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통일걷기 2021’ (사진=박현석)
DMZ 통일걷기 2021’ (사진=박현석)

<2021년 6월 15일 ~ 6월 27일(12박 13일) ‘DMZ 통일걷기 2021’기행>

고성에서 파주까지 DMZ 평화의 길을 걸으며 통일을 묻다                                

통일교육협의회 상임의장  (재)나이스피플 박현석 대표  

지난 5, 통일부 국립통일교육원에서 2021‘615 남북공동선언 기념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과 평화통일 대중운동 활성화를 위한 DMZ 평화의 길 통일걷기행사에 필자가 상임의장을 맡고 있는 75개 통교협 회원단체들의 참여를 요청해 왔다. 행사 목적은 두 가지인데 접경지역(DMZ) 직접 체험으로 통일의지를 함양, 한반도 평화와 통일시대를 주도할 통일 일꾼양성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과 평화·통일 대중운동 활성화였다.

경로는 처음에는 1314일로 강화가 포함되어 편성하였지만, 일정상 어려움이 있어 1213일로 강화가 제외된 것과 육로는 아니지만, 백령도가 빠진 것이 많이 아쉽다. 숙소는 인근 폐교 및 마을회관, 캠핑장 등 다양하게 활용, 11(텐트)코로나19’지침을 준수하며 진행했다. 동서횡단노선 참가자는 1213일 완주 일정과 예외적으로 67일 및 34일 단위로 구분하여 진행하였다. 주요 프로그램은 참여소통형 교육 프로그램과 평화·통일운동의 대중적 확산에 기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버스킹 공연 현장 견학 특강 다큐멘터리 상영 등 참가자 간 소통 및 친목 강화 프로그램으로 편성 진행하였다.

이 길은 이인영 통일부장관이 2017년부터 민통선을 직접 걸으며 만든 길이라고 한다. 이 길을 걸었던 분들이 200명도 안된다고 했다. 그리고 이 장관의 <민통선을 걷다> 책에는통일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가 통일로 가야 합니다.‘민통선민족통일선이 되는 그날까지, 더 많은 통일걷기를 기대합니다라는 글귀가 통일걷기의 목적이다. 그런데 폐회식까지 5일간 함께 걸으며 느꼈던 놀라움은 관료적인 모습이 없는 소박하고 서민적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남북경색으로 닫힌 문을 열려고 애쓰는 장관의 모습이 안스럽다. 장관 재임시간에 꼭 남북의 대화 물꼬와 땅길, 바닷길, 하늘길를 열어 통일 마중물 역할을 잘 감당하길 기대해 본다.

필자는 지난 615일부터 27일까지 1213일 일정으로 통일의 길 걷기행사에 참여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다 짧지 않은 기간이다. 그러나 21년 동안 통일교육사업과 남북교류 및 협력사업을 수행하면서 북한의 여러 지역과 북러 접경지역은 수 십 차례에 다녀왔지만, 여지껏 휴전선 155마일은 제대로 다녀온 적이 없다. 마침 이 일정이 동서횡단 DMZ 길을 보고, 걷고, 알 수 있는 가장 적절한 기회였다. 또한 함께 선정된 아내와 함께, 1213일의 여정을 부부 최초 완주하는 기쁨과 보람도 있었다.

13일 동안 만난 비무장지대와 민통선, 능선을 넘고 숲을 지나 강을 건너며 펼쳐졌던 풍경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 바로 우리의 친구와 이웃이 살고 있다. 그러나 곳곳에 남아있는 분단의 상처와 군사적 대치의 모습들, 또한 남과 북은 아직도 뒷걸음 쳐져있고, 고착화의 길을 걷고 있는 지금 우리 시대의 현주소를 보고 왔다. 이제 615~27(1213) 동안 보고, 듣고, 만져보고, 향기와 냄새도 맡아보고, 가슴으로 느끼고, 머리에 새겼던 13일의 ‘DMZ 평화의길 통일걷기 2021’ 하루하루의 감동과 함께 걸으며 나누었던 路邊情談(노변정담)을 글로 전하고자 한다.

어린 왕자를 쓴 생텍쥐페리는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곳을 함께 바라보는 것이라고 했다. 길을 걸으면서 34, 67, 1213일 동안 완주했던 제1회 통일걷기 동지들과 수고한 통일부와 국립통일교육원, 국방부와 합참, 현대아산 스텝들과 마주치며 응원하던 주민들, 전방에서 수고하는 국군장병들에게 우리의 구호인 화이통을 크게 외칩니다.

DMZ 통일걷기 2021’(사진=박현석)
DMZ 통일걷기 2021’(사진=박현석)

<615() 1일차>

출발(버스) : 시청역 집결고성 통일전망대 도착도착지(도보) : 통일전망대제진역,동해선도로남북출입사무소(점심)배봉리마을 회관화곡리경로당산북리마을회관송정마을 오토캠핑장(고성)

통일걷기 시작은 이번 1213일 완주팀에 아내와 함께 선정된 이 후, 준비물을 챙기면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출발 전날 밤은 어쩌면 학창시절 수행 여행가는 것 처럼 설레이는 마음과 기대감으로 잠을 설쳤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짐을 챙기고 첫 출발 행선지인 고성가는 버스를 타기위해 집결 장소인 시청역 3번 출구 앞으로 갔다. 이른 아침이지만 7시가 되어가니 반가운 얼굴들이 커다란 짐가방을 메거나 들고서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패찰을 한 스태프들이 참가자들을 하나 하나코로나19’검사 음성결과 확인 및 열체크 후, 각 조별로 준비된 버스에 탑승시킨다.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4시간이 걸려 도착했다. 통일전망대에 도착하니 서울과 달리 비가 우리를 반긴다. 발대식은 비로인해 통일전망대 실내에서 진행하였고, 모자와 조끼, 판초이를 입고 통일전망대에서 제진역을 향해 발길을 떼면서 통일걷기가 시작되었다. 민통선내 전 지역은 우리가 걸을 수 없다. 오로지 자가용이나 버스를 이용해야만 하는 이 어려운 구간을 내 두발로 걷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커다란 진전이며 감사였다.

