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전술핵훈련과 한반도 위기, 시급한 평화의 입구>

북한의 공세적 무력시위
 
북한은 2022년 9월 25일부터 10월 9일까지 각종 발사체를 7차례 발사했다. 10월 10일자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은 많은 지면을 할애해 김정은 위원장의 현지 지도하에 실시된 인민군 전술핵 운용부대의 군사훈련을 보도했다. 북한 매체는 이 기간 중 미국의 대규모 해상전력이 한반도 수역에서 ‘위험한 군사연습’을 실시했다고 밝혀 자신들의 훈련이 이에 대한 대응임을 명확히 했다.
 
북한 매체에 따르면, 9월 25일 새벽에 발사한 것은 모의 전술핵탄두를 탑재한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이고, 9월 28일 발사한 것은 남한의 비행장들을 무력화시킬 목적의 모의 전술핵탄두를 탑재한 탄도미사일이다. 9월 29일과 10월 1일에도 각종 전술탄도미사일 발사훈련이 이루어졌으며, 10월 4일에는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결정에 따라 신형 중장거리 탄도미사일이 발사되었다. 사거리는 4,500km로 북한의 탄도미사일로는 최장거리를 기록했으며, 괌 미군기지를 충분히 타격할 수 있는 사거리에 해당한다. 북한은 10월 6일 새벽 한·미의 주요 군사시설 타격을 가정해 초대형방사포와 전술탄도미사일 발사훈련을 실시했으며, 9일 새벽에는 주요 항구 타격을 가정한 초대형방사포 사격훈련을 진행했다. 
 
북한 매체는 7차례에 걸려 이루어진 발사체 훈련을 ‘전술핵 운용부대들의 발사훈련’이라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적들’과 대화할 내용도 없고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며 한·미의 군사동향을 예의주시해 필요시 상응한 모든 군사적 대응조치를 강력히 실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은 전술핵 운용부대 훈련과 병행하여 김 위원장의 지도하에 포사격 훈련과 비행대의 화력타격훈련을 실시했다. 북한은 10월 6일 인민군 서부지구의 장거리포병대와 공군비행대들의 화력타격훈련을 실시했으며, 당시 미그 29 전투기 8대와 일류신 28 폭격기 4대가 동원되었다. 북한이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일류신 28 폭격기를 동원해 폭격훈련을 했다는 것은 핵폭탄 투하 훈련을 암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은 8일에는 동해에 재진입한 미국 항모전단에 대응해 사상 최초로 150여 대의 각종 전투기들을 동시 출격시켜 대규모 훈련을 실시했다. 북한의 열악한 공군력을 감안할 때 150여 대의 항공기 출격은 사실상 비행 가능한 모든 군용기를 동원한 비상식적이고 과시 목적의 훈련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같은 공세적이고 집중적인 북한의 무력시위는 전례가 없는 일이다. 북한은 올해 3월 24일 김정은 위원장 참관 하에 화성17형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하고, 풍계리 핵실험장 복구 및 서해 인공위성발사장의 증·개축을 본격화했다. 2018년 4월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결정한 자발적 모라토리엄을 파기한 셈이며, 그 이전의 핵·미사일 개발 노선으로 회귀한 것으로 봐야 한다. 더 우려되는 것은 남한의 주요 군사시설, 비행장, 항구 등을 대상으로 북한의 전술핵 운용부대들의 훈련이 공공연히 벌어졌다는 점이다.
 
북한의 무력시위는 매우 공세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과거 북한은 미국의 전략자산이 한반도에 전개되었을 경우 무력도발을 자제했으나 최근 한·미 연합훈련 전후와 실시 기간을 가리지 않고 있다. 또한 한·미의 군사적 대응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북한이 실전배치단계로 평가되는 전술핵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미에 대해 공세적인 무력시위에 나서고 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북한은 지난 9월 개최된 최고인민회의에서 선제핵공격을 포함해 광범위한 핵무기 사용조건을 명시한 공격적 핵교리(Nuclear Doctrine)를 법제화한 바 있다.
 
