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0주년에 벌어진 일본의 경제도발
 
올해는 일제 식민지 지배에 항거해 100만 명이 넘는 민중들이 독립을 외친 3.1운동이 일어난 지 꼭 100년이 되는 해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독립을 외친 수천 명의 우리 민중들을 총칼로 무자비하게 학살했다. 이를 계기로 중국으로 망명한 애국지사들이 그 해 4월 11일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1절 기념사에서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계기로 새로운 100년을 내다보는 신한반도체제를 제시하였다.
 
또한 올해는 아키히토 일왕이 31년간의 재위를 마치고 새로운 일왕이 등장해 ‘레이와(令和)’라는 연호를 가진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선포한 해이기도 하다. 나루히토 일왕이 1960년생, 아베 총리가 1954년생으로 일왕과 총리가 모두 전후 세대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국민들은 일본이 과거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의 과오를 되돌아보면서 한일 간에 새로운 시대를 열어나가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한국의 주력상품인 반도체 제조에 들어가는 3개 핵심소재에 대해 수출규제에 착수한 데 이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 국가에서 제외하려는 등 본격적인 경제보복조치에 나서고 있다. 이것은 총칼 대신 경제를 앞세워 제2의 침략을 감행하는 것과 진배없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고 일본도 새 일왕이 즉위한 의미 있는 해에 일본 정부가 자숙은커녕 또다시 경제보복조치라는 공격을 가해온 것은 한일 양국관계의 미래를 파괴하고 양국 국민의 기대를 저버린 만행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근로자 강제동원 문제의 본질은 한일합방의 합법성 여부
 
일본의 아베 정부는 처음에 경제보복조치의 이유로 일제의 노동자 강제동원에 대한 우리 대법원 판결이 낳은 신뢰관계의 훼손을 내걸었다. 하지만 그런 이유라면 일본을 상대로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할 시 우리에게 승산이 높다. 그렇다 보니 일본 정부는 다시 한국에 수출한 일본산 전략물자가 북한으로 들어가는 등 무역관리가 제대로 안 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근거 없는 얘기를 꺼내들었다. 
 
하지만 오히려 일본이 대북 제재품목을 북한으로 여러 차례 반출했으며 이란 등 친북국가들에게 대량살상무기 물자를 밀수출한 게 밝혀져 일본 측 주장이 허구임이 드러났다. 이처럼 일본은 자신들의 경제보복조치가 WTO 규정에 위반되고 사실과도 맞지 않자 그 이유를 두고 이리저리 말을 바꾸고 있다.
 
그렇다면 최근 한일 갈등의 직접원인이 된 일제의 근로자 강제동원 문제란 무엇인가? 2003년 일본 최고재판소는 한국인 근로자 강제동원의 피해배상에 대해 한일 양국이 맺은 청구권협정에 의해 개인에게 배상할 책임이 없다고 판결하였다. 그러자 피해자들은 한국에서 다시 재판을 청구해, 2012년 5월 24일 대법원의 파기환송에 따라 2013년 서울고등법원이 피해자 1인당 1억 원씩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에 일본기업이 불복하면서 대법원으로 올라가 5년 2개월만인 2018년 10월 30일에 대법원이 확정 판결했다.
 
여기서 쟁점은 일본 재판의 효력을 인정할 것인가 하는 것과 현 일본기업이 일제 때의 전범기업을 계승했는가, 청구권 시효는 유효한가 하는 문제다. 2012년 5월 24일 대법원은 일제강점기의 강제동원을 합법으로 보고 있는 일본재판부의 판결이 대한민국 헌법의 취지에 어긋나며, 현 일본기업(일본제철, 미쓰비시 등)은 일제 때의 전범기업을 승계한다고 볼 수 있다고 명시했다. 또한 한일합방 및 한일기본조약이 공개되지 않아 불가피하게 피해자들이 청구권을 행사하지 못한 것이라 청구권 시효인 10년 기한도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결하였다.
 
