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행보: 내부안정과 대미 기 싸움의 지속

최강 안보부문

안두현 객원연구위원

아산정책연구원

 

2019년 2월 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의 2차 미·북 정상회담이 별다른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종결된 이후 북한은 다양한 대내외 행보를 보였다. 회담 직후 3월 한 달 동안 집중된 최선희 등 북한 고위인사들의 잇단 대외발언, 4월 11일~12일간 개최된 제14기 1차 최고인민회의, 그리고 4월 25일의 북·러 정상회담 등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이를 통해 북한은 대내적으로는 김정은 중심의 권력구도를 보다 공고히 함으로써 포스트-하노이 국면에서 자칫 발생할 수 있는 그의 지도력에 대한 의구심을 씻어내려 노력했다. 

또한, 대외적인 측면에서는 설혹 미국 및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지속된다고 하더라도 이를 충분히 견뎌낼 수 있으며, 따라서 수세적인 입장에서 협상할 의지가 전혀 없다는 메시지를 발신하였다. 동시에 철저한 ‘민족공조’의 수용 없이는 남북한 관계의 발전도 어려울 것이라는 뜻을 전달했고, 5월 4일 새벽에는 단거리 미사일 혹은 방사포로 추정되는 발사체를 발사했다. 이러한 북한의 대내외 행보에 얼마만큼의 일관성과 신뢰성이 있는지, 현 국면에서 북한이 진정으로 바라는 결과는 무엇인지를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1. 대미 메시지와 대남 메시지의 차별화

하노이 정상회담 직후인 3월 1일, 북한은 리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부상이 참석한 가운데 심야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리용호 외무상은 북한이 영변 핵시설의 폐기를 조건으로 “전면적인 제재 해제 아니고 일부 해제, 구체적으로는 유엔 제재 결의 11건 가운데 2016년부터 2017까지 채택된 5건, 그 중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들만 먼저 해제”할 것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리용호 외무상의 주장에 따르면 이는 지극히 ‘현실적’인 제안이었다. 또한, 최선희 부상은 미국의 입장을 김정은 위원장이 납득할 수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다. 최선희 부상은 3월 1일 오후 우리 취재진을 만난 자리에서도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언급한 ‘새로운 길’을 인용하며 “(김정은의) 생각이 좀 달라지시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라고 언급함으로써 추후 북한이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음을 암시하였다.최선희 부상은 3월 15일에도 평양에서 외신 기자회견을 갖고  “우리는 어떠한 형태로든 미국과 타협할 의도도, 이런 식의 협상을 할 생각이나 계획도 결코 없다”고 밝히면서 미·북 협상에서 기존의 노선을 수정할 의사가 없으며, 경우에 따라 협상 결렬이 이루어질 수도 있음을 밝혔다.

이러한 입장은 4월 12일 김정은 위원장이 제14기 최고인민회의에서 한 시정연설을 통해 보다 분명히 나타났다.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이 지금의 계산법을 접고 새로운 계산법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서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올해 말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볼 것이지만 지난번(하노이회담)처럼 좋은 기회를 다시 얻기는 분명 힘들 것”이라고 역설하였다.보다 직설적으로 미국의 현재 협상라인을 교체하라는 주장도 나왔다. 4월 18일 북한 외무성 미국담당국장인 권정국은 “폼페이오가 아닌 우리와의 의사소통이 보다 원만하고 원숙한 인물이 우리의 대화상대로 나서기 바랄 뿐”이라며 사실상 그의 교체를 요구하고 나왔다.

하노이 회담 이후 북한이 미국 측에 대해 던지고 있는 메시지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1) 하노이 회담의 합의 불발은 미국(특히 트럼프 참모진)의 무리한 요구에 의한 것이고, (2) 북한은 ‘자력갱생’을 통해 미국의 제재 압박을 분명히 견뎌낼 수 있으며, (3)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의 길은 열려있지만 기존 입장을 바꾸어야 하는 것은 미국이라는 점이다. 북한으로서는 2차 미·북 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끝난 책임을 미국 측에 돌리면서도 비난 수위조절을 함으로써 대화와 협상 자체를 종결시킬 의사가 없다는 점을 밝힌 것이다. 또한, 워싱턴 주류와 차별화된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하기도 하였다.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을 분리하여 접근한 것은 이러한 의도를 지닌 것으로 보아야 한다.

