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에서 판문점까지, 북미 비핵화 협상 평가와 전망>

조 한 범 (통일정책연구실 선임연구위원)

전격적인 판문점 북미 정상회담은 비핵화 협상의 동력을 제공하는 동시에 남북관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준비되지 않은 짧은 정상회담을 통해 북미 간 비핵화 이견이 해소되기 어려운 만큼 관건은 향후 전개될 실무협상이다.

이를 위해 포괄적 합의와 단계적 이행의 비핵화 방식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대해 한국과 미국이 각각 경제적 상응조치와 정치적 상응조치를 분담하는 조합은 초기단계의 비핵화 프로세스의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

1. 하노이 이후 김정은 위원장 행보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의 충격 이후 잠행 모드에 들어간 김정은 위원장은 4월12일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비핵화 협상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주요 내용은 비핵화 협상시한을 연말까지로 정하고 더 이상 제재해제에 매달리지 않을 것이지만 미국이 새로운 계산법으로 나와야 대화를 하겠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오지랖 넓은 중재자 행세’라는 표현을 통해 남한 정부에 대해서도 불편함을 숨기지 않았다.

2018년 9월 평양 남북공동선언에 명기한 영변 핵폐기가 하노이에서 통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불만의 표출일 개연성이 있다.

하노이 이후 5차 방중 가능성이 점쳐졌지만 예상을 깨고 김 위원장은 4월25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북러 정상회담 후 양국 공동성명이나 특기할만한 내용이 없었다는 점에서 한반도 문제에 대한 러시아 역할의 한계가 드러났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그러나 김 위원장에게 북러 정상회담은 하노이의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한 외교적 카드로서 의미가 크다. 김 위원장은 4차례의 방중에도 불구하고 중국으로부터 뚜렷한 지원이나 대북제재 해제에 대한 협력을 도출하지 못했기때문이다.

5월 4일과 9일 김 위원장은 북한군의 단거리 발사체와 미사일 발사를 직접 참관함으로써 미국에 대해 무력시위를 했다. 북한은 사거리를 단거리로 제한함으로써 대미 압박과 함께 레드 라인은 넘지 않는 신중함을 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무력시위를 ‘작은 무기’로 표현함으로써 사안이 확대되는 것을 차단했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기술을 적용한 모든 발사를 금지하고 있는 유엔 역시 단거리의 경우 제재를 가한 적이 없다. 5월 말 김 위원장은 북한의 군수공장이 밀집한 자강도를 집중 시찰함으로써 대미 압박 행보를 이어갔다.

국면 반전은 북미 정상 간 친서외교를 통해 이루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1주년 전날인 11일 김 위원장으로부터 ‘아름다운 친서’를 받았다고 밝혔다.

6월 23일 북한 매체는 트럼프 대통령이 친서를 보내왔으며, 김 위원장이 만족해했고 흥미로운 내용에 대해 신중히 생각해볼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시진핑 주석의 첫 번째 방북은 6월 20∼21일 이틀간 이루어져 양국 간 협력관계를 과시했지만, 북중 5차 정상회담은 북한보다는 미중 무역분쟁과 홍콩사태 등으로 어려움에 처한 시 주석의 필요성이 더 컸던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의 행보를 볼 때 하노이의 충격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기존의 비핵화 협상 전략을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노이 이후 북한의 대미라인의 무게중심은 통전부에서 외무성으로 옮겨가는 징후를 보였는데,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을 비롯해 협상주역들이 약진 또는 건재하기 때문이다. 반복적인 북한의 대남 대미 비난 역시 협상 국면의 파기를 의도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북한의 주요 비난 대상은 트럼프 대통령이 아닌 참모와 실무진이며, 남한에 대해서도 남북관계를 보다 적극적으로 가져가고 있지 않은데 대한 불만이다.

북미 협상에 남한 당국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6월 27일 권정근 북한 외무성 미국 담당 국장의 발언 역시 1,2차 북미 정상회담 성사 당시 우리 정부의 역할에 비추어 볼 때 근거가 희박하다. 오히려 북미 협상에 있어 북한의 편을 들어달라는 불만의 우회적 표시로 볼 수 있다.

2. 판문점 북미 정상회담 평가

6월 30일 트럼프 대통령은 판문점을 방문해 김정은 위원장과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을 가졌다. 판문점에서 북미 정상 간의 만남은 한국전쟁 정전 이후 최초의 일이며, 이 자리에 문재인 대통령이 함께 함으로써 사상 첫 남북미 정상 간 회동도 성사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판문점 방문은 몇 가지 점에서 의미가 있다. 첫째,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판문점 정상회담은 북미 간 화해를 의미하며, 상징적 의미에서의 종전선언으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북한 땅을 밟았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당면 현안인 북핵 문제의 출발점도 북미 불신과 적대관계라는 점에서 군사적 대치의 현장인 판문점에서 북미 정상 간의 만남은 양국 간 관계정상화를 위한 중요한 진전으로 볼 수 있다.


