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논평, 2018년 1월11일자 게재>

<남북고위급회담의 성과와 향후 과제:남북관계 발전과 북핵 문제 해결 방향>

정성장 세종연구소통일전략연구실장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개최된 1월 9일의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북측은 평창 동계올림픽대회에 고위급대표단과 함께 민족올림픽위원회대표단, 선수단, 응원단, 예술단, 참관단, 태권도시범단, 기자단을 파견하고 남측은 필요한 편의를 보장하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남북은 군사적 긴장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군사당국회담을 개최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접촉과 왕래, 교류와 협력을 활성화하며 민족적 화해와 단합을 도모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남과 북은 기존의 남북선언들을 존중하며, 남북관계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들을 ‘우리 민족이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북측 발표문에는 이 부분이 ‘우리민족끼리의 원칙에서’로 표현되어 있음)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2017년에만 해도 한국정부의 남북 군사당국회담과 적십자회담 개최 제안을 외면했던 북한이 이처럼 남북고위급회담을 통해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넘어선 남북관계 개선에 합의한 데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적극적인 남북관계 개선 의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통큰 결단’, 그리고 국제사회의 초강력 대북 제재가 중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첫째, 무엇보다도 문재인 정부의 적극적인 남북관계 발전 의지가 매우 중요하게 작용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부터 한반도 평화를 위해 평양을 방문할 의사가 있다는 강력한 남북대화 의지를 표명했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 북핵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남북관계 발전 방안 등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대화하고 싶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이에 북한은 문 대통령에 대한 비난을 자제하면서 남북대화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상대적으로 유연한 모습을 보여왔다. 그리고 문 대통령이 북한 선수단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이끌어내기 위해 지속적으로 북한의 호응을 촉구하자 북한은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로 활용하기에 이르렀다.

둘째로, 김정은 위원장의 ‘통큰 결단’도 이번 고위급회담에서의 남북관계 개선 합의에 매우 중요하게 작용했다. 김정은은 올해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평창동계올림픽 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남한에 대해 이례적으로 매우 유화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대표단 파견을 위해 남북 당국이 ‘시급히’ 만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 2일 국무회의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의사를 높게 평가하고 실무적 대책을 수립할 것을 지시하자 김 위원장도 관련 기관에 판문점연락채널 개통과 남북 당국간 접촉을 직접 지시했다. 지난 9일의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북한이 고위급대표단을 포함한 대규모 방문단 파견을 제안하고 다양한 분야에서의 교류협력의 활성화에 합의한 것은 김정은의 ‘통큰 결단’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셋째, 국제사회의 초강력 대북 제재도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결정에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2017년 북한의 제6차 핵실험과 제3차 ICBM 시험발사 이후 유엔안보리는 북한이 해외에서 수입하는 정유제품의 약 90%와 북한 수출입의 약 90% 정도를 차단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북한경제의 대외 의존도가 다른 국가들에 비해 낮다고는 하지만 이 정도의 초강력 제재는 북한의 외화수입 및 간부와 주민들의 생활에 큰 타격을 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전무후무한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북한과의 대화에 적극적인 한국정부에 먼저 화해 제스처를 보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고위급회담에서의 남북관계 개선 합의가 과연 북핵 문제 해결에 얼마나 긍정적으로 작용할지는 의문이다. 문 대통령은 이번 남북대화를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로 삼고, 나아가 북핵 문제를 대화를 통해 해결하는 계기로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남북고위급회담의 북측 단장인 리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9일의 회담 종결발언을 통해 회담에서 비핵화 문제가 논의되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매우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북핵이 미국에게는 위협이 되지만 한국이나 중국, 러시아에게는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을 통해 미국으로 하여금 한반도 문제에서 손을 떼게 하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고 한미동맹이 무력화되면 한국은 북한의 심각한 핵위협 하에 놓이게 되기 때문에 한국이 북한의 이 같은 주장을 수용할 수는 없다.

따라서 평창동계올림픽 대회 기간 남북한 간에 해빙과 화해 모드가 조성되더라도 대회가 끝나고 4월경에 북한이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한미연합군사훈련이 재개되면 결국 남북관계는 시험대에 오르게 될 가능성이 높다.그리고 오는 9월 9일 북한 정권 수립 70주년을 전후해 북한이 신형 인공위성을 발사한다면 유엔 안보리에서 새로운 대북 제재가 채택되고 북한이 이에 반발해 태평양 핵실험을 강행하게 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처럼 남북관계가 다시 이전의 적대상태로 회귀하는 것을 막으려면 한국정부는 올해 상반기나 9월 이전에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번 고위급회담에서의 합의 중 특히 주목할 부분은 북한이 동계올림픽에 ‘고위급대표단’을 파견하기로 한 점이다. 만약 북한이 최룡해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같은 북한의 실세가 포함된 고위급대표단을 파견하면 문재인 대통령은 이들을 청와대에서 접견해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김정은에게 전달하고 동계올림픽 종료 직후 한국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단장으로 하는 고위급대표단을 평양에 파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올해 6.15 제1차 남북정상회담 기념일이나 8.15 광복절을 전후해 제3차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할 것이다.

만약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남한에 대해 경제력뿐만 아니라 군사력에서도 열세에 놓이게 되기 때문에 북한체제가 민주화되기 이전에 핵폐기를 수용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렇기 때문에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면 한국 정부는 우선 북한의 핵실험과 중장거리미사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중단 선언부터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북한이 공개적으로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 중단을 선언한다면 한국과 국제사회는 대북 제재의 부분적 완화(북한의 의류 수출 허용, 개성공단 근로자의 임금과 관광 대가로 달러 대신 북한이 희망하는 비전략 물자 제공을 조건으로 개성공단 재가동과 금강산관광 재개 등)를 고려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만약 북한이 핵프로그램 동결까지 수용하면 한국과 국제사회는 대북 제재의 전면적 해제와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축소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물론 한국정부는 북한과 이 같은 협상을 진행하기 전에 한․미․중 간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북한과 협상할 내용에 대해 합의를 도출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만약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에서 이 같은 타협조차 거부한다면 한국 정부는 생존 차원에서 대북 제재의 지속과 미국의 전술핵무기 재배치 또는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을 통한 남북 핵균형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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