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논평> 제3차 북미정상회담의 성공 조건과 북․미 핵 합의의 방향:
실무회담 대표에의 권한 위임과 비핵화․상응조치 합의의 동시․병행적 이행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

지난 2월 말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의 결렬은 정상회담 날짜를 먼저 정해놓고 거기에 맞추어 급하게 실무회담을 진행하면서도 핵심적인 결정은 정상들에게 맡기는 기존의 톱다운 방식의 한계를 잘 보여주는 것이었다. 정상회담 직전까지도 북․미가 실무회담에서 의제를 충분히 조율하지 못함으로써 결국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회담에서 합의문에 서명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합의문에 들어갈 핵심 내용을 가지고 직접 본격적인 협상을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 같은 결과는 무엇보다도 북한이 김혁철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에게 비핵화 문제와 관련해 어떠한 협상 권한도 부여하지 않은데 기인한다. 이는 최고지도자 1인에게 권력이 고도로 집중되어 있는 북한체제의 스탈린주의적 특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 결과 김혁철은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와 비핵화 문제를 제외한 사안에 대해서만 논의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다 심각한 것은 실무협상 기간 미국이 북측에 전달한 요구 사항들조차 김정은 위원장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이다. 그 결과 김 위원장은 영변 핵시설을 폐기하는 대신 미국으로부터 ‘2016∼2017년 채택된 유엔 제재 결의 5건, 그 중에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들’의 제재 해제를 받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매우 비현실적이고 안이한 판단을 가지고 하노이 회담에 임하게 되었다.

현재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협상을 총괄적으로 지휘하고 있는 인물은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다. 따라서 제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영변 핵시설 폐기 +α의 비핵화 조치’ 논의에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은 것과 미국에게 과도한 제재 해제를 요구함으로써 회담이 결렬된 데 대한 가장 큰 책임은 김영철 부위원장에게 있다.

김영철을 비롯한 북한의 강경파들이 원하는 최상의 시나리오는 북한이 핵프로그램의 일부만을 포기하고 미국이 대북 제재의 핵심부분을 해제한 상태에서 북한이 계속 핵무기 보유국으로 남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한․미가 받아들일 수 없는 시나리오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작년 6월 12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그릇된 편견과 관행들이 우리의 눈과 귀를 가리기도 했지만” 그 모든 것을 과감하게 짓밟고 싱가포르에 왔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보여준 비현실적인 협상전략은 그의 눈과 귀가 북한의 강경파들에 의해 가려져 그가 합리적인 판단에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김 위원장이 김영철에게 하노이 협상 결렬의 책임을 물어 그를 경질하거나 그에 대한 의존도를 현저하게 줄이지 않는 한 앞으로도 미국과 북한 간의 핵 협상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제3차 북미정상회담이 다시 노딜(no deal)로 연결되지 않으려면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미국의 상응조치에 대한 포괄적 공정표 합의에 도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김 위원장이 북한의 실무회담 대표인 김혁철에게 비핵화 문제에 대해 충분한 협상 권한을 부여하고 북․미 실무협상 내용을 직접 상세하게 보고받는 것이 중요하다.

제3차 북미정상회담이 실무회담에서 충분한 논의의 부족으로 결렬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한국정부는 북한과 미국 간의 실무회담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먼저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김혁철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 간의 실무회담 개최를 추진하고 이를 정례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 대통령은 판문점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직접 만나거나 대북 특사를 통해 이도훈과 김혁철 간의 실무회담 정기 개최를 북측에 제안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도훈․김혁철 실무회담을 서울과 평양에서 돌아가면서 개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만약 김혁철이 서울까지 오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당분간 판문점(과 평양)에서 실무회담을 개최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이 만약 비핵화 문제에 대한 남북협의를 거부한다면 이는 그들이 주장하는 ‘우리민족끼리’ 정신에 반하는 것이다.

이도훈․김혁철 실무회담이 성사되면 한국정부는 이것을 이도훈․김혁철․스티븐 비건이 참가하는 남․북․미 회담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제3차 북미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해서는 한․미 워킹그룹과 비슷한 형태의 북․미 또는 남․북․미 워킹그룹이 만들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북․미 또는 남․북․미 실무회담 대표들은 워싱턴과 평양, 서울(또는 판문점) 등에서 수시로 정기적으로 만나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제3차 북미정상회담에서 서명할 합의문 초안을 준비해야 한다. 그래서 실무회담에서 정상회담 합의문 초안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모두 만족할 정도의 의견 접근이 이루어지면 그때에 가서 정상회담 날짜를 확정해야 할 것이다.북․미 실무회담이 정례화, 상시화되면 김정은 위원장도 충분한 조율의 부족으로 하노이에서처럼 합의문에 서명을 하지 못하고 귀국하는 것과 같은 수모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는 전적으로 북한의 이익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북한과 미국은 향후 실무회담에서 양측의 요구사항들을 모두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고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미국의 상응조치에 대한 포괄적 공정표를 완성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미국과 북한이 포괄적 공정표에 합의하게 되면 이후 합의는 동시․병행․단계적으로 이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같은 방안은 ‘일괄 타결’을 주장하는 미국과 ‘단계적 비핵화’를 주장하는 북한 모두 수용할 수 있는 절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은 최근까지 비핵화 조치를 하나가 완료되면 그 다음에 다른 단계로 넘어가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영변 핵시설 폐기 이후 어떠한 단계를 거쳐 ‘완전한 비핵화’에까지 도달할 것인지 비핵화 로드맵을 일절 제시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같은 ‘단계적’ 방식으로는 비핵화 과정이 매우 길어지게 될 뿐만 아니라 북․미 수교와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에까지 도달할 수 있을지 불확실해진다.

그러므로 북한이 영변과 다른 지역의 핵시설 폐기, ICBM 폐기, 핵탄두 폐기 등 여러 개의 비핵화 조치를 동시에 병행적으로 진행하고 미국의 상응조치도 북한의 비핵화 조치 진전에 속도를 맞추어 병행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를 들어 북한은 ICBM의 폐기나 핵탄두 폐기를 단번에 완료하는 것이 아니라 2~3단계로 나누어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미국도 북미 관계 정상화와 대북 제재 해제를 북한의 비핵화 진전에 상응해서 단계적으로 병행하면 된다.

만약 북한이 여러 개의 비핵화 조치를 동시에 병행적으로 진행한다면, 북한이 시간을 끌면서 핵보유국 지위를 사실상 기정사실화할 것이라는 외부세계의 의혹을 해소할 수 있다. 그리고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신속하게 진행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현 임기 내에 북․미 수교와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및 대북 제재 전면해제도 가능해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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