둘째, 판문점 북미 정상회담은 비핵화 협상의 새로운 동력을 마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자유의 집에서 진행된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단독 회담시간은 53분으로 3차 북미정상회담에 해당하며, 비핵화 협상의 청신호로 볼 수 있다.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북미협상에서 구체적인 진전을 보지 못했다는 점에서 판문점 북미 정상회담은 의미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백악관에 초청함으로써 추가적인 북미 정상회담의 길을 열어놓았다.

셋째, 북미 비핵화 협상과 남북관계에 있어 한국정부의 운신의 폭이 넓어졌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사상 첫 남북미 정상 간의 판문점 회동이 성사되었으며, 북미 회담이 우리 측 자유의 집에서 열렸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의전과 경호 등 판문점 북미 정상회담의 복잡한 문제들이 단시간에 해결될 수 있었던 것은 4·27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통해 축적된 한국의 노하우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북미 양자협상+한국정부의 역할’ 구도가 다시 한 번 확인된 계기였다고 볼 수 있다. 남북 정상 간 회동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짐으로써 그 동안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던 북한의 대남태도의 변화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일정한 한계가 있었다는 점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판문점 방문은 전날 오전 오사카의 트윗에서 시작해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의 5시간만의 긍정적 답변 등 매우 짧은 시간에 전광석화로 진행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전 세계의 이목을 자신과 한반도에 집중시키는데 성공했다. 전날 종료된 G20 회의나 미중관계, 미국 내 차기 대선 민주당 경선 등 많은 이슈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판문점 방문에 가려졌다. 컨벤션 효과라는 점에서 대선 캠페인 국면으로 접어든 트럼프 대통령이 최대의 수혜자라고 할 수 있다.

북미 간 비핵화에 대한 인식 차와 실무적인 문제의 복합성을 고려했을 때 판문점에서 준비되지 않은 북미 정상의 짧은 만남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북미 양측의 협상의지가 아니라 비핵화 방식에 대한 입장차라는 점에서 판문점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서 결정적인 돌파구가 마련되었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판문점 북미 정상회담 이전 북미 간 의미 있는 실무협상이나 고위급 접촉이 없었기 때문이다. 판문점에서의 상징적인 북미 정상회담과 남북미 정상회동을 통해 비핵화협상에 대한 탑다운 방식의 동력을 확보했음에도 불구하고 과제는 여전히 남아있는 셈이다.

3. 북미 비핵화 입장차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은 북미 비핵화협상의 문제가 구체적으로 드러난 계기였다.
문제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부터 출발한다. 미국이 탈퇴한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행동계획)의 경우 매우 구체적이고 포괄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반면 싱가포르 북미 공동성명의 경우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기로 약속하였다”라는 단순한 내용을 담고 있다. 싱가포르 북미 공동성명은 완전한 비핵화의 개념규정과 이행을 위한 구체적 합의를 담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실무협상에서의 난관을 예고한 것이었다.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양측의 해명을 종합할 경우 북한은 영변의 핵시설에 대한 사찰 및 검증, 영구폐기를 제안하는 대가로 대북제재의 일부 해제를 요구했으며, 미국은 영변+α를 요구해 합의가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요약된다. 영변 핵시설은 북한의 핵연료주기와 핵물질 생산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보다 진전된 비핵화 조치를 제안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이 해제를 요구한 5건의 유엔 대북제재는 사실상 대북제재의 전부에 해당하며, 미국의 입장에서 영변은 과거에도 북한이 폐기에 합의했던 대상일 뿐이다. 또한 영변 이외의 지역에도 고농축우라늄(HEU) 생산시설이 존재할 개연성이 있으며, 이미 생산된 핵물질, 핵탄두, 대륙간탄도미사일이 존재한다는 점은 미국의 부담이다. 따라서 미국의 경우 모든 북한 핵 프로그램의 동결이 전제되지 않은 영변 핵시설 폐기 제안을 수용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비핵화에 대한 북미의 견해차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의 결렬이 결정적인 위기라고 볼 수는 없다. 문제는 비핵화의 복잡하고도 기술적 차원의 이견이 실무선에서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는 점이다. 탑다운 방식의 동력 제공만으로 북미 비핵화 협상이 타결되기 어렵다는 점은 이미 싱가포르와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입증되었다. 중요한 것은 구체적인 합의안을 도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4. 비핵화의 ‘새로운 셈법’ 을 위한 제언

트럼프 대통령은 판문점 북미 정상회담 이후 2-3주내 실무팀을 구성해 실무 협상을 할 것이라고 밝히고, 김정은 위원장과는 ‘포괄적인 협상과 협의를 하겠다는 점에 합의했다’고 말했다. 따라서 북미는 조만간 실무협상을 재개할 개연성이 높아졌지만, 양측이 하노이에서 드러난 입장차를 견지할 경우 비핵화 협상은 다시 교착될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창의적인 해법의 모색이 필요한 이유이다.