첫 한 시간여 걷고나서 제진역앞 광장에 도착하여 점심식사를 하고, 오후 2시 경에 출발하여 민통선에서 벗어난 길을 걷는다. 제진역은 동해에서 북쪽 금강산으로 가는 출입국사무소가 있는 곳이자, 동쪽의 출발점이다. 지금은 일반인이 관람과 출입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쉬었다. 또한 고성의 한적한 지방도로 길을 걷는 동안 사람도 없고 주변 상가도 텅텅 비워있고 썰렁하다. 결국 금강산관광 폐쇄로 남북한의 냉냉함이 작금의 한반도 정서를 대변하고 전해지는 것을 첫날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첫날 도보는 배봉리마을회관화곡리 경로당산북리 마을회관을 거쳐 첫 숙박지인 송정오토캠핑장까지 20km를 걸어서 마무리했다.

DMZ 통일걷기 2021’ (사진=박현석)
DMZ 통일걷기 2021’ (사진=박현석)

<6월 16일(수) 2일차>
여정 : 송정오토캠핑장➝송강리마을회관➝송강저수지➝건봉사(점심)➝가마골길      ➝광산2리 경로당➝소똥령농촌체험마을 야영장 

어제부터 내리던 비가 새벽이 되니 더 세차게 내린다. 하루종일 내릴 기세다. 옆텐트에서 코고는 소리와 뒤척이는 소리에 잠을 설치다가, 새벽에 내리는 빗소리와 새벽 닭 울음소리에 일어났다. 6시가 되니 기상을 알리는 나팔소리 대신 경쾌한 음악이 기상 시간을 알린다. 오늘은 고성에서 인제로 넘어 송강저수지와 건봉사를 거쳐 진부령 옆 소똥령‘소똥령’이라는 이름은 옛날 마을 주민들이 원통 장날에 소를 팔기 위해 능선을 넘다가 쉬어가는 주막에서 소가 똥을 하도 많이 누어 소똥령이라 붙여졌다고 합니다. 소똥령길은 한양을 가기 위한 길이었고, 산세가 험해 산적들이 자주 출몰했던 곳이라고 합니다. 마을까지 가는 17.9km 길이다. 평화로운 송강리 마을길을 걷는 길에 들판에 황새떼를 보았다. 모두가 흰색인 줄 알았는데, 한 마리가 갈색이어서 신기했다. 또한 냇가에서 체렵하는 마을 주민도 보았다.

송강저수지에서 잠깐 쉬고, 우리나라 4대 사찰 중 하나이고 고성 8경에 속한 1,500년 된 미시령 고갯길에 있는 건봉사에 도착했다. 마침 해설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건봉산을 금강산의 시작이라고 하였고,‘건봉령과 이어진 고진동계곡에 들어서면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는 苦盡甘來(고진감래)의 사자성어 유래도 들었다. 사명대사가 통도사에서 일본에게 빼앗겼던 부처님의 진신치아사리를 찾아와 모신 곳, 건봉사에는 6.25전쟁 때 전각들이 모두 불타 없어 졌어도, 홀로 화마를 피해 유일하게 남은‘불이문’만 건봉사 입구에 남아있다. 또한 기둥에는 6.25전쟁 총탄 자국이 선명하다. 더구나 입구 앞에는 그 때의 아픔을 잊고 묵묵히 견뎌온‘300년 된 소나무’가 우뚝 서있다.

건봉사에서 점심식사 후, 가마산로에서 산길 지름길로 접어든다. 넘어진 나무들이 그대로 있어 그것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선두에서 무작정 걷는 것보다 후미에서 찬찬히 따라가며 즐겁게 걷기로 했다. 임도에 들어서서 앵두, 버찌, 산딸기, 오디, 보리수 열매를 따먹으며 여유롭게 걸으면서 즐겼다. 자연은 즐길 수 있는 놀이이자 즐거움이다. 빨리 가봐야 경험하지 못할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광산 2리를 거쳐 소똥령길 숙소로 가는 길에 곡선으로 심어놓은 모를 보았다. 모는 보통직선으로 심지만, 농토지형에 맞게 곡선으로 심은 논밭 벌판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DMZ 통일걷기 2021’ (사진=박현석)
DMZ 통일걷기 2021’ (사진=박현석)

<6월 17일(목) 3일차>

여정:소똥령농촌체험마을➝백두대간트레일➝홀2리안심회관➝진부령미술관(점심)   ➝용대3리마을회관➝DMZ생명평화동산 

오늘은 고성에서 인제로 넘어가는 구간으로 24km이다. 진부령옆 소똥령을 넘는 코스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숲이 있는 임도길이다. 비는 그쳤고 멀리 구름이 내려앉은 산은 신선이 나올 것처럼 신기하면서 아름답다. 여기 임도길 중간에 보이는 이정표를 보니 백두대간 트레일 소개가 나오고, 임도길을 공유해서 통일의 길을 걷는다. 오전에 12km 걸어 옛 알프스리조트가 있는 홀 2리 마을에 다다랐다. 잠깐 쉬고 용대리에 있는 진부령미술관에 쪽으로 걷는데, 내게 문제가 생겼다. 출발 첫날부터 그동안 신지 않았던 새 트레킹화를 신고 나온 게 말썽이다. 발 뒷꿈치에 물집이 생겼다. 물집이 심해서 완주 못하면 안되는데, 걱정이 된다. 그에 반해 아내는 밝은 미소로 조원들과 어울리며 잘 걷는다. 인제 용대리에 도착했다. 항상 동해안을 갈 때마다 가고 싶었던 용대리 황태식당에서 산채비비밥로 점심식사를 맛있게 했다.

