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의 방향과 과제: '보호'에서 '통합'으로, 통일연구원>

(김수경 북한인권연구센터 부연구위원)

최근 문재인 정부는 ‘생활밀착형’ 북한이탈주민 정착 지원을 100대 국정과제의 하나로 발표했다. 정착보조금이나 주거지원과 같은 일회성 지원이 아닌, 북한 이탈주민의 정착을 장기적 관점에서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돕겠다는 것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북한이탈주민 정책의 기조가 ‘통합’에 방점을 두고 있음을 시사한다. 탈북의 역사가 길어지면서 탈북의 동기나 유형도 변화하였고, 그에 따라 정부의 정책기조도 수정되었다. 초기 탈북자에게는 신변보호와 경제 적 지원이 우선되었다면 대량탈북이 발생한 이후로는 (경제적) 자립과 자활에 초점을 맞췄다. 

그리고 최근에는 탈북자들을 한국사회의 건강한 시민으로 편입 시키고자하는 사회통합의 의미가 강조되고 있다.

과거에는 북한이탈주민 역시 남한 주민들과 동일한 민족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한국사회 정착이 이루어질 거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북한이탈 주민이 적응에 여러 어려움을 겪고 많은 경우 취약계층으로 전락하면서 이들의 적응에 대한 보다 적극적 개입이 요구되고 있다. 

특히 최근 북한이탈주민의 탈남 및 재입북 사례가 발생하면서 탈북자의 사회 부적응 문제가 제기되기도 하였다. 전체 남한 입국 탈북자에 비하면 재입북 사례는 매우 적은 수에 불과하지만 탈북자 중에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 경제적 어려움, 사회부적응 등으로 “다시 북한이나 갈까”하는 생각을 가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탈북자의 ‘통합’이 강조되는 것은 현 시점에서 매우 타당하고 시의적절한 정책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탈주민 정착 문제의 탈정치화

북한이탈주민의 ‘통합’을 용이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이들의 정착문제를 북한에 관련된 여타 문제와 분리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북한 관련 사안은 진보와 보수세력 간의 이념 대립이 첨예하게 이루어지는 영역이기 때문에 탈북자 통합 문제가 대북정책의 연장선상에서 논의될 경우 이들의 정착 문제가 이념 논리에 휘둘릴 우려가 있다. 

그러한 점에서 북한이탈 주민을 ‘통일의 역군’으로 거론하며 통일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인식하는 접근은 이들의 통합에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지원은 북한이탈주민 본인의 인권을 증진하고 나아가 한국사회 내부의 결속을 다지는 데 좀 더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이는 최근 한국을 방문한 토마스 오헤아 킨타나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의 탈북자 관련 언급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지난해 집단 탈북한 여성 종업원 문제를 남북 양측이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고 탈북자 개개인의 이익과 안전 보호에만 집중해줄 것을 촉구했다. 

북한이탈주민이 한국에 입국하기까지는 많은 정치적, 외교적 요인들이 작용할 수밖에 없지 만, 일단 한국에 입국한 뒤부터는 이들의 정착이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한다. 그러한 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생활밀착형’ 정책은 북한이탈주민이 겪어온 실질적인 어려움을 보다 구체적 으로 해소해줄 것이라 기대된다.

생활밀착형' 정착지원 정책 개발

‘생활밀착형’ 지원방안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북한이탈주민의 다양한 형편과 처지에 대한 ‘맞춤형’ 지원이 제공되어야 한다. 북한이탈주민 정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범하기 쉬운 오류는 북한이탈주민을 하나의 균질한 집단으로 가정하는 것이다. 

북한이탈주민은 성별, 연령, 교육수준, 탈북동기, 출신지역 등이 모두 다른 복합적, 다층적 집단이다. 당연히 이들 이 한국사회 정착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은 다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탈북 대학생은 학업 에 어려움을, 결혼한 탈북 여성은 출산이나 보육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특히 장애인, 노인 등 북한이탈주민 내부에 존재하는 이중적(二重的) 취약계층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노후 대책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한 북한이탈주민 노인층에게 직업교육, 자립역 량강화, 자산 형성 지원 사업 등은 사실상 큰 의미가 없다.

따라서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좀 더 세분화된 접근과 다양한 정책 수요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먼저 북한이탈주민의 인구학적, 사회경제적 배경을 충분히 인지하고 이에 따른 정책수요를 조사해야 한다. 예를 들어 결혼이주여성의 경우 지원정책을 정착주기별로 나누어 결혼 준비, 입국, 출산 및 자녀양육, 경제적 독립 등으로 세분화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정책이 가부장제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여성학적 관점의 비판도 일리가 있지만, 결혼이주여성이 이 정책으로 상당한 도움을 받는 것 또한 사실이다. 

북한이탈주민 은 결혼이주여성과는 매우 다른 사회적, 정치적 맥락에서 유입된 소수자 집단이지만 이들의 정착을 생애주기별로 세분화하여 연령과 성별에 맞게 적용한다면 탈북자 정착지원이 좀 더 구체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정책이 효율적으로 집행될 수 있도록 지원시스템을 보완해야 한다. 먼저 북한이탈주 민 지원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이 중앙정부까지 전달될 수 있도록 중앙정부, 지방자치단 체, 민간단체 간의 긴밀한 상호 교류가 가능해져야 한다. 

또한 북한이탈주민의 정착지원은 주무부처인 통일부를 중심으로 고용노동부(취업지원), 교육부(교육지원), 여성가족부(여 성탈북자 지원), 행정자치부(주민등록, 지역보호 등) 등 여러 부처 간의 조정이 필요한 일이다. 

