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위기감과 한국전쟁 왜곡을 통한 국내 결속
 
미·중 전략경쟁이 한창인 가운데 미 대선이 치러졌다. 이번 미 대선은 향후 미국의 대외전략이 현재의 기조를 이어갈지, 아니면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될지 가늠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무엇보다 한반도 정세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남북한 모두 결과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중국 당국의 한국전쟁 왜곡이 도를 넘고 있다. 중국 당국은 이른바 ‘항미원조전쟁’ 70주년을 맞이하여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 <금강천>을 상영한 데 이어, 미·중 간의 장진호 전투를 그린 <빙설 장진호>를 제작 중이다. 단편드라마 <우리의 전쟁>을 방영했고 연말 상영을 목표로 40부작의 TV드라마 <압록강을 넘어>를 촬영하고 있다.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중국의 영화나 드라마는 자신들이 ‘항미원조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주장에 근거하고 있다. 남북한의 내전(1950.6.25.~)에서는 북한군의 패배로 끝났지만, 그 해 10월 19일 중국인민지원군(이하 중공군)의 참전으로 시작된 항미원조전쟁(~1953.7.27.)에서는 ‘침략자’(미군)를 북·중 국경에서 400km 남쪽으로 몰아내는 전과를 거두었다는 것이다. 
 
중국은 중공군이 한국전쟁에서 첫 승리를 거둔 10월 25일을 항미원조전쟁 기념일로 제정해 매년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참전 70주년 기념연설에서 “어떤 세력도 조국의 신성한 영토를 침범하고 분열시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이런 엄중한 상황이 발생하면 중국 인민은 반드시 정면에서 통렬하게 공격할 것”이라며 강한 어조로 미국에 경고했다. 중국 최고지도자가 한국전쟁 참전 기념식에서 직접 연설한 것은 2000년 장쩌민 이후 20년 만이다. 
 
이와 같은 중국의 한국전쟁 왜곡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올해 들어 유독 심해졌다. 이제 중국은 덩샤오핑과 장쩌민 시대의 도광양회(韜光養晦)와 후진타오 시대의 유소작위(有所作爲)를 넘어, 시진핑 시대에 들어와 주동작위(主動作爲)를 내세우면서 한국전쟁에 대한 왜곡이 극심해진 것이다.
 
이러한 중국의 이념편향적인 역사 해석에는 미·중 전략경쟁 속에서 미국을 견제하고 중국인민들을 결속시키려는 의도가 강하게 깔려있다. 이는 한편으로 미국의 대중 압박에 대한 위기감을 드러냄과 동시에 중국인민들을 결집시켜 정면돌파 하려는 중국지도부의 의도가 반영되어 있다.
 
중국공산당 제19기 5중전회(5中全會)와 ‘쌍순환 경제전략’ 
 
중국지도부의 대미 위기감과 함께 정면돌파 의지가 담긴 정책들이 얼마 전 폐막된 당 제19기 5중전회에서 채택되었다. 이번에 채택된 결의안에서는 현 정세에 대해 ‘백 년 동안 없던 대변화의 국면(百年未有之大變局)’이라고 규정하고, 2035년 전면적 샤오캉(小康) 사회를 실현해 나가는 중간단계로서 1인당 GDP를 중등선진국 수준까지 끌어올리기 위한 제14차 5개년 계획(2021~25)을 채택했다. 
 
이번 5중전회의 핵심사항은 미국의 대중 디커플링(decoupling, 탈동조화) 전략에 맞서 강력한 리더십을 구축하고 과학기술의 자립을 이룩하며 내수활성화를 촉진한다는 것이다. 즉, 5중전회에서 차기 지도자를 지명하던 관례를 깸으로써 시진핑의 3연임을 사실상 확정하고, 미국의 첨단기술 고립화에 대비한 과학기술의 자립을 추진하며, 내수-무역의 쌍순환 경제전략으로 지역가치사슬(RVC) 구축을 가속화하는 등 3가지 사항을 결의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미국이 중국을 글로벌가치사슬(GVC)에서 배제시키려는 움직임에 대한 위기감에서 나온 중국식 정면돌파전인 ‘쌍순환 경제전략’이다. 중국은 거대한 인구에 바탕을 둔 내수를 중심으로 ‘국내대순환’을 구축하고 국제교역을 통한 ‘국제대순환’으로 보완하는 쌍순환 경제전략으로 새로운 지역가치사슬(RVC)을 만들어 미국의 배제전략을 정면돌파 하고자 한다. 
 