3일 만에 인제에 다다른 샘이다. 여유있게 자연과 풍경을 보며 걸으면 좋을텐데 걷기에 너무 바쁘다. 오전에 12km라니, 임도숲길의 여유가 아쉽다. 저 멀리 향로봉만 보이고 금강산의 스카이라인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오전에 오늘 일정에 해당하는 코스를 완료한 탓에 오후에는 내일 양구로 향하는 코스의 일부를 미리 걷는다고 한다. 대신 4일차 일정 코스는 좀 짧아질 것 같다. 오늘의 숙소는 실내라고 한다. 유일한 실내장소라고 하니,“푹 쉬라”는 스태프의 말에 너무나 기뻤다.

앞만 보고 무심코 걷는 길, 도로 왼편에는 모두 철책으로 둘러쌓여 있었다. 그냥 낙석 방지용 철책인줄 알았다, 자세히 보니 민간인 통제 구역선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민통선 경계와 남방한계선이 아주 가까이 있음에 놀라웠다. 가는 길마다 길을  그냥 지나치는 것이 아쉽다. 길을 잘아는 분들이 길의 사연과 역사, 그리고 배경을알려주며 걸으면, 먼 길을 힘들지 않고 즐겁고 재밌게 걸을 수 있을 텐데.....
길을 걸으며 나누는 교육콘텐츠와 테마 해설이 필요하다는 것을 많이 느꼈다.

저녁에 귀향해서 산림농업에 빠져 2번이나 뇌경색으로 쓰러져, 다리가 마비되어 걷지만 인생을 바쳐서 만든‘인제 천리길’다큐멘터리를 보고, 또한 직접 사연을 들으니 감동이다. 장애인으로‘無에서 有를 만든 도전 정신’에 박수를 보낸다.

DMZ 통일걷기 2021’ (사진=박현석)
DMZ 통일걷기 2021’ (사진=박현석)

<618() 4일차>

여정 : DMZ생명평화동산평화빌리지다릿골시험장먼멧재길DMZ자생식물원청춘양구체험캠프

오전에 비가 온다는 일기 예보로 판초이와 우산(양산)과 별도 1개 더 준비한 워킹 운동화를 신었다. 숙소는코로나19’상황 때문에 실내 숙소에서 잘 수 없어 1인용 텐트에서 각자 생활한다.“불편하기도 하지만 어쩌랴, 이왕 여기까지 왔으면 웃으면서 행복하게 즐기자. 이 또한 즐거움으로 이겨낼거고, 지나가리라...”

4일차 일정은 인제에서 양구 해안리 펀치볼까지 가는 29km 길이다. 어제 걸은 약 5km정도 구간을 제외한 나머지 길을 걷는다고 한다. 게다가 탐방 안내요원이 오전에는 산길과 고개를 넘어야하고, 가파르다고 반바지 보다는 긴바지를 권유한다. 출발하기 전에 체조로 몸을 충분히 푸는데도 불구하고 오르막길을 걸으면 근육이 뭉쳐서 인지, 양쪽 종아리 옆 근육이 댕겨 불편하고 아프다. 처음에는 탈수가 되어 그런가 해서 식염포도당을 먹고 출발했으나, 항상 이같은 증상이 계속되고 있다. 그래도 쳐질 수 없으니 열심히 걸어야 했다. 오르막길 3km구간은 인제군 권역의 평화누리길과 백두대간 트레일이 겹쳐져 있는 곳이다. 포장길이 제법 가파랐으나 걷고 또 걸으니 정상에 다다랐다.

그런데도 몇 몇 대원들은 지친 후미 대원들의 배려함은 없고, 탐방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치고 나간다. 이곳 먼멧제 고갯마루에 양구군과 인제군 경계 표시선이 있다. <통일걷기 2021>3번째 행적구역인 양구군에 접어 들었다. 올라갈때는 포장길이지만 내리막은 비포장인데다 숲이 오래되어 천연림 숲속을 걷는 길이다. 다른 곳보다 가장 많은 숲속 길을 걷을 수 있어서 기쁨과 행복감을 심어준 길이다. 두고온 사무실과 집 생각 등으로 잡생각을 잊어버리고 숲이 주는 공기비타민피톤치드’, 즉 힐링을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길을 걷는다는 그 자체가 신이 난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강원 평화누리길에 우리가 붙여 놓은평화의길안내 리본 옆에는 지뢰(mine)라는 표지가 있다.‘전쟁과 평화부조화 속의 조화를 보는 것 같다. 그렇다, 우리 조국 한반도의부조화 속의 조화를 위해 통일평화의 염원을 담고 우리는 지친 몸을 이끌고 어려운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고개를 내려오니 인제에서 양구군 해안리에 다다랐고. 조인묵 양구군수님 일행이 우리 탐방팀을 반갑게 맞이해 준다. 오늘 점심식사는 비상식량이다. 자리 앉으니, 이인영 통일부장관이 우리와 함께 걷기 위해 참석하였다. 점심식사 후, 34일 동안 유투버로 수고한 6조의 멤버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섭섭하지만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하면서 헤어졌다.