이 문제의 본질은 한일합방의 합법성을 둘러싼 이견이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한일합방이 합법이기에 배상이 필요 없다는 입장인 반면, 우리 대법원은 한일합방이 불법이므로 한국인 근로자 강제동원도 불법이고 따라서 일본 전범기업들이 직접 피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하면서 대일 청구권 자금을 지급했기 때문에 일본전범기업들이 배상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한일 정부 모두 ‘개인청구권은 소멸하지 않았다’는 데 대해서는 인정하고 있다. 다만, 일본은 한국 정부에 청구권 자금을 주어 이미 해결했으므로 한국 정부가 나서서 노동자 강제동원에 대해 배상하라는 것이고, 한국은 전범기업과 피해자 간의 문제로 개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과 양승태 대법원장이 2012년 대법원 판결을 뒤집기 위해 한국인노동자 강제동원 소송을 지연시키고 사건을 대법원 전원합의체로 넘긴 것이 드러났다. 이것은 박근혜 정부가 박정희 정부 때 체결된 한일기본조약의 정당성에 대한 논란을 막고 위안부 문제 합의를 성사시키기 위해 벌인 불법적 담합행위였다. 2018년에 이르러 결국 대법원은 일본 전범기업들이 피해자에게 배상하라고 최종 판결한 것이다.
 
일본이 경제보복조치에 나선 연유
 
일본 정부는 문재인 정부가 박근혜 정부와 달리 대법원 판결에 개입하지 않은 데 대해 강하게 불만을 갖고 있다. 이제라도 우리 정부가 개입해서 일본제철, 미쓰비시 등 한국 내 일본전범기업의 자산압류를 막아달라고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일본의 경제보복조치에 굴복해 우리 대법원 판결을 무시한다면, 우리 정부 스스로 사법권을 훼손하는 것일 뿐 아니라 한일합방이 합법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는 일본 최고재판소의 판결을 인정하는 셈이 된다.
 
문재인 정부는 미래 지향적인 한일관계를 위해 위안부나 노동자 강제동원 문제와 같은 과거사 문제와 외교안보‧경제 현안을 분리해서 대응한다는 투트랙 전략을 취해 오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이러한 접근법을 거부하고 과거사에 대한 우리 측의 처리방식을 구실 삼아 경제보복조치를 감행해 온 것이다. 어떻게든 진지한 반성 없이 과거사 문제를 덮어버리려는 몰염치한 태도다.
 
아베 현 정권이 갖고 있는 우리 정부에 대한 불만은 이해할 측면이 없지는 않다.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명분으로 추진해온 일본의 재무장이 한반도 평화 분위기 조성으로 도전을 받고 있을 뿐 아니라 ‘일본 패싱’까지 이루어지고 있다. 방사능오염 우려가 있는 일본 몇 개 지방의 수산물 금수조치에 대해 WTO에 한국 정부를 제소했다가 패배했고, 일본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성과도 남·북·미 판문점 회동으로 외교적 성과가 묻혀버렸다.
 
일본의 보복조치는 2012년 5월 대법원의 파기환송 때부터 시작됐다. 일본 외무성은 홈페이지에 한국을 ‘기본가치를 공유하는 이웃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이웃나라’로 표현을 바꾸었다. 2015년 2월에는 만기가 도래하자 통화스와프를 종료시켰다. 작년 10월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자 본격적으로 한국에 대한 보복조치를 준비했다. 작년 11월 이미 반도체 세척용 불산의 한국 수출을 제한했고, 금년 1월 23일 발생한 우리 해군 대조영함에 대한 일본자위대 해상초계기의 저공 위협비행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7월 21일의 참의원 선거에서 보수표 결집도 할 겸 G20 정상회의가 끝난 직후로 경제보복조치의 타이밍을 정한 것이다. 앞으로 일본 정부는 참의원 선거 이후 상황을 보아가며 중의원도 해산해 새로 선거를 치룬 뒤, 내년 도쿄 하계올림픽 열기가 고조됐을 때 국민투표에 부쳐 개헌안을 통과시키려는 구상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일 갈등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일본의 경제보복조치는 총칼만 들지 않았지 우리나라를 굴복시키려는 사실상의 침략으로 볼 수 있다. 지금 일본이 원하는 것은 1965년 한일기본조약의 불평등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지만,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우리에게 더 이상 불평등관계는 용납될 수 없다. 우리 정부는, 아니 우리 국민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일본과 서로 교류하고 협력하며 상생의 관계를 맺으며 잘 지내고 싶지만, 단기적인 경제이익을 위해 국가와 민족의 자존심을 팽개칠 수는 없다.
 
일본의 경제도발에 대해 우리 정부는 중장기 대책과 함께 단기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일본의 도발이 이미 2012년 대법원 파기환송 때부터 시작됐음에도 정부에서 사전대책 마련에 미흡했다는 점은 유감이다. 하지만 이제라도 정부, 기업, 국민이 합심하여 지혜를 모으고 대책을 마련하여 대응해 나가야 할 것이다. 
 
