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문제와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이수형 국가안보전략연구원)

한여름의 무더위가 연일 기승을 부리고 있다. 어느 지역의 한낮 온도 는 한반도 기상관측 이래 몇 십 년 만에 최고 온도를 기록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최근 북핵 문제를 둘러싸고 진행되는 한반도 정세도 한여름의 무더위 못지않게 연일 극한의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하지만 북미 간에 주고받는 강 대 강의 설전은 한여름의 무더위를 일순간에 전쟁에 대한 공포로 바꿔 한반도 전체를 얼어붙게 할 정도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 부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에 대한 우려감을 표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코리아 패싱이 무엇인가? 지금의 상황과 정부의 대북정책이 코리아 패싱을 초래하고 있는가? 코리아 패싱은 1990년대 일본이 처한 국내외적 상황에서 자조 섞인 목소리로 등장한 일본 패싱(Japan Passing)의 한국 판이다. 

코리아 패싱은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의 입장이 부재하거나 배제 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우리의 외교안보정책이 매우 무기력하거나 수동 적이고 때로는 현안에 대한 해법이 부재한 상황을 가리키는 용어이기도 하다. 따라서 코리아 패싱을 논하기에 앞서 반드시 한반도 문제의 성격과 상황에 대한 진단이 선행되어야 한다.

한반도 문제는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외교안보 현안이 주변 국 가들과 국제사회의 이해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일련의 의제들을 가리킨다. 한반도 문제는 작게는 특정 쟁점이 주요 의제가 될 수도 있고 크게 는 한반도 운명 자체가 될 수도 있다. 한반도 문제의 성격과 본질이 무 엇이냐에 따라 코리아 패싱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와 함의도 달라진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된 코리아 패싱의 첫 번째 상황은 한반도의 운명이 걸려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입장이 철저하게 배제되는 경우이다. 지난 세기 초 대한제국의 상황이 이에 해당된다. 당시 대한제국은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치되는 한반도 정세에 대한 뚜렷한 인식도 없었고, 이를 주체적으로 해결해나갈 힘과 의지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가 쓰라-태프트 밀약(Katsura-Taft Secret Agreement)이라는 코리아 패싱이 일어났고 그 결과는 1905년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강탈당하는 을사늑약으로 나타났다.

코리아 패싱의 두 번째 상황은 한반도 문제에 직면하여 우리가 이를 주체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주변 강대국의 입장이나 정책에 편승하여 한반도 문제를 외세에 위탁하는 모양새를 보이는 경우이다. 

지난 한국 정 부의 북핵 문제와 남북관계에 대한 인식과 해법이 이에 해당된다 하겠다. 지난 미국의 오바마 정부는 북핵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전략적 인내를 제시했다. 이에 미국은 북한의 핵ㆍ미사일 실험발사에 대해 유엔 안 보리 결의를 통한 대북제재만을 강조하였다. 미국의 전략적 인내는 당시 북한의 핵능력이 미국의 사활적 안보이익에 못 미친다는 인식에서 나온 전략적 방치라 볼 수 있다. 

중국 역시 이와 유사한 입장을 보여주었다. 북한을 지정학적 자산으로 생각하는 중국으로서는 북핵 문제 해결에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지난 한국 정부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과 중국에게 너무 의존하는 모습만을 보여주 었다. 그 결과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은 더욱 고도화 되었으며, 현재 우리는 이로 인한 심각한 위기 상황을 목도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지난 한국 정부는 북핵 문제와 남북관계의 한반도 문제에서 과도하게 강대국의 대북 정책에 편승하여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입장이나 역할이 중요치 않게 인식되는 코리아 패싱의 단초를 제공하였던 것이다.

코리아 패싱의 세 번째 상황은 한반도 문제에서 미국의 이해관계와 한국의 입장이 서로 다른 경우이다. 즉, 한반도 문제에 대한 한국의 입장과 해법이 존재하더라도 이것이 미국의 이해관계와 부합하지 않음으로 인해 미국이 전략적으로 코리아 패싱을 유발시킬 수 있다. 

크고 작은 한반도 문제에 대해 한국과 미국의 인식이 동일하더라도 이것이 동일한 해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미국이 자신의 한반도 정책 목표를 관철시키기 위해 전략적으로 한국의 입장을 무시하고 우리에게 정책변경을 요구할 경우 갈등의 형태로 코리아 패싱이 나타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은 엄밀히 말해 코리아 패싱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코리아 패싱 분위기를 조성하여 강대국의 입장을 관철시키고자 하는 강대국 전략의 일환인 것이다.

북한의 핵능력 고도화와 그에 따른 한반도 위기라는 현재의 국면에서 문재인 정부는 ‘제재-대화 병행’이라는 북핵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나아가 문재인 정부는 북한의 핵문제는 어떠한 경우에도 평화적이고 외교적 으로 해결되어야 하며,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결코 용인할 수 없다는 확고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6월 말 한 미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문제에서 우리가 주도적 역할을 하겠다는 입장 에 대해 미국과 합의했다. 현재 문재인 정부는 미국과의 협의 체제를 가동하면서 우리 주도의 한반도 문제 해결을 모색하고 있다. 미흡한 점 은 이전 정부로부터 물려받은 코리아 패싱의 잠재요소들을 완전히 씻어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의 한국은 어제의 한국이 아니다. 세계적 중견국가로 성장한 한국은 한반도 문제와 관련된 어떠한 형태의 코리아 패싱도 용인해서는 안 된다. 미중 강대국 협조체제로 한반도의 운명이 좌우되는 코리아 패싱, 북핵 문제에서 한국의 제한적 역할로 강대국의 입장만을 추종하여 결과적으로 한국의 역할 부재로 나타나는 코리아 패싱, 그리고 한반도 위기 의 고조로 한국의 대북정책이 대화와 협상의 정책 공간보다는 동맹 강화와 군사정책으로 변화되어 강대국 전략의 한 부분으로 치환되는 코리아 패싱도 경계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다양한 형태의 코리아 패싱의 가능성을 불식시키고 한반도 문제에서 우리 주도의 역할과 정책 공간을 넓혀 나가야 한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한미 공조에 의한 대북 제재도 필요하다. 이에 못지않게 작금의 한반도 위기를 타개해 나갈 수 있는 우리만의 방책을 마련해 한반도 문제의 운전대를 확고하게 잡아야 한다. 북핵 문제의 국제정치적 성격상 우리가 꼭 운전대를 잡아야 한다고 고집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북한 문제와 그와 연동된 남북관계에서는 반드시 운전대를 잡아야 한다. 이를 통해 한반도를 평화의 방향으로 운전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북핵 문제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제재-대화 병행’의 접근 법은 ‘선 제재-후 대화’의 프레임으로 인식 또는 변질될 여지가 커지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평화라는 대원칙에 기초하여 국제공조를 바탕으로 북핵 문제의 해법을 모색하고 이와는 별도로 남북관계의 문을 열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적극적으로 강구해 나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갈등 형태의 코리아 패싱이라는 분위기가 조성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국익 중심의 체계적인 동맹관리전략을 마련해 나간다면, 우리는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고 평화의 한반도로 나아갈 수 있는 확고한 토대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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