오후 걷기는 펀치볼 마을을 벗어나기 위해 도로를 따라 터널을 통과해야 한다. 안전을 위해 터널구간은 버스로 이동하고, 내리막길을 따라 4일차 숙소인청춘양구체험캠프까지 걷는 일정이다. 마침 안내(호송)하러 온 경찰이 도로에서 약간 돌아가는 저수지 길을 권한다. 그 길이 숙소로 가는 길인 것 같다. 한참 분지가 내려 보이는 경치 좋은 곳을 오르니, 선두에 걷던 대원들이 모두 큼직한 부사 사과와 사과즙을 가지고 나와 맛있게 먹고 있다. 마침 과수원 농부 아저씨의통일걷기에 노고가 많습니다인심 좋은 목소리가 들려 왔다. 저장고에서 보관해온 큼직한 사과와 사과즙을 흔쾌히 내놓으신 참 고마우신 분이다. 양구 과수원 아저씨의 시원한 인심 덕분에 힘이 난다. 또한 보람이고 기쁨이다. 터널을 통과하기 전, 뒤돌아본 양구 펀치볼의 모습을 기억이 새롭다. 선명하게 푸른 하늘과 그 아래 둘러쌓인 산 능선과 푸른 들판의 모습이 기억에 또렷하게 남는다. 또한 亥安(해안)면에 들어오니 제비와 제비집이 많이 있다. 한집 처마밑에 7~8개의 제비집이 있고, 머리를 내밀고 먹이를 달라고 보채는 새끼들도 보인다.

오늘의 숙소인청춘양구체험캠프에 도착하자 마자 갑자기 소동이 일어났다. 땀 덤벅이 된 몸을 시원한 물로 새로운 기분을 주는 샤워시설이 그것도 외부에 2개 뿐이란다. 무더위에 땀으로 범벅되어 있어 그냥 강물이라도 뛰어들고 심정인데, 차례를 기다린다는 것이 무척 짜증스럽다. 더구나 비가 와서 설치된 텐트는 개미가 많은 잔디밭위에 설치되어 주최측과 일부 대원들의 항의로 운동장 농구코트 위로 이동하여 다시 텐트를 쳤다. 오랜만에 햇빛을 보게 되었다. 쨍한 햇빛이 반갑다. 내일부터는 뜨거운 태양아래 걸을 것이라 본다.

DMZ 통일걷기 2021’ (사진=박현석)
DMZ 통일걷기 2021’ (사진=박현석)

<6월 19일(토) 5일차>
여정 : 청춘양구농촌체험캠프➝비득안내소➝두타연➝이목정안내소(점심) ➝두타연갤러리➝방산초등학교➝오미리체험마을

 그동안 4일 동안의 날씨는 항상 비가 동반되었다면, 5일 째 처음으로 아침부터 화창하다. 요즘 며칠 째, 걷기 시작하기 전에 다리가 뻐근하다. 식염포도당 알약을 멀고 걷다보면 오후에는 풀릴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의 코스는 양구군 평화누리길 코스인 두타연 구간과 소지섭길이 섞여있는 코스를 걷는다. 오늘이 전체 일정중 가장 긴 코스로 숙소에서 출발하여 비득안내소와 이목정안내소를 거쳐 소지섭길 일부를 거쳐 총 32km 거리이다. 이 거리에서 비득안내소와 이목정안내소까지는 민통선 지역이지만, 비교적 개방되어 있는 곳이라고 한다.

  두타연 구간은 역시나 아름답다. 계곡의 물소리가 큼직하게 들렸고,‘금강산 가는길’이정표가 우뚝 서있다. 지금은‘그리운 금강산’에서‘다시 가고 싶은 금강산’이 되어 버렸다. 금강산 관광은 2008년 7월 11일, 해안가 산책 중 북한 초소병의 총에 맞아 사망한 박왕자씨 사건으로 13년 째 중단되었다. 지금도 금강산은 갈 수 없는 길이 되어 버렸고, 더욱 애틋하게 느껴진다. 아직도 이곳에서 상봉을 했고, 또 수년 동안 눈물로 기다리며 상봉을 기대했던 이산가족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워진다. 이 길따라 금강산을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 길을 걷는 내내 떠오른 노래가 있다.‘홀로 아리랑’이다.
“금강산 맑은 물은 동해로 흐르고/ 설악산 맑은 물도 동해 가는데
우리네 마음들은 어디로 가는가/ 언제쯤 우리는 하나가 될까
아리랑 아리랑 홀로아리랑/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 보자
가다가 힘들면 쉬어 가더라도/손잡고 가보자 같이 가보자 ”
  부르다 보니 같이 걷던 조원들이 모두 다 따라 부른다. 두타연길 이곳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노래이다. 가슴이 뭉클해진다.

오랜만에 파란하늘과 흰구름과 함께 강가로 들어서니‘강원평화누리길’이다. 주말이라 가족들과 함께 물놀이하고 물고기 잡는 모습이 어린시절 동심을 깨운다. 강변을 걷는 길도 좋고 도로 중간에 철푸덕 앉아서 쉬어가는 것도 재밌다. 언제 이러한 행동을 해보랴. 오미리마을의 밤은 유난희 별이 빛나고 개구리가 많이 운다. 청명한 공기와 빛나는 별 아래서 벌레와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으며 꿈나라로 떠난다.

DMZ 통일걷기 2021’ (사진=박현석)
DMZ 통일걷기 2021’ (사진=박현석)

<6월 20일(일) 6일차>

여정:오미리체험마을➝종점상회➝오천터널➝평화쉼터➝평화의댐(점심)➝안동철교(차량이동)➝토고미자연학교

아침에 일어나니 서늘하고 춥다. 푸른 하늘과 맑은 공기가 피로를 빨리 회복시키는지 기상시간보다 일찍 일어난다. 이제 양구를 떠나 내가 군대생활을 했던 화천으로 접어든다. 오늘 코스는 숙소에서 출발하여 평화의 댐을 거쳐 평화의댐 뒤편 민통선안까지 걸어서 안동철교까지 20여km 걷는 구간이다, 걷는 길에 200년 된 소나무를 만났다. 묵묵히 고난의 세월을 이겨내며 잘 자란 것 같다. 오늘 구간은 갓길도 부족하고 오르막이 많고, 1,296m의 터널도 있어 위험해서 안전을 요구하는 구간이다. 다행이도 경찰차를 비롯한 콘보이 차량이 있어 안전하게 다닐 수 있었다. 만약 혼자 또는 몇 명이서 온다면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 이 길을 상시적으로 다닐 수 있는 통일의 길이 되려면 고민해야 할 구간이다.