하노이에서의 합의 불발이 과연 실무선의 합의와는 다른 무리한 ‘빅딜’을 미국 측이 요구함으로써 초래된 것인지, 아니면 북한의 사실상의 제재 전면 해제를 요구함으로써 전체적인 흐름이 ‘빅딜’로 갈 수밖에 없는 구도가 만들어진 것인지는 아직 불분명하며 상황을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다. 다만, 전반적인 맥락상 제재 완화/해제 여부가 최대의 쟁점이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는 회담 직후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에서도 나타났고, 리용호·최선희의 심야 기자회견에서도 부인되지 않았다. 문제는 과연 북한이 제시한 내용이 ‘합리적’ 수준이냐는 것이었고, 미국은 북한이 사실상 전면적인 제재 해제를 요구하면서, ‘영변의 일부’(only a part of Yongbyon)만을 해체하겠다고 주장한 것으로 해석했다.

이와 같이, 북한은 자신들의 제재 완화/해제 요구의 정당성을 부각하는 한편, 회담 합의 불발의 책임을 미국 탓으로 돌리는 대외/대미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발신해 왔다. 동시에 김정은 위원장의 ‘새로운 길’ 역시 여지만을 암시할 뿐 구체적으로 어떠한 조치를 취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태도를 취했다. 이는 미국과의 기 싸움에서 밀리지는 않지만, 협상의 결렬을 먼저 선언하지는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 개인에 대해서는 여전히 호의적인 제스추어를 취하기도 했다. 대미 비판과 비난을 하되 그 수위는 조절한 것이다.

동시에, 북한은 한국에 대해서도 두 가지 방법을 통해 ‘민족공조’를 강조하는 메시지를 던졌다. 즉,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어떤 절충적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북한의 입장에 호의적인 태도를 취하라는 것이다. 첫 번째의 방법은 기존의 남북 간 합의 이행에 차질이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북한이 3월 22일~24일간 개성의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인원을 잠정 철수한 것은 단순한 인원 교체의 목적으로도 볼 수 있지만, 한국의 태도에 따라 향후 남북한 관계 발전이 좌우될 수 있음을 압박하기 위한 의도의 표출로도 해석할 수 있다. 북한이 우리 측의 행사계획 통지에도 불구하고 4월 27일 판문점 선언 1주년 행사에 불참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의 행태일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은 직설적 화법으로 한국을 압박하는 것이다. 4월 12일의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남조선당국은 추세를 보아가며 좌고우면하고 분주다사한 행각을 재촉하며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일원으로서 제정신을 가지고 제가 할 소리는 당당히 하면서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되어야 합니다”라고 주장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화법은 결국 추후 남북 정상회담을 비롯한 대화 채널의 가동이나 남북 교류·협력 역시 우리의 태도를 보아가면서 결정하겠다는 의사의 피력이라 볼 수 있다. 특히, 이 연설이 4월 11일(미국 현지시각)의 한·미 정상회담 결과가 발표된 이후에 나온 것이라는 점에서 이는 한·미의 상황인식과 한국의 대미 설득력에 대한 불만의 표시라고도 볼 수 있다.

