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EU 관계의 새로운 청사진:  동북아플러스 책임공동체와 지역주의의 복원, 제주평화연구원>

(도종윤 제주평화연구원 지역통합연구부장)

<목차>

      1. 한-EU 관계의 새로운 기대?
      2. EU 대외 전략의 파편들
      3. EU 대외 전략의 일관성과 응집성
      4. 위기의 EU, 그들의 대외 전략과 동북아플러스 책임공동체의 접점
      5. 지역주의 외교의 복원

1. 한-EU 관계의 새로운 기대?

  지난 7월 18일 우리나라 외교부 제1차관이 브뤼셀을 방문하여 EU 대외관계청(EEAS)의 고위 관계자들을 만나 환담하였다. 

외교부에 따르면, “양자는 전략적 동반자로서 특별한 협력관계를 발전시켜 오고 있다”고 평가하였으며, 우리 측은 또한 “한반도 주변 4강 중심의 외교 틀을 넘어서 유럽과의 외교를 강화”할 것을 피력하면서 올 하반기에 ‘한-EU간 차관급 고위 정치 대화’를 서울에서 진행하기로 합의하였다고 밝혔다.1) 

이번 만남이 비록 한-EU간 치러지는 정례적인 행사라 할지라도 맥락 차원에서 주목할 부분이 있다. 즉, 신정부 출범 이후 진행된 아세안 및 EU 특사 파견에 비추어 볼 때 지난 10여 년간 집중해온 4강 중심외교, 대북외교에서 벗어나 정부의 정책 방향이 보다 유연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공교롭게도 곧이어 7월 19일에 발표된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문재인정부의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말하자면 대(對) 아세안 외교, 대 EU 외교의 부활은 그동안 침체되었던 다자주의, 지역주의 외교의 복원을 예상케 한다. 

이는 더 나아가 남북문제에 있어서 대북외교만이 아닌 통일외교의 부활과도 연계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한-EU간 만남을 계기로 그 동안 상대적으로 외교현안에서 소외되었던 EU의 기본 대외전략이 무엇인지 큰 틀에서 재점검해 보고, 신정부가 추진하려는 ‘동북아플러스 책임공동체’ 등의 신(新)전략을 EU와 어떤 공유점 속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인지 진단해 본다. 

그리고 이를 통해 양자 관계에 관한 미래의 청사진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 지역주의 관점에서 논의해 보도록 하겠다.

2. EU 대외 전략의 파편들

  EU의 대외전략(External Action)은 ‘세계전략’, ‘지역전략’, 그리고 ‘개별국가전략’으로 세분화된다.2) 이들 전략은 개별적이라기보다는 일관성(coherence)과 응집력(consistency)의 원칙에 따라 상호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있으며 브뤼셀의 관료들도 이점을 현장에 투영하려고 매우 노력한다. 

미시전략 수준에서 EU의 대 한반도 전략을 추적하려면, 거시전략으로서의 세계전략을 시점(時點)별로 파악하고, 이어서 지역전략으로서 대 아시아 전략을, 그리고 비로소 개별국가 전략으로서 남북한 각각에 대한 전략을 살펴보아야 한다. 

따라서 이들 전략들 간의 일관성과 변화를 찾는 것이 대 EU 외교의 밑그림을 그리기 위한 우선순위일 것이다. 이때 세계전략에서 시점이 중요한 것은 EU의 세계 전략이 국제 환경 변수에 따라 장기적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세계전략 차원에서 EU가 가장 최근에 내놓은 문서는 2016년 6월의 “비전의 공유, 공동의 행동: 보다 강력한 유럽(Shared Vision, Common Action: A Stronger Europe)”이다. 

이는 2003년 “유럽안보전략(European Security Strategy: ESS)”의 개정판이다. 2003년 전략은 미국이 독주하는 세계 질서가 아닌 그들과 협력하는 동반자로서의 EU의 위상과 가치를 처음 드러낸 것이었다. 

이러한 존재감은 2004년 동유럽으로의 양적 확대, 2005년의 유럽헌법 도입 시도 등 외적 팽창과 내적 자신감으로 한껏 고조되었다. 당시 학계에서 한창 논의되던 ‘유럽화(Europeanization)’는 EU의 그러한 자신감을 반영한 것이었다. 

반면 2016년 전략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의 동유럽과 남유럽의 재정위기, 2014년의 우크라이나 사태, 2015년의 그리스 채무 위기, 난민위기와 잇단 테러리즘 그리고 2016년 상반기의 브렉시트 결정 등 EU가 침체된 가운데 등장했다는 데서 큰 차이가 있다. 

유럽은 계속되는 악재로 회원국들 간의 공동 비전과 정책적 연대감이 상실되었고 분열 위기마저 고조되었으므로 이를 대외적 존재감의 확보를 통해 극복하려는 것이다.

