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북 실무협상 평가와 향후 전망:협상의 종말인가, 반전의 서막인가?>
          최강 아산정책연구원-차두현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

10월 5일(스웨덴 현지시각) 스톡홀름에서 개최되었던 미·북 실무협상은 결국 양측 간 접점을 찾지 못 한 가운데 무위로 끝났다. 북한 측 수석대표인 김명길은 회담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협상이 우리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결렬돼 매우 불쾌하다”면서, 결렬의 원인이 미국의 ’낡은 각본‘ 때문이며, 향후 북한이 핵·미사일 모라토리엄을 유지할지의 여부는 전적으로 미국에 달려있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2월 28일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의 합의도출 실패 이후 6월 30일 판문점에서의 남북미 3자 정상회동을 거치면서 되살아난 미·북 간 비핵화 협상 전망은 다시 극히 불투명한 상태로 빠져들게 되었다. 미국과 북한 모두 추가 협상의 여지를 시사하기는 했지만 협상의 재개 시점이나 타결 여부를 쉽사리 예측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게 한다: (1) 포스트 하노이 국면에서 미·북 실무협상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가? (2) 협상에 임하는 미국과 북한의 계산은 어떤 것이었는가? (3) 향후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1. 미•북 협상, 그 가능성과 한계

미·북간 대화를 통해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된 2018년 이후 싱가포르 1차 미·북 정상회담(2018년 6월),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3·4차 북한 방문(2018년 6월 및 10월), 트럼프-김정은 간 친서 교환 등을 거치면서 극적 타결에 대한 기대가 커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로 인해 금년 2월의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에서는 실행 가능한 비핵화 합의가 도출될 것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비핵화’ 개념, 로드맵, 주요 시설 폐기·검증 일정과 이에 대한 보상 조치(제재 해제, 대북 체제안전 보장, 경제발전 지원 등)가 망라된 이른바 ‘빅딜’도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가 고조되었다. 미·북간 협상국면이 전개되면서 도출된 가장 큰 성과는 군사적 충돌을 포함하는 극단적 가능성이 크게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2018년 이후 북한은 핵·미사일 모라토리엄을 유지하였고, 미국 역시 군사적 대북 조치 가능성을 배제하는 등 2017년의 ‘한반도 위기설’이 사라지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미·북간 여전히 초보적이기는 하지만, ‘신뢰’라고 할 만한 것이 형성되었다는 점 역시 양측 간 협상이 지니는 의미이다. 2018년 최초의 정상회담을 전후하여 폼페이오의 4차례에 걸친 방북과 실무협상은 미·북 정상에서 실무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대화 채널을 형성하게 만들었고, 이는 과거에 비해 오해나 의심에 의한 돌발적 행동의 위험을 차단하는 데에는 적지 않게 기영하였다고 할 수 있다. 사실, 혐오스럽고 신뢰성이 부족한 상대와도 협상할 수 있다는 트럼프의 자세는 그 이전의 행정부와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접근방식이었고, 이는 미·북 대화국면이 지속된 가장 큰 원동력이 된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만약, 현재의 국면을 돌파하고 실질적 타결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미·북 협상은 상호간 신뢰의 점진적 구축과 축적을 통해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한 대표적 사례의 하나로 부각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면에 되돌아보아야 할 점들도 적지 않게 존재한다. 가장 큰 의문은 트럼프가 지적한대로 그 이전의 미국 행정부가 “아무 것도 하지 않은”(didn't do anything) 상태였냐는 것이다. 1990년대와 2000년대 미·북간 비핵화 협상의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을 ‘비핵화’하느냐는 해석, 즉 비핵화의 ‘정의’에 대한 견해차였다. 미국은 한반도 내에서 핵위협을 가하는 것은 북한이며, 북한의 핵개발은 즉각 중단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북한 현재·과거·미래의 핵 능력이 모두 폐기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였고, 이는 2005년의 『6자회담』 합의에 의한 『9.19 공동성명』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반면, 북한은 자신들의 핵개발은 미국의 핵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자위적’ 조치이며, 그 핵위협은 본토의 미국뿐만 아니라 주한미군에 의해서도 가해지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미국이 비핵화를 ‘북핵 폐기’로 간주한 데 비해 북한은 “상호 핵 위협의 비례적 감축”(미·북 핵군축 회담)이라고 역설한 것이다.