김 위원장이 한·미의 군사동향을 예의주시하겠다며, 필요시 강력한 군사적 대응조치를 예고했다는 점에서 향후에도 북한의 공세적 무력시위는 지속될 개연성이 있다. 북한의 ICBM 발사는 물론, 한·미를 압박하기 위한 추가 핵실험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비전 없는 노동당 창건 77주년
 
최근 집중적이고 공세적인 북한의 무력시위와 달리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7주년은 비교적 차분하게 지나갔다. 대규모 열병식이나 탄도미사일 발사, 핵실험 등 고강도의 무력시위는 없었다. 북한은 10월 10일 밤 김일성 광장에서 ‘조선노동당 77돌 경축 청년학생들의 야회 및 축포발사(불꽃놀이)’ 행사를 개최하고 조선중앙TV가 약 20분간 이를 실황중계 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참관하지 않았으며,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 등 고위층의 참석도 없었다. 조선중앙TV는 저녁 8시 뉴스에서 아침에 보도된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의 전술핵 운용부대 훈련 등 최근 무력시위 내용을 반복했으며, 이외의 특별한 행사에 대한 보도는 없었다. 10월 10일 김정은 위원장은 대규모 채소 생산기지인 연포온실농장 준공식에 참석했으며, 11일자 노동신문은 6면에 걸쳐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9월 하순부터 10월 상순까지 진행된 집중적인 무력시위에 이어 일단 숨고르기에 들어간 것으로 볼 수 있다.
 
차분한 노동당 창건 77주년의 이면에는 북한이 처한 어려운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이미 지난해 4월 세포비서대회에서 김 위원장은 ‘더욱 간고한 고난의 행군’을 결심했다고 선언한 바 있다. 고난의 행군은 1990년대 중후반기의 역경을 이겨냈다는 북한 당국의 정치적 표어일 뿐 대부분의 북한 주민은 당시를 배급체계의 마비로 초래된 ‘미공급기’로 기억하고 있다. 김 위원장이 배급의 중단으로 수십만 명 이상의 주민이 아사한 ‘미공급기’의 아픈 기억을 다시 각오할 만큼 상황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다. 김 위원장은 2022년 9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핵무력 확보 과정이 ‘생사판가리의 결사전’이었다며, 주민과 아이들이 굶주리고 모든 가정에 ‘엄청난 생활난’이 초래되었다고 자인했다. 김 위원장은 북한 주민들에게 ‘고통의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며 대북제재로 인한 어려움도 실토했다. 10월 9일 노동신문은 그 어느 때보다 나라 사정이 어렵고 "역사의 모진 고난과 시련이 중첩"되고 있다며 ”준엄한 시기에 인민들이 생활상 어려움을 당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라고 주민들에게 인내를 당부했다.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이 9월에 발표한 '최근 5년의 북한경제 및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5년(2017∼2021년)간 대북 제재와 코로나19로 인한 국경봉쇄 등으로 북한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11.4% 감소했다. 2020년 이후 시장화를 견인해 온 경공업과 민간서비스업이 악화되었으며, 대외무역은 2021년 7억1천만 달러로 실질 기준 1955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경공업, 민간서비스업, 그리고 대외무역의 악화는 장마당 경제를 위축시켜 주민소득 감소와 구매력 약화로 이어지는 악순환 고리를 형성했다. 
 
북한의 식량난도 악화일로에 있다. 지난해 겨울과 봄 가뭄으로 밀보리 농사는 흉작이었으며, 감자 수확도 대폭 감소했다. 옥수수 산출량도 평년 수준을 크게 밑돌았으며, 수해로 쌀 생산도 비관적이다. 이미 북한은 올해 상반기부터 인도, 베트남, 캐나다 등에 대북 식량지원을 타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정은 체제에서는 ‘2호 창고’로 불리는 전략비축미를 수시로 풀어 식량수급의 안정을 꾀했지만 이마저도 한계에 봉착한 것으로 보인다. 장기간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쌀과 옥수수 가격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김정은 체제가 북한 경제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2021년 1월 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채택한 자력갱생노선과 새로운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의 관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자력갱생노선은 이미 실패가 입증된 시대착오적 노선이며, 대북제재 국면에서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의 관철도 가능하지 않다. 핵무기는 유지 관리에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북한의 어려운 재정을 압박할 것이며, 결과적으로 경제 분야의 투자는 더 위축될 것이다. 공세적 무력시위에 이은 차분한 노동당 창건 77주년의 이면에 북한 경제의 어두운 미래와 주민들의 고단함이 묻어난다.
 