평화의 댐 도착해서 햇빛을 피할 그늘이 전혀 없는 곳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거대한 댐, 그 가운데 그려진 입체 조형물과 그림 등은 멋지지만, 진작 여행자가 쉴만한  숲 그늘이 없다. 댐 상부에 있는 공원에서 휴식하고, 평화의 댐 뒤편으로 돌아 민통선 안쪽으로 접어들었다. 도로변에 노루 배설물이 가득하고 사냥하고 남긴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금계국’은 인도를 침범해 자연스레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바위 밑에는 거대한 말벌집도 있고, 간간히 개구리와 뱀도 보인다. 이것은 인적이 없는 길임을 느끼게 해준다. 약 5km 걸으니 안동철교가 나타난다. 평화의 댐 공사중에 설치한 임시다리인데,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고 군부대에서 사용하는 듯하다, 군 생활한 칠성부대에서 준비해준 과일 냉화채로 더위를 달래본다. 타들어가던 갈증을 한 방에 털어준다.‘단결! 화천군민들과 군인들에게 감사 경례합니다.’

저녁에는 위문차온 버스킹 힙합공연으로 웃어보고 피로를 풀었다. 어제는 이인영 장관과 함께 걷고 저녁에는 간담회를 가졌다. 2017년부터 민통선을 직접 걸으며 만든 길이라고 한다. 이 길을 걸었던 분들이 200명도 안된다고 했다. 3선 국회의원과 여당 원내대표,‘586’정치인의 대표주자 경력으로 장관이 된 줄 알았다. 그런데 3일간 함께 걸으며 느꼈던 놀라움은 관료적인 모습이 없는 소박하고 서민적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남북경색으로 닫힌 길을 열려고 애쓰는 장관의 모습이 안스럽다. 장관 재임시간에 꼭 남북의 물꼬를 열어 통일마중물 역할을 감당하길 기대해 본다. 

DMZ 통일걷기 2021’(사진=박현석)
DMZ 통일걷기 2021’(사진=박현석)

<621() 7일차>

여정 : 토고미자연학교(차량이동)금성지구전투전적비마현불쉼터(차량이동)승리전망대마현불쉼터요양삼거리암정교용양보 통문쉬리캠핑장

토고미자연학교에는 앵두와 비슷한 보리수 열매와 매실이 탐스럽게 열렸다. 오늘로써 절반의 일정이 지나간다. 걷다보니 어느새 13일 중 7일째이고 지도상으로 봐도 화천을 지나 이정표에 철원을 보니 너무 반가웠다. 집이 있는 서울과 점점 가까워지는 것이 반갑기도 하고, 한편으로 생사를 같이한 대원들과 헤어지는 것이 서운한 마음도 한편엔 든다. 숙소에서 출발하여 고개 넘어가는 길은 버스를 타고 넘어간다. 고갯마루에는 금성지구 전적비가 보인다. 승리전망대는 유엔사에서 불허하여 그 일정을 대신해 민통선지역을 깊숙이 걸었다. 이곳에서 여기저기 민통선 통제선이 있고 감시초소가 있다. 다시금 분단지역에 살고 있고 북쪽 이 땅은 쉽게 다니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점심식사 후, 오후에 간헐적으로 비가 내린다. 걸을 때 비는 보약과 같이 고맙다.용양보와 암정교를 보았다. 용양보는 민통선안 가장 안쪽에 있는 보로 북한이 끊어놓은 물길을 자구책으로 물을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보라고 한다, 지금은 넘실대는 물줄기 위로 한가로이 노니는 가마우지와 두루미만 가득하다. 왜 가마구지는 모두 남쪽을 바라보고 있을까? 인적은 없다. 보를 따라 양옆으로 남방한계선의 철책선이 산을 따라 이어져 있는데, 그마저 내 몸 위에 상처를 낸 듯, 분단된 70여년의 세월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지름길이 있는 강길을 걷지 않고 좁은 차길을 걷고 있다. 바로 옆이 화강이란다.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강이름이라 많이 생소했다. 그러나 화강은 작은 하천에 속하지만 유유히 제 멋을 드러내며 흐르고 있다. 점점 대원들이 30km의 장기 코스를 걷고난 후 힘이 생겼는지, 20km 내외의 코스에서는 기운이 넘친다. 신이나고 즐긴다. 뜨거운 날이어도 비가 세차게 내려도 투덜대기 보다 그저 즐긴다. 비가오니 시원하다. 해가뜨니 하늘이 맑고 예쁘다 등등 그러면서 즐기며 걷는다. 숙소에 도착하기 전에 장대비가 쏟아졌다. 잠시 걸음을 맘추거나, 비를 피할 수도 없었다. 집중적인 소나기를 속수무책으로 비를 맞았다. 그런데도 누구도 불평과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다. 좋은 사람들과 한 가지 목표를 향해 걷는 즐거움이 세상을 보는 것도 여유롭게 볼 수 있는 겸허한 자세를 직접 체험을 통해 배우게 한다.

<6월 22일(화) 8일차>

여정 : 쉬리캠핑장 ➝장수대교➝도창리마을회관➝금강산철교➝철원서울캠핑장

여덟 번째 길은 20km 정도라고 한다. 이제 철원에 들어섰다. 이곳 숙소에서 가까운 곳에 고석정과 도피안사가 있다. 그 곳은 가본 적이 있는 곳이지만, 화강따라 걷는 여기는 처음이다. 오랜만에 하천길, 평화누리길 철원구간의 길을 걷는다. 아팠던 다리도 풀리고, 이제 우리 2조가 선두에 섰다. 계속 만나는 검문소를 보니 민통선안을 걷고 있음을 실감한다. 강원평화누리 2길인 도창검문소에서 이길검문소까지는 일반인이 걸을 수 없는 길이다. 이곳엔 겨울에 오면 두리미뗴와 오리떼를 볼 수가 있다고 한다. 화강 건너편 산자락에 줄처럼 보이는 패인 흔적, 남방한계선이 지나가는 모습이다. 그리고 그 옆에는 웅장하고 거대한 오성산 五聖山(오성산): 북한 평강군 수태리에 있음. 높이가 1,062m이며 산세가 웅대하고 수려하여 ‘소금강’으로도 불렸음. 임진강의 지류인 한탄강이 오성산에서 발원함. 오성산의 본봉, 동서남북 봉우리에서 유래됨. 오성산은 6.25전쟁 당시 백마고지,아이스크림고지,김일성고지,저격능선 등에서 격전지였다.