1년 반에 걸친 대화국면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입장차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단계이다. 사실, 이에 대한 명확한 합의가 없는 이상 비핵화를 취한 각종 조치와 그에 따른 보상은 계속 엇갈릴 수밖에 없는 것이 북한 핵문제의 구조이다. 이에 대한 공감대가 없었기에 협상을 해도 일정수준 이상의 진전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부분적인 타결이 이루어져도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상황이 반복될 수밖에 없었으며, 설사 앞으로 어떤 진전이 있다고 해도 상징적인 차원이나 정치·외교적 제스추어의 수준을 벗어나기 힘들다. 트럼프 행정부 이전의 미 행정부 역시 현재 수준의 사태 진전을 ‘못 한’ 것이 아니라 ‘하지 않은’ 것에 불과하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제1차 싱가포르 미·북 회담의 합의는 이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유보’한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Complete Denuclear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라는 모호한 표현은 사실상 2018년 4월의 『판문점 선언』의 것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었고, ‘북핵 폐기’와 ‘미·북 핵군축 회담’의 어느 쪽으로도 해결될 수 있는 여지를 가지고 있었다. 최초의 미·북간 정상회담이라는 상징성을 감안할 때, 이 문제를 반드시 싱가포르에서 해결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그 이후에 실질적인 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비핵화’에 대한 정의는 필수적인 요소의 하나였다. 그럼에도 미국은 FFVD(또는 CVID)를 강조하는 데 대비하여 북한은 ‘조선반도 비핵화’를 내세우는 상황은 반복되었고, 이 상태는 2019년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에서도 반복되었다.

물론, 반드시 선언적으로 ‘북핵 폐기’라는 단어를 명시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상호 교환되는 조치에 따라 그 무게중심이 북한 핵 능력의 해체·폐기냐 아니면 쌍방 간 핵위협의 감소냐를 가늠할 수 있기에 북한 측이 ‘굴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을 수는 있다. 실제적으로 『9.19 공동선언』은 북한 핵 프로그램과 능력의 폐기에 대한 상응조치로 에너지 지원, 평화체제 방안 등을 명시함으로써 ‘북핵 폐기’로서의 해석이 주를 이루는 운영의 묘를 발휘했다. 문제는 2005년 당시와는 사뭇 변화된 현 시점에서 교환조건을 어떻게 제시하느냐였다.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은 (1) 미·북관계의 획기적 진전, (2)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3) 북한의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노력을 합의문에 명기했다. ‘북한의 노력’에 강조점을 둘 경우 ‘북핵 폐기’로의 해석이 가능하지만, 동시에 전문(前文)에 명기된 “미국의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을 강조할 경우 ‘핵군축 회담’ 논리 역시 여전히 살아있는, 미봉적 조치였다.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이후 양측은 이 모호한 단어를 그대로 유지한 채 서로 자신에게 유리한 거래가 이루어지도록 지향해 왔다. 미국은 조기에 북한의 주요 핵 시설 폐기 약속을 받아내고, 이에 대한 신뢰할 만한 검증절차를 명기하며, 최종적으로 도달하여야 할 비핵화의 상태와 개략적인 시간표 즉 로드맵의 합의를 지향했다. 북한 핵물질이나 관련 무기의 반출·폐기가 이루어진다면 이러한 합의의 신뢰성을 담보할 최상의 조치였다. 반면,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 및 동창리 엔진실험장 폐쇄 등 기존의 조치에 더하여 영변 핵시설의 폐기 계획 정도에서 체제안전보장과 대북제재 해제 등의 조치를 받아내려 했다.