시급히 찾아야 할 한반도 평화의 입구
 
2017년 북한의 집중적인 핵·미사일 도발로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달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화염과 분노’라는 표현으로 북한에 경고했고, 북·미 최고지도자들은 서로 자신의 책상 위 ‘핵 단추’가 더 크다고 다투는 일도 벌어졌다. 당시 미국은 3개의 항모전단을 한반도 인근 해역에 전개시켜 사실상 ‘전시상황’에 가깝게 북한을 압박했다. 이제 2022년 10월 한반도는 다시 위기에 직면해 있으며, 그 고비용 구조는 전적으로 우리에게 돌아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 시절인 2016년 2월 2일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지역 국가들의 문제일 뿐이라며, “좋은 시간이 되기를, 여러분”이라고 냉소한 바 있다. 그동안 바이든 정부에서 북한 문제는 외교 안보 현안의 우선순위에 들어 있었다고 보기 어려우며, 결국 오늘에 이르렀다. 국제정치의 현실이다. 한반도 위기에 우리는 가까이 있고, 미국은 멀리 있다.
 
북한은 전술핵을 동원한 공세적 무력시위를 지속하고 있으며, 한·미 역시 강경한 군사적 대응을 이어가고 있다. 한·미와 북한 간 군사적 차원의 맞받아치기(tit for tat)의 위험한 국면이 치킨게임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한·미와 북한 양측 간 대규모 군사훈련이 중첩되면서 우발적 충돌 가능성까지 우려되고 있다. 
 
2022년 한반도 긴장은 북한의 지속적인 핵·미사일 개발과 한·미의 강경 대응이 상호 충돌한 결과다. 최근의 군사적 긴장은 9월 한·미 연합훈련 재개와 이에 대한 북한의 대응 양상을 띠고 있다. 한·미와 북한은 서로 자신들의 군사적 행보가 상대방의 도발에 대한 대응이라는 점만을 강조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한·미와 북한 간 대치가 자존심 게임 양상으로 진행되면서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윤석열 정부는 강경한 군사적 대응 이외의 외교적 해법의 단초조차 찾지 못하고 있으며, 바이든 정부는 북한에게 조건 없는 대화제의만 공허하게 반복하고 있다.
 
북한은 허약한 기초체력으로 장기간의 군사적 대치국면이 부담이며, 한·미 역시 우크라이나 사태와 양안 갈등, 그리고 불확실한 세계경제 국면에서 안보 고비용 구조는 바람직하지 않다. 이제 냉정을 되찾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 입구의 마련을 서둘러야 할 때다. 2017년 극도로 고조된 한반도의 긴장이 2018년 극적인 대화국면으로 전환했다는 점을 상기할 일이다.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7주년 기념일에 김정은 위원장이 민생행보에 나섰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미와 북한은 서로를 자극하는 군사적 행위를 즉각 중단하고 가능한 모든 공식 및 비공식 채널을 가동해 대화국면으로 전환해야 한다. 북한의 수용 여부를 막론하고 고위급 대북특사 파견을 검토하고, 남북정상회담 제의도 마다할 일이 아니다. 제의 자체만으로도 긴장국면을 완화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과의 긴밀한 전략적 소통도 한 방법이다. 의미 없는 기싸움으로 한반도의 평화는 오지 않으며, 자칫 위험한 군사적 충돌마저 배제하기 어렵다. 평화를 위한 양보와 선 조치는 얼마든지 용인될 수 있으며, 체면을 구기는 일이 아니다. 이제 ‘담대한 대화의 손’을 북한에 내밀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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