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고위급회담의 함축성과 향후 대북정책 방향 제언, 아산정책연구원>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객원연구위원)

1월 9일 판문점에서 개최된 남북 고위급회담은 그동안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전망되던 북한 대표단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에 중요한 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2015년 12월의 남북 차관급접촉 이후 굳게 닫힌 대화통로가 다시 열렸다는 점일 것이다.

2015년 말 이후 남북한 간 접촉창구가 전무한 상황에서 북한의 4차 핵실험(2016년 1월)으로 인해 고조된 한반도의 긴장은 주기적으로 ‘한반도 위기설’을 낳게 하였다. 높아진 긴장과 소통의 부재가 결합될 경우 서로의 의도에 대한 오인으로 인해 돌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은 점점 더 커진다. 이러한 관점에서 대화의 재개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한 안전밸브를 마련하는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문제는 평창동계올림픽 이후에도 남북대화의 추동력이 이어질 것인지, 또한 남북대화가 북미대화를 견인하고 비핵화의 전기로 전환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타난 북한의 태도는 남북관계와 비핵화는 분리하여 대응하면서 국제 압박을 완화하고 나아가 국제공조를 약화시키고자 하는 목적이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이 우리보다 대화가 더 필요로 하고 있다는 점을 역으로 이용해야 한다. 평창동계올림픽이후에는 비핵화 문제는 집중적으로 거론하며 남북관계와 비핵화를 연계해야 한다. 상징성과 보여주기에 집착하지 말고 의미 있는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속도와 기대감을 조절하는 가운데 당당하게 북한을 대하고 국제공조를 지속적으로 유지·강화해야 한다.

1. 무난한 회담 과정과 결과

외형적인 면이기는 하지만, 대화에 나서는 북한의 태도가 그 어느 때보다도 유연했다는 점 역시 특기할 만하다. 1월 1일 김정은의 육성 신년사에서 평창올림픽 참가 의사가 시사되자 우리 측은 이를 환영하였으며, 그 다음날 조명균 통일부 장관 명의로 1월 9일자 판문점에서의 ‘남북 고위급당국회담’을 제의했다.  북한은 1월 3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된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명의의 성명을 통해 “진지한 입장과 성실한 자세에서 남조선 측과 긴밀한 연계를 취할 것이며 우리 대표단 파견과 관련한 실무적 문제를 논의해나갈 것”이라고 화답하였다.  

또한 북한은 리선권 성명을 통해 2016년 2월 이후 중단된 판문점 연락채널의 복원을 알렸으며, 실제로 그날 오후 3시 30분(평양시 기준 3시) 동 채널은 재개통되었다. 판문점 연락채널을 통해 우리 측은 고위급당국회담의 개최에 대한 북한의 응답을 타진했으며, 북한은 1월 5일자 전화통지문(전통문)을 통해 1월 9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남북 고위급회담을 개최하자는 제안을 수락하겠다고 밝혔다.

기존의 남북대화에서 회담 이전부터 형식, 절차, 시기를 놓고 기 싸움을 벌였던 북한의 행태를 감안할 때 이는 파격적이라고 할 만한 태도 변화였고, 회담의 전망을 밝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였다. 실제로, 1월 9일 10시부터 시작된 남북 고위급 회담의 전반적 분위기는 상당히 화기애애한 편이었던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역대 남북회담 중에서도 중량급에 속하는 대표단 구성에 있어서도 남북은 정확히 균형을 맞추었고, 리선권 역시 ‘다혈질’이라는 평소의 스타일과는 달리 대화 초반부터 유연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회담은 11시간에 걸쳐 8차례의 접촉(전체회의, 수석대표 접촉, 4:4회의, 3:3회의 등)으로 진행되었으며, 그날 저녁 ‘공동보도문’이 발표되었다. 이 보도문은 ① 북한의 평창올림픽 대표단 파견과 이에 대한 한국의 편의 보장, ② 남북 군사당국자회담 개최 합의, ③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 원칙 하의 각 분야 회담 (후속) 개최 등을 핵심 내용으로 남고 있었다.

