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전쟁과 북한의 중국 카드
 
지금 벌어지고 있는 미·중 무역전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트럼프 행정부 초기에 사전조율이 시도됐으나 실패하고, 작년 6월 500억 달러 상당의 중국제품에 대한 25% 고율관세를 매기면서 무역전쟁이 시작되었다. 2018년 12월 1일 미·중 정상회담에서 타결을 시도했지만 결렬되었고, 마침내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5월 10일 2,000억 달러 상당의 중국제품에 대해 10%에서 25%로 관세를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중국도 600억 달러 상당의 미국제품의 관세를 최고 25%로 올렸다. 그러자 미국은 추가로 3,250억 달러 상당의 중국제품에 25% 관세를 매길 것이라고 맞받았다. 
 
미국의 관세 폭탄이 5월 10일 이후에 중국의 항구를 출발한 제품부터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이전에 선적된 제품들은 미국에 도착할 때까지 적용받지 않는다. 하지만 중국은 미국이 요구한 4개 사항의 법제화에 대해 내정간섭이라고 반발하고 있어 타협 가능성이 높지 않다. 
 
이러한 미·중 무역전쟁은 가뜩이나 부진한 중국 경제성장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을 뿐 아니라, 국제경제의 불확실성도 크게 증폭시키고 있다. 중국내 외국 기업들은 고율관세를 견디지 못하고 새로운 투자처를 찾아 점차 다른 나라로 떠나게 될 것이다. 중국 내 한국 기업에도 어느 정도 타격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중국의 사드보복 전후로 많은 한국 기업들이 이미 중국을 떠나 동남아로 진출했다는 점과, 중국제품의 대미수출 감소로 인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 전체 수출액의 0.14%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다.
 
미·중 무역전쟁의 불똥이 튄 것은 뜻밖에도 한국이 아닌 북한이다. 미·중 양대 강국은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남북갈등을 이용해 우리에게 줄 세우기를 강요해 왔다. 사드 문제 발생 때가 가장 대표적이다. 그런데 지금은 양상이 바뀌었다. 미·중 무역전쟁에도 불구하고 남북화해가 진행되면서 상대적으로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무풍지대가 되었다. 반면 대미 비핵화 협상에서 중국 카드를 꺼내들었던 북한은 오히려 미·중 무역전쟁의 카드 패(牌)로 전락하고 말았다.
 
김정은 위원장은 작년 3월 5일 대북 특사단을 만나 조건부 비핵화를 약속한 뒤, 3월 9일 우리 대미 특사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미 정상회담 의사를 전달해 성사시켰다. 그러나 그 뒤 김 위원장은 3월 25~26일 베이징을 전격 방문해 북·중 정상회담을 가졌고, 그 뒤에도 5월 7~8일과 6월 19~20일 잇달아 중국을 방문해 북·중 정상회담을 가졌다. 
 
특히 1차 북·미 정상회담 직후인 세 번째 북·중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은 북한과 중국이 모든 현안에 대해 ‘한 참모부에서 협력하고 협동할 것’을 약속했고, 시 주석은 “두 당과 나라 관계의 불패성을 전 세계에 과시했다”고 화답했다. 이러한 ‘한 참모부’ 약속을 지키려는 듯, 김 위원장은 자신의 생일인 금년 1월 8일 베이징으로 달려가 네 번째의 북·중 정상회담을 갖고 2차 북·미 정상회담 대책을 협의하였다.
 
미국의 중국 견제와 중국의 대북 태도
 
그렇다면 과연 북한은 대미 비핵화 협상에서 중국 카드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어냈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북한은 대미 협상에서 중국 카드가 전혀 먹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중국이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는 냉엄한 국제현실에 직면했다. 이렇게 북·미 비핵화 협상에서 미국에게 중국 카드가 먹히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미국이 바라보는 미·중 무역전쟁과 한반도 문제, 특히 북한 핵문제와의 관계에 기인한다.
 
