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고위급회담 평가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과제, 통일연구원>

(성기영 통일연구원 통일정책연구실 연구위원)

1월 9일 남북 고위급회담 합의 이후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후속 실무회담을 통해 16년 만에 북한 예술단의 남한 공연에 합의했고 북한 고위급 대표단과, 선수단, 응원단의 평창 올림픽 참가협의를 위한 차관급 실무회 담도 앞두고 있다. 이렇듯 2년이 넘는 대화 단절에도 불구하고 이번 고위급회담에서 이뤄낸 합의의 수준은 매우 높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각 합의내용별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들도 만만치 않다. 공동보도문 합의사항의 이행방안을 중심으로 향후 과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평창 실무회담 진행 서둘러야

먼저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와 관련한 공동보도문의 첫 번째 합의사항 이행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북측 대표단이 고위급회담에 앞서 이미 참가 대표단의 구성과 규모에 대해 준비된 답변을 들고 온데다 실무준비를 책임지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와 강원도, 평창 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3자 모두 북한의 참가를 지속적으로 요청해왔기 때문이다. 단, 북측 대표단 참가를 위한 실무회담을 신속하게 진행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을 포함해 총 650명의 대표단이 참가했던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의 경우 대회 개막 한 달 전에 이미 이동 수단 및 경로에서부터 공동 입장 및 국기 게양 방식까지 실무협의를 모두 끝낸 바 있다. 그러나 남과 북은 고위급회담 이후 올림픽 개막을 20여 일 앞둔 1월 17일 평창 실무회담을 시작할 예정이다. 1월 20일에는 스위스 로잔에서 국제올림픽 위원회(IOC)와 3자 간 실무협의가 예정되어 있다. 실무회담에서도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 문제, 남북한 이동경로와 경비 부담, 공동입장이나 국기 게양 방식 등 합의해야 할 쟁점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할 때 결코 시간이 넉넉한 상황이 아니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공동보도문 2항에서 합의한 군사당국회담 개최와 교류협력 활성화는 이번 남북 고위급회담을 통해 거둔 최대의 성과로 꼽을 수 있다. ‘문재인의 한반도정책’이 내세운 3대 목표 중 ‘북핵문제 해결 및 항구적 평화 정착’과 ‘지속가능한 남북관계 발전’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실현해 나갈 수 있는 안정적 토대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2항의 이행과정을 통해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한미군사훈련 문제 등 정치군사적 의제들을 본격적으로 다뤄나갈 수 있을 전망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접촉과 왕래, 교류와 협력을 활성화하자는 데에 합의한 것도 그동안 우리 정부가 주장해온 대로 북핵문제의 해결 이전에라도 비정치적 민간교류는 재개한다는 원칙에 부응하는 성과로 평가할 수 있다.

‘군사적 긴장상태’원인 놓고 남북 간 견해차

문제는 공동보도문에서 합의한 군사적 긴장 상태를 초래한 원인을 놓고 남북 간에 서로 다른 주장을 펼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이다. 남측은 군사적 긴장상태의 원인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북측은 한미 연합군사훈련과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 등을 지목하고 나설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또한 북측은 군사당국회담 과정에서 군사적 긴장 상태 해소를 위해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을 요구하고 나올 가능성도 크다.

세 번째로 합의한 남북 고위급회담과 각 분야 회담 개최 또한 남북관계의 전면적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한 점이다. 이번 고위급회담에서 우리 측이 제의한 이산가족 상봉과 적십자회담 개최 제의를 북측이 수용하지 않았지만 향후 공동보도문 2항의 ‘다양한 분야 접촉과 왕래’나 3항의 ‘각 분야 회담개최’를 근거로 적십자회담을 다시 요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긍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이번 합의는 몇 가지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우선 고위급회담을 마치면서 후속 고위급회담의 날짜와 형식에 구체적으로 합의하지 못했던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2015년 목함지뢰 사건 이후 남북 고위당국자 접촉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당국회담을 ‘서울 또는 평양에서 빠른 시일 내에 개최한다’고 합의한 것에 비춰보더라도 후속회담에 관한 이번 합의의 구체성은 떨어진다. 평창 동계올림픽 준비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점을 감안할 때 평창 실무회담에 집중하는 것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실무회담을 통해 남북관계의 포괄적 개선을 위한 후속회담 일정을 조속히 잡아나가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평창 이후 예상되는 한미 군사훈련 재개 일정을 감안하더라도 군사회담을 포함한 후속회담을 조속히 제안하고 개최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두 개의 장애물

