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논평, 미중 무역전쟁 1단계합의는 중국의 ‘판정패’인가?>

이성현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

미국 현지 시각 1월15일 발표된 미중 무역전쟁 1단계 합의는 중국의 ‘판정패’라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무역 협상의 중국 측 대표인 류허(劉鶴) 부총리는 이번 1단계 합의를 ‘중국에도 이익, 미국에도 이익, 세계에도 이익” (有利于中国,有利于美国,有利于全世界)이라고 했다. 이번 합의가 양측 모두에게 ‘윈윈’ (win-win)이었다는 것이다. 어떤 기준으로 이번 합의를 평가해야 할까?

우선 이번 합의안은 중국이 2년간 미국산 제품을 2천억 달러(231조7천억원)상당 구매하고, 미국은 당초 계획했던 중국산 제품에 대한 추가 관세를 보류하거나 완화한다는 것이 요지다. 나머지 많은 부분이 중국이 향후 이행할 ‘미래의 약속’에 관한 것이어서 지금 현재 합의안만을 가지고 ‘미중 어느 나라가 더 큰 타격을 입었는가’ 식의 손익계산을 하기 어렵다.

대안으로, 미중 양국이 무역전쟁 협상에서 ‘애초에 추구했던 목표 (goal)를 얼마나 각각 달성했느냐’ 하는 시각에서 접근해 볼 수 있다. 소위 ‘목표설정이론’(goal setting theory)이다. Edwin A. Locke에 의해 시작된 이 이론의 요지는 성과와 관련된 행동의 가장 직접적인 선행조건으로 목표를 든다. 즉, 미국과 중국이 무역전쟁을 통해 의식적으로 무엇을 얻고자 했고, 그 목표를 얼마나 달성했는가에 중점을 두어 살펴보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서명식 직전에 연 기자회견에서 이번 합의가 ‘과거 잘못을 바로잡는 것’(righting the wrongs of the past) 이라고 했다. 이것이 미국측의 목표였던 셈이다. 이번 합의를 통해서 미국은 그러한 목표를 달성했을까? 많은 경우 이는 향후 중국의 이행여부에 달려있다.

트럼프 옆에 선 류허(劉鶴)가 “중국은 미국 제품을 구입하겠다”라고 말하면서도, “시장 상황에 따라”(based on market conditions) 라고 여지를 남긴 점에 주목해야 한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도 “중국이 원한다면 이번 합의가 이행될 것"(The agreement will work if China wants it to work)이라고 말한 것도 이번 합의가 왜 불안한지를 드러낸다.

반대로 중국측의 목표는 무엇이었을까? 미국이 요구하는 것을 최대한 적게 주면서 ‘시간 지연’ 작전을 펴는 것이었다. 시간을 끌면서 트럼프가 탄핵을 당하거나, 재당선에서 실패하거나, 혹은 최근 이란 사태가 미국과 이란 사이에 전쟁으로 번져서 트럼프가 중국이 아닌 중동에 더 신경을 쓰게 만드는 것이다. 모두 ‘시간 지연’으로 귀결된다.

실제로 지난 협상 궤적을 보면 ‘시간 지연’은 중국이 취했던 전략이다. 국력 면에서 자기보다 강한 미국의 요구에 조금씩 단계적으로 양보하는 행보를 보이면서 시간을 끌었고, 그러면서도 중국이 생각하는 관건적 이익과 결부된 사항에 있어서는 강력히 저항했다. 심지어 합의안 초안을 중국측 지도부가 다시 검토한 후 파기하기도 했다. 핵심이익에 있어서는 양보를 하지 않는 마지노선을 지키는 것이다.

중국이 정한 이러한 전략적 접근 관점에서 보자면 중국은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원래 2018년 12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G20 정상회의 기간 중 이루어졌어야 할 합의가 당시 ‘90일 휴전’을 거쳐 지연됐고, 그 후 다시 ‘5월 합의설’, ‘6월 합의설’ 등이 나오면서 작년에만 고위급 협상이 다섯 번 이상 미루어졌다. 시간 지연으로 상대방을 안달 나게 하는 것은 중국의 고전적 협상 수법이다.