 

2. 내부 권력구도의 강화와 새로운 통치 방식의 모색

지난 4월의 14기 최고인민회의 출범을 기점으로 김정은 위원장은 자신의 권력기반이 탄탄하다는 사실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했다. 이는 대미 메시지 측면에서도 의미를 지닌다. 비록 정상적인 체제의 민주적인 선거의 결과는 아니지만, 최고인민회의 선거를 통해 나타난 새로운 북한의 권력구도는 단기적인 측면에서 김정은 위원장에게 도전할 만한 세력은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대미 협상력의 측면에서 북한이 당장 미국에게 양보를 할 동기가 크지 않음을 과시할 수 있는 것이다. 우선, 3월 12일에 실시된 대의원 선거 결과 김정은 시대에 들어 가속화된 권력 엘리트의 세대교체가 그대로 반영되었다. 특히 김여정, 최선희 등 2016년의 7차 노동당 대회 이후 두각을 나타낸 신세대 권력엘리트들이 그대로 대의원단에 진입했으며, 최선희의 경우 제14기 1차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노동당 중앙위원, 국무위원, 외무성 제1부상이 됨으로써 외무상 리용호에 못지않은 정치적 위상을 가지게 되었다. 김정은 시대와 함께 정치적 두각을 드러낸 엘리트들의 부상은 결국 정치적 이익의 공유를 통한 충성의 강화라는 면에서 김정은 위원장에게 힘을 실어줄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것은 그동안 정치적으로 부침을 계속했던 최룡해의 2인자 지위 확보이다. 최룡해는 제14기 1차 최고인민회의에서 김영남의 후임으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자리에 올랐다. 이는 노쇠한 김영남에 대한 세대교체의 차원에서도 해석될 수 있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이제는 어떠한 2인자도 자신에 대한 도전세력으로 우려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조치로도 읽힐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2018년 중 잇단 중국 방문과 싱가포르에서의 1차 미·북 정상회담 당시 최룡해를 평양에 남겨둔 것 역시 같은 측면에서 해석될 수 있다. 그만큼 최룡해의 정치적 충성심을 신뢰한다는 표시인 것이다. 김정은 집권 초반의 특징이었던 잦은 2인자 그룹의 지위변동은 김정은 위원장의 절대권력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들에 대한 견제심리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최룡해의 공식 2인자 등극, 그것도 북한 헌법상 대외적으로 북한을 대표하는 지위에 그를 앉힌 것은 김정은 위원장의 정권장악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낸다.

‘자력갱생’이 14기 1차 최고인민회의와 그에 앞서 열린 정치국 확대회의, 그리고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관통하는 키워드였다는 점도 인상적이라 할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오늘의 정치정세 흐름은 우리 국가로 하여금 자립, 자력의 기치를 더 높이 추켜들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하였다. 내부적으로 경제발전의 호기를 놓치지 말아야 함을 강조하는 의미도 있겠지만, 2차 미·북 정상회담을 통해 대북제재의 조기 완화나 해제가 사실상 어려운 것이 확인된 만큼, 이는 우회적인 대미 메시지의 성격도 분명히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즉, 김정은 위원장으로서는 제재가 당분간 지속된다고 하더라도 이를 견뎌낼 역량이 있으며, 제재카드를 가지고는 결코 북한을 변화시키기 어렵다는 점을 대내외적으로(특히 미국에게) 과시하고 싶었을 것이다.

동시에 14기 최고인민회의는 향후의 권력구도와 관련된 김정은 위원장의 숨은 고민도 엿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김정은 위원장은 최고인민회의 한 달 앞서 실시된 대의원 후보자 명단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는데, 이는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겸하는 기존의 관례에 비추어 이례적인 것이었다. 김정은 위원장의 대의원 불출마를 놓고 여러 가지 해석이 있었지만, 일부에서는 이것이 김정은 위원장의 ‘정상국가화’ 시도의 일환으로 보았으며 최고인민회의에서의 개헌을 통한 주석제 복원 가능성도 예상되었다.주석제 복원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최고인민회의에서 어떠한 형태로든 개헌(김정은이 국가수반직도 겸하는)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관측도 여전히 존재한다.

