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비핵화와 핵 전문인력 관리 방안

이중구 한국국방연구원

북한의 비핵화에 진전이 있을 경우, 핵무기 개발과 제조에 종사하고 있는 핵과학자, 기술자에 대한 관리의 중요성이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은 지난해 5월 풍계리 핵시험장 폐기행사를 진행했고 9월 남북정상회담에서도 동창리 미사일 실험장 폐기 및 미국의 상응조치가 있을 경우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 의사를 밝혔습니다. 금년 2월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미국은 영변 외의 핵시설 폐기도 요구했습니다. 당장 하노이 정상회담은 결렬되었으나, 비핵화 진전 시에는 북한 핵시설의 전면적 폐기가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해볼수 있는 것입니다. 북한의 비핵화가 진전됨에 따라 영변 시설을 포함한 핵관련 분야에 종사하는 전문인력의 관리가 소홀할 경우 이들이 비핵화에 반대하는 세력이 되거나 생계를 위해 제3국의 핵개발을 돕게 될지도 모릅니다. 올리 하이노넨 전 IAEA 사무차장도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 핵과학자와 기술자에 대한 포괄적 관리가 필요함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북한 핵 전문인력의 역할과 규모를 파악하고 비핵화 과정에서 이들을 관리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때입니다.

북한의 핵 과학계는 1946년 경 월북한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형성되기 시작하여 냉전기에 소련에서 유학한 과학자들을 통해 후속세대를 양성할 토대를 마련하였습니다. 광복 직후 북한은 과학자를 유치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했고, 그 결과 도상록, 한인석, 정근 등 물리학자들이 연구환경을 보장하겠다는 북한 측의 제안에 따라 월북했습니다. 이들을 통해 북한은 1950년대 중반에 바로 김일성대에 핵물리강좌를 개설하고 과학원 핵물리연구실을 설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후 세대의 핵과학자들은 1940년대 말부터 소련에 유학하여 비교적 최신의 핵이론을 습득한 이들로서, 원자력공업상을 역임한 최학근, 김일성대 총장을 역임한 박관오, 북한 핵개발의 주역으로 불리우는 서상국 등이 있습니다. 이들을 통해 북한은 김일성종합대와 김책공대에 핵물리학과를 설립하고 핵 과학자들을 양성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토양 위에서 양성된 북한의 핵 과학자들은 약 1만명으로 추산됩니다. 김일성대에서 초창기 20년간 매년 10명씩, 이후 40년간 매년 60명씩의 핵 과학자를 배출하였으며, 유사한 방식으로 계산해보면 김책공대에서는 그간 2,800명의 핵 과학자를, 영변 물리대학 등에서는 그간 약 3,000명의 핵 과학자를 양성한 것으로 추산됩니다. 이 가운데 핵무기 생산과 관련된 핵심인력은 약 300명으로 추정되며, 이들은 IRT-2000 연구용 원자로는 물론, 5MWe원자로, 실험용 경수로, 우라늄농축시설 등 최소 15개에 이르는 시설에서 핵과학 연구와 핵무기 개발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비핵화의 사례는 아니지만 구소련의 핵무기 감축을 지원하기 위해 미국은 협력적 위협감축(CTR, Cooperative Threat Reduction) 프로그램을 개시했고, 이 CTR 프로그램은 우크라이나의 비핵화 과정에서도 중요한 기여를 했습니다. 탈냉전의 서막을 열면서 미국과 소련은 전략무기감축에 합의를 했는데, 그 직후 소련이 붕괴하자 미국은 핵무기 폐기가 정상적으로 수행되도록 지원을 개시하였습니다. 1991년 11월 넌-루가 법안을 통해 소련의 감축대상 핵무기 해체 작업을 지원하기로 한 것입니다. 이후 넌-루가 법안의 목적을 확장하는 CTR 법안이 1993년 의회를 통과했고, 이를 통해 WMD개발 전문인력의 재취업과 평 화적 연구 수행도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모스크바에 국제과학기술센터 (ISTC, International Science and Technology Center)를 설립하여 핵, 화학, 미사일 분야 종사자들에게 직업과 연구기회를 제공한 것입니다. 그 결과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등의 핵 전문인력도 지원을 받아 원자력 에너지 연구와 교육 부문에 정착할 수 있게 되었고, 2017년까지 ISTC의 지원을 받은 과학자만 7만 5천명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CTR 프로그램은 거대한 핵무기 산업의 해체 과정에서 핵 전문인력의 유출을 성공적으로 방지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또한 구소련의 일부이던 우크라이나, 벨로루시, 카자흐스탄의 비핵화 과정에서도 CTR에 의한 핵 전문인력 관리가 이루어졌습니다. 우크라이나의 경우, 핵 전문인력들은 CTR 프로그램에 따라 설립된 우크라이나 과학기술센터(STCU, Science and Technological Center for Ukraine)로부터 재교육과 해외 공동연구의 기회를 부여받았던 것입니다. 우크라이나 STCU 연구소의 경우에는 설립 시점부터 미국, 캐나다, 스웨덴 등이 참여하여 연구비 지원 및 과제 수행에 공동으로 관여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구소련의 사례에서 살펴보았듯이 북한 핵프로그램의 해체와 핵기술의 확산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핵 전문인력 관리를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북한의 핵 전문인력에게 일할 수 있는 직장과 연구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북미 간 신뢰조성에도 기여할 수 있으며, 핵 전문인력이 비핵화의 필요성을 받아들이고 핵무기 제조 기술을 유출하지 않도록 하는 데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다만, 핵 전문인력의 관리를 위한 CTR 프로그램은 제재완화 이전에는 추진이 어렵기 때문에, 북한의 상당한 수준의 핵무기 폐기와 같은 본격적인 비핵화 국면에 맞춰 추진될 수 있을 것입니다. 끝으로 과거 CTR 적용 과정에서 얻은 다양한 교훈을 바탕으로 효과적인 핵 전문인력 관리방안이 마련될 수 있도록 준비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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