족)국가라는 전제를 채택하고 있다. 따라서 지역 협력이든 간지역 협력이든 그 범위와 한계는 참여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범주에서만 가능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둘째, 지역 협력을 결정하는 정부 간 회의에서 개별 국가 이익은 내부 정치 동학에 의해 결정되며, 이는 또한 다양한 행위자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자유주의적 형태를 보인다고 가정한다. 그래서 정부 간 협상에서 개별 국가의 이해관계나 선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국내 정치과정에 참여하는 다양한 행위자들-정부, 사회, 그리고 시민단체-의 정치적 그리고 경제적 이익 관계에 대한 면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는 결국 지역 협력은 초국가적 수준의 기술 관료가 발휘하는 창도성(entrepreneurship)에 의해서만 진행되지 만은 않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 결과 마지막 이론적 논의가 가능해지는데, 그 논의의 핵심이 바로 지역 협력의 구심력을 발휘할 초국가적 기구의 역할이 제한적이라는 시각이다. 유럽 통합사를 보든, 아시아 지역의 지역 협력체를 보든, 초국가적 기구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또는 이런 제한적 역할을 할 초국가적 기구의 정치적 제도화도 초기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이 모든 점을 감안할 때, 국가주의 시각의 이론적 논의는 기존의 (신)기능주의적 논의가 간과한 이론적 논의를 보완해 주는 함의가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4. 타자와 자아의 논란

  지역협력을 논함에 있어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도 중요하지만, 지역 협력을 구상함에 있어 또 다른 이면의 문제는 우리가 타자가 아닌 공동체, 즉 우리(Weness)란 정체성을 공유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대두된다. 특정 지역 내의 지역 협력체에서는 이런 공동의 정체성 논의나 그리고 그에 기반을 둔 행보가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간지역간 협력에 있어서 이런 논의에서는 훨씬 어려운 문제로 이해되고 있다. 그래서 지역 협력의 또 다른 이론적 논의로 지역 정체성 형성의 함의는 무엇이며, 그 과정에서 목도 된 가능성과 한계점이 무엇인지를 질문하는 시각이 대두되고 있다.

  국제 정치에서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 논의는 냉전 이후부터 본격화 되었다.9) 정체성에 대한 논의와 함께 이를 보다 지역주의 연구에 이론적으로 적용 가능케 한 연구가 바로 사회학의 논의를 기반으로 발전한 사회 구성주의 논의이다. 냉전 종전 후 NATO 확장에 대해 설명할 수 없었던 당시의 실증주의를 비판하며, 관념적 요소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등장한 구성주의 논의는 이젠 국제 정치 이론의 한 주류 담론으로 자리 잡고 있다.

  구성주의자들은 세상이 물질적이라기보다는 사회적이라는 전제로 지역 협력의 원인, 과정 및 미래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지역 협력에 참여하는 행위자의 정체성과 이해관계가 외생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타자와 상호 관계 속에서 내생적으로 발생한다고 주장했다.10) 그래서 지역 협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호 관계가 발생하는 사회적 세계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런 상호 관계 속에 행위자들이 자신의 물질적 이해관계에만 매몰되지 않고, 지역 협력체가 추구하는 공동의 가치, 규범 및 원칙을 수용해야지 지역 협력체의 성공이 담보된다고 주장했다.
  상기의 관념적 요소들은 협력의 동인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자신의 정체성과 공동의 정체성과의 괴리를 좁혀 줄 수 있는 중요한 잣대로 작동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지역 협력체에 참가하는 국가 행위자 (state agency)가 여전히 자아와 타자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11) 특히 역사와 관습을 달리하는 이질적 행위자가 참여하는 간지역주의 경우 그 이질성은 더욱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쩌면 정체성 정치가 부각되는 오늘날의 정치 현상을 목도할 경우, 관념적 요소만을 강조한 구성주의적 논의의 한계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5. 대안적 논의

  기능적 통합논의나, 정부간주의 논의나, 그리고 심지어 구성주의적 논의 모두가 결국 국가의 주권을 초국가적 수준으로 이양하느냐, 아니면 국가 고유의 권한을 유지하는가에 논의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지역 협력은 하향식 접근법에도 그 한계점이 있고, 또한 상향식 접근법에도 문제점이 없지는 않다. 또한 지역 협력 논의를 물질적 이해관계에만 기반을 두고 접근하기도, 관념적 요소에만 근거해 전망하기도 어려운 한계점이 있다. 이에 본고의 결론이자 마지막 이론적 논의로서, 국가의 틀을 벗어나지는 않지만, 이를 보완해줄 수 있는 지자체 수준의 협력 논의인 ‘도시 간 지역협력체 (trans-municipal cooperation)’ 구상을 제안해 본다.12)

  본 논리에 따르면, 국가 간 지역 협력은 국내 정치 및 안보 이익에 민감한 부분을 넘지 못해 생기는 지역 협력의 한계에 보완적 입장을 제공하며, 또한 관념적 요소를 지나치게 강조할 경우 자칫 극단적 민족주의로 빠지는 폐해에 속수무책인 구성주의 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대척점을 제공할 수 있다. 특히 최근 유럽 통합 과정에서 불거진 브렉시트 (Brexit) 결정을 통해 보자면, 비록 브렉시트 과정에서 그 탈퇴의 동인이 경제적이고, 정치적이라는 논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보았을 땐 자신이 누구인지를 되묻는 민족주의의 등극이 그 원인이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이는 자기 정체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질문이었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13)

  아시아 지역의 주요 거점 도시 간의 경제적, 행정적, 사회 문화적 협력을 강조하고, 더 나아가 타 지역과도 이와 유사한 협력을 제안, 이행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단순히 도시 간 네트워크 형성에만 머무르지 말고 정책 공유까지 이끌어 가면서 그 전체 과정을 선순환적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물론 이런 논의 또한 국제 사회의 전통적인 문제 중 하나인 힘의 배분 문제 (distribution of power)를14)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남아있지만, 도시 간 지역 협력 논의는 실증적인 측면에서나, 이론적인 측면에서도 새로운 대안적 논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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