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ES현안진단> 9월 평양공동선언 1주년에 즈음하여 “남북 군사합의는 준수되어야 한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1년 전 가을, 남과 북은 「9월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남북관계와 비핵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데 성공했다.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인 이행방안을 논의하고 세부적인 합의사항을 「9월 평양공동선언」 5조에 담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비핵화에 대한 남북 간 합의라기보다는 남북관계가 비핵화를 위한 북미대화의 촉진제이자 남측의 중재자 역할을 명확히 했다. 남북관계는 군사문제 합의를 통해 되돌릴 수 없는 평화의 시대라는 역사적 이정표를 그렸다. 항상 뒷전으로 밀려 있던 남북 군사문제를 앞세워 군사적 위협과 전쟁의 위험을 종식시키고 남북한 주민의 삶에 평화를 일상화했다. 이것은 지난 한 해 남북 정상이 맺은 「4.27 판문점 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의 가장 중요한 성과로 평가받아야 함이 마땅하다.

2018년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9월 평양공동선언」 서명 직후 별도로 두 정상이 임석한 가운데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노광철 인민무력상이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에 서명했다. 이 군사합의서로 「9월 평양공동선언」의 1조를 구성하고 별도의 부속합의서로 채택했다. 남북관계사에 있어 처음 있는 일이다. 평양 정상회담과 공동선언의 중심이 5조의 비핵화가 아닌 1조의 남북 군사문제임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이는 남북관계와 한반도 비핵평화에 있어 군사문제를 앞세우는 선군(先軍)적 발상의 전환(paradigm shift)이기도 하다.

남북은 「9월 평양공동선언」 이후 합의를 이행해 나가기 위한 용기 있는 시간을 보냈다. 특히 「군사분야 이행합의서」를 통해 우발적 충돌 방지와 DMZ 평화지대화를 위한 실질적인 조치를 이행한 것은 남북관계 최고의 성과로 평가받기에 충분하다. 지상과 해상, 공중에서 완충구역이 생겼고, 상호 적대행위가 중단됐다. 근접한 11개의 GP(감시초소)가 우선 철거되었고, JSA(판문점 공동경비구역)를 비무장화했다. 남북공동유해발굴을 위해 지뢰를 제거하고 도로를 연결해 남북한 군인이 만나는 명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합리적 안보 우려라는 기우를 넘어 일부에서 우리 군의 무장해제니 안보포기라고까지 하는 것은 오히려 우리 군을 모욕하고 누워서 침을 뱉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지난 한 해 우리의 국방정책은 더 충실해졌고, 우리 군은 더 단단해졌다.

남북 간 군사적 문제 해결 노력은 남북관계를 단단히 떠받치고 평화체제와 비핵화를 여는 열쇠이자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평화체제를 연결하는 연결고리이다. 경제문제도 중요하지만 군사문제는 「정전협정」 체제 하에서 남북관계와 비핵화, 북미관계가 상호 동행하고 긍정적으로 병행하며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동시에 남북관계가 비핵화와 평화체제, 북미관계 개선으로 나아가는데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할 수 있는 방안이다. 선제적인 군사적 충돌방지 및 군사적 긴장완화 실현 등 적극적인 초기 군비통제정책 시행을 통한 「정전협정」의 준수가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요건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월 평양공동선언」이 있은 지 1년이 지난 시점에 우리 앞에는 아직도 더 많은 숙제와 난관이 놓여있다. 남북이 맺은 비핵화 약속은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렸던 제2차 북미정상회담으로까지 이어졌지만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북한의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던 탓인지 지금은 남북관계마저 정체돼 있다. 한미연합훈련 속에 지난 여름에만 북한은 8차례 미사일과 방사포를 쏘아 올렸다. 우리의 일상에서 평화가 떠나고 다시 전쟁의 공포가 되살아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아직 2017년 이전 핵실험과 미사일이 날아다니던 시절을 떠올리며 희망을 버리지 않는 이유는 남북이 맺은 군사합의가 살아서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는 준수돼야 한다, 무엇보다 「군사분야 이행합의서」의 이행과 비핵화 및 북미관계 진전은 분리하여 추진할 필요가 있다. 제재와 무관한 남북 군사문제 진전을 통해 역진불가한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체제를 위한 추동력을 제공하기 위해서 한 단계 업그레이된 ‘군사합의 2.0’을 모색해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북군사공동위원회’의 조속한 설치 및 가동으로 합의사항 이행 및 남북 군사문제 협의의 체계화가 하루 빨리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향후 남북 군사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과 발전은 남북 간 군비경쟁에서 벗어나 ‘평화의 제도화’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남북한 군사문제의 해결이 어려웠던 것은 ‘방안의 빈곤’ 때문이 아니라 상호불신에 따라 실천하려는 ‘정치적 의지의 빈곤’과 여건의 문제였다. 향후 남북 간 군사합의 사항을 실질적으로 이행해나가고 군비통제의 영역으로 확대해나가기 위해서는 정치적인 ‘선전형 제의’보다는 상대방의 수용 가능성을 높이는 대안의 개발과 정교화가 필요하다. 이는 모든 남북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남북 군사문제에 있어 가장 큰 문제는 북한이 적극적으로 협상에 임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한다면 무엇보다 북한이 남한과의 군사대화에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우리는 강력한 대북 군사력을 바탕으로 북한이 군사적 위협을 느끼고 이러한 위협을 해소하기 위해 남북 간 군사대화의 장에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을 효과적인 방법으로 인식해왔다. 강력한 힘에 바탕을 둔 협상은 군비통제이론의 주된 명제의 하나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남북관계에 있어서도 그러한 명제가 북한을 대화의 테이블로 나오게 강요해 협상의 주도권을 확보하고 군사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한 번 더 생각해봐야 한다. 남북 군사대화의 목표를 변화된 현실에 맞게 재설정하기 위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반도 비핵평화와의 필수불가결한 연계가 있어야 함은 물론이고 국방정책 및 국가전략과의 연계성도 확보해야 한다. 여기에 국민적인 공감대와 합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정책 추진의 투명함과 솔직함이 더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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