지금까지 국제경제 질서는 미국이 주도하고 북미, 서유럽, 아시아가 뒤따르는 글로벌가치사슬(GVC)이 존재했다. 그러나 2001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후 경제적으로 급성장해 미국의 지위를 위태롭게 하자, 이제 미국은 경제번영네트워크(EPN), 클린네트워크(Clean Network) 등 여러 가지 수단으로  중국을 배제한 새로운 가치사슬을 만들고 있다. 이에 맞서 중국은 자국 중심의 아시아지역 가치사슬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중국공상은행(ICBC)의 계열사인 ICBC International의 쌍순환 경제전략 설명자료에 따르면, 기존의 글로벌가치사슬은 새롭게 북미지역, 유럽지역, 아시아지역 등 3개의 지역가치사슬(RVC)로 분화된다. 이 가운데 아시아지역 가치사슬에서 내수에 기반 한 ‘국내대순환’을 중심에 놓고, 고부가가치 첨단기술은 한국, 일본과 협력해 기술혁신을 도모하고 저부가가치 상품은 동유럽국가들과 생산협력관계를 통해 ‘국제대순환’을 구축해 나간다는 것이 중국이 구상하는 쌍순환 경제전략이다.
 
그렇다면 중국의 쌍순환 구조에서 북한은 어떤 위치를 차지할까? 중국공상은행의 해설자료에는 지역가치사슬 내 북한의 위치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북한의 자력갱생 경제노선으로 볼 때, 새로운 지역적 국제분업구조라고 할 수 있는 쌍순환 경제구조와 북한경제와의 관계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북한의 자립적 민족경제 노선과 한계
 
북한은 ‘경제에서의 자립’을 기치로 오랫동안 자력갱생의 폐쇄적인 ‘자립적 민족경제 건설 노선’을 견지해 왔다. 이 노선은 중공업 발전을 우선하면서도 내부자원을 극대화해 경제발전을 이루려는 것이다. 흐루쇼프 당 서기장이 공산권 경제상호원조회의(COMECON)를 확대 강화하면서 북한에게 사회주의 국제분업체제에 들어올 것을 요구했을 때도 북한은 자력갱생 정책을 고수했다. 
 
북한이 노동력과 같은 국내 자원을 총동원해 계획경제를 성공적으로 운영하였다고는 하지만, 소련과 중국의 원조나 원부자재에 대한 우대가격 제공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북한 스스로는 옛 소련의 사회주의 국제분업을 거부하며 자립경제구조를 지향했지만, 현실적으로는 한 번도 명실상부한 자립경제를 달성한 적이 없었다.
 
냉전 종식 이후 옛 소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지면서 북한의 자립적 민족경제 건설 노선은 한계를 드러냈다. 옛 사회주의국가들은 석유, 역청탄과 같은 원부자재나 자본재에 대해 우대가격 제공을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달러화와 같은 경화를 요구했다. 사회주의 세계체제의 해체 이후 북한에서 자력갱생 노선이라는 환상이 깨진 것이다.
 
냉전 종식 이후 북한은 중국 동북3성의 지방정부와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중국 중앙정부는 두만강 이니셔티브(GTI)나 창지투(長吉圖) 개발계획 등을 통해 낙후한 동북3성과 북한경제를 연계시켜 개발하고자 했다. 하지만 북한의 소극적인 태도로 인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경제위기에다 자연재해까지 덮친 북한은 심각한 체제위기 속에서도 동유럽국가들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개혁·개방보다는 자력갱생 노선을 유지한 채 핵·미사일 개발에 몰두했다. 하지만 북한이 핵·미사일을 개발하면 할수록 국제제재가 촘촘하게 부과되어 그나마 남아있던 국제경제와의 협력공간마저 닫히고 자력갱생의 공간도 마땅치 않게 돼버렸다.      
 
인민생활의 향상과 경제강국의 건설을 내걸며 출범한 김정은 체제는 2012년 4월 15일 김일성 탄생 100주년 기념식에서 “다시는 인민의 허리띠를 졸라매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작년 2월 말 하노이 노딜 이후에 개최된 12월 31일 당 전원회의에서는 “허리띠를 졸라매더라도 기어이 자력부강, 자력번영”하겠다고 후퇴했다.
 