지금은 북한의 평강군 수태리에 있는 산이다. 그런데 오늘 숙소인 철원서울캠핑장 북쪽에는 그 웅장한 오성산이 바로 앞에 있어 한편으로 놀랐고, 북측에서 우리를 조망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분이 상했다.

금강산 철로에서 점심식사를 하는데, 오늘 점심부터 내일 아침까지 이길부녀회에서 봉사한다고 한다. 역시 같은 재료가 들어가는 음식이래도 음식을 만드시는 분의 손맛과 정성에서 맛이 결정된다고 하는 데, 정말 맛있게 잘 먹었다. 또 오늘 저녁과 내일도 기대가 된다. 하천길이라 풍경도 좋지만 너무 급하게 걷는 통해 바람소리, 새소리, 자연풍경을 즐길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민통선 안을 걸을 때마다 보이는 철책선만큼은 잠깐 보아도 눈에 꾹 박혀버린다. 저 가시처럼 늘어선 철선은 언제나 되어야 없어질까? 없어진다 하더라도 지뢰가 많아 다니기도 어려울텐데... 그러한 곳에 두루미와 왜가리떼만 가득히 보인다.

오늘 숙소인 철원서울캠핑장이 있는 근북면 유곡리는 통일촌이라고 불리운다. 입구에는 금화가 활짝 피어서 우리를 반갑게 맞아 준다. 오후엔 정범구 전의원 및 독일대사의 특강이 있었다. 강의를 마치고 질문 시간에“독일 통일은 동서독인들의 교류와 협력이 베를린장벽을 무너뜨렸다. 작년 북미하노이정상회담 노딜로 인해 대화와 물꼬가 당국과 민간,기업 모두 막혀 있는데, 당과 정부, 청와대가 가지고 있는 출구 전략과 복안이 있는지”를 질문했다. 그러나 원하는 답은 없어서 답답했다.

DMZ 통일걷기 2021’(사진=박현석)
DMZ 통일걷기 2021’(사진=박현석)

<6월 23일(수) 9일차>

여정 : 철원서울캠핑장(차량이동)➝금강산철교(정연철교)➝철원평화전망대➝월정리역➝백마고지전적지(차량이동)➝고대산자연휴양림(총 도보26km)

이제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철원에 들어서니 익숙한 지명이 곳곳에 눈에 들어온다. 오늘도 철원군내 코스이다. 금강산철길마을과 토교저수지를 거쳐, 월정리역 마지막에 백마고지전적비 앞이다. 원래 코스는 금강산철길마을옆 도로변을 걸어야했는데 군부대의 협조를 얻어 북쪽과 맞닿아 있는 토교저수지 위 뚝방길을 걷는 행운을 얻었다. 철원평야의‘오대쌀’특산품을 재배하는데 기여하는 토교저수지는 넓고 너른 호수이고, 북쪽으로는 철책이 보이는 곳이다. 이러한 곳을 우리에게 열어준 군부대와 통일부에 감사할 따름이다. 월정리역에서 백마고지전적비 가는 길은 민통선안 부대의 특별한 배려를 통해 질러가는 길, 즉 지름길을 걸었다. 아무나 볼 수 없고, 아무나 갈 수 없는 그런 길. 이런 길을 걸은 사람이 과연 대한민국에 몇 명이나 있을까? 특히 철원평화전망대에서 부대내 소초를 거쳐 가는 길은 너무나 생생하게 와 닿았다. 그리고 갈라져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그러한 길이다.

 평화전망대에서 남방한계선 군부대를 지나 월정리까지 걷고, 월정리에서 다시 민통선 지역을 걸어서 나왔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직선 포장길이다. 소나기같은 단비를 기다렸지만 오지 않고 더위를 먹기 직전이다. 잠깐 점심시간에 버스킹으로 함께 웃음을 나누었다. 철조망에 붙어 있는 조그만 물봉지를 멧돼지 침입방지용‘호랑이오줌’이라고 했다. 사실 그것은 호랑이오줌 냄새가 나는 화학물질이다. 너무 무리하게 일정을 잡아서 운영하다보니 발바닥이 성하지 못하다. 물집이 또 생겼다. 오른발에 이어 왼발에도 물집이 생겼다 터지지는 않았으나 쉬어야 낫으니 무리하지 말아야 겠다. 오늘은 뜻깊은 길이다. 익숙한 철원의 땅이고 길이지만 낯설게 느껴지는 그런 길을 걸었다. 평화는 가까운 듯 너무나 멀리 있음을 실감한다.

백마고지전적지로 간다. 땡볕에 직선도로라 삼중고이다. 논에 한반도기가 꽃혀 있다. 월정리역과 문화원 사이에 하천길을 걸을 수가 있는데, 아마 선발대가 모르는 것 같다. 버스로 숙소인 고대산휴양림으로 간다. 샤워시설과 화장실이 텐트와 많이 떨어져 불편했다. 샤워시설 때문에 화가 났으나 그냥 웃고 말았다. 저녁 강의는 국방부 유해발국감식단에서 동영상과 채집한 유물 등을 전시하며 강의했다. 꼭 발굴해서 유족들에게 유해를 전하는 기쁨이 되었으면 좋겠다.