문제는 김정은 위원장이 국가주석이 되고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겸하지 않으면 북한이 ‘정상국가’로 인식될 수 있는가 이다. 최고지도자가 입법부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 일종의 ‘삼권분립’ 인상을 줄 수는 있다. 그러나 어떤 ‘정상국가’도 입·사·행을 초월하는 인물(‘수령’)을 지도자로 삼는, 그것도 사실상 종신임기로 ‘추대’되는 제도를 취하지는 않는다. ‘수령제’의 근간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과거 김일성이 올랐던 국가주석 직이나 김정은 위원장이 오르게 될 새로운 직위간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없다. 김정은 위원장의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직 불출마가 어떤 배경에서 이루어진 것인지는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최소한 대외적인 ‘정상국가’ 이미지를 지향했다면 이는 단순히 국가주석직의 부활만으로 달성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김정은 위원장으로서는 수령제 통치체제와 ‘정상국가’화 이미지 사이에 존재하는 철학적·논리적 괴리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인 셈이다.

 

3. 이중 안전판의 확보 측면에서의 대러 외교

김정은 위원장이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보인 세 번째의 주목할 만한 행보는 러시아 방문과 북·러 정상회담이다. 4월 24일~26일간 김정은 위원장은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가졌다. 4월 25일 열린 단독회담에 앞서 김정은 위원장은 모두발언을 통해 이 회담의 목적이 “한반도와 지역정세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북한과 러시아가) 공동으로 정세를 관리”하는 것임을 밝혔다. 또한, 김정은 위원장과의 회담이 끝난 이후 푸틴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이 핵을 포기하려면 미국 이외도 더 많은 국가들의 안보보장(security guarantees)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였고, “(유관국들이) 상호 이익을 존중하면서 점진적으로 나아간다면 비핵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역설하는데, 이는 비핵화 문제와 관련하여 김정은 위원장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북·러 정상회담을 통해 중국이라는 전통적 후원세력 이외에도 러시아라는 무시할 수 없는 변수가 있다는 메시지를 워싱턴에게 던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중국과 러시아라는 안전판이 존재하는 만큼, 그들의 ‘자력갱생’이 결코 공허한 외침이 아니며, 따라서 먼저 양보적인 조치를 제안하고 나와야 할 것은 미국 쪽이라는 말을 전달하고 싶었을 것이다. 중·장기적인 측면에서 북·러 관계의 발전은 북한의 운신폭 확대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비록 북한이 그들의 경제적 생존을 위해 2000년대 이후 중국 쪽에 많이 의존해 왔지만, 이런 추세가 중국에만 편향되게 이루어질 경우 중국에 대한 종속 우려가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국이나 러시아 어느 한쪽에만 경도된 정책을 폈을 경우, 얻는 이득보다는 손해가 더 컸던 북한 외교사도 감안을 했을 것이다. 북·중간 지난해에만 세 차례의 정상회담이 이루어졌고 금년 1월에도 김정은 위원장과 시진핑 주석 간의 정상회담이 있었음을 감안할 때, 사실 김정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은 시간 문제였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북한과의 관계 재강화가 한반도 및 동북아시아 지역에 있어 모스크바의 발언권을 강화하는 한편, 앞으로의 정세 변화에 따라 주요한 의제가 될 한반도 평화체제에 있어서의 입지를 확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전통적으로 러시아와 북한 간에 주기적인 합작사업 논의가 있어왔던 나선 지역과 러시아 연해주 지역의 연계개발 등도 논의할 기회가 자연스럽게 마련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이번 정상회담은 북한과 러시아 모두 뚜렷한 협력 동기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치·외교적 상징성 이외에 실질적인 협력 효과가 얼마나 나타날지는 미지수이고, 러시아가 북한이 기대한 만큼의 지원세력이 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우선 북·중 교역규모에 비해 북·러간 교역규모는 상대적으로 소규모이며, 이런 현실로 미루어 러시아가 국제제재라는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입장을 고려하더라도 얼마만큼 북한이 원하는 자원을 제공할 수 있을까는 의문이다. 더욱이 2017년에 들어 잇달아 UN 안보리를 통과한 대북 제재결의안 2371, 2375, 2397호는 모두 러시아도 찬성표를 던진 것인 만큼, 러시아 역시 이를 노골적으로 위반하는 행위를 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여러 가지 관측에도 불구하고 북·러간 단기간 내에 가시화될 수 있는 합작사업 계획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공표되지 않았다.비록, 러시아 극동개발부 장관이 5월 초 방북하여 북·러 정상회담 후속 조치를 북한 측과 논의하기로 합의하였다고는 하지만, 이것이 제재 국면을 심각하게 변화시키는 파급영향을 미치기는 어려울 것이다.