비록 북한 측이 평창동계올림픽 대표단 파견에 회담 내용을 집중하는 자세를 보였고, 비핵화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회피했지만, 2년 여 만에 재개된 남북회담의 결과로서는 만족할 만한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여부는 젖혀두고서라도 올림픽ㆍ패럴림픽 기간 동안의 긴장조성 행위로 인해 평창동계올림픽의 ‘평화 올림픽’으로서의 의미 자체가 심각하게 훼손될 수도 있다는 기존의 우려를 뒤집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평창동계올림픽 과정에서의 상황 전개에 따라서는 북한의 더 큰 태도변화, 더 나아가 비핵화 및 한반도 긴장완화 분야에서의 진전 역시 기대해 볼 여지는 있다. 

북한의 태도변화에 대해 우리 측이 특별한 ‘양보’나 무리한 조치를 약속한 것도 없다. 이와 관련,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 고위급 회담 하루 뒤 열린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을 재차 강조하였다. “한반도 비핵화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우리의 기본입장”이라는 점도 분명히 하였다. 북한이 비핵화를 남북한 간의 해결과제로 간주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지만, 정부는 꾸준히 비핵화 의제를 제기할 것이라는 점을 부각한 것이다. 실제로, 대통령은 기자회견 후의 질의ㆍ응답에서 북한과 대화가 시작되기는 했지만 북핵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며 한국이 독자적으로 제재를 완화할 생각은 현재 가지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2. 여전히 남은 과제들

남북 고위급회담에서의 고무적인 합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 그리고 그 이후의 과정에서 해결해야 할 현안들이 산적해 있다. 이를 크게 대별해 보면 아래와 같다.

1) 북한의 대화 국면 복귀 동기와 평화공세

북한이 김정은 신년사를 통해 전격적으로 평창동계올림픽 참가의사를 표명하고, 우리의 대화 제의에 신속히 반응한 동기는 크게 세 가지 측면으로 대별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북한의 자신감이다. 북한은 2017년 중 각종 핵/미사일 실험을 통해 자신들의 핵 능력이 급속히 증대되고 있음을 시현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2017년 11월 28일의 ‘화성-15형’ 발사실험 직후에는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비록 대륙간탄도탄(ICBM) 분야에서 완전한 능력을 보여주지는 못 하였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아ㆍ태 지역의 미국 영토와 한반도를 위협하기에는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은 능력이 구비된 만큼, ‘핵 강국’으로의 자신감을 가지고 보다 유연한 입장에서 대남/대미 협상을 전개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고 보고, 국제여론과 주변국(특히 중국)의 반응을 악화시킬 수 있는 강경책보다는 온건한 자세로의 전환이 자신들에게 유리할 것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

두 번째 동기는 국제제재에 의한 압박감이다. 이미 신년사를 통해 김정은은 ‘제재’라는 표현을 세 차례나 사용할 만큼 북한을 향해 죄여오는 제재의 부담감을 은연중에 내비쳤다. 그렇다고 핵개발 중단이나 동결을 일방적으로 선언하기에는 이것이 북한의 사실상 패배로 비춰질 수 있는 위험이 존재한다. 이런 상황 하에서 자신들의 명분을 살리고 국제 제재를 완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평창동계올림픽 참가와 남북 대화 국면으로의 복귀가 최선의 수단이라는 판단이 섰을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남북한 간의 대화가 가능했던 것은 북한에 대해 미국의 강력하고 굳건한 능력, 그리고 그것을 시현할 수 있다는 의지가 표명되었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던 것이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세 번째는 평양이 매우 정교한, 나름대로 오래 준비되어 온 대남/대외 역공(力攻)의 연장선상에서 남북대화와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선언했다고 보는 시각이다. 즉, 아직 제재로 인해 본격적인 타격을 입고 있지는 않고, 자신들의 핵/미사일 능력을 완성하지도 못 했지만, 일단 한ㆍ미간의 공조의 틈새를 파고드는 것이 현 단계에서는 최선의 대안이라는 계산을 할 경우이다. 이 시도를 통해 국제제재의 동력이 약화되고 한ㆍ미간 이견이 발생한다면 북한의 대외적 내구력은 증가하며, 한국 및 국제사회의 평화 착시(錯視) 효과 속에서 핵개발을 위한 추가적인 시간을 확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의 세 분석은 서로 배치되는 것이라기보다는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수준과 제재로 인한 북한의 부담 정도에 대한 시각이 다를 뿐, 어느 대안이나 평화공세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시각의 경우, 북한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핵강국’으로서의 위상을 더 높이는 데에는 평화 제스추어의 활용이 매우 유용하다. 두 번째의 경우, 비록 저자세에서 시작된 대화와 협상이라고 하더라도 한국 측의 대응 여부에 따라(한국의 조바심을 이용할 경우) 평화공세를 통해 얼마든지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 세 번째의 경우, 이미 그 동기자체가 ‘평화공세’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2) 더욱 세련된 북한의 대남/대외전략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은 북한의 ‘평화공세’가 그들의 입장에서는 지극히 유용하고 당연한 대응이라는 것이다. 평양이 ‘평화공세’를 구사하는 방법은 과거에 비해 더욱 세련되고 정교하고 대대적일 가능성이 크다. 1월 9일의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북한은 향후 더 포괄적인 의제에 대한 대화가 가능하다는 여지를 남겨놓으면서도, 일단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문제에 집중하는 태도를 보였다. 반면, 고위급 대화의 수준이나 형식에 대해서는 우리 측 의견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별 다른 부대조건을 달지 않았다. 평창동계올림픽 참가가 신년사에 표명된 그들 최고지도자의 의중이요 ‘교시’라는 점에서 이를 충실히 이행하고자 하는 측면도 있지만, 북한의 자세에서는 다음과 같은 전술의 구사도 암시되었다.

