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북유럽 3국 순방의 성과와 정책적 시사점

성기영 평화전략연구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문재인 대통령의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등 북유럽 3국 순방 일정(6.9~6.16)이 막을 내렸다. 문 대통령의 북유럽 3국 방문의 초점은 경제와 안보에 맞춰졌다고 평가 할 수 있다.

경제 분야에서는 포용과 혁신을 통해 지속가능한 성장의 틀을 만들어낸 북유럽 3국의 경제성장 모델이 강조되었고 스타트업 분야에서 다수의 공동 프로젝트 추진에 합의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안보 분야에서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재가동을 위한 북미 정상회담의 중요성과 시급성을 강조하고 6월말로 예정된 한미정상회담 이전 남북정상 회담 개최 제의에 북한이 호응할 것을 촉구함으로써 김정은 위원장의 결단을 촉구했다.

올해 하반기 내 상황 반전 계기 마련 시급

경제와 안보 분야 의제 중 대부분의 언론과 전문가들은 안보 분야, 그 중에서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관련한 문재인 대통령의 언급 하나하나에 주목했다.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이후 1년이 흐르기까지 합의 이행이 교착상태에 빠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북미 어디서도 대화 재개의 결정적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 미국의 대선 일정과 함께 “연말까지 미국의 용단을 기다리겠다”던 김정은 위원장의 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 발언을 감안해 보면 사실상 올해 하반기 중으로 상황 반전의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절박성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러한 두 가지 요인을 감안하여 6월 12일 오슬로포럼 기조연설과 14일 스웨덴 의회 연설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의 필요성을 재확인했다.

오슬로포럼 기조연설에서 강조한 것은 ‘국민을 위한 평화’, 즉 국민들의 일상적 삶을 위협하는 요인을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평화 인식이다. 이는 현재 우리가 추구하 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목표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정치적 조치와 제도의 확립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분단체재에 내재되어 있는 구조적 갈등을 해소하는 점이라는 사실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오슬로포럼 연설에서 노르웨이 출신의 저명한 평화학자 요한 갈퉁 의 ‘적극적 평화’를 언급한 것도 우리 사회에 만연한 폭력적 문화와 사고방식의 근원에 분단구조가 자리잡고 있다는인식을 반영한 것으로 볼수있다. 갈퉁의 적극적 평화는 분쟁과 폭력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소극적 평화’와 대립하는 개념으로 특정 사회의 법률과 제도에 의한 ‘구조적 폭력’이나 사상과 종교, 또는 생활양식이 강요하는 ‘문화적 폭력’까지 제거된 상태를 의미한다.

갈퉁의 적극적 평화론에 따르면 극단적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낳은 분단지향적 법제도와 뿌리 깊은 상호적대의식 속에서 70년을 넘게 살아온 남북한의 국민들이야말로 문화적 폭력의 희생자들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오슬로 구상에서 강조한 ‘국민을 위한 평화’는 그동안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관계 복원을 위한 정치적, 외교적 노력 에 가려 부각되지 않았던 적극적 평화의 의미와 혜택을 일반 국민들 입장에서 다시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오슬로 구상에서 국민을 위한 일상의 평화와 함께 강조한 것은 주변국과의 분쟁과 갈등 해결의 필요성이다. 현재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북미 수교와 북일 수교로 이 어져 궁극적으로는 동북아시아의 냉전 구도 해체로 이어져야만 지속가능한 평화의 실 현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동북아에서의 지속가능한 평화는 문재인 대통령이 3.1절 100주년 기념사를 통해 선언했던 ‘신한반도 체제’의 최종 목표와도 부합하는 것이다. 따라서 오슬로 구상은 2017년 신베를린 구상처럼 구체적 대북 제안을 담은 것이 아니라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구축을 위한 포괄적 청사진을 밝힌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오슬로에서는 평화, 스톡홀름에서는 신뢰 강조

