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대유행과 국제정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위세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2월 11일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사망자 수가 일천 명을 넘어섰다. 발생 국가는 전 세계 28개 국가인 것으로 확인된다. 감염증 환자 대부분이 중국에서 나왔고, 싱가포르, 태국, 홍콩과 일본, 그리고 한국 등에서도 일부 나왔다. 사망자는 중국 이외의 지역인 홍콩과 필리핀에서도 각각 1명씩으로 파악되었다. 중국, 그중에서도 특히 우한을 중심으로 한 후베이성이 가장 심각하지만 남미와 아프리카를 빼고 전 세계에 퍼진 상태이다.   
 
 일본에서는 10일 현재 요코하마항에 정박 중인 크루즈선 승객과 승무원들 가운데 135명이 감염자로 판명되었고 일본 국내 감염자 26명과 합치면 모두 161명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미·중 무역합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합의에 따라 중국이 올해 2017년 대비 미국 농산물 수입 50% 증액을 약속했지만, 이를 어느 정도로 이행할지 불투명해졌다. 많은 국가와 지역이 중국으로의 도항, 중국으로부터의 입국을 금지하는 바람에 중국과의 수출입에 차질이 생겼고, 그에 따라 부품 공급 체인도 혼란이 가중되어, 한국의 현대자동차, 일본의 닛산자동차 등이 공장 가동을 중지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중국에 거점을 둔 외국 기업들은 속속 감산체제에 들어가거나 조업 정지를 결정했다. 특히 미국 기업들은 마치 미·중 디커플링의 예행연습을 하는 듯 중국에 대해 과민한 반응을 나타내고 있으며 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로 중국은 물론 한국이나 일본, 동남아로의 출장마저 꺼리고 있다. 마침 대통령 선거 국면에 들어간 미국에서는 트럼프 진영이 이번 사태를 이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경의 벽을 두껍게 쌓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웅변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이번 사태는 중국의 교통 중심지인 우한이 얼마나 지구화의 성과 위에 구축되어 있는지 보여주었다. 그럼으로써 역설적으로 미·중 디커플링, 미·중 냉전을 주장하는 일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진 일인지도 알게 되었다. 우한은 지구경제에 깊숙이 편입되어 있으며 일대일로라는 중국식 지구화를 통해 더욱 단단히 지구경제에 결박되어 있다. 우한으로부터 자국 교민들을 귀국시키는 각국 전세기들의 행렬이, 그리고 전세기를 타지 못해 우한에 고립된 수많은 아프리카인이 세계경제에서 국경의 벽이 얼마나 낮아져 있는지를 확인시켜 주었다. 
 
 우한으로부터의 엑소더스
 
 1월 22일 중국 당국은 23일 오전 10시를 기해 우한시의 공항과 기차역을 폐쇄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로부터 1주일 뒤, 가장 먼저 우한 공항을 빠져나간 사람들은 미국인들이었다. 아메리칸항공, 델타항공, 유나이티드항공 등 미국의 주요 항공사들이 1월 31일을 기해, 미국과 중국을 오가는 비행기편을 일시 중지한다고 발표했다. 이미 미국 정부는 1월 29일, 전세기를 보내 201명의 미국인들을 탈출시켜 캘리포니아주의 한 공군기지에 수용했으며, 2월 4일과 5일에도 2차, 3차 소개 작전이 전개되었다. 
 
 1월 29일, 미국 전세기가 이륙한 직후, 일본의 1차 전세기가 이륙했으며, 1월 30일과 2월 1일에도 각각 210명, 149명의 일본인을 귀국시켰다. 이후로도 일본은 4차 전세기를 파견해서 중국 국적 가족을 포함해 모두 763명이 귀국했다.
 
 3차 엑소더스는 싱가포르인들이었으며, 네 번째 순서가 한국이었다. 그다음으로 영국, 요르단, 프랑스, 인도, 독일, 호주, 러시아 등의 전세기들이 우한의 공항에서 자국민을 귀국시켰다. 우리 정부는 1월 31일과 2월 1일 전세기 2대를 투입해서 701명의 교민이 귀국하는 것을 도왔다. 12일에는 3차 전세기로 147명의 교민과 외국 국적 가족이 귀국했다.
 
 정부 부처 간 혼선과 컨트롤타워 부재의 상흔
 
 그 과정에서 컨트롤타워 부재 문제가 드러났다. 교민 수용 계획과 관련한 행정안전부 발표 직전, 한 매체를 통해 진천과 아산의 시설에 격리 수용하는 것으로 확정되었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행안부는 이를 부인했다. 28일에도 천안의 두 개 시설이 수용지로 결정되었다는 보도가 나왔으나, 천안 시민들이 이에 반발함에 따라 행안부는 결정을 미루고 있었다. 결국 29일에 아산과 진천의 공무원 시설들을 수용시설로 결정하는 발표가 나왔는데, 이 발표에 대해서도 혼란이 있었다. 양승조 충남도지사와 김용찬 충남도 행정부지사의 설명이 달랐던 것이다. 
 