1‧9 남북 고위급회담 합의를 통해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문제가 큰 틀에서 타결되었다고 하더라도 남북대화의 재개를 북미대화로 연결하고 궁극적으로 북한을 비핵화 협상의 틀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두 개의 장애물을 뛰어넘어야 한다. 첫 번째 장애물은 평창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이 모두 끝나는 3월 중순 이후 한미 군사훈련 재개를 위한 움직임이 시작될 경우 예상되는 북한의 반발이다. 북한은 한미 군사훈련 실시를 놓고 공동보도문 2항에서 합의한 ‘군사적 긴장상태 해소를 위한 공동노력’에 위배되는 행위로 비난하고 나올 가능성이 있다. 김정은도 이미 신년사를 통해 ‘모든 핵전쟁 연습과 미군 전략자산 전개 중단’을 공언한 바 있다.

한미 군사훈련 연기를 발표한 백악관 브리핑에서는 훈련 연기의 이유에 대해 단순히 훈련 기간과 올림픽 기간이 ‘겹치지 않도록(de-conflict)’ 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힌 바 있으며 유엔이 채택한 동계올림픽 기간 중 휴전결의 기간도 3월 25일에 종료되는 것으로 명시되어 있다. 결국 한미 군사훈련에 대한 양국 간 별도의 조치가 동반되지 않고서는 평창 올림픽 이후 한반도 주변의 화해 분위기를 이어가는 데에 큰 한계로 작용할 전망이다.

두 번째 장애물은 오는 9월 9일 정권 수립 70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북한이 대남 제안을 해올 가능성이다. 김정은은 이미 신년사를 통해 남측의 평창 동계올림픽과 북측의 정권 수립 70주년을 묶어 ‘민족적 대사’로 표현함으로써 북한 대표단의 올림픽 참가에 상응하는 남측의 조치를 요구할 수도 있다는 점을 암시했다. 70주년을 맞는 9.9절을 앞두고 8월에는 을지프리덤 가디언(UFG) 훈련도 예정되어 있어 이를 계기로 남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다시 한 번 긴장이 고조될 가능성도 있다.

‘평창 4자회동’성사시키자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남북관계 및 한반도 주변 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해나가기 위해서는 평화올림픽을 통해 조성된 화해 분위기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북한이 약속한 고위급 대표단의 문재인 대통령 예방이나 이들 대표단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이끄는 미국 대통령 사절단과의 접촉 등을 성사시킴으로써 평창의 화해 무드를 한반도 화해 분위기로 연결시키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 역시 지난해 12월 한중 정상회담을 통해 고위급 대표단을 평창 동계올림픽에 파견하기로 약속한 바 있다. 따라서 경우에 따라서는 남북미중 4개국 최고지도자의 대리인 격인 고위급 인사들을 통해 4자회동을 개최하는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러한 구도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중국과 북한의 대표단장이 확정된 이후 문재인 대통령이 북미중 3개국 대표(사절)단장을 초청하는 형식으로 4국 간 별도회동을 열기 위한 밑그림을 그려나갈 필요가 있다.

평창에서 어떠한 형태로든 조우할 가능성이 있는 4국 대표단 간의 회동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대화 재개를 위한 분위기를 탐색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회동 자체 만으로도 전 세계 언론이 주목할 만한 평화이벤트라는 의미도 크다. 그러나 4자회동이 성사될 경우 무엇보다도 지속적 남북대화와 이를 통한 남북관계 개선에 대해 미중 양국으로부터 확고한 지지 의사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남북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어떠한 군사적 행동도 없다’고 공언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미중 양국의 지지를 바탕으로 남북대 화를 지속하는 것이야말로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로 가는 첫 번째 조건을 충족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조건부 모라토리엄’제안을

‘평창 4자회동’을 성사시켜 남북 간 대화에 대한 미중 양국의 지지 입장을 분명히 한다면 남북 대화 분위기 조성을 위해 북한에는 추가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 중단을, 미국에는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규모와 자산구성에 일정한 변화를 주는 추가 조치를 요구할 수도 있다. 북미 양국이 이러한 제의에 동의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이라는 단서조항을 달아 남북미중 4국의 컨센서스를 끌어내는 시도는 충분히 유의미할 것으로 보인다. 일종의 ‘조건부 모라토리엄’ 방식이다. 동시에 미일관계와 한일관계를 감안해 과거 대북정책조정감독 그룹(Trilateral Cordination and Oversight Group: TCOG)과 같은 별도의 한미일 협의체를 구성하는 방식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결정으로 이제 막 발걸음을 떼어놓기 시작한 ‘문재인의 한반도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1․9 남북 고위급회담의 성과를 극대화하는 길은 남북관계와 한미관계의 효율적 관리를 통해 북미관계에 긍정적 변화를 견인 하는 것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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