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사무차장 방북과 북한의 對유엔 전략 노림수, 통일연구원>

(성기영 통일정책연구실 부연구위원)

제프리 펠트먼 유엔 사무차장이 지난 12월5일부터 9일까지 닷새 동안의 북한 방문 일정을 모두 마치고 뉴욕으로 돌아갔다. 2011년 10월 이후 6년 만에 유엔 최고위 당국자가 북한을 방문한 것일 뿐더러 김정은 집권 이후 사무차장급의 북한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리용호 외무상과의 회담 등 펠트먼 사무차장 일행의 방북 일정이 끝난 뒤 유엔은 성명을 통해 이들 일행이 한반도 평화 및 안보상황의 심각성에 뜻을 같이 했다고 밝혔다. 펠트먼 사무차장 역시 유엔 안전 보장이사회 보고를 통해 북한측 관계자와 15시간 이상 대화했다는 사실 등을 공개하며 이같은 유엔-북한 간 대화를 지속해 나갈 구상을 밝히기도 했다.

북한, '각이한 급' 정례적 대화 합의 발표

한편, 북한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이번 방문이 북한과 유엔 사무국 사이의 이해를 깊이 하는 데 기여했으며 앞으로도 의사소통을 정례화하기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북한 측의 발표가 유엔보다 한 발 더 나아가 ‘각이한 급’에서 ‘상호방문’을 통해 ‘정례적’ 대화에 ‘합의’했다고 밝힌 점이다. 유엔 발표 보다 표현이 구체적이고 전향적이다. 특히 북한은 ‘각이한 급’이라는 표현을 통해 유엔과의 의사소통이 고위급과 실무급을 포함해 다차원적으로 이뤄질 수도 있다는 사실까지도 암시했다.

5일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유엔 사무차장의 방북이 성사되고 북한이 예상보다 진전된 입장을 내놓은 것은 몇 가지 측면에서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핵미사일 도발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에 대해 북한이 시종일관 비난해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펠트먼 사무차장의 방북결과에 대한 북한 공식 입장에서 이러한 비난이 사라진 것이 관심을 모으는 대목이다. 북한은 지난해 4차 핵실험 이후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대북 제재 결의안을 잇따라 채택하자 조선법률가위원회 대변인을 내세워 유엔 제재의 법률적 근거를 공개적으로 논의하기 위해 국제사회와 법률단체들로 포럼을 만들어 검증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해왔다. 뿐만 아니라 지난 9월 리용호 외무상은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미국의 강권에 의해 정의를 부정의로 범죄시하는 결의 아닌 결의들만 남발하고 있다’며 유엔의 면전에서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그러나 펠트먼 사무차장 방북 후 내놓은 공식 입장 에서 유엔의 대북제재에 대한 북한의 비난 수위는 공정성 문제에 대한 원칙적 입장을 천명하는 수준에 그쳤다.

방북 과정 미국 태도 변화 주목

제프리 펠트먼 유엔 사무차장의 방북 성사과정에서 미국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도 관심거리 이다. 북한이 유엔 사무차장 일행의 방북을 허가한 것은 ‘화성-15형’ 발사 다음날인 11월 30일이지만 초청 의사를 밝힌 것은 유엔총회가 열렸던 9월말이었다. 당시 일본 교도통신은 유엔총회 참석중이었던 리용호 외무상이 구테헤스 유엔 사무총장과 비공개 면담한 자리에서 대화 채널 개설을 요청했지만 미국의 반대로 이뤄지지 못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미국은 현재 펠트먼 사무차장의 방북을 통해 어떠한 메시지도 전달한 바가 없다며 거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유엔 고위급 인사의 방북과 동시에 틸러슨 국무장관이 북한과의 조건없는 대화 의지를 밝힘으로써 최소한 국무부-유엔 라인에서는 북한과의 대화 재개 조건에 대한 조율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왜 이 시점에 북한이 유엔을 통해 대화 복귀 메시지를 내보내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북한이 유엔 사무차장을 평양으로 불러들인 데는 다목적의 포석이 깔려있다고 볼 수 있다. 대략 다음과 같은 네 가지의 분석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첫째, 북한은 점증하고 있는 미국으로부터의 군사적 위협을 차단하기 위해 유엔을 활용해 완충지대 (buffer zone)를 만들려고 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안토니우 구테헤스 사무총장이 선출 당시부터 평화를 담보하기 위한 유엔의 도덕적 책무와 권리를 강조하고 나선 것과도 무관 하지 않다.

유엔 사무총장, "중국이 북한 통제 못해"

북한 문제와 관련해서는 구테헤스 사무총장이 지난 11일 CNN과 인터뷰한 내용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구테헤스 사무총장은 인터뷰에서 중국을 통한 북핵 해법을 강조하는 트럼프 행정부와 달리 ‘중국이 북한을 통제할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또 유엔 회원국들이 대북제재에 대해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도 북핵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는 외교적 해법과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구테헤스 사무총장은 펠트먼 사무차장의 방북 기간 중 일본 기자들을 만나 북한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건설적 대화를 다시 한번 강조하기도 했다. 미국의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출구를 찾아왔던 북한으로서는 구테헤스 사무총장의 이러한 입장에 힘입어 유엔과의 관계 회복을 통해 긴장 수위를 낮출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을 했을 것이다.