  둘째, 중범위 전략으로서 지역전략 - (동)아시아 전략 - 은 대체로 지역간주의(inter-regionalism) 성향을 띠고 있다.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등은 비교적 큰 수준에서 개별전략으로 접근하지만, 나머지 국가들 - 아세안, 중동, 사하라 남쪽 아프리카 등 – 은 경제규모와 문화, 공동 현안으로 묶이는 경우가 많다. 이런 가운데 EU의 대 아시아 전략은 1994년 처음 등장하였다. 

당시 EU의 당면 목표는 자신들의 경제적 존재감(presence)을 아시아에 드러내겠다는 것이었다. 이어서 2001년에 발간된 후속 문서에서는 경제적 존재감과 더불어 정치 대화(political dialogue)를 통해 아시아에서 평화와 안보에서 일정한 기여를 하겠다는 포부를 밝혀 역할의 확대를 드러냈다. 

이것이 실천행위로 한반도에서 나타난 것이 바로 EU가 북한과 수교한 것이었다. 아시아 지역전략의 가장 최근 버전은 2012년의 것이다. 여기서 EU는 글로벌 차원의 대량살상 무기 확산 방지에 주력하면서, 기후변화, 에너지 안보, 환경 보호, 빈곤 퇴치, 경제적 불평등 및 보건 분야 개선 등을 포함한 포괄적 안보와 지속가능한 정책의 촉진을 강조하였다. 

이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EU의 외교 역량을 다자주의 원칙에 의해 행위자들의 위상에 따라 적절히 배분해야 한다는 것으로, 외교의 유연성과 상대의 책임성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셋째, 한반도 정책은 대북정책과 대한정책으로 나뉜다. 1993년 마스트리트 조약 이후 EU는 한국과 양자 및 다자의 중층적 틀 속에서 관계를 증진시켜오고 있다. 

눈에 띄는 특징은 1997년 이후 10여 년간은 KEDO(1997, 2001), ASEM(1996) 등 지역주의 및 다자주의 틀 속에서 양측의 관계가 강조된 면이 있고, 그 이후 다시 10여 년간은 ‘한-EU 기본협정(Framework Agreement)’(1996, 2010), ‘자유무역협정(FTA)’(2010), 그리고 ‘위기활동 기본 협정(Crisis management operations)’(2014) 체결처럼 양자주의 틀이 보다 강조된 면이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EU의 대북전략은 다자주의가 강조되던 1996년 이후 약 10여 년간 점증적으로 활발하였으나, 2002년에 발표된 ‘2001-2004 국가 전략 문서(Country Strategic Paper 2001-2004)’ 이후 별다른 공식 진전이 없다.3) 물론 EU의 대북전략이 주춤한 것은 2006년 북한의 핵실험에 따른 UN의 대북 제재 이후 별다른 동력을 얻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3. EU 대외 전략의 일관성과 응집성

  앞서 논의 한 것들을 항목에 따라 도표로 재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EU 관료들의 가장 큰 고민은 정책의 일관성과 응집성을 현장에 실천적으로 투영하는 것이다. 

이는 EU의 정체성과도 관계되는 것으로 그들이 주권국가와는 달리 단일 리더십이 아닌 오로지 제도와 법률의 중층적 효과에 따른 실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제도의 복합체이기 때문에 생기는 ‘스파게티 보울 효과(Spaghetti Bowl Effect)’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있다. 말하자면 앞서 설명한 중층적 대외 전략은 수많은 하위 세부 전략과 연계되어 복합적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제한된 정치적 리더십으로 이것을 일관된 실천으로 유지하는 것이 브뤼셀 관료들의 핵심 과제인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최근 벌어지고 있는 EU의 분열 및 그들이 가진 능력과 기대의 불일치(Expectation-Capability Gap)는 정책 실천의 장애요인이 된다.

능력과 기대의 불일치는 물질적 수단과 비물질적 수단으로 구분할 수 있다. 물질적 능력의 한계는 다양하게 논의 될 수 있으나 EU의 예산을 대략적이나마 살펴보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2017년 EU의 GDP 성장 전망치가 1.7%로 매우 낮게 예상된다. 따라서 장기불황과 내부 분열 위기로 예산 압박을 받고 있는 EU로부터 낙관적인 예산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4) 

도표에서 보듯이 2015-16년간 채택된 총 예산(adopted budget)은 오히려 전년도보다 줄었다. 더구나 EU 전체 예산 기여에서 평균 10.7% 정도를 차지하는 영국이 2년 안에 떠나갈 경우, 그들의 금전적 기여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5)

비물질적 수단으로서 EU의 기대치와 능력 간의 괴리는 EU가 가진 정체성, 그리고 그와 관련된 역량이 적정한 수준의 가치적 보상을 받지 못하는데서 나온다. 