특히, 북한이 하노이 회담을 통해 기존의 체제안전보장(미·북 관계개선, 한·미 군사훈련 중단, 종전선언 등)에 더하여 대북 제재의 조기 해제를 중요 조건으로 요구함에 따라 양측이 교환할 조치들의 조합은 더욱 복잡해졌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누구도 기존 조건으로부터의 변화를 시사하는 발언을 하지 않았음에도 실무협상은 선언되었고 준비되었다. 관점에 따라서는 트럼프 행정부는 역대 미 행정부가 걸어왔으며, 반드시 지나야 하는 한 병목에 도달한 것이며, 그것이 이번 미·북 실무협상에서 그대로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2. 비핵화 문제에 대한 미국의 입장: 정말 ‘탄력적’인가?

미·북 실무협상에서 구체적으로 양자가 각각 어떠한 입장을 견지했는지는 아직 정확히 공개된 것이 없다. 다만, 기존의 발언들에 미루어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하노이에서의 견해차를 고려할 때, 협상이 타결되려면 미국과 북한 어느 한 쪽은 기존의 입장을 변화시킬 수밖에 없었다. 일단, 6월 30일의 판문점 회동 이후 “2~3주내”(당시 시점 기준) 실무협상 방침을 밝혔고 9월 들어 조속한 실무협상의 재개를 촉구한 것은 미국 측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실무협상 이전 미국이 기존에 비해 타협적인 방향을 제시할지도 모른다는 예상이 대두되기도 하였다. 폼페이오 국무장관 역시 실무협상에 앞서 “일련의 구상”(a set of idea)을 가져왔다고 밝히기도 했다. 결국, 하노이 회담 합의 불발의 주요원인이었던 대북제재의 해제와 관련하여 미국이 기존과는 다른 접근을 취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판단된다.

문제는 이것이 기존 입장으로부터의 중요한 변화인가 하는 점이다. 트럼프 행정부 이전에도 마찬가지였고, 비핵화와 관련된 미국의 핵심 입장은 “先비핵화 後보상”이었다. 국내 일부의 오해와는 달리 이는 북한이 한사코 거부하던 ‘리비아 방식’ 뿐만 아니라 모든 비핵화 사례에 적용된 원칙이었다. 즉, 대북제재와 관련하여 미국이 일부 입장변화를 시도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어디까지나 북한의 선제조치(핵시설 폐기 약속)에 대한 상응조치 수준의 해제·완화이지 2월 하노이에서 평양이 요구했던 사실상 전면해제는 아니었을 것이고, 이것이 협상 결렬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을 협상장에 끌어낸 주요한 동인이 대북제재라고 믿고 있는 트럼프의 특성상 대북제재의 일시 전면해제는 그 자신이 받아들이기 힘든 접근이며, 수출금지 유예의 경우에도 대금 지불방식 등에 있어 제한이 걸릴 여지도 있다.

아마 이 정도가 현 시점에서 미국이 시도할 수 있는 ‘융통성’의 한계일 것이다. 일부에서는 대통령 재선이라는 당면과제를 안고 있는 트럼프가 대폭적인 양보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하노이 회담 직전에도 미국 내 언론을 중심으로 이런 우려 섞인 전망이 나왔으나, 실현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트럼프가 보여준 돌출적인 발언이나 행동, 독재적이면서도 추진력·과단성이 있는 인물 즉 ‘스트롱맨’에 대해 호감을 가지는 그의 성향을 고려할 때, 미국이 대폭 양보를 할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역대 다른 미국 대통령과는 달리 트럼프의 경우, 미·중 전략경쟁에서 북한을 중국으로부터 떼어놓기 위해 미·북 협상에서 더욱 탄력적인 입장을 보일 수도 있다. 2018년의 미·북 협상 자체가 악인(惡人)과도 이익이 되면 협상을 하는 트럼프 스타일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북한의 핵·미사일 모라토리엄 유지를 자신의 주요 정치 업적으로 내걸어온 트럼프의 입장에서는 북한이 ‘새로운 길’을 가지 못 하도록 저지하기 위해 양보 카드를 사용할 동기가 존재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변화에는 촉진요인 못지않게 제약요인도 존재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미국 국내의 정치 환경이다. 트럼프가 만약 ‘재선’을 중요시한다면 매스미디어와 국제정치에 둔감한 일반유권자들을 매료시킬 무엇인가를 이끌어내어야 한다. 북한의 비핵화 약속 등의 상징은 이미 충분히 사용한 카드이다. 만약 트럼프가 북한 이슈를 선거전의 최대 치적으로 내세우려면 쉽고 포장 가능한 성과를 이끌어내어야 한다. 이는 단기간 내에 가시적인 비핵화 약속을 이끌어내는 것인데, 이는 북한이 그동안 한사코 거부해 온 내용이고, 비핵화의 중·장기적 소요시간을 감안할 때 현실적으로도 어렵다. 북한 핵 이슈가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이란 갈등이나, 터키-쿠르드 교전,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의 베네수엘라 사태처럼 유권자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높은 우선순위의 사안도 아니다.