먼저, 중장기적으로는 일본에서 수입하는 첨단소재의 국산화를 추진하고 아울러 수입선을 다변화하여 탈일본화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관련된 규제를 완화하고 연구개발 인프라를 조성해 기업들이 국산화할 수 있도록 장려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막대한 대일적자를 보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일본이 큰소리치는 역설적 무역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다음, 일본의 보복조치에 대한 직접적인 대응조치가 필요하다.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해서 일본 정부가 취한 경제보복조치의 부당성을 널리 알려야 한다. 지난번 일본 후쿠시마현 인근 바다에서 잡힌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에 대해 WTO가 우리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G20 정상회담에서 자유무역을 강조한 아베가 비경제적인 이유로 자유무역체제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켜 우리 정부가 취할 대응조치의 정당성을 알릴 필요가 있다.  
 
일본제품의 불매운동도 의미가 있다. 불매운동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던 유니클로가 닷새 만에 사과했다. 일본산 수입맥주의 판매량도 급감했다. 이처럼 일본상품 불매운동이 일본경제에 큰 타격을 주지는 못하더라도 개별기업에게는 효과적일 뿐만 아니라, 일본의 부당한 처사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경각심을 일깨워주고 정부의 대일 정책에 힘을 실어 줄 수 있다.
 
아베 내각에게 가장 효과적인 압박수단은 우리 국민들이 일본여행을 자제하는 것이다. 일본관광청의 ‘2019년 일본관광백서’에 따르면, 작년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 중에 한국인이 두 번째로 많은 753만 명이고 55억 달러를 사용하였으며 지방여행객이 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인들이 일본여행을 자제한다면 아베의 정치적 기반인 중소도시와 농촌 유권자들을 흔들어놓을 수 있다. 
 
내년 8월 도쿄 하계올림픽이 열리고, 일본 정부는 관광객 4,000만 명을 유치한다는 계획을 내놓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의 25%를 차지하는 한국 관광객이 일본을 가지 않는다면 경제적으로뿐만 아니라 올림픽 분위기에도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직접적인 대응 외에도 국제여론을 우리나라에 유리하게 움직여야 한다. 미국의 중재에 매달릴 필요는 없지만, 일본의 영향력을 차단하고 국제여론을 움직이기 위해서라도 미국의 국익에 입각해 우리의 입장을 이해시켜야 한다. 특히 일본 정부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한다면 이는 일본이 한국을 더 이상 안보협력 파트너로 인정할 수 없다고 선언하는 것이고, 그럴 경우 더 이상 한일정보보호협정(GSOMIA)을 유지할 필요성도 없게 될 것이라는 점을 인식시켜 주는 것도 가능하다.
 
그럼에도 한일 간의 대화는 계속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일본이 우리 정부의 투트랙 외교를 수용하도록 설득해야 한다. 이번에 일본이 취한 조치가 과거사 해결과정에서 나온 것인 만큼, 일본 정부가 경제보복조치를 스스로 철회해 외교안보를 경제와 분리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를 논의하기 위해 특사의 상호 교환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일방적으로 우리 측이 특사단 파견을 제안했다가 일본 측이 거부하거나, 우리 측만 가고 일본 측이 오지 않을 경우 국내 여론이 악화되어 외교적 해결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에서, 물밑접촉을 통한 사전 공감대 형성이 필요할 것이다.
 
끝으로, 우리 정부는 외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타협안의 마련에도 노력해야 한다. 한일 양측의 입장이 평행선을 긋고 있어 타협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우리 정부가 한국 내 일본 전범기업에 대한 압류자산의 현금화 대신에 해당 일본기업과 전후 일본 식민지배상금으로 혜택을 본 한국기업이 1:1로 자금을 갹출해 피해자들에게 배상해 주자는 합리적 대안을 내놨지만, 일본정부는 일언지하에 거절한 바 있다. 
 
조심스럽지만 대법원의 판결 취지에 부합하면서도 일본과 타협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어떤 경우든 한국 정부가 배상에 참여하면 대법원 판결을 부정하는 결과로 해석될 수 있다. 따라서 이미 판결이 난 37명에 대해서는 한일 기업들이 1:1로 배상해 주되,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인 피해자들에게는 소송취하를 조건으로 한국 측 수혜기업이 대신 배상해 주는 수정안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방법이 최선책은 아니지만, 현재와 같은 한일갈등을 외교적으로 수습할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과 일본은 동아시아에 형성되는 새로운 질서를 내다보며 공존공영의 길로 나아가야 하며, 더 이상 과거사 문제라는 갈등의 구조 속에 갇혀서는 안 된다. 이번 갈등의 표출이 양국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협력모델을 찾는 반면교사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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