미국은 한 번의 큰 거래인 ‘그랜드 바겐’ (grand bargain)을 원했지만 중국은 협상을 잘게 나누고 기간을 길게 늘이는 ‘살라미 전술’ (salami tactics)로 응했다. 이번 합의에서 알려진 내용 중 하나는 중국이 향후 2년간 320억 달러어치 미국 농산물 구매하기로 한 부분인데 이 역시 ‘미래의 약속’을 한 셈이다. 중간에 미국 대통령이 바뀌거나 정세가 바뀔 경우 이행을 늦추거나 아예 이행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국이 2001년 WTO에 가입할 시 중국이 약속했던 많은 부분이 이행 과정에 있어서 준수되지 못했고, 이는 지금도 미국에게 있어 매우 아쉬운 부분이다. 이번 합의에서 이행 준수 부분이 얼마만큼 보완되었는지는 추후 관찰이 필요한 부분이다. 미국측에서 보자면 목표는 중국의 미국산 제품의 ‘대량 구매’가 아니라 미·중 무역 관계에서 본질적인 ‘구조적 변화(structural changes)’를 추구했어야 했다. 중국이 미국 농산물을 ‘사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향후 미국의 기업과 농부가 중국 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관련 법규의 개정이 필요한 것이었다.

중국은 양보할 수 있는 것과 양보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도 분명한 기준이 있었던 듯하다. 미국산 제품의 ‘대량 구매’ 부분에 있어서는 적극성을 보였다. (이는 트럼프가 의기양양하게 국내정치에서 ‘성과’로 선언할 수 있는 가시효과도 줄 수 있다). 그러나 역시 중국의 약속이행을 강제하도록 관련 법률이나 규정을 개정하는 내용은 역시 합의문에 담기지 않았다. 여기의 핵심은 중국 국영기업의 개혁이다.

중국 국유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은 미·중 무역전쟁의 최대 쟁점 중 하나다. 중국공산당의 운영자금은 중난하이(中南海) 안의 금고에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중국국영기업들 안에 분산되어 있다. 즉, 국영기업들이 중국공산당의 자금 창고인 셈이다. 국영기업의 개혁은 공산당의 자금 혈맥을 끊으라는 셈이고 이는 중국공산당이 절대 들어줄 수 없다. 미중은 이 부분을 일단 ‘2차 협상’으로 공을 넘겼다. 다들 제2차협상이 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하는 이유 중의 하나다.

‘목표설정이론’으로 평가할 때, 이번 1차합의의 승자는 중국이다. 중국은 중국이 목표로 설정한 것을 상당부분 달성했다. 시간지연 작전을 펴면서 양보할 생각을 가지고 있던 부분 (대량 구매)에 있어서는 생색내며 양보했고, 양보하지 않기로 한 부분은 2차 협상이나 ‘미래 이행’ 사항으로 넘겼다. 이번 1차합의도 엄밀히 보면, 중국이 1년 전에 해야 할 것을 늦추며 해준 셈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새 해로 넘어가자 미국측은 안달이 나고 중극측은 뜸을 들였다는 후문도 들린다.

본질적으로 이번 합의는 문제의 ‘해결’ 보다는 또 하나의 ‘봉합’이다. 앞으로의 전망은 불확실하기만 하다. 제2단계협상에서 다뤄야 할 부분에 있어 서로간 근본적 입장차가 커서 과연 제2단계협상이 시작이나 할 수 있을 것인가하는 의구심이 벌써부터 제기되고 있다.

적어도 미중 무역전쟁 ‘휴전’으로 시장은 안도하고 있고, 트럼프의 대선전까지 그는 이를 ‘승리’로 몰아가면서 선거에 집중하려 할 것이기 때문에 대선 전에 제2차협상이 시작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역시 중국이 원하는 바다. 중국은 미중 기술 ‘디커플’ (decouple)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아이러니컬하게도 금년은 미중 무역전쟁이 소강상태를 보이는 한 해가 될 것이다. 한국은 이 ‘황금시간’을 잘 이용해서 앞으로의 더 큰 불확실성 대응전략을 시나리오별로 조밀하게 짜야할 것이다. 지금은 미·중 1차 합의로 화해 무드를 조성하고 있지만 조만간 양국은 다시 대립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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