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총선, 새로운 100년 원년의 사건
 
 코로나19가 맹위를 떨치며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는 가운데, 대한민국 국민은 4.15총선이라는 희망의 꽃을 피워냈다. 지난 4월 15일 시점에서 전 세계 코로나19 감염자는 207만 6천 명, 사망자는 14만 명을 넘어서고 있었다. 같은 시점 한국에서는 확진자 1만 591명(신규 확진자 27명), 사망자는 225명이 발생했다. 그런 가운데 투표율 66.2%를 보이며 총선이 예정대로 치러진 것 자체가 세계를 놀라게 한 사건이었다. 
 
 그로부터 최대 잠복기인 14일이 지난 4월 30일, 유권자 2,912만 명 가운데 감염자 0을 기록하여 4.15총선의 성공 이야기를 완성했다. 세계적으로 감염 확진자 약 330만 명, 사망자 약 23만 명을 기록하는 가운데, 방역 선도국가로서 그 세계적 위상을 확실하게 각인시켜준 것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1년째, 새로운 100년이 시작되는 원년에 일어난 일이다.
 
 이번 선거는 실시 자체도 주목을 받았지만 유권자가 만들어 낸 결과 또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대한민국의 정치지형을 완전히 바꿔 놓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주류가 진보로 바뀌고 있다”는 진보진영의 분석이 조심스러운 대신, “한국 보수정치의 명백한 몰락”(동아일보)으로 “유권자 지형이 완전히 달라졌다”(조선일보)는 보수진영의 분석은 오히려 명료했다. 이러한 분석이 압도적 승리에 대한 부담감에서 나온 것이든, 아니면 패배를 딛고 다시 일어서라는 채찍질로 나온 것이든, 4.15총선이 “해방 이후 보수가 독점해 온 주류 권력을 진보 진영에 넘겨주는”(한국일보) 사건이라는 점은 진보 보수의 구분이 없을 정도로 확연한 현실이었다.
 
국민이 선택한 외교안보 정책방향
 
 한국 정치지형의 주류 교체는 한국의 외교·안보·통일정책에서 반공・반북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보수가 재탄생하려면 태극기 부대와 결별해야 한다는 질책이 보수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앞으로 한국 정치에서 보수가 의미 있는 세력으로 재생되려면 적어도 반공・반북 이데올로기를 털어낸 모습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말이다.
 
 미래통합당의 총선 공약에서 외교안보 분야는 ‘한반도 진짜 평화’라는 제목 밑에, ‘강력한 한·미동맹 복원’,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 ‘북한 눈치보기 정책 폐기‘등을 내용으로 하고, 결론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현 단계 성과인 9.19 남북군사합의를 폐기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미래통합당의 공약을 이른바 보수논객들은 흔들리는 한·미동맹, 최악의 한·일관계, 굴욕적인 한·중관계 등 자극적 해설로 뒷받침하면서, 주변국 외교를 총체적 난국이라 진단하고 이를 심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4.15총선에 나타난 국민의 선택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지속적 추진과 이를 위한 주변국 외교의 정비였다. 한·미동맹을 내팽개치고, 일본과는 일부러 역사문제를 건드려 갈등을 부추기고, 중국에 대해서는 상전 모시듯 한다는 야당의 비난이 국민 일반의 동의를 받지 못했던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외교안보 분야 총선 공약은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 기반했다. 미국과는 한·미동맹을 호혜적 포괄적 동맹으로 발전시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한·미 현안에 대해 합리적이고 공정한 대안을 도출하며, 중국과는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심화 발전시켜 한반도 문제와 관련한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견인하고, 미래지향적 국민체감형 실질 협력을 증진시키는 것이었다. 
 