○ 전술1 – 국제공조에서 ‘민족공조’로: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평창올림픽이 “민족의 위상을 과시하는 좋은 계기”이며, “동족의 경사”라고 규정한 바 있다. 리선권의 조평통 담화나 회담 모두 발언에서도 ‘겨레’, ‘민족’이 강조되었다. 결국, 2017년 이후 강화되던 북한 핵에 대한 ‘국제공조’와 ‘제재연대’를 ‘민족공조’의 분위기로 바꾸어가는 것이 북한의 1차적 목표일 것이다. 선수단과 대표단이외에 참관단, 응원단, 예술단, 태권도시범단 등을 보내겠다는 것이 민족공조의 분위기를 거양하기 위한 의도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 전술2 – 외곽(여론)에서 파고들기: 다만, 이를 이용하여 섣불리 제재의 해제나 한ㆍ미 연합훈련 철폐 등을 주장하다가는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따라서, 당국 간의 회담에서는 이러한 주장을 자제하는 대신 국제적으로 평화 이미지를 고양하고 한국 국내여론 차원에서 대북제재의 완화와 한ㆍ미 공통 압력의 이완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 김정은 신년사 이후 북한 매체나 선전선동기구는 한반도에서의 평화와 한ㆍ미의 긴장조성행위 중단을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

○ 전술3 – ‘통 큰 양보’에 대한 보답 요구: 평창올림픽에 북한 대표단이 참가하고, 이 기간 중 별다른 핵/미사일 능력시위를 하지 않는 대신, 올림픽 종료를 전후하여 북한이 자신들이 선제적인 양보를 했으니, 이제는 한국이 화답할 차례라는 논리로 기존의 의제들을 주장하며 한국을 압박할 가능성은 여전히 충분하다.

따라서, 앞으로 중요한 것은 이러한 북한의 세련된 평화공세가 지속적으로 전개되는 가운데에서도 우리가 국내적으로 적절한 여론결집을 이루고 대북정책의 적절한 호흡과 속도를 유지하며, 국제공조를 지속적으로 유지해 나가는 가의 여부이다.