이는 기능적으로 보았을 때 내부 분열로 정책의 집중이 간헐적 동력에 머물고, 추진과정이 너무 오래 걸려서 생기는 문제이다. 또한 물리적 강제력과 리더십의 부재, 그리고 강력한 시대정신의 실종에서 파생된 것이기도 하다. 

난민 대책의 불협화음, 테러리즘의 지속, 우크라이나 위기 이후 대 러시아 정책의 혼란, 폴란드, 헝가리 등 몇몇 동구권 국가들의 반(反) EU적 태도는 비물질적 차원에서 그러한 괴리를 드러내는 것이다.6) 

특히 난민 위기에서 보여준 유럽 시민들의 태도는 그들이 그동안 쌓아왔던 인권, 법치, 민주주의 등에 기반을 둔 EU식 지역주의의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시켰으며 이는 서구식 시대정신의 위기를 가리키는 것이다.

4. 위기의 EU, 그들의 대외 전략과 동북아플러스 책임공동체의 접점

앞선 도표의 ‘한반도 전략’에 표현된 대로 EU의 한반도 전략은 세계전략 및 (동)아시아전략간 각 항목의 중층적 연관 속에서 도출된다. 특히 난민위기, 테러리즘 등에 따른 최근 유럽의 위기와 분열은 능력과 기대의 불일치와 별개로 변수 α를 초래한다. 

변수 α는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일정 정도 맞춤형 전략에 의존하는 브뤼셀의 분위기 혹은 무드(mood)와도 같은 것이다. 

변수 α가 음수인지 양수인지는 사안마다 달라 미리 알 수 없다. 이는 정치인, 관료, NGO등 어디에서도 드러날 수 있는 것으로, 내부 이익집단, 세계정세의 변화, 혹은 상대와의 협상 분위기에 따라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트럼프 대통령 등장 이후의 자유주의의 위기나 포퓰리즘의 만연은 음(-)의 효과를 낼 것이고, 아세안이나 일본과 같은 역량 있는 실체와의 동반자 협정 혹은 FTA 체결 분위기는 양(+)의 효과를 낼 것이다.7)

그렇다면, EU의 한반도 전략에서 α가 EU는 물론 우리나라 모두에게 양(+)인 조건은 무엇인가? 

그것은 신정부가 추진하는 ‘동북아플러스 책임공동체’에서 어떤 실천적 행위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구상이 향후 대 EU 외교 관계에서 어떻게 적용될 것인가? 먼저, ‘대선 공약집’과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언급된 ‘동북아플러스 책임공동체’ 구상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 한·중·일 3국 협력을 강화하고 6자회담 재개를 통해 다자 협력 체제 구축
- 다자안보와 경제공동체를 통합하는 동북아책임공동체 형성
- 아세안/인도의 외교를 주변 4강과 유사한 수준의 전략적 수준으로 격상
- ‘평화의 축’으로서 동북아 평화협력 플랫폼을 구축하고 동북아를 넘어서는 남방, 북방 지역을 ‘번영의 축’으로 삼는 신(新)남방 정책 및 신(新)북방 정책 추진

- 동북아 다자안보 협력 진정을 위한 제도 구축
- 한중일 3국 협력 강화 등의 소다자 협력 추진
- 다양한 형태의 중견국 협력

안타깝게도 이 두 전략 문서의 어디에도 EU를 직접 언급한 부분은 없다. 그러나 이는 EU의 위상이나 위치가 사소하기 때문이 아니라, EU의 분열과 위기로 그들의 존재감과 가시성이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가시성 약화는 반대로 보았을 때 EU의 대 한반도 정책이 그 동안 성공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이는 2000년대 초중반 EU 주도의 지역주의 및 다자주의 논의가 활발했을 때의 성공 조건과는 매우 다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정부의 전략 문건이 대 EU 관계에서 주목되는 것은 EU통합의 기본 동력이었던 지역주의 원리가 상당부분 공유되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다자안보'와 '통합을 통한 경제 활성화'라는 국가 주도의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이는 곧 지난 10년간 주춤하였던 다자주의로의 지향과 지역주의의 복원을 의미한다. 

따라서 EU와의 관계 활성화는 위기에 빠진 동아시아의 지역주의 모델의 부활 가능성을 열어둘 뿐 아니라, 한국이 주도하는 지역주의의 복원을 통해 주춤하고 있는 EU의 동아시아 외교를 한국이 선제적으로 끌어당길 수 있는 조건을 담고 있다.

첫째, 동아시아 차원에서, 한중일 (소)다자주의의 추진은 ‘동북아시아 공동체’와 ‘EU’ 간 지역주의(inter-regionalism)의 부활을 위한 동력이 될 수 있다. 