업무가 중복되지 않고 효율적으로 집행될 수 있도록 ‘북한이탈주민 사회통합위원 회’와 같은 협의기구의 재량이 강화되어야 한다.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이해와 존중

‘생활밀착형’ 지원이 강조된다는 것은 그만큼 남북한 구성원 간의 이질성을 전제할 수밖 에 없다. 분단의 역사가 길어질수록, 전혀 다른 사회적 배경에서 살아온 북한이탈주민에게 단지 ‘핏줄’이 같다는 이유로 자연스러운 적응을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되었다. 

그동안 통일에 대한 규범적 당위성 때문에 남북한 주민의 이질성 심화에 대한 논의는 활발히 펼쳐지 지 못했다. 

그러나 앞으로의 북한이탈주민 정책은 이들이 갖는 이질성의 내용과 성격을 밝히고 상호 이해와 존중을 통해 이를 좁히는 데 집중해야 할 것이다. 이질성을 좁히기 어려운 영역은 그 이질성으로 인해 차별이나 소외가 발생하지 않도록 법적, 사회적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이질성에 대한 상호 이해를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교육 못지않게 남한주민들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2016년 통일연구원이 실시한 북한이탈주민 설문조사 에서 63%의 응답자가 “남한사회가 탈북민을 편견에 찬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진술에 동의 하였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북한 사회에 대한 이해를 돕는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이를 지방자치단체 및 지역NGO와 연계해 남한주민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초·중·고등학교에서 실시되고 있는 통일교육을 강화하고 교육의 초점도 달리 할 필요가 있다. 현재 통일교육은 도덕이나 사회 교과안에서 가르치거나 일회성 강의 또는 행사를 통해 진행되고 있다. 

또한 그 내용도 국토의 통일, 민족공동체의 회복 등 통일의 당위성을 설득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높이기 위해서는 ‘소수자 차별금지’라는 포괄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민족주의가 약화되고 다양성의 가치가 확산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이해를 요구하는 것은 공감을 얻기 어려우며 사회통합이라는 대의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북한이탈주민 정책과 일반복지 정책과의 조정

북한이탈주민 정책을 추진함에 있어 고려해야 할 중요한 사안 가운데 하나는 일반복지 정책과의 형평성 문제다.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대한민 국 정부는 북한이탈주민을 “인도주의에 입각해 특별히 보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4조 1 항). 

여기에는 국내의 취약계층에 대한 복지도 중요하지만 북한이탈주민의 특수한 사정을 우선적으로 배려한다는 취지가 담겨 있다. 그러나 이러한 ‘특별한’ 법적 지위가 북한이탈주 민의 자립의지를 약화시켜 오히려 사회통합에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다. 

과거 독일의 경우 서독은 동독이탈주민에게 자기 책임을 강조하고 서독주민에게 요구되는 사회원칙을 동등하게 적용했다.

남한사회 내부에도 양극화가 심화되고 취약계층이 확대되면서 북한이탈주민에게 주어지 는 지원정책이 ‘역차별’이라는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탈북자에 대한 ‘특별한’ 지원 정책이 그만큼 국민에게 설득력을 잃고 있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탈북자를 다문화 정책의 프레임 안에서 다루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한다. 탈북자의 상당수가 다문화 적 접근에 거부감을 보이고 있어 좀 더 신중히 결정해야 할 문제이긴 하지만, 탈북자를 여타 이주민 집단과 다른 특수한 집단으로 대우하는 것은 탈북자 적응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는 의견에 대해서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차라리 북한이탈주민 정책 가운데 일반적 복지와 통합이 가능한 영역은 통합하고, 특수성이 고려되어야 하는 일부 문제에 대해서만 특별한 지원 정책을 펴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일 것이다.

가치관의 통합과 화합

‘생활밀착형’ 정착 지원방안을 추진함에 있어 북한이탈주민의 실질적 애로사항을 해결하 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가치 적응’이다. 가치는 단지 추상적인 개념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일상의 행동양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대표적인 것이 성평등 규범에 대한 이해다. 북한 사회의 가부장적 문화에 익숙한 북한이탈주민은 남성을 우위에 둔 성차 별 인식을 가지는 경우가 많아 대인관계는 물론 가족생활을 영위함에 있어 갈등이 발생할 소지가 크다. 

따라서 북한이탈주민의 정착을 모색함에 있어 가치관의 통합 및 화합이 중요 하며 이들의 적응을 돕는 과정에서 성인지적 관점이 중요하게 개입될 필요가 있다.

이와 연장선상에서 북한이탈주민들에 대한 인권교육이 강화되어야 한다. 한국이라는 민 주사회의 시민이자 세계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해 ‘인권’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다. 

국가인 권위원회가 실시한 ‘2016년 북한이탈주민 인권의식 실태조사’에 따르면 99%의 응답자가 인권교육의 필요성을 긍정한 반면 실제 인권교육을 받은 비율은 44%에 그쳤다. 북한이탈주 민의 다수가 북한 사회 내부에서, 그리고 탈북 과정에서 심각한 인권침해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인권의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해 피해 사실을 인식하지 못할 경우가 많다. 

이들 의 인권의식이 고양되면 남한 사회 적응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여러 경로를 통해 북한에 두고 온 가족 및 지인들에게 인권의 개념을 전달할 수 있어 결국 통일을 앞당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맺음말

사회통합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느 한 쪽의 일방적 동화가 아닌, 쌍방의 적응과 노력을 유도해내는 것이다. 지금까지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 정책의 대부분은 탈북자의 동화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생활밀착형’ 정착 지원 역시 통합에 대한 탈북자들의 의지 와 노력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남한 사회의 인식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노력 또한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통합정책을 펴는 과정에서 남한 주민들의 적극적 개입과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통일의 규범적 당위성에 기댄 정서적 호소로는 충분치 않으며 실질적인 인센티브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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