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논평>‘김혁철 처형설’과 ‘김영철 노역설’에 대한 일곱 가지 의혹

[세종논평] No. 2019-18 (2019.06.03.)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

softpower@sejong.org

 

최근 국내 한 언론은 북한이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의 실무협상을 맡았던 김혁철 국무위원회 대미 특별대표와 외무성 실무자들에게 협상 결렬의 책임을 물어 그들을 처형했다고 보도했다. 이 언론에 의하면 김혁철이 지난 3월 외무성 간부 4명과 함께 조사받은 후 미림비행장에서 처형당했고 이들에겐 ‘미제에 포섭돼 수령을 배신했다’는 미제 스파이 혐의가 적용됐다는 것이다. 또한 이 언론은 하노이 회담까지 대미 협상을 총괄했던 김영철 노동당 통일전선부장도 해임 후 자강도에서 ‘강제 노역’ 중이고, 김혁철과 함께 실무 협상을 담당한 김성혜 통일전선부 통일책략실장은 정치범 수용소에 보내졌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이 같은 보도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판단할 수 있는 근거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3월에 처형되었다는 김혁철 국무위원회 대미 특별대표가 4월 13일에도 목격되었다는 비교적 신뢰할만한 정보가 있다. 이 같은 정보가 맞다면 김혁철은 일정 시간이 지난 후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전망된다.

둘째, 하노이 회담까지 비핵화 협상을 총괄했던 김영철은 강제 노역형에 처해진 반면, 그 밑의 실무자들인 김혁철과 김성혜가 처형당했거나 정치범 수용소에 보내졌다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 그리고 만약 김정은이 회담 결렬에 대해 책임을 물어 간부들을 강제 노역형에 처하거나 처형시키거나 정치범 수용소에 보낸다면 그 어느 간부도 앞으로 대외 협상에 나서려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김 위원장이 북미 협상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면 이 같은 극단적인 처벌을 내릴 가능성은 낮다.

셋째, 북한 지도부가 지금까지 중요 간부들을 처형할 때에는 거의 항상 강건종합군관학교를 이용해왔고 미림비행장을 이용한 적은 없기 때문에 김혁철을 미림비행장에서 처형했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부족하다. 그리고 북한 지도부는 처형할 간부와 관련이 있는 부문의 인사들을 수십 명에서 수백 명 정도나 모아놓고 그 앞에서 본보기로 처형을 집행하기 때문에 처형이 있게 되면 이와 같은 정보는 휴민트를 통해 보통 수 주 내에 우리 당국에까지 들어오게 된다. 그러므로 지난 3월에 김혁철이 처형을 당했는데 5월말까지 한국 정부가 이 사실을 모를 가능성은 희박하다.

넷째, 김정은 위원장이 하노이 회담 결렬에 대한 책임을 물어 지난 3월에 김혁철을 처형했다면, 그보다 더 큰 책임이 있는 김영철을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직에 유임시키고 지난 4월 11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에서 국무위원회 위원직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직에 재선출할 이유가 없다. 

김영철은 지난 4월 9일 개최된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에 참석했고, 김 위원장의 신임 국무위원회 구성원들과의 기념사진 촬영에도 함께 했다. 그렇기 때문에 김영철이 비록 통일전선부장직을 내놓고 김정은의 방러에 동행하지 못했다고 해서 완전히 실각하여 ‘강제 노역형’에 처해졌다고 보기 어렵다.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 이후 김영철이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것과 관련해 그가 악성종양 제거를 위해 북한 지도층이 이용하는 봉화진료소에서 치료를 받았다는 비교적 신뢰할만한 정보가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6월 2일 군인가족예술소조공연 관람에 김영철을 동행시킨 것은 그의 치료가 끝난 상태에서 한국에서의 ‘김영철 노역설’을 불식시키기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 과거에 남한 언론이 특정 북한 인사가 숙청되었다거나 혁명화 조치를 겪고 있다고 보도한다고 해서 바로 그를 공개석상에 재등장시킨 적은 없다. 만약 김영철에게 혁명화 조치가 내려졌다면 단순히 남한 언론 보도 때문에 그를 다시 공개석상에 등장시켰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다섯째, 문제의 언론은 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이 하노이 회담 이후 ‘근신’ 중이라고 보도했는데, 지난 4월 9일 개최된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에 김여정 제1부부장이 참석한 것으로 이미 확인된 바 있다. 그렇기 때문에 회담 결렬에 직접적인 책임이 없는 김여정 근신설은 근거 없는 것으로 몸이 약한 김 제1부부장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는 정보가 더 설득력이 있다.

여섯째, 김혁철 처형설을 보도한 언론은 북한이 4월 30일자 로동신문 논설에서 ‘반당적, 반혁명적 행위’와 ‘혁명의 준엄한 심판’을 언급한 것을 지적하면서 이는 “하노이 회담 관련자들에 대한 대규모 숙청이 진행 중이라는 의미”라는 국책 연구소 관계자의 분석을 인용했다. 그런데 하노이 회담 결렬의 책임과 ‘반혁명적 행위’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일곱째, 하노이 회담 결렬의 책임을 따지자면 제2차 북미정상회담에 배석한 리용호 외무상과 올해 1월 스톡홀름에서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합숙 대화까지 진행한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도 전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 미 행정부의 대북 입장에 대해서는 김영철과 그 측근들보다 오히려 리용호와 최선희가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리용호와 최선희의 입지는 더욱 강화된 상태이다.

만약 김정은 위원장이 하노이 회담 결렬의 책임을 물어 회담을 준비했던 주요 핵심 관계자들을 강제 노역형에 처하거나 처형시킬 정도의 비합리적이고 포악한 지도자라면 리용호와 최선희에게도 당연히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하노이 회담 이후 리용호와 최선희의 입지가 강화된 것은 김 위원장이 김영철 중심의 통일전선부 라인보다는 외무성 라인에 의존하는 것이 대미 협상에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2013년 8월 29일에도 국내 한 언론은 가수 현송월과 은하수관현악단 단장 문경진 등이 김정은의 「성(性) 녹화물을 보지 말 것에 대하여」란 지시를 어긴 혐의로 체포되어 3일 만에 전격 처형되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일부 언론들에 의해 처형되었다고 보도된 현송월은 2014년 5월 조선중앙TV를 통해 건재한 것이 확인되었고, 이후 승진을 거듭하면서 최근에는 김 위원장의 현지지도에도 동행하는 등 그 위상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개인절대권력을 공고화하기 위해 숙청과 공포정치에 의존하고 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런데 김 위원장 집권 이후 국내 언론에 의해 숙청 또는 처형되었다고 주장된 북한 인사들의 상당수는 숙청되었거나 처형된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강등되었거나 다른 직책으로 이동되었거나 건재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므로 특정 북한 인사들이 한동안 공개석상에 등장하지 않는다고 해서 신뢰하기 어려운 ‘대북 소식통’에 의존해 그들이 숙청 또는 처형되었다고 성급하게 단정 보도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북한에 대한 불확실한 루머에 의존하는 무책임하고도 성급한 추정 보도는 결국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 관련 보도를 한 언론기관과 기자에 타격을 줄뿐 아니라 한국 언론의 신뢰도에도 큰 손상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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