둘째, 중국이나 러시아로부터도 핵미사일 도발을 중단하고 대화의 장으로 나오라는 요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압력을 우회하기 위한 수단으로 유엔 채널을 활용하려 했을 수도 있다. 북한은 지난달 러시아 의원단을 초청해 핵보유국 지위 인정을 내세우며 미국과 대화 의사를 밝혔고 펠트먼 사무차장은 북한 체류기간 중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주북 러시아 대사를 면담하기도 했다. 러시아는 최근 북핵문제의 단계적 해법을 내세우며 존재감을 부각 하고 있다. 중국도 최근 쑹타오 특사 방북기간 동안 김정은 면담 불발 등으로 인해 체면을 구긴 상태이기는 하지만 러시아의 대북 영향력 확대에 대해 표면적으로는 환영하는 분위기 이다. 환구시보는 북러 접촉에 대한 환영 의사를 분명히 하고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중러 간 협력을 강조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북한은 북미 대화 재개 국면에 대비해 자신들의 입장을 지지해줄 수 있는 러시아와 중국을 향해 자신들도 막무가내 행보를 보이는 것만은 아니라는 신호를 보내고 싶었을 수 있다.

제재로 인한 주민 피해 강조할 듯

셋째, 유엔 등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국면에서 대외 메시지 전달 창구가 전무한 상황에서 유엔은 매우 효율적인 메시지 전달의 창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북한의 대외전략 이행과정에서 유엔외교가 보여온 특징을 살펴보면 양자 또는 다자간 외교가 벽에 부딪친 상태에서 유엔을 활용해 전략적 목표를 관철하는 수단으로 삼아왔던 것을 볼 수 있다. 1991년 유엔 동시가입 이후 북한이 한국과 정치적 대결의 장으로 유엔을 활용했다면 1990년대 중반 이후 북한은 주로 심각한 식량난을 해소하기 위한 창구로 유엔의 기능을 이용했다. 또 1987년 대한항공 민항기 폭파사건 이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된 뒤에는 악화된 국제적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서 유엔 무대를 활용하려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넷째, 북한은 유엔 제재 지속에 따른 경제난으로 인해 무고한 주민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부각하려고 할 것이다. 북한은 이미 제재피해조사위원회라는 기구를 내세워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의 제재로 인해 인민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으며 인도주의적 재난 위기에 처해있다는 사실을 강조해온 바 있다. 특히 유엔아동기금(UNICEF)과 유엔인구기금 (UNFPA) 등을 구체적으로 거론하며 이들 유엔기구의 평양사무소 활동을 위한 의약품과 의료기구 등이 제재 이후 제대로 반입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에는 현재 유니세프와 세계식량계획(WFP) 등 5개의 유엔 산하기구가 상주하고 있으며 유엔은 중앙 긴급구호기금(CERF)을 통해 북한 주민의 영양 상태 개선과 질병 대응 능력을 높이기 위한 활동을 꾸준히 전개해 오고 있다. 특히 유엔인도주의업무조정국(UNOCHA)은 지난 2012년 북한에 인도주의 자문관을 파견한 이래 정례적으로 북한에 대한 구호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UNOCHA는 홈페이지를 통해 북한 인구의 41%가 영양 결핍에 시달리고 있으며 70%가 식량안보에 취약한 상태라며 국제사회의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국제사회와의 대치 국면에서 ‘제재’ 프레임을 ‘인도주의적 위기’ 프레임으로 전환하기 위해 유엔을 활용하려고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북한과 유엔 협력관계 지속

이처럼 북한이 국제사회의 제재 국면 속에서 수세적 외교를 탈피하기 위해 유엔 무대를 활용하려고 하는 데는 북한이 유엔과 꾸준히 유지해 온 협력관계도 배경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북한은 유엔 회원국 자격을 획득한 지 3년만인 1994년 49차 유엔총회에서 부의장국에 선출된 바 있으며 1997년 52차 총회에서는 3위원회(인권 사회부문) 부의장국을 맡는 등 대유엔외교의 비중을 꾸준히 강화해 왔다. 5년 단위로 수립되는 유엔과 북한 간의 ‘전략협력 계획’도 이행 중이며 2017~2022년 협력계획에서는 북한 주민들의 영양상태과 식량안보를 협력사업의 최우선 순위로 설정하고 있기도 하다.

이같은 북한과 유엔의 협력관계 기반 위에서 북한은 제재 국면의 출구를, 유엔은 북한의 대화 복귀를 모색하기 위해 정례적 대화의 첫걸음을 떼어놓은 것으로 보인다.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법을 모색하는 정부로서는 북한의 의도를 정확하게 분석하면서도 유엔과 북한의 협상국면 진입을 ‘기회의 창’으로 인식하고 주시할 필요가 있다. 특히 유엔-북한간 의사소통과 북미관계의 국면 전환 가능성을 분석하면서 남북관계 개선을 포함한 한국이 주도하는 북핵 문제의 해결과정에서 이러한 흐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정책대안의 마련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제프리 펠트먼 사무차장 일행의 방북이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지 않도록 우리의 외교역량을 동원하는 것도 남겨진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국제연합은 유엔헌장 제39조가 명시하고 있는 대로 국제평화와 안전을 유지(maintain)하거나 회복(restore)하는 권능과 의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제프리 펠트먼 유엔 사무차장이 지난 12월5일부터 9일 까지 닷새 동안의 북한 방문 일정을 모두 마치고 뉴욕으로 돌아갔다. 2011년 10월 이후 6년 만에 유엔 최고위 당국자가 북한을 방문한 것일 뿐더러 김정은 집권 이후 사무차장급의 북한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리용호 외무상과의 회담 등 펠트먼 사무차장 일행의 방북 일정이 끝난 뒤 유엔은 성명을 통해 이들 일행이 한반도 평화 및 안보상황의 심각성에 뜻을 같이 했다고 밝혔다. 펠트먼 사무차장 역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보고를 통해 북한측 관계자와 15시간 이상 대화했다는 사실 등을 공개하며 이같은 유엔-북한 간 대화를 지속해 나갈 구상을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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