트럼프와는 다소 결을 달리하는 공화당 주류와의 갈등방지도 고려해야 한다. 현재의 선거구도상 트럼프가 성공적인 재선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의 개인적 지지세력(그의 당선이후 지지층이 확장되었다는 뚜렷한 근거는 없다) 이외에도 공화당의 조직을 활용해야 한다. 현재 트럼프 행정부(정확히는 트럼프 개인)의 대외정책 중 미 공화당 주류와의 이견 가능성이 있는 가장 큰 부분이 대북정책이다. 현 상황에서는 트럼프가 개인 성향 상 대폭적인 대북 양보나 기존 노선의 변화를 시도하고 싶어도 그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점에서 트럼프로서는 ‘성의 표시’ 정도의 변화를 시도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 이상의 중요한 양보를 할 가능성은 그리 많지 않다. 즉, 트럼프로서는 현 시점에서 북한 핵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기보다는 ‘관리’하는 차원에서의 대안을 고려하면 되는 것이고, 이 방침이 변화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3. ‘낡은 각본’단어에 함축된 북한의 전략 

북한은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의 실무협상 재개 수용 발언(9월 9일자) 당시 미국이 ‘낡은 각본’을 가지고 나오면 미·북간 거래는 그 자리에서 결렬될 것이라는 의사를 밝힌 바 있으며,[viii] 이는 이후 북한 매체를 통해 반복된 내용이다. 흥미 있는 것은 미·북 협상 결렬을 밝힌 김명길의 성명에서도 미국의 “구태의연한 태도”가 문제의 원인이었다고 지목하였다. 이는 결국 평양은 자신들은 기존의 입장을 변화시킬 이유와 의지가 없으며, 타결을 위해서는 미국 측의 대폭적인 입장 변화만이 해결책이라는 메시지로 보아야 한다. 하노이 회담 당시 영변 이외의 시설을 공개할 수도 있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미국이 협의를 계속하지 않았다는 최선희의 발언과는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행태로 볼 수 있다. 이는 북한의 비핵화 협상 전략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모든 국제관계의 행위자들이 그러하겠지만, 북한 역시 대외전략(대미전략)을 구사할 때 자신의 강·약점 그리고 기회·도전을 나름의 계산법에 따라 면밀히 분석한 후 대안을 결정할 것이다. 북한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가장 큰 강점은 과거에 비해 비약적으로 발전한 핵능력, 김정은의 권력기반 안정화, 단기적인 경제내구력, 김정은의 대외이미지 개선 등일 것이다. 그러나 이 못지않게 북한으로서는 김정은이 자기충적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에 가깝게 공언해 온 ‘국가경제발전에 대한 강박관념, 경제상태 호전에 대한 주민들의 기대심리, 대북제재 하에서의 성과 능력의 한계 등을 고려해야 한다. 외부적 여건 면에서는 한국의 대북정책, 트럼프 행정부의 협상으로의 방향 선회, 중·러와의 관계 再강화라는 기회 못지않게 (1) 트럼프의 예측 난이성, (2) 미국의 제재 해제 살라미化, (3) 이란 등 기존 비핵화 케이스와의 형평성 시비 등이 도전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북한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전략은 ‘공세적 성과추구’(강점과 기회의 결합)이다. 발전된 핵능력을 바탕으로 ‘비핵화’에는 동의하지만, 이미 ‘핵보유국’이 되었다는 점을 사실상 인정받고 이를 바탕으로 미국과의 협상에 나서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협상 결과에 따라 ‘완전한 비핵화’가 아닌, ‘상호 핵공격 능력의 상당부분 감소’ 선에서 타협안을 마련하고, 미·북 수교를 통해 정권안정을 확보하고 대외투자를 대량 유치하는 기반을 확보하는 것이 북한이 바랄 수 있는 최선의 결과이다. 이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에도 최소한 ‘단계적·동시적 비핵화’를 관철함으로써 상당부분 일정 부분의 핵능력(비핵화 과정의 장기화 감안 시)을 유지할 수 있게 되며, 데이터와 인력은 잔존시킴으로써 언제든 재개발을 할 수 있는 동력을 유지하게 되면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한·미 동맹 역시 결국 사실상 와해·해체되거나, 정치적인 동맹 이상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 하게 만드는 것이 이 전략 하에서 북한의 최종목표일 것이며, 이는 결국 남북한 관계에서 북한의 지속적 주도력을 보장할 것이다.

