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경쟁의 미래 - 무역 편] 미중 무역전쟁: 다차원적 복합 게임

이승주

EAI 동아시아연구원

편집자 주

EAI는 중국의 미래 성장이 인류의 공생과 지속 가능한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바람직한 아태 질서 설계도를 마련하고 한국의 역할을 제시하고자, 2018년부터 “중국의 미래 성장과 아태 신문명 건축”이라는 중장기 연구사업을 기획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본 사업의 첫 단계 연구가 마무리됨에 따라, EAI는 그간의 연구 성과를 지난 4~5월에 걸쳐 영문 워킹페이퍼 시리즈로 발간하였습니다. 그 후속 시리즈로, EAI는 미중 관계의 미래를 조망하는 4편의 보고서로 구성된 “미중 경쟁의 미래: 4단계 경쟁 동학" 스페셜 이슈브리핑 시리즈를 기획하였습니다. 

그 시리즈의 첫 번째 보고서로, 이승주 EAI 무역•기술•변환센터 소장(중앙대 교수)이 집필한 미중 무역전쟁에 관한 이슈브리핑을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미중 무역전쟁이 단일 쟁점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여러 쟁점과 연계되어 전개되고 있고, 미중 양자 차원뿐만 아니라 우방국을 포함한 다자 차원에서 협력과 갈등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다차원적 복합 게임’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미중 무역전쟁이 복합적 성격을 띠게 된 것은 그 근저에 ‘패권경쟁’의 요소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양국 간 무역전쟁이 점차 세계경제질서 재편을 위한 시스템 경쟁으로 확대되면서 지구화,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합니다.

 


 

들어가며

트럼프 행정부가 공세를 취하는 측면이 부각되고 있지만, 미국과 중국이 전개하는 게임의 내면은 매우 복합적이다. 이는 문제의 원인이 복합적인데 따른 불가피한 현상이다. 현재까지 전개된 무역전쟁에서 미중 양국은 전선을 확대하고 주요 쟁점에 대하여 자국의 입장을 강경하게 고수하여 갈등 수위를 높이면서도, 결정적 파국에 이르는 선택은 회피하는 ‘투이불파’(鬪以不破)의 양면성을 보이고 있다. 무역 불균형 문제에서 시작하여 전선을 기술 및 산업정책, 기술 탈취, 발전모델의 문제로 확대하고, 이 과정에서 수차례 무역협상을 결렬시키는 등 미중 양국은 확전을 과감하게 선택하기도 하였으나, 결정적 순간에는 다시 협상을 재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한편, 미중 무역전쟁은 일차적으로 미국과 중국 사이의 분쟁이지만, 경제적 파급 효과와 세계 경제 질서에 미치는 영향력은 지구적이다. 현재의 무역전쟁은 미국과 중국의 게임이지만, 동시에 주요국들이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지구화된 게임임을 의미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동맹국들에게 화웨이 장비를 설치하지 않도록 요청하고(Sanger 2019/1/26), 중국이 이에 대응하여 화웨이(华为技术有限公司: Huawei)와의 관계를 유지하도록 주요 다국적 기업들에게 요청한 것은 이미 미중 무역전쟁이 지구화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Corera 2019). 또한 트럼프 행정부가 발표한 대로 중국산 수입품에 25%의 관세가 부과되고, 중국 역시 미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5~25%로 인상할 경우, 2021년 미국과 중국의 GDP는 각각 0.2%, 0.5%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역 전쟁이 자본 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경우, 미국과 중국의 GDP 감소폭은 0.7%와 0.9%까지 확대되고, 세계 경제를 약 6,000억 달러 감소시키는 효과를 초래할 것으로 추산된다(Holland and Sam 2019). 이처럼 미중 무역전쟁은 양국 간 무역 불균형을 완화·해소하는 차원을 넘어서 미래 경쟁력의 선제적 확보와 세계무역질서의 개혁을 둘러싼 갈등이기도 하기 때문에, 일회성 현상이라기보다는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문제이다. 그런 점에서 미중 무역전쟁은 갈등의 지구화와 상시화를 촉발할 가능성이 있다.

 이 글은 미중 무역전쟁이 ‘다차원적 복합 게임’의 양상을 보이고 있는 데 주목한다. 다차원적 복합 게임은 미국과 중국이 단일 쟁점이 아니라 여러 쟁점을 긴밀하게 연계하고 갈등과 제한적 타협이라는 이중 동학을 전개하는 동시에, 양자 협상을 중심축으로 하되 향후 다자 수준의 협상과의 연계를 고려하여 진행하는 게임을 말한다. 다시 말해, 미국과 중국은 (1) 무역 불균형의 시정, 공급 사슬의 재편, 기술경쟁 등 다양한 쟁점들을 동시다발적으로 제기하고 있으며, (2) 지정학적 이해관계가 투사된 패권경쟁을 무역전쟁에 투사하며, (3) 경쟁과 갈등의 장으로서 양자/지역/다자 구도를 긴밀하게 연계하여 자국에 유리한 세계경제질서를 구축하는 게임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미중 무역전쟁에는 무역 불균형, 첨단 기술의 지적재산권 탈취, 정부 보조금과 규제 장벽을 포함한 불공정 무역 관행, 미래 경쟁력, 중국 발전 모델에 대한 근본적 문제 제기, 패권 경쟁 등 다양한 요인들이 혼재되어 있다. 미중 관계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갈등과 경쟁이 비교적 단기간에 광범위한 쟁점 영역에 걸쳐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후 미국과 소련의 경쟁의 경우, 체제 경쟁의 성격을 가졌으나 기본적으로 군사안보 분야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1970년대 이후 본격화된 미일 무역분쟁에서 미국은 양자 차원에서 공세적인 조치를 취하기도 하였으나, 궁극적으로 G7이라는 글로벌 거버넌스 안에서 일본과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식을 취했다(Beeson and Bell 2009). 반면, 미중 무역전쟁은 경제와 안보 분야의 경쟁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경제 분야 내에서도 무역 불균형 및 기술혁신, 산업정책, 발전모델 등 다양한 쟁점에 대한 갈등이 짧은 기간 내에 압축적이고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면에서 과거 사례와 차별화된다.

갈등의 압축적·동시다발적 진행은 갈등의 효과적 관리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된다. 우선, 미중 관계의 불확실성이 증폭될 가능성 높다. 갈등이 압축적이고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됨에 따라 사전에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초래될 가능성이 상존하기 때문에 양국 관계의 불확실성이 커지게 된다. 뿐만 아니라 개별 분야의 갈등 수준과 총체적 갈등 수준 사이에 인식의 불일치가 발생할 수 있다. 갈등이 여러 쟁점에 걸쳐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된다는 것은 대다수 쟁점에 대해 합의의 기반이 마련되었다고 하더라도 일부 쟁점에서 이견이 남아 있을 개연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정 쟁점에 대한 이견이 부정적 영향을 끼쳐 총체적 갈등의 수준을 높이는 예기치 않은 결과가 초래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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