한편, 스웨덴 의회연설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은 신뢰를 통한 평화구축을 강조했다. 특히 남북한 국민 간의 신뢰, 대화에 대한 신뢰, 국제사회의 신뢰의 중요성을 설명하며 북한을 향해 완전한 핵폐기와 평화체제 구축 의지를 국제사회에 보여줘야 한다고 역설했다. 요컨대 오슬로 구상이 일상의 평화를 적극적으로 만들어 가야한다는 점을 강조했다면 스톡홀름 연설은 그러한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론으로서 다층적인 신뢰의 중요성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핀란드에서는 오슬로나 스웨덴에서와 같은 대중연설은 없었지만 핀란드 정치 원로들 과의 간담회를 통해 헬싱키 프로세스가 동북아 평화 구축에 주는 교훈과 시사점을 강조했다. 헬싱키 프로세스란 1969년 당시 핀란드 대통령이 냉전시기 동서진영간 안보협력 회의 개최를 제안한 것을 출발점으로 1975년 8월 헬싱키에서 미국과 소련, 유 럽 35개국 정상이 모여 유럽안보협력에 관한 최종의정서에 서명함으로써 유럽 내 다자간 안전보장 시스템을 구축한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문 대통령은 당시 유럽안보협력회의(CSCE) 대사를 역임하면서 헬싱키 프로세스의 실무를 담당했던 야꼬 알로니에미 전 장관 등을 만나 헬싱키 프로세스가 한반도 평화 구축에 주는 의미를 강조했다.

이처럼 북유럽 3국 순방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주요원칙 과 지향점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데에 초점을 맞췄다. 지난해 10월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5개국 순방 당시와 비교하면 비핵화 관련 메시지도 다소 변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해 순방 당시 문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가 되돌릴 수 없는 단계에 이를 경우’를 전제로 유엔 제재 완화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북유럽 순방에서는 제재 완화 필요성을 직접 강조하는 대신 비핵화의 실질적 진전을 강조하면서 개성공단 재개처럼 제재와 직접 관계된 남북경협 사업을 후 순위로 미뤄놓았다. 당시만 해도 9.19 평양정상회담의 성과를 바탕으로 남북관계가 상승 국면을 기록하고 있었지만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협상의 교착 국면이 장기화하면서 현재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는 일단 대화의 동력을 되살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남북, 북미 간 물밑 접촉 공개로 승부수

이러한 현실 인식을 반영하듯 오슬로와 스톡홀름 연설 이후 이어진 일문일답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남북간, 북미간 채널을 통한 물밑 움직임을 공개하기도 했다. 북유럽 3국 순방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북미 간, 남북 간 대 화에 대해 밝힌 입장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하노이회담 결렬 이후에도 북미 간에는 물론 남북 간에도 물밑에서 대화가 지속되어 왔다는 사실을 공개하며 대화의 모멘텀이 이어져왔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말하자면 현재의 국면은 하노이 결렬 국면이 아니라 싱가포르 합의 이행 국면이라는 것이다.

또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을 통해 공개된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 전달 사실을 사후에는물론 사전에도 알고있었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남북간 소통과 한미간공조에 이상이 없음을 강조하는 한편, 협상 재개 가능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는 하노이 ‘노 딜’ 이후 국제사회에 퍼진 북미협상 회의론을 불식시키기 위해 승부수를 띄운 것으로 볼 수 있다.

둘째, 북미정상회담의 조기 개최 필요성을 강조했다. 오슬로에서는 북미정상회담의 조기 개최가 바람직하다는 수준의 언급을 내놓았지만 스톡홀름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북미 협상의 실질적 진전을 위해 사전에 실무협상이 필요하다는 구체적 제안도 내 놓았다. 문 대통령의 발언 며칠 전인 지난 12일 미 국무부 대변인이 싱가포르 회담 1 주년을 맞아 합의 이행을 강조하며 “북한과 실무협상을 이어갈 준비가 되어있다”고 밝힌 적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미 간에는 북미대화의 조속한 재개에 따른 공감대가 확보되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미정상회담 재개를 포함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재가동을 역설하는 플랫폼으로서 국제사회에서 평화와 중재의 상징으로 공인되어 있는 북유럽 3국 을 선택함으로써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구축이 갖는 국제적 성격과 보편성을 강조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비핵화 및 평화체제 포괄적 논의 필요

