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한미의 셈법, 제주평화연구원>

(이성우 제주평화연구원 분쟁해결연구부장)

 북한의 군사적 도발이 김정은 정권 들어서 가속화하고 있다. 2017년 7월 28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인 화성-14형의 두 번째 발사실험 이후 8월 29일, 평양 순안공항에서 화성-12형 ICBM급 미사일 시험발사로 미사일이 최고고도 550km로 2700km를 비행하여 일본 열도를 넘어 태평양에 낙하하였다. 그리고 9월 3일, 북한은 ‘중대발표’를 통해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서 “대륙간탄도로켓(ICBM) 장착용 수소탄 시험에서 완전 성공했다”고 발표하였다. 한반도에 군사적 충돌의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김일성 집권시기에는 미국의 핵에 맞설 수 있는 자위권으로서의 핵 개발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군사적 대응을 위한 목적에서 원자력 개발에 착수했다. 김정일 정권에서는 핵 개발에 대한 의지는 있었지만 대외적으로는 한반도 비핵화를 지지하는 입장을 유지하면서 미국의 위협에 대응하는 자위적 차원에서 핵무기를 개발하는 신중한 행보를 택했다. 김정은 시기에 들어와서는 핵무기 개발에 대한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 2012년 5월, 새로운 헌법을 발표하면서 전문에 ‘핵보유국’을 선언하고 집권 후 4차에 걸친 핵실험을 단행하고 미국을 직접 위협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개발하고 있다.

  김정은 정권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에 대한 최근의 행보에 따라서 한반도 비핵화의 게임이 완전히 변화되었다는 주장은, 김일성 그리고 대부분은 김정일 집권 시기에 논의되었던 한반도 비핵화가 협력이 가능한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었다면 김정은 시대에는 공포의 균형을 의미하는 치킨게임으로 변화되었음을 의미한다. 김정일 시기까지 비핵화는 규범의 작동과 협력을 통한 평화의 가능성이 존재했던 반면 김정은 시기부터는 규범과 협력을 통한 평화의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제재와 압박만이 유효한 수단으로 나타나, 그 때문에 군사적 충돌이 임박한 것처럼 판단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반도의 비핵화는 한국에게 가장 긴박한 외교적 목표이며 북한도,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미군철수와 북미수교와 같은 복잡한 조건이 따르지만, 한반도 비핵화를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이야기한다. 나아가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와 같은 6자회담 관련국들도 비핵화에 도달하는 방법에 있어서 이견은 있지만 한반도 비핵화 자체에는 동의하고 있다. 문제는 한반도 비핵화를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에서 한국과 미국이 안고 있는 이견도 상당하다는 것이며, 이에 대한 분석적 이해가 필요하다.

  합리적 선택의 심리적 효과를 설명하는 전망이론에 따르면, 정책결정자가 이익을 볼 수 있는 상황에서는 이익을 보장받지 못하는 불확실한 많은 이익보다 작지만 보장받는 확실한 이익을 선호한다. 이에 반해서 손실을 볼 수 있는 상황에서는 작지만 확실히 정해진 손실을 감수하기 보다는 불확실하지만 손실을 줄일 수 있는 선택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전망이론을 한반도 비핵화에 적용시켜 본다면, 북한의 핵개발에 따른 군사적 충돌의 우려에 있어서도 미국은 이익의 영역에, 한국은 손실의 영역에 있다.

  미국은 한반도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고, 중국을 성공적으로 봉쇄하고 있고, 사드를 배치하여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이 전한 트럼프 대통령의 “전쟁이 나더라도 거기서 나는 것이다. 수천 명이 죽더라도 거기서 죽는 것이지 여기서 죽는 것이 아니다”는 표현은 바로 미국은 이익의 영역에 있다는 것이다. 이익의 영역에 있는 미국으로서는 군사적 대응의 강화, 경제제재, 외교적 압박과 같이 미국이 추가적으로 부담해야할 비용이 없는 정책을 선호한다.

  이에 반해서 한국은 한반도에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는 상황은 어떤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방지해야하는 절체절명의 과제인데, 한반도에서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해 대북 군사적 수단을 사용하는 논리적 비합리는 대안에 포함시킬 수 없다. 그리고 한반도의 군사적 충돌 상황에 한국은 모든 것을 잃을 수밖에 없는 손실의 영역에 있다. 손실의 영역에서는 확실한 손실을 떠안기 보다는 이를 줄일 수 있는 다양한 조치를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한반도의 군사적 충돌을 회피하기 위해 우리가 적극적으로 모색할 수 있는 대안은 “한반도 평화체제”에서 찾을 수 있다. 북한은 체제의 생존을 위해 핵을 개발하고 미국과 국교정상화 그리고 휴전협정의 평화조약으로 변경을 요구하고 있다. 단계적으로 미국과 조율이 필요하겠지만 우리 정부가 적극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것은 미군철수를 통한 한반도 비핵화 추진 그리고 북미국교정상화와 평화협정의 체결을 적극 고려할 수 있다. 이와 동시에 미군철수에 따른 안보딜레마를 해소하기 위한 안전장치로 미국의 전술핵무기 도입 또는 독자적 핵무기 보유와 같은 적극적인 대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역대 정부가 취해왔던 기존의 대북 정책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일종의 금기에 갇혀있었다. 보수는 미군철수를 주장하면 빨갱이로 몰았고, 진보는 핵보유를 주장하면 전쟁광으로 몰아갔다. 그러다 보니 대북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 미군철수와 핵보유는 입 밖에 낼 수 없는 금기어가 되었고, 같은 맥락에서 전시작전권 조기 전환, 전술핵 도입, 킬 체인 완성과 같은 주장도 과격한 것으로 치부되었다. 우리의 외교정책의 목표가 한반도의 궁극적인 평화정착이라면, 이념에 따라 정책수단을 배제하거나 선택할 것이 아니라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정책 목표를 고려하여 가장 합리적 대안을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한반도의 유사상황에 대한 미국과 한국의 셈법이 다른 것은 이익과 손실을 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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