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LOFO 칼럼 제 457호

“지원은 지원답게”  김영윤 (사)남북물류포럼 회장

우리 ​정부가 세계식량계획(WFP)·유니세프의 대북 인도지원사업에 800만 달러 공여를 결정했다. 정부는 WFP의 영유아·임산부·수유부 대상 영양강화식품 분배사업에 450만 달러, 유니세프의 아동·임산부·수유부 영양지원·보건 사업에 350만 달러를 지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송금도 완료한 상태다. 그리고 별도 대북 직접적 식량지원을 위한 모양새도 갖추어가고 있는 것 같다.

대북 지원을 결정하면서 정부는 북한 식량사정이 지난 10년 이래 최악이고, 인도주의 관점에서 신속 대응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국가차원의 대북 인도지원은 처음이다. 하지만 북한의 식량사정이 지금까지 좋았던 적이 별로 없었던 것을 감안하면 왜 하필 지금일까라는 의문이 든다. 사실 금번 지원은 이미 2017년 9월 WFP·유니세프에 800만 달러 공여를 의결했던 사안이다. 그동안 이루어지지 못하다가 1년 9개월이나 지나서야 집행되는 것을 보면 그동안은 왜 안 되었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아무래도 지난 2019년 2월 제2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교착된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에 변화를 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하기 위해서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정부의 대북 지원을 두고 보수 진영에서는 ‘퍼주기’라는 비판을 쏟아낸다. 이를 차치하더라도 생각해 볼 점이 있다. 인도지원이 정치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교착된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를 푸는 수단으로 인도지원을 하려고 하는 점이 마뜩찮다. 지원의 정치화가 과연 바람직한가. 지원은 지원으로 그 목적을 달성해야 하지 않을까? 지원은 지원 공여자의 입장도 중요하지만 수혜자의 입장은 더욱 중요하다. 수혜자의 자존심을 최대한 살피며 해야 할 필요가 있다.자존감에 상처를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북한의 식량사정이 국제사회에 지원을 요청할 만큼 어렵다면, 그래서 도와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되도록 드러내지 않고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한국 정부의 대북 인도지원 결정이 교착상태의 남북관계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면 왜 교착상태가 되었는지 면밀하게 살펴보는 것이 더 중요할 것 같다. 지금 북한은 우리 정부를 상대하지 않으려는 모습니다. 상대해도 극히 제한적이다. 지난 평창 올림픽을 필두로 만들어낸 남북관계와는 천지 차이가 있다. 남북관계의 교착상태는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 한국 정부가 북한의 입장을 배제한 채, 미국하고만 긴밀하게 공조하고 있는 데서 비롯되고 있는 측면이 강하다. 이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례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판문점(4‧27) 및 평양선언(9‧17)에서 한미연합훈련의 중단을 합의했으면서도 불구하고 북한이 극렬 반대하는 “동맹 19-1”(한미연합훈련 키 리졸브의 변형)을 재개했는가 하면, 4‧11 한미정상회담에서 문대통령은 미국에게 “빛 셀틈 없이 한미 비핵공조를 약속드린다”고까지 했다. 

북한은 과거와는 바뀐 남한의 태도에 대해 적잖이 실망하고 있는 것 같다. 거침없으면서도 무례하기까지 한 북한의 언급을 보라. “주변 환경에 얽매여 선언 이행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뒷전에 밀어놓고 그 무슨 ‘계획’이니, ‘인도주의’니 하며 공허한 말치레와 생색내기나 하는 것은 북남관계의 새 역사를 써 나가려는 겨레의 지향과 염원에 대한 우롱”(대남 선전매체 메아리 2019.5.12.)이라고까지 하고 있지 않는가. 또 “진실로 민족문제의 당사자로서 북남관계 발전에 관심이 있다면 사대적인 외세추종 정책과 대담하게 결별하여야 하며 북남선언 이행에 적극 달라붙는 것으로 민족 앞에 지닌 책무를 다해야 한다”고 덧붙이고 있다. 비핵화 협상과 남북관계 진전을 지원과 연계하려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불만의 직설적 표현이다.

물론, 대북 식량지원이 갖는 자체 의미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북한 시장의 가격 안정에도 이바지할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대북 지원을 통해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오게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한반도 비핵 프로세스를 북한과 어떻게 합의해 내느냐가 더 중요하다. 이는 지원과는 완전 별개의 문제다. 비핵화 방법과 관련, 팽팽히 맞서있는 미국과 북한을 어떻게 설득해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정착시키는가 하는 점이다. 그들의 동의를 얻어낼 수 있는 비장의 무기를 마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앞으로 지원은 지원이라는 의미에만 충실했으면 한다. 정치화하지 않았으면 한다. 적어도 인도주의 대북협력 사안에서만은 조건을 달지 않는, 어려움 극복에 도움을 주는 순수성을 견지했으면 한다. 정부는 북한 상황 어려움을 늘 살피면서 지원다운 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신뢰다. @

 

저작권자 © SPN 서울평양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