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마침내 미중관계의 핵심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글로벌 차원의 감염병 극복을 위한 공조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시진핑 시대 미중 전략경쟁 구도가 감염병 퇴치 전선에서마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1월 31일부터 중국 방문 외국인의 미국 입국 거부 조치를 취하자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중국과 인적 교류가 많은 주변국들이 잇따라 유사한 대응에 나서고 있다. 이에 중국은 미국이 과도한 조치를 취했다며반발하고 있다.

중국 감염병 외교의 세 가지 방식

트럼프 대통령은 2월 5일 발표한 연두교서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과 관련하여 중국과의 공조와 협력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미국 언론들은 연일 중국 감염병 대응 능력의 한계와 불투명한 통계자료 등을 거론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2월 3일부터 대변인 성명 등을 통해 미국 등 서방 언론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관련 ‘중국 때리기’에 적극적으로 맞대응하고 있다.

중국의 대응은 대략 세 가지 방향으로 이뤄지고 있다. 첫째, 공식 성명 등을 통해 미국의 과잉대응을 비판하고, 둘째, 미국 내 독감 사망자 통계 등을 거론하며 맞불을 놓는가 하면, 셋째, 중국의 질병 통제 능력을 국제사회에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화춘잉 외교부 대변인은 미국을 향해 ‘대중을 공포로 몰아넣는 선동’등의 표현을 써가며 과잉대응을 중단하라고 촉구하였다. 동시에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미국 내 독감 사망자 1만 명 발표 등을 거론하며 역공을 가하였다.

한편, 중국 언론들은 외국 전문가들의 입을 빌어 중국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극복 노력을 부각시키기도 한다. 예컨대 2월 6일 인민일보 인터넷판인 인민망은 나이지리아 언론인의 기고문 ‘중국인이 아닌 바이러스와 싸우자’를 게재하였다.

중국 내 감염병 확산에 따른 미국의 반사이익 주목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관련 국제사회의 대응에 중국이 이처럼 날선 반응을 보이게 된 또 하나의 계기는 미국 정책결정자들의 자극적 발언들이었다. 미국 고위인사들이 이번 사태를 미국의 경제적 이익 확보와 연결시키는 듯한 입장을 취하자 중국 측의 반발이 고조된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윌버 로스 상무장관은 폭스뉴스에 출연해 “우한폐렴으로 인해 일자리가 미국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발언해 구설에 올랐다. 며칠 뒤에는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이 나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이) 미국 내 투자를 자극할 수 있으며 이는 매우 이로운 일”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한편, ‘중국 저격수’로 꼽혀온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 고문은 미국 산업계를 중심으로 제기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영향을 감안한 대중국 관세 잠정 인하론을 공개적으로 일축했다.

1단계 무역합의 이행에도 ‘빨간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이 미중 1단계 무역합의 이행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류허 부총리가 1월 15일 서명한 미중 합의문에 따르면 중국은 향후 2년 내에 농산물과 공산품, 에너지 등 2,00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제품을 수입해야 한다. 2003년 사스(SARS) 사태 당시 1% 이상의 성장률 감소를 경험했던 중국 경제의 성장률은 당시보다 더 낮아져 있고 외부 충격에는 더욱 민감해져있다. 이런 가운데 도시 봉쇄, 공장 폐쇄,휴가 연장, 이민 노동자 유입 중단 등의 사태가 잇따르면서 중국 경제는 이미 직격탄을 맞았다.

중국의 대표적 무역도시인 원저우(溫州)가 우한에 이어 두번째로 봉쇄됐고 추가 확진 사례도 내륙지역에 비해 광둥(廣東)성, 저장(浙江)성등 동남부 산업지역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의 한 축이 중국에서부터 무너져 내리고 있는 상황에서 2,000억 달러 추가 수입 약속 이행은 중국정부에게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공급망 붕괴의 영향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것은 농산물 분야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2,000억 달러의 수입 확대분 중 농산물은 320억 달러를 차지할 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대중 수출의 핵심 분야는 제조업(777억), 에너지(524억) 서비스업(379억) 등이다. 이미 재선 캠페인에 돌입한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팜 벨트’(중서부 농업지대)와 ‘러스트 벨트’(쇠락한 북동부공업지대) 중 어느 하나도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므로 합의 이행을 요구
하는 미국과 사정 변화를 이유로 합의를 이행할 수 없다는 중국 간의 갈등이 고조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미중 1단계 합의문의 유예조항

1단계 미중 무역합의에는 이행에 관한 예외조항이 들어있다. 자연재해나 통제할 수 없는 예상 밖의 사건들이 합의서 상 의무 이행을 지연시킬 경우에 대비한 것이다(합의문 7조 6항). 중국이 해당 조항을 근거로 의무 이행 유예를 요구할 수있다는 이야기가 미국의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 조항 역시 재해나 재난에 준하는 사건이 벌어졌을 경우에 양측이 ‘상호협의 (consult with each other)’ 과정을 거칠 수 있다는 유예조항일 뿐 면책조항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대통령 간 전화통화(2월 7일)에서도 두 정상은 무역합의 이행 약속을 강조하였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경제적 효과가 미중관계, 구체적으로 미중 무역합의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는 대선을 앞두고 있는 미국 경제의 상반기 동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골드만삭스는 이미 미국 경제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영향으로 1분기에만 0.4% 포인트의 성장률 감소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였다.
이런 전망이 들어맞는다면 대선을 앞두고 미국의 경기가 하강할 가능성을 배제 할 수 없다.

트럼프의 미중 무역전쟁 2단계 도발?

현재까지 트럼프 대통령은 신속한 2단계 협상 착수를 강조하고 있고 중국 측은 1단계 합의 이행이 먼저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미 재무부나 무역대표부도 아직 2단계 협상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효과가 트럼프 대통령이 치적으로 강조해 온 미중 무역합의의 경제적 성과를 상쇄 시킬 가능성이 커진다면 그의 입장은 보다 강경해질 것이다. 다시 말해, 조속하게 2단계 협상을 개시해 더욱 강력한 대중압박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역대 미국 대선에서 현직 대통령의 재선 여부를 좌우한 최대 변수는 선거가 열리던 해 2분기의 경제성장률과 실업률이었다. 2018년 이후 미국 경제 성장률은 둔화세로 접어들었고 트럼프 대통령의 금리 인하 압박에도 연방준비제도(Fed)는 꿈쩍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악재가 터진것이다.

바이러스 효과가 미국 경제에 어느 정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느냐에 따라 트럼프의 대선 전략, 그리고 이에 따른 미중 2단계 무역협상에까지 연쇄적 영향이 미칠 수 밖에 없는 국면이 조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중국으로서는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기도 어렵고 힘겹게 달성한 미국과의 ‘휴전’을 포기하기도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3월 초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정치협상회의 개최를 앞두고 있는 시진핑 주석의 고민이 깊어지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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