이것이 제대로 먹히지 않을 경우 북한이 다른 대안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우회적 접근전략’(강점과 도전의 결합)이다. 트럼프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는 것이 어렵다면,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은 대북제재를 상당부분 해제하는 일이 될 것이다. 또한, 미·북 관계 정상화를 통해 체제안전을 보장받는 동시에 대북제재의 지속 논리를 약화시키는 것도 중요한 과제이다. 이 경우에도 양보할 수 없는 것은 이른바 ‘빅딜’의 회피 즉, 초반부터 완전한 비핵화 로드맵과 검증수단, 일체의 주요 핵시설의 폐기 약속에 동의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즉, ‘단계적·동시적’ 원칙의 관철을 통해 사실상 “핵 능력은 보유하지만 그 이전에 주요한 대북 제재는 해제되는 상태”를 만들어내는 것이 이 전략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남북한 관계 면에서도 한·미 동맹의 해체를 이끌어내지는 못하지만 역할의 변화(지역 동맹 등)를 통해 북한에 미치는 영향력을 차단하려 할 것이다.

‘우회적 접근전략’ 역시 여의치 않으면 북한은 부득이하게 백기투항을 막기 위한 ‘명분 있는 후퇴 전략’(약점과 기회의 결합)에 의존하게 될 것인데, 대북제재의 지속과 개혁·개방의 지연으로 중기적인 체제내구력이 현저하게 감소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선택의 성격을 띤다. 즉, 일거에 모든 핵시설을 해체하고 핵물질을 대외로 반출하지는 않지만 대북제재의 단계적 해제 역시 불가피함을 받아들이게 되며, 제한적인 핵능력(특히 과거핵)은 유지하는 선에서 미국의 타협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다만, 이 경우에도 남북한 관계 면에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한·미 동맹의 약화 혹은 주한미군의 규모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중요한 운용상의 변화(연합훈련의 철폐, 전략자산의 전개 영구 중단)를 가져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물론, 내부적 약점과 대외적 도전에 직면하게 되면 북한이 사실상 CVID(혹은 FFVD)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를 수도 있는데, 이는 사실상 전략이라기보다는 백기투항에 가깝다.

