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북미정상회담 평가 및 향후 과제 

이상근 국가안보전략연구원

2월 말 하노이에서 열린 두 번째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로 끝났다. 대다수 언론과 전문가들은 크건 작건 협상이 타결될 것으로 믿었기에 충격이 크다. 예상 밖의 협상 결과를 두고 ‘코헨 청문회’의 영향과 볼턴 미 국가안보보좌관의 역할 등 원인에 대한 분석도 분분하다. 이번 하노이 정상회담이 수차례의 실무회담 과정을 거쳐 성사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돌발변수’들이 미친 영향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의 결과를 평가하고 향후 협상에 대한 전망과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려면 보다 구조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다시 말하면, 미국과 북한 이 현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고 어떤 셈법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점검해야 하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트럼프 대통령과 참모들은 제재 효과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시간은 미국의 편이라는 판단 하에 거래의 시기를 늦추려 한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를 선택한 것이다.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과정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당시 북미 간에는 최소 합의 수준의 합의문 초안이 준비되어 있었지만, 탑다운 방식의 특징상 추가 합의(플러스 알파)를 위한 정상 간 담판의 여지도 남아 있었다. 일반적으로 정상회담은 실무회담에서 이루어진 합의에 기초하여 일부 사안에 대해서만 타결을 시도한다. 이와 달리, 이번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의 경우 비건과 김혁철 간 실무회담에서는 이른바 스몰딜을 이루고 보다 크고 근본적인 의제들을 다루는 빅딜은 정상들의 몫으로 남겨 놓았던 것으로 보인다.

두 정상, 특히 김정은 위원장은 실무회담에서 만들어진 최소 합의 수준의 합의문이 관철될 것이라고 낙관했던 듯하다. 북한이 영변에서의 핵물질 생산을 중단하고 미군 유해를 송환하는 대신 미국은 평화선언, 연락사무소 설치, 남북경협 재개에 필요한 일부 제재 완화를 한다는 것이 합의문 초안의 내용이라는 「VOX 뉴스」의 보도가 있었다.다른 지역에서도 핵물질이 생산되고 있다고 믿는 미국이 단순 동결의 대가로 이런 정도의 보상을 약속했을 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지만, 이런 정도로 낮은 수준의 거래가 이루어진 것은 분명한 듯하다.

막상 본격적으로 회담이 시작되자 트럼프 대통령은 미리 준비한 플랜B를 밀어붙인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여러 개의 옵션을 준비했다고 밝힌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의 완전한 비핵화 약속을 거론하면서 영변 플러스 알파를 요구했던 것이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볼턴 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영변 이외의 규모가 큰 핵시설, 미사일, 핵탄두 등의 목록 작성과 신고 문제 등을 제기하였다고 밝혔다. 또한 핵과 탄도미사일, 생화학무기에 이르는 ‘광범위한 비핵화’ 요구를 담 은 문서도 김정은 위원장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이에 맞서 김정은 위원장은 북한 핵능력에서 차지하는 영변 핵시설의 중요성과 비중을 설명하면서 영변 핵시설을 “미국 핵 전문가들을 초청해서 명백하게, 투명하게 폐기”하는 대신 2016년부터 취해진 유엔 안보리 결의들 중 민생 및 민수와 관련된 제재 완화를 요구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미국은 북한이 요구한 제재 완화 대상은 양적으로 보면, 11건 중 5건에 불과하지만, 질적으로 보면, 대북제재의 전부나 마찬가지이므로 이 요구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였다. 이와 같이 북미 양 정상이 추가 의제를 두고 현격한 입장 차이를 보여 회담은 결국 결렬되었다.

결렬에 영향을 미친 돌발변수 

하노이 회담 결과에 관한 최대 의문은 왜 두 정상이 실무급에서 합의한 초안에도 서명하지 않았느냐는 점이다. 아마도 추가 의제를 둘러싼 줄다리기 과정에서 발생한 회의감과 불신감이 작용한 탓일 수 있다. 그러나 회담 결렬에 따른 충격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상황에서 어떤 합의도 하지 않고 회담장을 떠난 데에는 미국 측의 국내정치적 계산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해결사 노릇을 했던 코헨 변호사가 하원 청문 회에 나와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고 있는 바로 그 시간에 북미정상회담을 치러야 했던 것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였다. 청문회와 북미정상회담이 결코 무관하지 않았다는 점을 드러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내정치적 어려움을 반전시킬 카드로 북미정상회담을 활용하기 위해 빅딜을 이뤄내야 한다는 절박함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스몰딜로 끝날 경우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것이라는 우려도 컸던 것으로 보인다. 국내정치적 측면에서 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모 아니면 도’ 식의 선택에 직면했던 것이다. 실 제로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전부터 미국 조야에서는 외교적 성과에 조급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유리한 합의를 해줄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였다. 그리고 회담이 결렬로 끝나자 미국 내에는 이를 환영하는 분위기가 대세를 이루었다.