‘포괄적 합의·단계적 이행’ 비핵화 방식은 현실적인 해법이 될 수 있다. 포괄적 합의는 비핵화의 개념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큰 틀에서 비핵화의 시간표와 로드맵을 도출하는 것이며, 단계적 이행은 북한 비핵화 프로세스의 장기적 속성을 감안해 비핵화 절차를 몇단계로 나누는 것이다. 핵심은 비핵화의 초기단계에서 북미 간 상호신뢰성을 확보하는것이다.

영변 핵단지의 폐기를 제안한 북한과 상응조치로 대북제재를 해제하기 어려운 미국의 상황을 감안한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영변 핵시설을 폐기할 경우 제 3의 지역에서 고농축 우라늄이 생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플루토늄과 트리튬의 생산이 중단됨으로써 북한 핵프로그램은 영구적인 손상을 피할 수 없다. 따라서 북한은 영변 핵시설을 폐기하고, 한국과 미국이 공동으로 상응조치를 분담하는 방식을 고려할 수 있을것이다.

이는 ‘영변 비핵화조치(북한)=정치적 상응조치(미국)+경제적 상응조치(한국)’의등식으로 정리될 수 있다. 전제는 북한이 모든 핵 프로그램을 동결하고, 영변 핵시설에 대한 구체적이고 명시적인 폐기 계획을 제시하는 것이다.

북미 싱가포르 공동성명의 1항은 관계정상화이며, 북핵 문제 역시 북미 대립구도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북미 양국 관계개선은 북핵 문제보다 상위 차원의 이슈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정치적 상응조치는 북미 양국 간 연락사무소 설치, 인도적 지원 및 북한 방문금지조치 해제 등이 포함될 수 있다. 연락사무소는 적대국 간 관계정상화 및 신뢰구축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첫 단계에 해당한다. 북미 정상이 판문점 회담을 성사시킨 만큼, 북미 종전선언 또는 평화선언도 가능한 정치적 상응조치에 해당한다. 인도적 대북지원 및 인적교류를 허용할 경우 대북제재의 일부인 북한 노동자 해외송출 금지 조항의 완화도 가능할 것이다. 노동자 송출 금지는 개인 기본권에 대한 제약이기 때문이다.

한국정부는 경제적 차원의 상응조치를 통해 북한의 요구를 일정정도 수용할 필요가 있다.한국정부가 취할 수 있는 경제적 조치는 인도적 지원의 확대, 금강산관광사업 및 개성공단 사업의 재개, 5·24 조치의 해제 등이 될 것이다. 대규모 식량지원은 현실적 카드가 될 수있다. 국제기구에 따르면 금년 북한의 식량부족분은 136만 톤에 달한다. 북한 주민의 1일식량 소비량이 1만 톤 내외라는 점을 감안할 때 북한의 식량난은 자체해결이 불가능하다.

대규모 식량 지원은 북한에 대한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금강산관광 및 개성공단사업과 5·24 조치는 한국정부 단독 조치라는 점에서 국제제재가 아니다. 특히 관광분야는 대북제재 대상이 아니며, 따라서 금강산관광사업의 재개는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원산·금강산을 국제관광지구로 개발하고 있는 북한으로서도 금강산관광사업 재개는 주요 관심사에 해당한다.

개성공단사업은 대북제재와 중첩된다는 점에서 재개를 위한 창의적인 해법이 필요하다. 5·24 조치의 경우 북한 선박의 남측 해역 운항금지 조치 해제, 방북 불허 및 북한 주민 접촉 제한 조치의 해제는 현재로서도 가능한사안이다. 남북 간 교역 및 물품 반·출입 금지, 대북 신규투자 금지 조치 등은 상황변화를고려해 조치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경제적 상응조치는 미국과 UN의 양해가 있을 경우 한국정부가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다. 한국이 경제적 상응조치를 취할 경우 미국은 대북제재 해제의 부담을 덜 수 있다. 북한으로서는 북미 관계개선과 경제적 실리를 동시에 도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선택이 가능한 대안이 될 수 있다. 한국이 경제적 상응조치를 취할 경우 정치적 책임과 부담이 발생하며, 북한의 추가적인 도발 또는 비핵화 협상이 결렬될 경우 대내외의 비판에 직면할 개연성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남북관계를 지속해야 한다는 점에서 부담을 감수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지속가능한 남북관계의 형성을 통해 비핵화를 견인하고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정착시키는 것은 한국정부의 과제이며, 이를 위한 비용의 지불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판문점 북미 정상회담 및 남북미 정상회동은 비핵화 협상의 동력을 제공하는 의미 있는 계기이다. 그러나 과제는 다시 실무협상으로 돌려졌으며, 그 결과에 따라 비핵화의 향배가 결정될 것이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은 지속적으로 ‘새로운 셈법’을 요구해왔다.

중요한 것은 포괄적 합의의 도출과 아울러 비핵화의 단계적 이행의 초기 단계에서 실질적인합의안을 도출해 내는 것이다. 싱가포르와 하노이 그리고 판문점 북미 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 한국 정부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다. 비핵화에 대한 실질적인 합의안의 도출을 위해 한국 정부가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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