김정은 체제에 들어와 북한은 군수산업이나 중화학공업과 같은 국가부문은 기존처럼 정부가 직접 통제하는 계획경제를 유지하면서도, 생활필수품을 만드는 기업이나 농장의 경영에는 상당한 자율성을 부여하는 ‘개혁’을 추진해 왔다. 하지만 원부자재와 자본재가 부족한 북한으로서는 이러한 내부자원의 동원과 효율적 관리만으로는 경제성장을 이루기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북한이 제8차 당대회에서 선택할 3가지 경제전략 옵션
 
북한이 대안으로 선택할 제1의 길은 핵무기 포기 카드를 활용해 체제안전을 보장받고 개방과 국제경제체제 편입을 통해 개발도상국가의 길을 걷는 것이다. 북한은 2017년 11월 29일 ‘국가핵무력의 완성’을 선언한 이후 이 길을 선택했지만, 작년 2월 말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일단 이 길은 유보되어 있다.
  
북한이 ‘새로운 길’이라며 제시한 제2의 길은 북·미 협상이 장기성을 띠고 있다면서 자력갱생을 통해 대북제재를 정면돌파 하겠다는 것이다. 이 길은 ‘시간은 내 편’이라는 인식 아래 북·미 협상의 가능성을 완전히 접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자력갱생으로 복귀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북 경제제재가 계속되는 가운데 코로나19 사태와 대규모 수해의 발생으로 ‘제3의 길’을 찾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북한은 내년 1월 개최 예정인 제8차 당대회에서 현행의 자력갱생을 통한 정면돌파전을 지속할 것인가? 김정은은 지난 10월 10일 개최된 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 연설에서 오는 제8차 당대회에서 부흥번영을 실현하기 위한 방략과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하겠다고 약속했다. 
 
김정은의 열병식 연설에서 주목할 부분은 작년 12월 당 전원회의에서 채택된 ‘자력갱생’의 원칙과 투쟁구호인 ‘정면돌파전’에 대해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자력갱생’을 대신해 ‘혁신과 발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이것만으로 북한이 ‘자력갱생’을 포기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이를 보완할 대안을 찾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북한이 단기간 내에 제1의 길로 돌아갈 수 없다면, 새로운 경제적 돌파구를 찾아 대외관계로 눈을 돌릴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가장 유력한 것이 당 제19기 5중전회에서 중국이 채택한 쌍순환 경제전략에 편승하는 길이다. 미·중 전략경쟁 중에 중국이 추진하고자 하는 쌍순환 경제전략에서 북한은 자국경제를 동유럽과 달리 국제대순환의 하위구조가 아니라 동북3성 차원에서 중국의 국내대순환 구조 속에 편입시켜 관리하고자 할 가능성이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최근 북·중관계의 전개 양상이다. 지난 10월 10일 시진핑은 북한 노동당 창건 75주년을 맞아 보낸 축전에서 “지역의 평화와 안정 및 발전 번영을 위해 적극 기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중국 건국 71주년을 맞아 김정은이 보낸 친서에 대한 시진핑의 답전(10월 29일 공개)에서는 "우리는...보다 훌륭한 복리를 마련해주고 지역의 평화와 안정, 발전을 추동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북한이 국제현안에서 중국 입장을 지지해 주는 대신에, 중국은 ‘복리’와 ‘지역의 발전 번영’을 북한에게 제공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제3의 방안’은 유엔안보리 제재의 지속과 중국에 대한 과도한 경제의존도라는 장애물이 있다. 유엔안보리 제재가 지속되는 한 쌍순환 구조에 편입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은 유엔제재를 단계적으로 완화해 나가기 위해서도 남북대화의 복원은 물론 북·미 비핵화 협상의 재개 가능성을 열어놓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북한의 높은 대중 무역의존도를 고려할 때 일방적으로 중국경제에 의존하거나 중국의 국내대순환 구조에 편입되는 경제전략은 북한경제의 예속 위험성을 높일 수 있다. 그래서 북한은 여러 나라들과 경제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내년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일본과의 관계개선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최근 외무성 아시아담당 부상을 지낸 리길성이 싱가포르 대사로 간 것도 동남아국가들과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의도와 무관치 않다. 
 
북한이 어떠한 경제전략을 채택하든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와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고 대화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다. 이를 위해 북한은 핵실험과 장거리 탄도미사일 시험과 같은 이른바 ‘레드라인’을 넘지 않아야 한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한반도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할 의지가 있는 중재자를 활용하는 것이다. 북한으로서는 현 단계 최적의 중재자는 한국뿐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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