미국이 내건 첫 번째 이유는 ‘중국 무용론’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4월 자신의 개인별장이 있는 플로리다주 마라라고에서 첫 미·중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두 정상은 미국이 요구한 대중 무역적자 해소방안을 중국이 마련하기로 약속한 ‘100일 플랜’을 발표하였다. 이 때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이 기간 동안 무역적자 해소뿐 아니라 북한 핵문제에 대한 해결책도 주문하였고 시 주석도 이를 받아들였는데, 이것이 이른바 ‘중국 아웃소싱론’이다. 
 
미·중 정상회담에서 북한 핵문제를 협의했다는 것이 알려지자, 북한은 이에 반발해 본격적으로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준비했고, ‘100일 플랜’의 시한을 앞두고 7월 4일 마침내 사거리 7,000km에 달하는 화성 14형의 시험발사에 성공했다. 중국을 통한 북한 비핵화 가능성이 낮다고 본 트럼트 대통령은 트윗을 통해 ‘중국 무용론’의 입장을 밝혔다.
 
2018년 5월 7~8일 김정은 위원장이 두 번째로 시 주석을 만난 뒤부터 북한은 미국 고위관리들에게 맹비난을 퍼부었다.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볼튼 국가안보보좌관을 비난한 데 이어 최선희 부상도 펜스 부통령을 비난하는 개인성명을 발표하자, 5월 25일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한다고 전격적으로 밝혔다. 그는 북한 측이 미국에 대해 이렇게 비난을 퍼붓는 이유가 중국을 믿고 그러는 것이라며 ‘중국 배후론’을 제기하였다.
 
1차 북·미 정상회담이 끝나고 김 위원장이 세 번째로 시 주석을 만나 북·중관계를 과시한 뒤, 7월 7~8일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으로 열린 북·미 고위급회담은 성과 없이 끝났다. 그 뒤 북측 초청으로 고위급회담이 재추진됐지만, 방북을 하루 앞둔 8월 25일 트럼프 대통령은 트윗을 통해 취소시켜 버렸다. 이 때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의 부진과 함께 중국이 무역전쟁 때문에 소극적으로 나선다는 ‘중국 책임론’을 이유로 내세웠다. 
 
김 위원장은 처음에 자신이 비핵화 조건으로 제시했던 군사위협 해소와 체제안전 보장이라는 요구를 뒤로 하고 제재해제를 전면에 내걸었다가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거부로 합의문 채택이 불발되는 결과를 맞았다. 이때부터 미국에서는 북한이 유엔안보리 제재해제 카드를 꺼내든 데는 중국의 조언이 결정적이었다는 이른바 ‘중국 조종론’이 나왔다.
 
미국은 어떤 조건에서 대북 협상에 나섰나
 
북한은 나름대로 중국 카드를 이용해 대미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어보려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때론 활용하고 때론 견제하면서 미·중 무역협상과 북한 비핵화협상을 적절히 다루어 왔다. 이러한 미국의 협상전술 때문에 당장 무역전쟁을 치러야 하는 중국으로서는 미국의 눈치를 보면서 김 위원장이 언급한 ‘한 참모부’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미국은 어떤 때 북한과 직접 협상을 거부하거나 또는 응해 왔는가? 북한이 핵무기 보유를 선언하자 부시 행정부는 6자회담에 나서기는 했지만 ‘선의의 무시(Benign Neglect)’ 정책을 내걸며 6자회담 의장국을 중국에게 떠맡긴 채 '테러와의 전쟁'에 우선순위를 두었다. 그나마 북한이 2006년에 핵실험을 실시한 뒤에야 대북 비핵화 협상에 다소 적극성을 띠었을 뿐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대통령선거에서 북·미 직접대화를 공약으로 내걸었으나 북한 핵문제는 점차 후순위로 밀려났다. 2010년 5월 서울을 방문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처음으로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를 언급한 뒤부터 미국은 직접대화에 나서기보다 유엔안보리 제재와 중국을 통한 압박, 미사일방어망 도입, 한·미·일 3각체제 구축 등을 추진하였다.
 
그렇다면 미국은 어떤 때 대북 직접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섰나? 미국은 지금까지 두 번 적극적으로 임했다. 한번은 클린턴 대통령 때 이루어진 ‘제네바 기본 핵합의’ 때이고, 다른 한번은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나서 톱다운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지금의 비핵화 협상 국면이다. 클린턴 행정부 때는 차관보급의 로버트 갈루치 북핵대사를 내세웠다면, 지금은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나서고 있다는 점이 커다란 차이다.
 