 한·일관계와 관련해서는 역사문제에서 원칙에 입각한 문제 해결을 추진하되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발전을 위한 정부 당국 간 소통 및 민간 차원 교류를 지속적으로 확대한다는 기존의 투트랙 방식을 유지하는 내용이었다. 미래통합당의 공약에서 일본과의 역사문제에 대한 입장은 언급되지 않았다. 다만 문정부가 국익 중심으로 문제를 풀지 않고 민족주의적 사고로 인식하여 한·일 간 신뢰관계를 붕괴시켰다고 비판하고 있을 뿐이다. 일반 국민이 보기에도 야당의 대일 인식은 지나치게 몰역사적이었다.
 
4.15총선과 코로나19
 
 야당의 ‘한반도 진짜 평화’가 한·미·일이라는 좁고 낡은 틀 속에서, 역사를 사상한 미래에 매달린 것이라면, 여당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유라시아와 인도태평양을 포괄하고 한반도와 동아시아 역사의 맥락을 짚어낸 것이었다. 보수 야당이 약소국 외교로 회귀하는 동안, 진보 여당은 중견국 외교를 지향하고 있었다. 미·중 갈등의 격화 속에서 줄서기를 강요받는 코로나 이전(Before Corona)의 질서에서는 약소국 외교가 그나마 생존을 보장할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세계를 훑고 지나가면서 열리고 있는 코로나 이후(After Corona)의 질서에서는 중견국 외교의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코로나19가 4.15선거의 결과를 지배했다면, 그것은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드러난 건전한 국가, 성숙한 시민의 존재와 능력을 자각한 국민의 선택이 후자였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럼에도, 선거 패배 원인을 코로나19 대응으로 풀린 ‘돈’에 국민이 낚인 탓으로 돌리는 데에서 우리나라 보수와 야당이 국민을 우민(愚民)으로 보고 있었다는 게 여실히 드러난다. 
 
 코로나 이후의 국제질서에 대한 논의가 백가쟁명이다. 지구화의 종언이 주장되는가 하면, 이미 시작된 지구화가 가속화될 것이라는 정반대의 주장도 들린다. 종언을 맞이한 것은 미국식 지구화일 뿐, 중국판 지구화가 개시되지 않겠느냐는 말이 들리기도 한다. 국경은 사라지지 않고 성벽이 부활하여 국경조치를 포함한 대외관계 처리 능력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제시되는가 하면, 지구화의 역설 속에서 외교는 무력화되어 거의 정지상태에 이르렀다는 분석이 내려지기도 한다. 민족주의가 강화되고 권위주의가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지만,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실용적 국제주의가 회복되고 민주주의가 재생될 것이라는 희망도 사그라들지 않는다.
 
 백가쟁명의 논의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이미 진행되고 있던 변화에 코로나19가 가속력으로 작용하여 코로나 이후의 세상이 그 이전의 세상과 전혀 다른 세상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 변화의 한 단면을 가시화해서 실감하게 해 준 것이, 코로나19에 대처하는 선진국의 역량과 실태였다. 
 
코로나 이후의 국제질서와 동북아시아
 
 국제관계에서 코로나19가 게임체인저로 등장하고 있다. 코로나19 앞에서 유럽과 미국의 선진국들은 의료 시스템의 붕괴, 국가 리더십의 부족, 시민사회 역량의 부재를 드러내며 실패국가로 전락했다. 유럽과 미국의 실패를 배경으로 중국이 ‘의료 실크로드’, ‘건강 일대일로’로 매력공세를 펼치고 있지만, 국제사회는 투명하지 못한 중국의 리더십에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세계질서는 미국 일극 체제 이후 짧은 G2시대를 거쳐 G0의 시대에 진입하고 있다. 팬데믹의 혼란을 수습하지 못한 유엔과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등의 국제기구들도 그 권위에 상처를 입었다. 국제사회는 미국과 중국이라는 군사적 초강대국의 실패, 유럽연합이라는 대안의 실패, 국제기구의 실패라는 3중의 실패를 목도하고 있다. 이에 비해서 코로나19를 통제하는 데 유용성을 증명한 K-방역의 한국이 중국과 유럽-미국 사이에서 교량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가능성은 증대했다.
 