또한 동북아공동체는 지역의 안보와 경제적 이익뿐 아니라 글로벌 수준의 정치적 책임감 확보라는 측면에서 미국, EU와 더불어 한국이 3대 축의 한 요소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둘째, 한반도 전략 차원에서 볼 때, 한국외교는 (6자회담의 부활 가능성은 별도로 하더라도) EU가 6자회담의 부활과 지속에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여지를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 

EU의 글린 포드(Glyn Ford) 유럽의회 의원과 베니타 페레로-왈드너(Benita Ferrero-Waldner) 집행위원은 2003-2006년에 청와대를 방문하여 EU가 6자 회담+1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여러 번 언급한 적이 있다.8) 

최근에는 아니발 카바코 실바(Anibal Antonio Cavaco Silva) 전 포르투갈 대통령도 EU가 한반도 긴장 완화에 적극적인 기여를 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언급한바 있다. 이와 연계하여 보자면, EU는 여전히 북한에 대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UN의 대북 제재에도 불구하고 EU-북한은 최소한의 정치적 관계는 유지하고 있다. 2015년 평양에서 양자 간 정치 대화(political dialogue)가 진행되었듯이 북한의 서방으로의 유일한 의사소통 통로는 EU임을 인정해야한다.

셋째, 세부 전략 차원에서 볼 때, 대북 UN 인권 결의안을 지속적으로 발의하는 EU의 역할을 적극 지지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 평화 체제는 단순히 경성안보의 확보 뿐 아니라, 시민(people)과 사회의 안녕 및 가치실현이라는 기반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EU의 대북정책 뿐 아니라, 그들의 가치가 세계적 윤리규범에 기여한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다만 인권의 차원이 대북결의를 넘어 불편한 동아시아의 역사와 현재의 정치적 억압을 해소하기 위한 세계 보편적 가치에 두루 준용되도록 EU와 규범 창출 노력을 함께 해야 한다. 

넷째, 당면 과제와 관련하여, ‘한-EU 기본협정’과 2014년에 체결된 ‘위기활동 기본협정’을 실천적 과제로 더욱 적극적으로 생산해낼 때가 되었다. 

‘한-EU 기본협정’의 핵심은 양자 간 포괄적 안보에 대한 대처를 주요 의제로 삼고 있으므로 이를 과제화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야 한다. 

양자 간 정치 대화, 전략적 동반자 관계 수립 등 일정부분 성과도 있으나 하부 실천 프로그램의 평가와 연계 프로그램의 수립도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다만 EU가 6자회담 등 중범위 수준의 전략에서 배제되어 있는 한, 정책 의제의 확대나 심화는 한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즉 EU가 소정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줘야 한다. 한편, ‘위기활동 기본협정’은 EU의 소말리아 해적 퇴치 작전에 한국이 공식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구체적 목적이 있다. 

그러나 EU의 위기관리 및 대응 전략의 본질은 EU가 회원국의 국경선을 넘어 국제적 활동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따라서 EU 측에서 볼 때 한국의 위기관리 참여는 우리나라의 외교안보 역량을 유럽과 공유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유럽의 관심사 뿐 아니라 한국의 관심사에 유럽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도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5. 지역주의 외교의 복원

국제정치에서 ‘지역주의(regionalism)’는 국가가 주도하는 프로젝트이다. 

글로벌화 된 세계에서 일정의 국가들이 일부 지역을 거점으로 하위 국가 수준(sub-states), 비정부 행위자들(non-state actors)을 아우르며 제도와 전략을 통해 하향식 방법으로 서로의 협력과 조화를 꾀하는 것이다. 

반면, 지역화(regionalization)는 개인 또는 집단이 국경을 넘어 다층적인 관계 맺기를 하는 물리적 패턴을 일컫는다. 이민자 문제, 무역과 자본의 이동, 미디어의 확산 등은 그러한 예이다.9) 

1990년대 후반부터 서서히 움트기 시작했던 한류와 동아시아 문화교류, 그리고 2000년대 이후 IT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은 동북아시아의 지역화를 크게 증진시켰다. 

그러나 지난 10여 년간의 양자주의, 4강 중심, 대북정책에 초점이 놓인 우리 외교는 상대적으로 지역주의 동력을 잃었다. 

그리고 EU는 능력과 기대치의 괴리, 분열과 실망 등으로 위기에 놓여 있다. EU의 외교적 자산은 물리적 수단뿐 아니라, 비물질적 수단에서도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21세기형 지역주의는 국가 주도의 하향식 메커니즘뿐 아니라 무역, 기술, 정보, 그리고 문화 교류 등 상향식 혹은 수평식 지역화가 중첩되어야 한다. 

동북아의 지역주의 복원은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가져올 뿐 아니라 글로벌 외교의 주체로서 EU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위기에 빠진 EU가 동아시아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여 자신들의 위상을 만회 할 수 있음을 그들에게 알려줘야 한다. 그것이 대 EU 외교에 직면하는 하나의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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