3) 평창올림픽/패럴림픽에의 북한 대표단 참가와 대북제재

남북 고위급 회담이 협의되고 개최되던 기간에 북한 IOC 위원인 장웅은 스위스 로잔을 방문하여 IOC측과 북한 선수단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문제에 대해 협의했다. 장웅은 IOC측과의 협의 이후 북한 선수단에 대한 구체적 사항은 IOC에서 발표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할 북한 선수단의 규모는 다양한 관측이 나오고 있지만, 북한의 상대적으로 빈약한 동계 올림픽 저변을 감안할 때, 국제적 참가기준을 통과한 피겨(페어 종목) 선수들을 포함하여 최대 20명 내외(임원진  포함)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북한 측이 참가 의향을 표명한 ‘대표단’은 이에 비하여 훨씬 대규모이다. 기존의 남북 체육교류시의 북한 대표단 규모를 감안할 때, 500명 내외에서 최대 1,000명 가량의 대표단 파견도 전망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대규모 대표단 참가 그것도 선수단에 비해 엄청난 가분수 규모의 북한 대표단 파견이 과연 바람직한 것이냐이다.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와 남북 화합이라는 면에서 대규모 북한 대표단의 참가는 분명 긍정적인 상징성을 지닌다. 다만, 그동안 북한의 대규모 대표단이 파견된 경우는 대부분 하계 올림픽 종목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으며, 선수단 규모도 일정 수준 이상이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물론, 북한의 대규모 대표단 참가는 그들의 일방적 요구만은 아니다. 2017년 이후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가 남북한 간에 타진되던 시기에 다양한(그리고 정교하게 조율되지 않은) 참가 제안이 이루어졌고, 대규모 대표단은 이에 화답하는 형식이라는 명분이 있다.  그러나, 선수단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이들에 대한 ‘편의 보장’이 현재 시행되고 있는 국제제재와 상충될 수도 있을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 더욱이 북한이 예술단이나 시범단, 응원단, 참관단 파견과 관련된 ‘사전 준비’에 대한 지원을 요구할 경우, 현금 지급으로 인한 제재 기본정신 훼손 시비도 발생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대표단을 이끌고 올 인물과 이들의 이동경로이다. 벌써부터 국내언론들을 중심으로 북한의 사실상 2인자인 최룡해 노동당 조직지도부장,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등이 대표단 단장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들은 상당수가 UN이나 한국, 그리고 미국 정부의 독자제재 대상명단에 올라 있는 인물들이다. 김영철의 경우 2016년 UN안보리결의안 2270에 후속조치로 한ㆍ미의 독자제재 대상에 포함되어 있고, 최룡해의 경우는 우리의 독자제재 대상(2016년 12월) 인물이다. 그동안 북한의 개인 및 단체에 대해 광범위한 제재가 이루어진 현실을 감안할 때, UN이나 한ㆍ미의 제재 대상에 오르지 않은 인물은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나 김여정 정도이다. 

일부에서는 이들에 대한 제재가 국내 금융활동에 대한 것이기에 한국을 방문하는 것, 특히 체육행사에 국한된 방문의 경우 큰 문제가 없고 국제사회 및 미국도 이를 양해할 것이라는 견해를 밝히고 있으나, 논리적으로 빈약한 것은 사실이다. 국제제재나 단독제재 자체가 북한의 행위에 대한 압박의 일환이고 이들이 북한의 최고위급 정책결정자들이라는 점에서 핵/미사일 개발에 대한 면죄(免罪)가 가능하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최고위급’의 상징성 자체가 체육행사 참가 이외의 문제 해결을 기대한 것이기에 순수 체육목적 방문 자체가 모순되는 주장이다. 한ㆍ미간 협의에 의해 평창올림픽에 참가한 최고위급 대표자와의 정치적 협상이 계획되지 않는 이상 제제 약화의 상징성으로 비출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또한, 북한 대표단(혹은 일부)이 ‘고려항공’을 이용하여 한국에 오거나 한국의 선박이 북한 항구에 정박하여 대표단을 싣고 오는 방안 역시 한ㆍ미가 설정한 제재 가이드라인을 스스로 어기는 딜레마가 발생한다.