북한은 2월의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이 ‘공세적 성과 추구’ 전략을 시행할 최적의 계기라고 생각하고 이를 추구한 것으로 생각된다. 약점과 도전 요인이 발현되기 이전에 단기적인 차원에서 성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속전속결식 진행을 지향한 것이다. 북한이 하노이 회담에서 대북제재의 사실상 전면해제를 요구하면서도, 검증원칙의 타결이나 로드맵의 회피, 영변 이외 주요 핵시설의 폐기 일정을 제시하지 않은 것은 이러한 계산에 입각한 것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북한의 입장에서는 대북제재와 관련하여 이를 주요 ‘카드’로 생각한 트럼프의 계산을 제대로 읽지 못 한 실책이 있었다. 하노이 회담 이후의 과정은 북한이 여전히 ‘공세적 성과 추구’에 집착하면서도 부분적으로는 ‘우회적 접근’을 검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노이 회담 이후 북한이 최선희의 회견이나 매체발표를 통해 ‘새로운 길’을 시사한 것은 결국 현재 북한이 제시하고 있는 대안이 자신들이 양보할 수 있는 마지노선임을 강조하는 메시지였고, 이는 스톡홀름의 미·북 실무협상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이런 해석의 연장선상에서는 북한의 ‘결렬’ 선언 역시 미국의 변화를 감지하고 더 많은 것을 얻어내기 위한 전술적 강경책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만 과연 모든 여건이 북한에게 여전히 호의적인지는 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북한이 강점과 기회를 결합한 전략을 고수하려면 기존의 대북제재가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는 상황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는 하노이 회담 이후 스톡홀름 실무협상에 이르기까지 제재의 포괄적 해제를 요구하는 움직임과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북한 역시 시간 변수에 쫓기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북한 내 일종의 ‘결정 장애’ 징후도 일부 감지된다. 금년 4월 구성된 최고인민회의 제14기를 기점으로 북한의 대미 협상라인은 기존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연한 인물들로 교체된 반면, 오히려 태도나 메시지는 더욱 강경해졌다. 또한, 6월 이후 연속적인 단거리 발사체 및 SLBM 실험 등을 거치면서도 대화결렬을 불러올 수 있는 중·장거리 미사일 발사실험이나 핵실험 재개를 선택하지는 않았다. 북한 역시 ‘새로운 길’을 선택하기에는 부담이 크며, 김정은이 4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언급한 ‘올해 말’이 오히려 평양의 입장에서도 시간적 구속 효과를 내고 있음을 암시한다.

4. 향후의 협상 전망

스톡홀름 실무협상에서 나타난 미국과 북한의 접근법을 고려할 때, 향후 미·북간 비핵화 협상과 관련하여 예상 가능한 전개방향은 크게 세 가지로 집약된다. 첫 번째는 ‘大타결로의 반전’이다. 북한이 ‘공세적 성과 추구’ 전략을 고수하고 트럼프 행정부가 대통령 선거를 고려하여 ‘동결’ 수준의 사태 관리를 위해 더 많은 양보를 하는 경우이다. 11월~12월중 한차례 더 협상이 열린 이후에도 양측이 의견을 수렴하지 못 한 가운데, 북한이 ‘새로운 길’을 향한 구체적 징후(중·장거리 미사일 발사 준비 혹은 추가 핵실험 준비)를 드러내고, 미국이 이에 대응할 군사적 옵션이 제약된 가운데에서 결국 대북제재의 상당부분을 해제하는 동시에 조기 연락사무소 설치 등 미·북 관계정상화에도 동의하는 내용이다. 반면, 북한은 영변 시설에 더해 상징적인 수준의 추가 시설 폐쇄 방침을 발표하지만 여전히 ‘비핵화’의 개념은 모호한 채로 유지한 가운데, 뚜렷한 검증원칙이나 로드맵도 제시하지 않은 경우이다. 하노이 회담에서 거론된 ‘빅딜’, 즉 북한의 담대한 비핵화 조치와 미국의 상응하는 보상조치가 교환되는 것도 ‘大타결’에 속하지만,[ix] 금년 2월에 비해 중요한 여건변화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이를 기대하기는 사실상 힘들다. 따라서 위와 같은 상황전개는 ‘大타결’로 포장된 미봉적 해결이며, 트럼프로서는 국내적 비판을 모면하기 위해 연말 이후 북한의 또 다른 ‘벼랑끝 전술’ 이후(내년 초)로 선택을 미룰 것이다. 이 경우에는 내년 초 제3차 미·북 정상회담을 예상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전개는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낮다, 트럼프로서는 성과 포장 이상으로 미국 민주당 및 워싱턴 정책서클의 집중적 비난에 직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재선시계(視界)가 앞으로 더 불투명해진다면 이 경우의 수도 완전히 배제하기는 힘들다.