 

4. 향후 예상되는 북한의 선택

하노이에서 북한이 보여준 태도, 그리고 3월~5월에 이르는 기간의 행보는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나선 동기를 다시 한 번 분석할 수밖에 없게 한다. 예를 들어, 그 이전까지 ‘종전선언’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평양이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을 전후하여 이의 이행을 요구하고 나오고, 다시 2018년 하반기에 들어서는 목소리를 상대적으로 낮추는 등 그들의 행동이 일관되지 않은 면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우선 북한이 비핵화 협상을 핵능력 완성과 핵보유국 지위 획득을 위한 시간벌기용으로 활용하려 하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이미 북한이 “핵능력 완성”을 선언했다는 점, 그리고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능력을 완결짓지 못한 상태에서 모라토리움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설명되지 않는다. 실제로, 하노이 회담에서 별 다른 성과가 도출되지 않았음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위원장이 미사일 발사나 핵실험을 재개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고 언급하였다.

또 다른 경우의 수는 북한이 실제적으로 분명한 비핵화 의지가 있음에도, 여러 가지 제반 여건 즉 대미 불신의 문제로 인해 협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경우이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정치적 문제(코헨 청문회 등)로 인해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합의할 수 없는 제안을 했다는 일부의 주장에서도 등장하는 논리이다. 이 관점에서 본다면 미국이 제재해제와 관련되어 조금만 양보하는 조치를 취한다면 의외로 협상은 쉽게 풀릴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그렇다면, 왜 김정은이 시정연설에서 ‘올해 말’까지 기다려보겠다는 언급을 했는지를 설명하기 어렵다. 이미 북한이 그들 스스로의 태도로 대북제재가 적잖은 부담을 주고 있음을 토로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또한, 정말 일거에 완전한 비핵화를 지향하고 있다면 ‘빅딜’ 합의를 받아들이면 그 자체로서 목적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 어차피 실행은 단계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기에 그 과정에서 미국이 약속을 어긴다면 북한 역시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면 되는 것이다.

세 번째는 북한 역시 확실한 비핵화의 최종적 종결점을 확정하지 않고 버티기에 들어간 경우이다. 즉, 전반적인 여건이나 추세가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돌아갈 경우, 사실상 핵보유국으로서의 지위를 인정받은 상태에서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에 임하는 한편 제재의 완화·해제를 조기에 이끌어낼 수 있다. 반면, 대북제재 등으로 인해 대내외적인 운신의 폭이 심각하게 저하될 경우에는 수세적인 측면에서 비핵화 협상을 재개하되, 가능한 최소한의 핵능력(핵기술이나 data와 같은)은 유지하기를 원할 것이다. 또한, 설혹 미국과의 협상을 북한이 먼저 제의하는 형국이 되더라도 이것이 대내적으로 굴욕적인 타협으로 비추어지지 않도록 모양새를 갖추기를 원할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최고인민회의에서의 시정연설에서 ‘새로운 길’이나 ‘협상 결렬’을 언급하지 않고 금년 말까지 기다리겠다고 한 발언은 이 경우의 수에서는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다. 그의 발언은 결국 금년 말까지는 대북제재가 완화·해제되지 않더라도 이것이 북한에 심각한 정치·경제적 타격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계산에서 나온 것일 가능성이 크다. 평양으로서는 2020년부터 미국이 대통령 선거전에 돌입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정책상의 업적을 남겨야 할 부담에 의해 기존에 비해 유화적인 대북정책을 펼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남북한 관계 면에서도 북한의 그럭저럭 버티기는 설명력을 지닌다. 북한은 금년 말까지 자신들에게 유리한 여건 조성을 위해 한국, 더 정확히는 2018년 3차례 정상회담에서 나타난 남북관계 발전에 대한 우리 정부의 의지를 활용하려 할 것이다. 즉,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남북한 관계 발전을 위해서는 철저히 ‘민족공조’에 충실하거나 미국으로부터 양보적인 대북 조치를 이끌어내라는 유무언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것이다. 남북한의 협력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를 구현하며 더 나아가 동아시아 전체의 안정을 이루겠다는 우리의 의지와는 달리 평양에게 여전히 서울은 미국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징검다리 역할에 머물고 있는 듯하다. 남북 정상간, 혹은 고위급 회담과 군사분야 합의서 등에 명기된 조치들에 대해 북한이 여전히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