4) 군사당국자 회담과 군사적 긴장완화

북한은 고위급 회담을 통해 향후 남북한 간의 군사당국자회담을 개최하는 데 합의했다. 평창동계올림픽 참가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가능한 의제와 확대를 회피하던 북한이 군사당국자 회담에 동의한 데에는 크게 두 가지 고려가 작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어차피 육로나 해로를 통해 대규모 대표단이 한국을 방문하려면 이에 대한 군사적 보장 및 지원 문제가 협의되어야 하며, 이를 위한 군사실무회담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우리도 군사당국자회담을 일차적으로는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와 관련된 문제에 관한 회담으로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북한은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위한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군사당국자회담을 통해 그동안 아껴놓았던 자신들의 의제를 제시하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북한으로서는 ‘군사적 긴장’의 책임이 한ㆍ미 측에 있고, 그동안 남북한 관계의 경색 원인이 “미국의 북침 핵전쟁 책동에 가담”(2018년 김정은 신년사)에 있었다는 논거를 펴는 데 이 회담을 적극 활용할 수 있다. 즉, 회담 초반에는 북한 대표단 참가를 위한 군사적 보장을 위주로 협의를 전개하다가 회담이 2~3월까지 계속될 경우 한ㆍ미 연합훈련 중단, 미국의 전략자산 배치계획 철회, 2007년 『10.4 공동선언』에 포함된 ‘서해 공동어로구역‘의 실현과 북한의 조업권 보장 등을 주장하고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우리 측은 군사당국자회담을 통해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도발) 중지와 재래식 도발 중단, 그리고 기존에 남북한 간에 합의된 우발적 군사충돌방안(서해 NLL에서의 상호 국제기준에 의한 연락 및 월선 방지 등)을 협의ㆍ이행하는 방안을 의제로 제시할 수 있다. 이러한 면에서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긴장완화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북한 핵을 비롯한 한반도 문제 해결의 중요한 열쇄인 동시에 북한에게는 평화공세의 대미를 완성하는 수단이라는 양날의 칼 성격을 쥐고 있다. 이러한 동상이몽(同床異夢) 구도에서 우리의 협상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위한 준비가 지금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5) 주변국과의 공감대 유지

우리로서는 북한의 의도와 목표를 역(逆)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즉, 북한이 자신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전반적인 화해ㆍ협력과 비핵화의 방향으로 끌려 나오도록 유도할 수 있도록 협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이 주요한 동력이 바로 주변국과의 공감대 유지와 긴밀한 공조이다. 특히, 2016년 이후 국제적인 제재를 함께 유지해왔고, 2017년 11월의 정상회담을 통해 변함없는 공조를 재삼 다짐한 한ㆍ미간의 공통인식과 공조가 필수적이다. 이와 관련하여,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의사 시사 이후 한ㆍ미 양국 대통령이 전화통화 등을 통해 거듭 남북대화에 대한 환영 입장을 같이 한 것은 매우 적절한 조치였다. 당초 미국 측이 북한과의 대화에 신중하고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다가 이를 적극 지지(트럼프 대통령의 발언)하는 방향으로 전환한 것은 미국의 입장에서도 북한의 변화에 평화공세의 의도가 다분히 내재되어 있다는 판단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한국 정부가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에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해 신중론이나 이견을 제시하는 것이 오히려 “북한이 바라는 바”가 될 수 있고, 한국의 입장을 지지하여 한미관계를 공고히 하고(한국 내 반미분위기 형성 차단도 포함될 수 있음) 한국을 통해 타개책을 마련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좋은 대안이라는 판단을 한 것이다.

이러한 한ㆍ미간의 공통인식과 공조를 유지하는 가운데, 예상되는 북한의 틈새공략에 대응하는 공동의 대응책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 예를 들어, 평창동계올림픽 기간 중 혹은 직후 북한이 인공위성 발사 방침을 발표할 경우, 한ㆍ미는 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이며 어떠한 상응조치를 취할 것인가에 대한 방향이 미리 정립되어야 한다. 또한 평창동계올림픽이후 연기되었던 군사훈련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입장을 정립해야 하며, 기본적으로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담보되지 않는 한 연기되었던 군사훈련을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비핵화가 없는 남북대화와 교류는 추진하지 않을 것을 확인하는 것이 요구된다.

협력의 필요성은 한ㆍ미간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주변국들과 국제적 여론주도국들을 중심으로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대화를 통한 한반도 문제 해결, 그리고 한반도 비핵화의 여건이 마련되기 위해서는 북한이 추가적으로 어떠한 태도변화를 보여야 하는지(예를 들면, 남북대화에서의 비핵화 의제 수용 등)에 대한 우리 입장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은 만에 하나 북한이 급격한 경색국면으로 다시 선회하는 것을 방지하는 효과도 있다.