먼저, 클린턴 행정부 때 미국이 북·미 직접협상에 적극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25년 유효기간으로 1970년 3월에 체결된 핵무기비확산조약(NPT)의 시한이 다돼 무기한 연장 문제를 논의할 뉴욕 NPT연장회의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이집트를 필두로 한 비동맹국가들은 기존 핵무기국가들의 소극적인 핵군축 태도에 불만을 표시하면서 NPT 무기연장에 반대하였고, 일본도 북한 핵문제의 미해결 등을 들어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은 북한 핵문제의 조기타결 필요성 때문에 북·미 제네바협상에 적극 나서 합의문을 이끌어낸 것이다. 
 
다음으로, 북·미 비핵화 양자협상에 트럼프 대통령이 적극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몇 가지로 분석해 볼 수 있다. 첫째는 북한이 수소탄 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에 성공해 미 본토에 대한 위협을 가시화하자 어떻게든 대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둘째는 김 위원장이 자발적으로 핵무기 포기를 약속했기에 어느 때보다 비핵화 가능성이 높아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 셋째는 자기 문제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도와주며 설사 실패하더라도 정치적 책임을 나눠가질 문재인 대통령이라는 좋은 중재자가 있다. 마지막으로 미·중 무역전쟁에서 중국을 압박할 좋은 카드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국을 잘 활용해야 기회가 생긴다
 
이와 같은 한반도 내외 정세에서 우리가 주목하는 점은 바로 미·중 무역전쟁과 북·미 비핵화 협상의 상관성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첫 번째와 두 번째 이유 때문에 직접협상에 나온 것으로 판단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지금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직접협상을 미·중 무역전쟁의 승리를 위한 바둑판의 패로 활용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미·중 무역전쟁이 조기에 타결된다면 북한 카드는 효용성이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요즈음의 추세로 볼 때 미·중 무역전쟁이 단기간에 끝날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무역전쟁이 봉합된다면 3차 북·미 정상회담과 같은 기회는 찾아오기 어렵다. 봉합이든 타결이든 미·중 무역전쟁이 일단락된다면 북·미 비핵화 협상의 동력이 크게 떨어져, 미국은 '선의의 무시'나 '전략적 인내' 정책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그런 점에서 북한은 미국이 직접협상에 나온 세 번째 이유를 간과하면 안 된다. 바로 문재인 대통령이라는 변수다. 문 대통령은 국내 반대진영으로부터 터무니없는 정치공세를 감수하면서까지 한반도문제를 풀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지난 3.1절 기념사에서 새로운 100년의 시작점이라고 규정한 4월11일이 상해 임시정부 출범일임에도 비핵화 협상에서 미국이 이탈하지 않도록 설득하기 위해 워싱턴을 방문했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서 채택이 불발된 이후 북한에서는 지난 경과에 대한 복기, 현 정세의 재평가 및 인사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최근 북한의 대남, 대미 대응방식을 보면 어설프기 그지없다. 남측더러 미국과 잡은 손을 놓고 '우리 민족끼리'에 나서라고 연일 공세다. 유엔안보리 제재 하에서 '한 참모부'를 선언한 중국조차 못하는 경협사업을 남측더러 하라는 것인가? 인사교체에 따른 업무 미숙이라면 곧 해결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지만, 만약 잘못된 정세인식에 기인하는 것이라면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는 6월말 트럼프 대통령이 서울을 방문할 예정이다. 한국 정부가 어렵게 만든 기회다. 때 맞춰 지금 남쪽에서는 대북 인도적 지원 재개와 개성공단 기업인의 방북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북측에선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북측이 인도적 지원을 명분으로 남북대화에 나오기보다 먼저 남북대화에 나온 뒤 분위기 조성 차원에서 인도적 지원이 이뤄지는 것이 김 위원장의 체면도 살릴 수 있고, 향후 북·미 비핵화 협상에서도 당당히 나설 수 있게 된다. 북한 당국은 이제라도 진정한 ‘우리 민족끼리’에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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