두 번째는 ‘결렬 이후의 정적(靜寂)’이다. 미국이 북한 핵 문제 관리 정책에서 벗어나지 않고, 북한이 기존의 전략 대신 ‘우회적 접근’으로 선회하였을 때 일어날 수 있는 협상 진행 방향이다. 누구도 자신들의 국내정치적 사정이나 명분으로 인해 추가적인 양보를 하기는 꺼려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선택을 하기에는 부담이 있는 경우에 발생할 수 있다. 김정은이 선언한 ‘연말’까지 아무런 타결이 이루어지지 않고 미·북 협상 전체가 결렬되었다고 일반적으로 인식되지만, 북한이 ‘새로운 길’을 가지도 미국이 더욱 강경한 대북정책을 추진하지도 않는 경우이다. 물론, 북한은 자신들이 협상에서 후퇴한 것이 아니라는 신형 SLBM 등 한반도 및 주변을 겨냥한 무기체계를 지속 시현할 것이지만 핵·미사일 모라토리움은 유지된다. 미국 역시 북한이 뚜렷한 비핵화 조치를 약속하지 않은 상태가 지속되지만 그렇다고 2017년으로 돌아가기에는 다른 대안이 뚜렷하지 않은 경우이다. 마치 2008년 12월 이후 『6자회담』이 사실상 작동불가의 상태에 이르렀음에도 누구도 이에 대한 종결 선고를 내리지 않고 있는 상황과 유사하다. 물론, 이 사태전개 하에서는 추가적인 정상회담은 없으며, 내년도에도 간헐적인 실무협상 재개 시도가 뒤따를 것이다.

세 번째 전개방향은 ‘북한의 체면을 살린 타결’이다. 북한의 ‘명분 있는 후퇴’와 미국의 ‘관리’ 정책이 결합된 결과이다. 즉, 스톡홀름 실무협상에서 제시된 미·북 양측의 교환조치가 그대로 작동되는 것이다. 다만 이는 구체적 이행에 있어 적지 않은 시간을 필요로 하고, 북한 시설 폐쇄에 대한 검증 논란이나 대북 양보에 대한 미국 국내적 논쟁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합의된 과정이 그대로 이행될지도 불투명하다. 북한 역시 협상 결렬을 선택하기가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선택한 대안이고 제재 부담을 일정부분 감내해야 하는 만큼, 언제든 입장을 바꿀 수 있다. 이는 트럼프와 김정은 누구도 협상의 결렬을 선언하고 다른 길을 갈 결심이 되어있지도, 그렇다고 상대방에 대폭 양보를 할 여건도 충분치 않을 때 실행될 수 있다. 미·북 양자 모두 연말의 시한을 넘겨 상황이 ‘협상 결렬’로 해석되는 것을 원치 않으므로, 이러한 상황전개가 현실화될 경우, 11월경의 미·북 추가 실무협상에서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이는 결국 문제의 또 다른 유보에 불구하기에 내년 초까지는 실무협상 혹은 폼페이오-리용호 선의 고위급 회동 정도가 개최될 수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적절한 상징성을 포장할 여지가 형성되었을 때 2020년 상반기 중 3차 미·북 정상회담을 예상해 볼 수 있다. 유의해야 할 점은 ‘명분’을 만들기 위해 북한이 대북제재 해제 분야에서의 양보보다는 체제안전보장 측면에서 더 많은 미국의 양보를 북한이 요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경우 모든 한·미 연합 연습/훈련의 중단(철폐), 한반도내 미국 전략자산의 영구 중단 약속 등을 재차 요구할 수 있다.

<향후 미·북 협상 관련 예상 가능한 경우의 수>

 

미국측 조치

북한측 조치

비핵화 개념

3차 정상회담

大타결로의

반전

대북제재 사실상

전면 해제,

연락사무소

조기 설치,

일부 연합훈련

유예 지속

영변 시설 및

일부 상징적

추가시설 해체

방침 발표,

검증원칙

미동의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의

모호성 유지

2020년 초

결렬 이후의

정적

대북제재 유지,

대북 군사조치

미검토,

협상 지속 천명

일부 핵시설

가동 혹은

신형 무기체계

시현,

모라토리움은

유지

미타결

없음

북한의 체면을

살린 타결

대북제재 일부

유예/완화,

연락사무소

설치,

연합훈련/전략

자산전개

전면 중단

영변 시설 해체

및 추가적 조치

(농축 중단),

검증의 일부

방식에만 합의

북한측 의무

강조

2020년 상반기

5. 한국에의 시사점: 어떤 대응방향이 최선인가?