3. ‘평화 올림픽’을 넘어서 진정한 북한 변화를 위해

이러한 사실들은 남북 고위급회담으로 인해 한층 높아진 평화에의 기대와 흥분의 이면에서 우리 스스로가 보다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밝히 바와 같이, 평창동계올림픽이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의 계기가 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점들에 대한 우리의 치밀한 전략개발과 추진이 요구된다.

첫째, 평창동계올림픽을 남북한 공동의 축제로 치루겠다는 구상이 지나친 기대나 우리의 필요 없는 저자세, 양보로 연결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김정은 신년사 직후에 이루어진 신속한 고위급 회담 제안이나 중량급 대표단의 구성은 우리의 성의있는 자세라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할만하다. 그러나 동시에 이것이 한국의 초조감이나 성과 강박관념으로 북한에게 해석된다면 악용될 소지가 충분하다. 언론을 통해 일부 보도되는 여자 아이스하키 팀의 단일팀 구성이나 남북 공동오케스트라 등은 그 취지의 순수성에도 불구하고, 경우에 따라 과도한 보여주기식 행사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도 있다. 이제는 상징과 실질 간에 적절한 균형을 맞출 때이다.

둘째, 그러한 면에서 북한 대표단의 구성이나 선수단과 非선수단간의 비율 면에서도 운영의 묘를 발휘해야 한다. 무조건 대규모 대표단 파견이라는 점에만 집착하면, 국제스포츠 정신이나 한국이 강조해 온 글로벌 스탠다드, 그리고 올림픽을 위해 열심히 노력한 선수 개개인의 희생이라는 부작용이 초래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무엇보다 선수단 ‘규모’ 자체가 북한의 협상 카드로 이용당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 자체의 분명한 기준 정립이 필요하다.

셋째, 북한 대표단의 파견과 이에 대한 우리의 ‘편의 제공’ 혹은 지원이 지금까지 유지되어 온 대북 제재의 기본취지를 훼손해서는 안 되며, 이 점을 북한 측에도 분명히 주지시켜야 한다. 일각에서 제재와 상충되지 않는 우회적 수단의 모색이나 기술적 해석의 탄력성을 주장하기도 하는데, 김정은의 신년사에서도, ‘비핵화’ 문제에 대한 리선권의 고위급 회담 말미 경직된 태도에서도 북한의 핵 개발 관련 입장은 변한 것이 없었다.  북한의 핵개발 관련 입장이 바뀌지 않은 상황에서 대북제재와 관련된 우리의 원칙 역시 지켜져야 한다. 대표단의 최고위급 인사나 편의제공 과정에서 제재 위반에 대한 시비 소지가 있다면 이러한 우려는 가감없이 북한 측에 전달되어야 하며, 이에 대한 북한의 수용 여부가 평창동계올림픽 참가의 진정성을 가늠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현 분위기에서는 북한 역시 이를 경청할 가능성이 충분한 것으로 기대된다. 공연히 우리 스스로 기준을 낮출 필요는 없다.

넷째, 그러한 면에서 북한이 불편해 하든 아니든, 그리고 그로 인해 회담이 다소 경직된 분위기에서 진행되더라도 북한의 비핵화 필요성에 대한 문제 제기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 점에서 리선권의 민감한 반응 이후에도 신년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비핵화를 재강조한 대통령의 언급은 매우 적절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의 비핵화는 국제적 문제이기도 하지만 우리 자신의 생존과 관련된 사안이기도 하다. 우리 문제를 스스로 강조하지 않는데, 주변국과 국제사회가 이의 해결을 위해 지원ㆍ동참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다섯째, 향후 제기될 남북 군사당국자 회담을 비롯한 각종 실무회담에서는 일단 단기적으로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지원 문제에서 출발하여 북한의 태도에 따라 점차 의제를 확대해 나가야 한다. 예를 들어, 이산가족 상봉과 같은 인도적 문제의 경우, 북한의 화답을 촉구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이를 위해 선제적 양보를 행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우리가 중심과 호흡을 유지할 경우 오히려 조급해 지는 것은 북한이며, 평창과 여타 의제들이 불필요하게 연계되지도 않는다. 그것이 중기적으로 진정한 북한의 변화와 한반도에서의 평화와 안정을 가져오는 길이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들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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