북한은 당분간 제재와 관련된 ‘표정관리’를 계속해 나가면서 먼저 미·북 대화를 제의했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다만, 1차 미·북 정상회담 1주년이 되는 6월을 전후하여 미국의 ‘합의 이행’과 트럼프 대통령(미국 전체가 아닌)의 결단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집중 발송할 가능성이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또 한 번의 ‘친서 외교’가 이루어질 수도 있다. 남북한 관계는 일단 이러한 대미 행보가 이루어진 이후 우리의 태도에 따라 속도와 완급을 조정해 나가려 할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이나 고위급 회담 등 대화채널의 가동 역시 마찬가지이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한국이 자신들의 의제를 받아들일 것이라는 판단이 들지 않는 이상 대화에 소극적인 입장을 견지할 가능성이 크며, 남북 정상회담 역시 또 한 번의 판문점 회담이나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보다는 평양에서의 정상회담을 선호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북한이 5월 4일 단거리 발사체를 발사한 것은, 대미용보다는 대남용의 성격이 더 강하다고 보아야 한다. 아직 그 구체적 재원이 파악되지 않고 있지만, 우리 정보당국은 이 발사체가 미사일로 보기에는 사거리나 궤적 상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 발사체가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에서의 합의 결과나 핵/미사일 실험 모라토리움에 대한 위반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이 발사체가 ‘미사일’이라고 하더라도 그동안 미국 역시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해 제재를 추진한 적은 없다. 즉, 대화 국면을 근본적으로 뒤집을 사건은 아니라는 점에서 북한은 향후 미국의 태도 여하에 따라 긴장이 재현될 수도 있음을 우회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반면, 한국의 입장에서 이는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에 명시된 “일체의 적대행위 중지”의 정신을 훼손하는 것은 분명하다. 북한은 현 국면에 대한 불만을 한국에 대해 보다 직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5. ‘촉진자·중재자’ 강박관념으로부터의 탈피가 필요한 시점

북한이 3월 이후 보인 행태를 감안할 때, 우리의 입장에서도 남북한 관계 운영 측면에서 방향 수정이 불가피한 시점이 되었다.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남북한 관계의 중요성을 바라보는 서울의 시각과 평양의 관점 사이에는 분명한 온도차가 존재하며, 이 현실을 간과하고서는 북한의 긍정적인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기가 힘든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우리 역시 대북정책에 있어서 호흡을 가다듬어야 한다.

첫째, ‘신한반도체제’로 대별되는 남북한 관계 발전과 한반도의 평화·공동번영 비전은 중·장기적으로도 분명히 유용하며 우리가 지향해야 할 점이다. 그러나 이것의 단기간 구현에 집착하면 할수록 우리의 운신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판문점선언』 1주년 행사에 보낸 영상 메시지를 통해 “때로는 만나게 되는 난관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함께 길을 찾아야 한다”고 언급한 것은 그렇기에 적절한 대북 메시지라 할 수 있다. 어차피 중·장기적인 프로세스가 될 수밖에 없는 한반도의 새로운 질서 구축은 정상회담이나 특정 합의에 무게를 두기보다는 전반적인 방향성과 추세를 중시해야 한다. 그런 접근을 취해야 정책의 지속가능성이 제고되어 행정부 교체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게 된다. 북한이 별로 급해 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면 보일수록 우리 역시 여유 있는 대북제의나 접근으로 대응해 나가야 한다.