그러나 문 대통령이 북유럽 3국 순방을 통해 밝힌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재가동 로드맵이실현되기위해서는 해결해야할 과제들도 적지않다. 특히 문 대통령 순방 직후 한미 북핵대표 회동, 중국 시진핑 주석의 북한 방문, 오사카 G20 정상회담, 한미정상 회담 등 주요 외교 일정이 예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오슬로 구상과 스톨홀름 연설에서 제안한 내용들을 이러한 기회를 활용해 실현가능한 과제로 만들어야 한다.

우선 문 대통령이 제시한 로드맵을 요약하면 원포인트 남북정상회담을 조기개최하고 한미정상회담을 거쳐 북미 실무협상을 토대로 3차 북미정상회담을 개최한다는 것으로 요약할수있다. 그러나북중정상회담일정등으로인해문대통령이밝힌대로한미정 상회담 이전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트럼프 대통령도 북미정 상회담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서두를 것 없다”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따라서 남북정상회담 개최 여부나 북미정상회담 개최 시기와 관계없이 한미정상회담 계기와 남북간 물밑 채널을 통해 3차 북미정상회담에서 생산적 합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한국 의 역할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우선 3차 북미정상회담이 성사될 경우 싱가포르 합의의 양대 축이라고 할 수 있는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논의를 동시에 진행하는 방안이 추진될 수 있도록 한미간 논의를 집중할 필요가 있다.

현재 비핵화 프로세스와 관련하여 한국은 포괄적 합의를, 미국은 빅딜, 북한은 단계적, 동시적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북한은 싱가포르 합의 1항인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과 관련한 논의는 전혀 진전이 없는 상태에서 한미가 제재 유지와 비핵화만을 압박하고 있다는 불만을 표출해왔다. 따라서 포괄적 합의의 범주에 비핵화는 물론 체제안전 보장방안까지 함께 포함시켜 협상의 틀을 짜는 방법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지난 4월, 블라디보스토크 북러정상회담 직후 푸틴 대통령이 북한의 체제안전 보장 필요성을 꺼내들었고 6월초, 모스크바 중러정상회담 이후에도 두 정상은 비핵화와 평 화체제 수립의 병행 추진을 언급한 바 있다. 이는 하노이 실패로 인해 후속 협상에 극도로 위축되어 있는 북한을 3차 북미정상회담으로 끌어내기 위한 수단일 수 있다. 동 시에 하노이 회담 이후 부분적 비핵화와 제재의 부분적 완화를 맞교환하는 ‘스몰딜’의 실효성이 없어진 상황에서 싱가포르 합의 정신으로 되돌아가 북미협상의 틀을 짜는 현실적 접근방법이기도 하다.

또한, 4차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될 경우 판문점선언과 9.19 합의 이행 의지를 재확인하되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에 나설 경우 우리 정부가 나서 북한의 체제 안전보장 방안에 대해 한미, 한중간 구체적 논의에 나설 의사가 있음을 공개적으로 피력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다.

북한은 기존 남북합의 이행 부진, 9.19 합의사항이었던 영변 카드를 통한 제재 완화 실패 등으로 인해 문재인 정부의 역할에 대한 불신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향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이행에서 우리가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더이상 제재 해제 문제에 매달리지 않겠다”고 선언한 북한의 가장 큰 관심사라 고 할 수 있는 체제안전 보장 방안 논의를 우리가 주도권을 갖고 논의해나갈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6월 20일부터 열흘 동안 숨가쁘게 전개될 양자 및 다자 정상회담에서 비핵화와 평화체제 문제를 놓고 어떠한 공감대가 형성되느냐에 따라 향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방향도 결정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북유럽 3국 순방은 이러한 의미에서 동북아를 무대로 6월말 내내 숨가쁘게 전개될 비핵화 외교전에 주춧돌을 놓은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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