DMZ 통일걷기 2021’ (사진=박현석)
DMZ 통일걷기 2021’ (사진=박현석)

<6월 24일(목) 10일차>

여정:고대산자연휴양림(차량이동)➝백마고지전적지➝철원DMZ평화의길➝열쇠전망 대(차량이동)➝옥계3리마을회관➝두루미마을그린빌리지(총 도보24.1km)

드디어 10일째가 되었다. 그리고 강원도 철원에서 경기도 연천군에 들어서는 길이다. 진정 끝이 보인다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익숙한 동네에 들어서다. 백마고지전적비는 예전에 왔었지만, 아래로 돌아 전망대를 거쳐 화살머리 고지를 거쳐 오는 것은 처음이다. 백마고지전적지를 지나서 부터는 남방한계선을 따라 걷는다. 남방한계선 철망을 따라 계속 걷는 것은 처음이다. 철조망에 갖혀 분단된 내 조국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 아침부터 뜨거운 태양아래 쉼없이 걸었고, 녹초가 되었다. 그러나 열쇠전망대 앞 정자에서 내려다본 저 푸른 초원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아파트 하나 없는 넓디넓은 곳에 펼쳐진 녹색의 지대. 너무나 아름답다. 이것만 보아도 충분했다. 발바닥 물집도 충분히 이해 할 수 있다.

화살머리지 부근에서 국방부장관 일행과 스치고 지나갔다. 물론 공무일정으로 바쁘시지만, 꼭 국방부 행사는 아니더라도 무더위속에서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며 걷고 있는 국민들에게 다가서는 모습이 아쉬었다. 잠깐 쉬는 동안에 내가 달달한 커피를 마셔서 인지 내 커피마개 위에서 꼼짝도 안하는 흰나비를 발견했다. 그래 같이 가면 좋겠지만, 나비가 너무 많이 와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걱정이 된다.

통일각에서 비상식량으로 점심을 떼우고 열쇠전망대는 공사중이라 그냥 지나쳤다. 바로 옆 통일각에서 보아서 미련없이 지나간다. 옥계마을을 지나는데 청년회에서는 2002년 3월에 이런 글을 표지판에 남겼다.“떠나온 것은 서로 다르지만 전후 황폐했던 이곳에 함께 모여 성실과 근면함으로 삶의 터전을 일구었다. 어제도 오늘도 일터로 향하는 것은 우리 후손에게 따뜻한 고향을 만들어 주기 위함입니다”이 글귀가 참 바르게 살려고 하는 젊은이들을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흐믓했다. 우리가 만난 민통선 안의 풍경은 평화롭고 고요하지만, 실상은 생사를 오가며 땅을 일구고 때론, 다치고 죽었다는 이야기는 분단의 아픔이다. 철책을 따라 2개의 가파른 언덕을 넘어왔다. 힘들었으나 충분했다. 드디어 연천 평화누리길 코스를 따라 걸어 들어왔다. 익숙한 길, 짧게나마 걸었던 그곳을 다시 찾아온 것이다. 연천군을 지나 파주 임진각에 들어서면 마지막 여정의 문에 들어서는 것이다.

DMZ 통일걷기 2021’ (사진=박현석)
DMZ 통일걷기 2021’ (사진=박현석)

<6월 25일(금) 11일차>

여정:두루미마을 그린빌리지➝선곡리마을회관➝북삼교➝임진교➝산머루농원 캠핑장(총 도보27.2km)

경기평화누리길 일부 코스를 걷는다. 두루미마을에서 군남댐(군남홍수조절지)으로 임진강을 따라 이어지는 숲길 코스, 오랜만에 흙길을 밟아보니 편하다. 오늘도 오전에는 후미에서 따라간다. 오전동안 발목 부근이 뻐근하고 풀리지 않는다. 후미를 담당하는 넘버3와는 많이 친해졌다. 안보면 섭섭해(?)할 정도... 옥녀봉아래 임진강이 보이는 곳으로 걷는다. 숲길 주변에 금계국과 개망초가 흐드러지게 펼쳐져 있다. 걷는 속도가 떨어진다. 당연한데 아름다운 풍경이 보이면 눈에 담기도 하지만 사진으로 남겨야 하니... 뒤에서는 재촉이다. 재촉이라기 보다 호통을 친다. 빨리 안간다고... 그렇게 빨리가서 뭘할까? 그래봐야 5분도 차이나지 않는데...

 “걷다보면 천천히 갈 수도 있죠. 빨리 가면 뭐하나요? 사진도 찍고좀 그래야죠.”“그래도 뒤엣사람 빨리갈 수있게 해야할거 아니요. 이게뭐야.. 그래서 이렇게 소리좀 질러줘야 한다니까...” 길을 대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참으로 다양하다.
강변엔 도라지를 많이 심었다. 멀리 호텔과 같은 야영장이 보인다. 잘 꾸며 놓은 것 같다. 리본을 맨 여성과 군인이 나란히 걷는다. 개망초와 나비, 담장이 접시꽃이 우리를 활짝 웃으며 반긴다.

오전 군남댐이후 강변따라 자전거길이다. 뜨거운 태양아래 덥기만 하다. 오토캠핑장 부근에 있는 임진물새 롬랜드에서 점심식사 후 오후 일정이 시작되었다. 바로 사람 눈높이 나무에 둥지가 있다. 새끼들은 어미인줄 알고 먹이 달라고 보챈다. 참 딱하다. 그러나 옛날과 같이 어려운 시절이 아니어서 새끼들을 사람들이 해코자 하지는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걱정이다. 황제의 혼이 깃든 아미2리 숭의전 마을을 거쳐서 임진적벽길에 접어 드니 주상절리의 진 풍경이 펼쳐진다.