둘째, ‘중재자·촉진자’ 역할을 지향하기는 하지만, 이를 수사적인 측면에서 지나치게 강조할 필요는 없다. 한국의 대안이 만약 주변국이나 국제사회 대다수가 공감하고 지지하는 안이라면 그 역할을 자연적으로 발생한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한국이 제안하는 한반도 비핵화 방안이 왜 더욱 합리적이고 미·북 양측 모두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인지를 차분히 설득해 나갈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미국에 대해 대북제재에 대한 융통성 있는 자세를 제의하는 것에 못지않게, 초기단계부터 과감한 비핵화 조치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평양에 지속적으로 발신해야 한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기존의 남북한 간 합의에 대해 북한에 이행을 강조해야 한다. 미국이나 국제사회의 시각에서 상대적으로 난이도가 낮은 남북한 관계에서의 합의 자체도 이행하지 않는 북한의 약속에 대해 신뢰를 보내라고 설득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런 점에서 북한의 이행을 기다려주기보다는 촉구하는 노력이 강화되어야 한다. 특히, 북한의 5월 4일 단거리 미사일 발사체와 관련해서는 유감 수준을 넘어선 강력한 메시지의 전달이 필요하다.

셋째, 4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합의되었다는 ‘톱다운(top-down) 방식’에 대한 국내적 합의와 이해를 구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톱다운 방식’을 실무협상에서 발생할 수 있는 권한의 한계나 정부부처 내부의 이견을 돌파하고 지도자간 과감한 결단에 의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에는 분명히 유리한 방식이다. 그러나 이 ‘톱다운 방식’이 정책결정과정에서의 일방통행이나 관련 정보의 공유미흡, 일방적 소통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이 ’톱다운 방식‘의 지속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실제 정책결정 과정에서 대통령만의 입김이 강화된다거나 의회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더욱이, 이 ’톱다운 방식‘ 하에서 폼페이오 국무장관이나 볼튼 보좌관의 입장은 오히려 북한 핵능력의 확실한 해체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수렴되고 있으며, 대북제재 완화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 역시 확고하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융통성을 지향하는 트럼프, 이를 반대하는 특정 참모들과 워싱턴의 주류보수들”은 어떤 면에서는 우리 내부에서 만들어낸 왜곡된 이미지에 가깝다. 이를 탈피해야 진정한 ’톱다운 방식‘의 남북한 관계 발전도, 한·미 공조도, 그리고 미·북간의 ’중재자·촉진자‘ 역할도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한국 정부는 자신들이 생각하는 비핵화의 개념, 범위 그리고 접근 방식을 보다 명확히 해야 한다. “중간 수준의 딜”, “굿 이너프 딜”, “조기 수확” 등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설정하고 이에 대한 공감과 지지를 확보해야 한다. 문제는 우리에게 가장 유리하고 적합한 방식, 그리고 비핵화를 실질적으로 진전시킬 수 있는 방식이 무엇인지를 설정하는 것이다. 단순히 대화와 협상의 모멘텀을 유지하기 위한 차원에서의 접근은 지양되어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 비핵화를 강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항구적인 평화의 제1차적 조건이 비핵화이기 때문이다. 핵문제의 당사자로서 북핵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하고 실질적 해결에 적극성을 보여야 한다. ‘당사자’가 이 문제를 절실히, 그리고 완전하게 해결하려는 의지가 약하다는 인상을 줄 경우, 한·미 공조와 남북협력 모두가 어려워진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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