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동방경제포럼 한·러 정상회담과 북핵문제, 세종연구소 세종논평>

(박지광 세종연구소 외교전략연구실 연구위원)

지난 9월 6일부터 9월 7일까지 문재인 대통령은 러시아가 주최하는 동방경제포럼에 참석하였 다. 동방경제포럼 본회의에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과 한·러 현안에 대한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에게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을 압박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 러시아가 대북원유수출을 중단해줄 필요가 있음을 역설하였다.

중국이 북핵문제와 관련하여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고 앞으로도 북한에 원유공급중단과 같은 초강도 조치를 취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 이 시점에서 러시아의 협조를 얻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중국이 북한 원유공급을 중단하더라도 러시아가 대북원유수출을 중단하지 않는다면 북한은 계속 원유를 수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러시아가 중국을 대신하여 북한의 주요동맹국으로 부상할 것이며 중국은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이는 중국이 매우 우려하는 시나리오이며 중국측 학자들은 이러한 가능성을 들어 중국의 대북원유공급을 정당화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을 설득하기 위해서라도 러시아의 대북 원유수출중단은 우리에게 매우 절실한 조치이다. 이러한 이유로 조선일보는 “북한문제, 중국 아닌 러시아가 열쇠 쥐고 있다”는 기사를 실기도 하였다 (조선일보 9월 5일자).

하지만 대북원유수출중단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요구를 푸틴 대통령은 분명한 의사로 거절하였다. 그는 아무리 강한 제재로 북한을 압박해도 북한은 자국안보를 위해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한반도 사태는 제재와 압박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러시아는 북한에 미미한 양의 원유만을 수출하고 있을 뿐이며 원유수출 중단은 병원에 입원한 환자 등 북한내 민간인에 피해를 입힐 것이라는 구체적인 이유를 들며 원유 수출중단이라는 한국측 요청을 거절하였다.

한편 이번 정상회담에서 우리측이 북핵문제에 포커스를 맞춘데 비해 러시아는 북한, 한국, 러시아가 공동 참여하는 3자 메가프로젝트, 유라시아경제연합과 한국간의 자유무역지대 구축, 유조선발주 사업, 한국의 러시아 인프라사업추진 등 경제 사안들을 주요하게 다루었다. 이러한 행태는 러시아가 우리를 경제파트너로만 여기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후 동방경제포럼 기조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러시아의 신동방정책이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신북방정책과 같은 꿈이라며 푸틴 대통령의 극동지역 경제이니셔티브에 호응하였다. 하지만 문대통령은 극동발전을 꿈꾸는 러시아 입장에서도 북한은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라며 북핵문제를 러시아의 신동방정책에 연계시켰다. 문재인 대통령은 더 나아가 동북아시아 경제공동체건설을 주창하면서 이러한 경제공동체를 다자안보체제로 발전시켜서 동북아에 평화를 구축하자고 하였다. 또한 문재인 대통령은 극동개발을 통한 경제공동체건설이 북핵문제의 근원적 해법이라고까지 주장하였다.

경제협력을 통한 군사적 긴장의 해소 더 나아가 평화체제 정착이라는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주장은 국제정치학의 기능주의를 연상시킨다. 기능주의는 해당지역의 국가들이 경제협력을 통해 하나의 경제공동체을 형성하고 더 나아가 하나의 안보공동체로까지 발전한다는 아이디어로 현재 EU 설립의 이념적 토대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는 북한이 이러한 경제협력에 참여한다는 것을 가정하고 있다. 북한이 동북아협력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낮은 수준의 경제적 협력을 시작으로 동북아집단안 보로까지 그 수위를 높여간다는 기능주의의 메케 니즘이 가동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과연 지난 60여년 간 주체라는 자립노선을 추구해온 북한이 주체사상을 버리고 주변국과의 경제적 협력을 시작할지는 큰 미지수이다. 북한을 제외하더라고 이해 관계가 상충하는 러시아, 중국, 일본이 EC와 같은 경제공동체를 탄생시킬 수 있는 정도로까지 서로 협력할 수 있을지도 확실하지 않다.

설령 기능주의 접근이 북핵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해도 경제협력을 통한 북핵 해결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생각하는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즉, 문재인 대통령의 제안대로 동북아 국가들이 경제협력을 통해 상호신뢰를 쌓아가고 동북아 경제공동체를 탄생시킨다고 하자. 여기에 북한도 이 경제협력체에 참여한다고 가정 하자. 하지만 경제협력을 통해 상호신뢰와 협력의 프로세스를 구축하는 데에는 매우 오랜시간이 걸릴 것이다. EU의 경우를 감안해 볼 때 이러한 노력이 성공적으로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경제공동체로 형성하는 데에 최소한 수 십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북핵문제를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음을 상기해 볼 때 동북아 경제공동체라는 아이디어는 실현가능성을 차치하고서라도 너무 장기적인 플랜이라고 보여진다.

희망적인 것은 몇 년내로 대북원유수출에 대한 러시아의 태도를 변화시키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 지 않는다는 것이다. 먼저 푸틴 대통령 자신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러시아는 북한의 핵보유국지위를 앞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며 최근 통과된 대북한 유엔제재안을 지지한다라고 말하였다. 게다가 9월 5일 틸러슨 미 국무장관과의 전화통화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군사옵션이 아니라면 새 대북제재를 검토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러시아는 중국과는 달리 북한을 혈맹으로 생각하지도 않고 주한미군 주둔을 안보위협으로도 생각하지 않는다. 게다가 현재 러시아는 원유 및 천연 가스 가격하락으로 심각한 경제난을 몇 년째 겪고 있는 상태이다. 내년에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는 푸틴 대통령으로서는 대미관계와 경제부양에 힘을 쏟아야만 한다. 비록 이미 승리가 보장되어 있지만 대선 후 야당의 반발을 억누르기 위해서는 내년 대선에서 압승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과의 협조하에 경제적인 인센티브로 러시아 대북원유수출중단을 이끌어내는 방안에 대해 논의를 시작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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