그러다 무리하면 안될 듯 하여...  숙소에 일찍 왔으니 미안하기만 하다. 그런 마음 때문이여서 인지 조원들의 여행가방을 텐트앞에까지 들어다 놔주고, 도착할 때에 차가운 음료를 준비하여 전해주었다. 이렇게라도 미안함을 덜어내려했다.

DMZ 통일걷기 2021’ 이인영 통일부 장관(중앙)(사진=박현석)
DMZ 통일걷기 2021’ 이인영 통일부 장관(중앙)(사진=박현석)

<6월 26일(토) 12일차>

여정 : 산머루농원 캠핑장(차량이동)➝연천호루고루➝고랑포구 역사공원➝승전OP
 ➝전진교(차량이동)➝학교안 풍경캠핑장(총 도보24.5km)

오늘은 끝나기 하루 앞인 열두번째 길이다. 새벽부터 비가 내려서 걱정이다. 운영진에서 부랴부랴 아침식사를 동네 식당으로 바꾼다. 그러나 메뉴는 밥차가 공급하는 물짜장밥이다. 마침 폐회식을 함께 하고 마지막 길을 걷기 위해 이인영 장관이 어젯밤에 또 왔다. 우리가 먹는 식단에 자리가 있어 곤하고, 우리가 준비한 몇가지 밑반찬도 내놓았지만 별로 생각이 없다고 안먹는다. 그러면서“어제도 올 때 짜장면을 먹고 왔는데, 오늘 아침도 짜장밥이라”라며 웃는 모습에 솔직함이 뭍어 났다.  

오늘 일정은 연천군 중에 볼거리 많은 지역을 거쳐간다. 아침 식사 후, 비가 그치고 걷기 좋은 날씨로 바뀌었다. 연천지역 일대, 호로고루와 고랑포구역사공원, 그리고 승전OP전망대를 거쳐 김신조가 청와대급습을 노리고 침투했던 121침투로 지역을 따라 걷는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남방한계선을 따라 참호를 따라 걷는 것이였다. 약 3km 정도의 길은 평생 잊지못할 추억이자 가슴 저리게 만들었던 곳이다. 이 아름다운 풍경을 눈으로만 담아야하고 분단의 모습이 생생하게 다가오는 곳, 게다가 고라니만 편하게 다니는 그런 곳이다.

고랑포역사공원과 경순왕릉 입구를 지난다. 평탄한 그렇게 아쉬움을 뒤로하고 참호길을 벗어나 민통선내 도로를 따라 걷는다. 그리고 중간에 인솔 장교가 바뀐다. 사단 작전구역이 변경되어 인수인계를 하고 인솔장교도 바뀌었다. 민통선을 지키는 부대로 우리는 들어가고 있다. 평탄한 남방한계선 길은 이미 걸었다. 길이 좁고 높낮이가 있는 꼬불꼬불한 길이다. 뒤를 보니 우리 일행이 장사진을 이루며 걷는 모습이 장관이다. 사진을 찍을 수 없어서 아쉽다.‘1.21김신조침투’로 철통같은 경계태세를 자랑한다. 항상 고정된 방어물은 뚫린다. 최선을 다해 지켜야 한다.

그렇게 민통선내 쉼없이 다니는 덤프트럭 옆으로 전진교까지 걸었다. 민통선밖으로 다시 나오는 순간이다. 연천군에서 파주시로 넘어간다. 왠지 낯설지 않았다.  허준묘역에 들러 쉬어갔어야 했는데...할 얘기도 많은데.... 지난 가을과 겨울에 왔었던 그 길 이렇게 이어지는 길이 반갑기만 하다.

DMZ 통일걷기 2021’ (사진=박현석)
DMZ 통일걷기 2021’ (사진=박현석)

<6월 27일(일) 13일차>

여정:학교안 풍경캠핑장(차량이동)➝전진교➝율곡습지공원➝임진각(총 도보10.5km)

 오늘은 12박 13일의 마지막 일정이다. 임진강 철조망을 따라 임진각에 이르는 길로 오늘 코스는 짧다. 오전에 걷고 오후에는 해단식이 있다고 한다. 오전 코스는 율곡습지공원부터 임진각까지 길로 생태탐방로를 걷는다고 한다. 오늘은 온전하게 전체 숲길같은 철책선 옆을 걷는다. 임진강을 내려다보며 하염없이 이어진 철책선과 매서운 철책의 가시가 아프게 다가온다. 쉼없이 빠른 속도로 걷는다. 건너편 풍경이 기차타고 가듯 빠르게 지나쳐 버린다. 익숙한 곳이라 찬찬히 보고 싶었는데... 그런데 걷다보니 철조망주의라는 표지는 주변에 사는 주민들이 조심하라는 표시일 것이다. 그리고 철조망에 예술품을 전시했다. 평화누리길 철조망을 다양한 예술인들에게 제공해서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면 더 좋겠다.

 그렇게 걸어서 초평도가 내려다보이는 쉼터에서 통일과 통합을 염원하는 리본을 달고 사진을 찍고 통일대교 아래를 거쳐 임진각에 들어섰다. 맨 앞에서 일행을 이끌어줬던 넘버 2,3와 뜨거운 포옹을 했다. 이렇게 감격스러울 수가... 그렇게 무수히 걸었으면서 이번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뜨겁게 올라오는 무엇, 감격, 흥분, 성취감 그리고 아쉬움 더 걸었어야 했는데....
임진각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아내가 처음으로 포옹을 한다. 정말 최초로 부부가 12박 13일 완주을 기록한 것이다. 내 자신도 또 묵묵히 인내하며 견디어 준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해 주고 싶다~~

 글을 맺으려 한다. 완주하며 같이 걸어온 동료들에게“고생했고 축하한다”라고
 말했다. 아쉽기도 서운하기도 했던 순간이었다. 통일걷기는 기쁜 행복감을 충족해
 주었다. 오랫동안 기억에, 내 인생의 여정에‘그 때 참 잘 걸었다’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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