위의 세 가지 예상 진행방향 중 하노이에서 나타난 미·북의 태도와 전략을 고려해 볼 때 가장 가능성이 큰 것은 세 번째의 경우의 수, 즉 “북한의 체면을 살린 타결”이고, 이 방향의 사태 전개가 우리에게는 가장 유리하기도 하다. 어쨌든 협상국면은 유지가 되면서 북한 핵 능력을 실질적으로 해체할 수 있는 기반이 더욱 굳어지기 때문이다. ‘진정한 일괄타결’을 통해 단기간 내에 북한 핵능력의 폐기를 유도하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1990년대의 제네바 합의 이후의 상황이나 2005년 『9.19 공동선언』 이후의 상황전개를 고려할 때 이는 현재에는 기대하기가 힘들다.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이는 사실상 북한의 ‘백기투항’이며, 트럼프 행정부가 적극적인 북핵 해결 의지로 전환했을 때에 성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미·북간 북한의 명분을 살리기 위해 한·미 동맹이나 연합 연습/훈련 등을 거래대상으로 삼을 수 있음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2018년 이후 한·미 동맹의 해체나 주한미군의 철수를 공개적으로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연합 연습/훈련의 전면 중단 요구는 사실상 장기적으로 이를 실현하기 위한 첫 단계 조치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즉, 북한의 접근방식이 세련화된 것이지 입장이 변화된 것이 아니란 점에 유의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로서는 오히려 한반도 평화체제 관련 부분이나 남북 경협사업의 재개(혹은 제재 면제/예외)가 추가되는 방식으로 북한의 명분을 살리자는 쪽의 접근이 필요하다.

두 번째로 가능성이 큰 ‘결렬 이후의 정적’은 북한에게 중요한 양보를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유리하지만, 미국과 북한의 실제 정책에 관계없이 주기적인 ‘한반도 위기론’이 대두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다. ‘大타결로의 반전’은 일견 가장 바람직해 보일 수도 있으나, 문제의 또 다른 유보라는 점에서 우리에게는 가장 불리한 결과를 강요할 것이다. 이 방향으로의 사태전개는 결국 북한의 ‘핵군축회담’ 논리의 수용이라는 점에서 북한의 한국에 대한 전략적 우위를 사실상 고착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大타결’의 이면에서 한·미간의 상호 불신이나 한국의 소외를 야기할 수도 있다. 북한의 입장에서 남북한 관계가 자신들의 의도에 따라 언제든 속도와 폭을 조절할 수 있는 ‘상수’라는 인상을 강화시킴으로써 중·장기적인 화해·협력에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때문에 우리로서는 혹시라도 이 방향의 상황전개를 반기기보다는 경계해야 한다.

이 시점에서 우리도 이제 미·북간의 ‘타결’이 과연 절대적인 미덕인가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타결’ 자체보다는 타결의 방향과 내용이 더욱 중요하며, ‘연내’에 어떠한 사건이나 이벤트가 일어나는가 아닌가는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에 속한다. ‘3차 미·북 정상회담’이나 김정은의 부산방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이 일어나는 맥락이 더욱 중요하다는 접근이 필요하다. 그런 자세가 결여된 상황에서는 미·북간 중요한 타결이 실제로 이루어진다고 해서 남북한 관계와 한반도 평화가 비례적으로 증진되지 않는다는 현실을 깨달아야 한다. 상황 판단에 있어 우리의 선호가 강하게 반영된 ‘희망적 사고’ 역시 경계해야 한다. 스톡홀름 실무협상 전에 일어난 존 볼튼이 해임과 관련된 상황해석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현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오히려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평양을 초조하게 만드는 일이다.@

 

저작권자 © SPN 서울평양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