 천안, 아산, 진천 주민들의 반발은 이와 같이 정부의 대처가 혼란을 보인 데 원인이 있었다. 중앙과 지방정부의 협조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상황에서 일방통행식 수용시설 결정이 문제였다. 정부 부처 간 불협화음도 들렸다. 교민 이송 과정에서 유증상자 탑승 여부를 놓고 외교부와 보건복지부가 이견을 보였다. 또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서울 초·중·고교 개학 연기를 검토한다고 밝힌 상황에서 정세균 총리와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이를 번복한 바 있고. 확진자의 접촉자 규모 문제로 평택시와 질병관리본부가 서로 다른 설명을 한 것도 문제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대응에서 여실히 드러난 일이지만, 정부 부처 내의 컨트롤타워 부재와 설득 부족 현상은 이미 외교안보 분야에서 심각한 상태다. 정당한 일이면 누가 해도 따라올 것이며, 누구라도 따라줄 것이라는 안이함이 상황을 꼬이게 해서 사태 진전을 가로막고 있다. 대법원의 강제동원 판결과 관련한 대일 외교, 전작권 및 방위비 관련 대미 협상, 개인의 방북관광을 둘러싼 한·미 갈등 등이 각각 외교, 안보, 통일 분야에서 대표적인 사례다.
 
 우리 정부는 강제동원 판결과 관련해서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입장 외에는 구체적인 대응책을 국민에게도, 일본 정부에게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문희상 의장안이 발의되는 등 입법부에서 보이는 움직임에 대해서도 거리를 두고 있을 뿐이다. 입장이 있을 뿐 정책이 없다. ‘현금화’의 시점이 다가오고 있지만, 우리 정부가 피해자와 원고단을 직접 만났다는 이야기도, 일본 정부와 협상을 벌이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리지 않는다. 
 
 ‘현금화’가 이뤄질 경우, 한일관계는 다시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것이 예상된다. 그 경우, 지소미아 문제가 다시 부상할 것이며, 이는 전작권과 방위비 협상에서 대미 협상력을 현저히 약화시킬 것이다. 나아가 대일관계 악화는 2019년의 프로세스에서 확인되듯이, 개별관광으로 돌파구를 마련해 보려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또다시 가로막는 요인이 될 것이다. 개별관광 그 자체도 문제다. 우리 정부의 개별관광 의지에 대한 북한의 반응을 보면, 북한에 대해 사전에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절차는 생략된 듯 보인다. 
 
 모든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고, 상호 영향을 주고 있는 의제들인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문제가 오히려 이들 문제들을 덮어주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문제로 이들 진짜 외교 문제가 잠복하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전체를 통괄하는 시야에서 선후 경중을 구분하여 명확한 전략 목표와 전술적 시나리오를 갖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조직적이고 선제적으로 움직이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한 이유다. 선한 의도가 바로 가시적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 현실 정치, 현실 외교의 세계다. 
 
 다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돌아와, 전세기 파견 관련 중국과의 협의도 그렇다. 비상사태에서 우리 국민을 지키기 위한 행동의 정당성 여부와 상관없이 전세기를 파견하고 교민을 태워 귀국시키는 일은 상대국의 협력이 필요하다. 사전에 설명하고 일정을 조정해야 했으며 이 과정을 국민에게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정책의 성공은 참여와 설득에 달려 있다
 
 과정에서 엇박자가 나기는 했지만, 뒤늦게라도 우리 정부가 아산과 진천에서 ‘욕을 먹어가며’ 현지 주민을 상대로 설명하는 모습은 국민의 신뢰를 되돌리는 데 일정 정도 기여했다. 아산과 진천의 주민들 가운데 우한의 교민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움직임이 나오기 시작했고, 그런 현지 주민들에 대해 국민은 지지와 성원을 보내기 시작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여파로 하락하던 문재인 대통령 국정수행에 대한 지지율도 2월 1주차 집계 결과, 소폭 반등했다. 3차 수용지로 선정된 이천에서는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교민들을 맞이하는 준비가 진행되고 있다.  
 
 이번 정부는 박근혜 정부의 독단적 정국 운영과 밀실외교로 내정과 외교가 모두 만신창이가 된 상태에서 출범했다. 이를 정상으로 돌려놓는 것만으로도 벅찬 일일 텐데, 촛불혁명을 거치면서 정부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 요구는 한껏 높아졌다. 이번 정부는 독단에 빠지지 않고 밀실에 갇히지 않기 위해 국민의 눈높이를 의식하고 이에 맞춘 정책을 실시하려 노력하고 있다. 기본 방향은 옳다. 그러나 혹시 국민 눈높이를 성과나 결과물로 맞추려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열린 거버넌스다. 정책의 소비자로서 소외에 대한 반발력이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정책의 수립과 집행과정을 둘러싸고 인풋과 아웃풋의 원리를 다시금 되새길 필요가 있다. 정책 그 자체가 이미 수요자의 의견 수렴과 부작용 제거 가능성 등 총체적 검증 과정을 전제한 것이어야 하고, 그렇게 해서 선택한 정책은 신뢰성, 지속성을 바탕으로 가장 효율적인 실행 방안들이 사전에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이는 대내외 정책을 막론하고 정책담당자의 기본 양식이다. 하지만 지금 정부는 설익은 정책을 던져 놓고 국민 반응이 부정적이면 이를 따라가면서 수정·보완을 되풀이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 국내외 환경은 점점 더 엄중해지고 있다. 책임 소재 여하와 관계없이 국내정치는 분열의 정도가 극심해서 협치의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 국제정치는 한때 국경을 초월한 공동체를 목표로 설정할 정도로 협력적이었으나, 국경은 다시 높아지고 국제정치는 대립과 갈등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그 결과 협력을 통한 결과 도출이 어려워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수용하여, 정부가 의도하는 바를 분명히 밝히고, 정부가 처한 어려움에 대해 솔직히 털어 놓아 국민의 눈높이를 낮추어서 최소한의 결과라도 이루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에 더해 정책을 실시하는 데 협력을 얻어야 할 상대에게도 설득하고 이해를 얻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후적으로’가 아니라 ‘선제적으로’다. 우리 국민은 성과가 가시화되기 전이라 해도 그러한 노력 자체를 수용하고 평가할 정도로 충분히 성숙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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