 코로나19는 동북아시아에서 경합하던 강대국들의 지역구상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코로나19가 드러낸 현실 가운데 하나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특히 미군이 도입하려는 새로운 군사 운용체제에 팬데믹이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시어도어 루즈벨트함이 괌에 묶여 있는 가운데, 미 서해안에 배치된 니미츠함, 칼빈슨함, 도널드 레이건함 등 3척의 항모에서도 감염자가 확인되어 일시적으로 태평양에서 작전 임무에 나설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팬데믹 상황에서 인도태평양 전략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나아가 코로나19로 정지된 경제활동이 국방산업에도 영향을 미쳐 핵억제 전략을 포함한 미군 전체의 대응태세 유지가 곤란해진 사실도 점검해보아야 할 과제로 부상했다. 
 
 그 공백을 중국이 치고 들어오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으나, 이는 미국 보수 정치세력의 대 중국 강경론의 변종이다. 코로나 진압으로 인민해방군이 대거 동원되어 중국도 군사적 능력에 일시적으로 공백이 생겼다. 일대일로 전략은 팬데믹 이후 국경 간 이동 통제로 인한 노동자 파견 규모 감소와 원자재 공급의 차질로 리스크 요인이 급격히 증대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고속철도 사업과 바탕토루 수력 발전소 건설공사, 신장 위구르-파키스탄 경제회랑 사업, 방글라데시와 스리랑카에서 진행 중인 도로, 교량, 발전소, 신도시 건설 사업 등이 모두 차질을 빚고 있다. 그 결과 일대일로 참여국 사이의 관계도 어긋날 가능성이 있으며, 참여국들의 채무 불이행 공포도 잠재해 있는 상황이다. 
 
 코로나19는 러시아가 주도하는 유라시아경제연합(EAEU)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경을 봉쇄한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에 노동자를 파견한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가 타격을 받기 시작했다.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의 일방적 행동은 유라시아경제연합의 존속에 큰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다른 한편 러시아와 유럽과의 관계 설정도 문제다. 나토군에 대신하는 유럽 독자의 통합군 창설 논의에 주목했던 러시아는 코로나19로 이러한 움직임이 지체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미국과 인도태평양 전략을 공유하며 미·일동맹으로 G2시대를 헤쳐 가려던 전략은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결국 믿을 것은 자조(self-help) 노력 밖에 없다며 헌법개정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디플레이션 탈출에 실패하여 아베노믹스의 유효기간이 끝나가고 있던 와중에 코로나19 대처에도 실수를 거듭하며 지지율이 급락하는 상황에서, 아베 수상은 긴급사태조항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헌법개정론의 군불을 지피고 있다. 그러나 일본 국민의 아베 비판이 그 어느 때보다 거센 상황에서 아베 내각 하의 헌법개정은 쉽지 않아 보인다. 
 
미사일 방어(MD)가 아니라 중견국 외교(MD)다
 
 코로나19의 위력은 군사력에 기대 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는 전략을 무력화했다. 더구나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가 장기화할 것이 예상되는 가운데 각국은 경제 재건을 위해 국방비를 재조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 결과 간접적으로 군비경쟁이 완화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개별 국가 수준에서 지역협력구상을 유지하고 관리하며 상대국의 지역협력구상과 경쟁할 능력에도 한계가 노정되었다. 코로나 이후, 새로운 국제질서에 부합하는 국가로의 복귀와 동시에 국제협력의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코로나 이후 시대를 살아가는 수단은 미사일 방어의 MD(Missile Defense)가 아니라 중견국 외교의 MD(Middle-power Diplomacy)다. 바야흐로 문재인 정부의 중견국 외교 전략인 교량국가 구상을 실천에 옮길 때다. K-방역의 노하우로 NEA(동북아)-방역을 구축하는 것으로 시작하자. 코로나가 열어준 세계질서의 변화를 새로운 100년을 만들어 나가는 기회로 삼는 것이 우리 세대에게 부여된 역사적 책무다. @
저작권자 © SPN 서울평양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