이른바 ‘볼턴 역할론’도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는 듯하다. ‘빅딜은 굿딜, 스몰딜은 배드딜’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스몰딜보다는 노딜이 낫다는 주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참모진에서 제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대북 압박을 약화시킬 수 있는 거래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오래 전부터 견지해 온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주도했을 가능성이 크다. 볼턴은 대북 강경파의 아이콘이자,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접근방식에 불만을 가져온 일본의 대미 로비창구로 알려져 있다. 하노이 회담 이후 볼턴이 주요 언론들과 인터뷰를 거듭하며 합의 없이 회담장을 떠나버린 트럼프 대통령의 선택이 옳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는 사실도 정상회담과 관련된 그의 역할을 짐작하게 한다.

보다 근본적 원인으로서의 미국의 상황 인식 

코헨 청문회라는 돌발변수나 일부 참모의 역할이 회담 결과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이 단지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고려하여, 또 는 일부 강경파의 입김에 휘둘려서 정상회담장을 떠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핵 확산 방지는 지난 수십 년 간 미국의 핵심이익으로 간주되어 왔으며 트럼프 행정부 역시 같은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스몰딜을 통해서라도 북한이 일부 조치를 빨리 취하도록 하는 것이 비핵화에 보다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결코 합의문 발표 없이 회담장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선택의 바탕에는 제재가 유지되는 한 시간은 미국의 편이므로 장기적으로 이번 정상회담의 결렬이 비핵화 달성에 유리할 수 있다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핵실험을 하거나 탄도미사일을 발사하지 않는 한 협상을 서 두를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밝혀왔다. 2차 북미정상회담을 전후한 시기에 는 서두르지 않겠다는 발언이 더욱 빈번해졌다. 심지어 28일 일대일 회담 직전에도 “시간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러한 트럼프 대통령의 속도조절론의 바탕에는 시간은 미국의 편이라는 인식과 대북제재의 효과에 대한 자신감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는 북한이 비핵화를 내걸고 대미협상에 나선 것이 제재가 효과를 발휘해서가 아니라 제재 하에서도 핵개발과 경제성장을 이룬 김정은 정권의 자신감 때문이라고 보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반면에 미국의 대다수 전문가들, 특히 정부 측 인사들은 북한이 비핵화협상에 나선 것은 제재가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이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 다. 그 때문에 북미협상을 진행하면서도 대북제재가 이완되지 않도록 중국 등을 압박해 왔다. 

더욱이 유엔 보고서 등에 따르면, 폭염과 가뭄 등의 이유로 북한의 지난 해 식량 생산량이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 북미회담을 앞둔 2월 11일에는 북한 정부가 러시아 정부에 밀 5만 톤을 무상으로 달라고 요청했으며 3월 초에 4천 톤 가량을 인수한 것으 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참모들은 제재가 계속되는 한 북한의 대미 협상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므로 거래가 성사되는 시기를 늦추는 것이 유리할 것이라는 계산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회담 결렬의 대북 파급효과 

다행스러운 것은 미국이 북한의 불리한 입지를 이용해 제재를 강화하거나 한미연합 훈련을 재개하는 등 보다 강화된 압박 정책을 추진하려고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한편으로 현재의 제재를 유지함으로써 북한에 대한 압박을 계속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화를 계속할 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한미연합훈련을 축소하는 식으로 북한을 달래면서 보다 나은 거래를 성사시키려는 것이 미국의 입장인듯하다. 이와 같은 미국의 전략이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오랫동안 준비한 북미정상회담 뒤에 빈손으로 귀 국하게 된 김정은 위원장이 받은 충격이 큰 것으로 보이며 북한 체제에 미치는 부정적 파급효과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런 가운데 북한이 어떤 식으로 대응할 것인지도 아직 불분명하다.

김정은 위원장의 심리적 충격이 컸다는 점은 “미국의 계산법에 대해 굉장히 의아함 을 느끼고 계시고 생각이 좀 달라지신다는 느낌”, “조미 거래에 대해 의욕을 잃지 않으시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는 등의 최선희 부상 발언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김일성 주석 90회 생일과 김정일 위원장 60회 생일이 있었던 2001년 이후 처음으로 ‘제2차 전국 당 초급선전 일꾼대회’를 3월 초순에 개최하고 3월 10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를 치르면서 북미정상회담의 성과를 과시하는 한편 일부 제재 완화를 바탕으로 경제건 설에 속도를 내려던 북한 정권의 계획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무엇보다도 북한 정권은 2020년에 마무리해야 하는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의 성공을 기대하기 어려워진데다 제재 속에서도 안정을 유지해온 물가와 환율이 흔들릴 가능성도 있다는 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의 조건을 보다 수용하는 방향으로 대미협상을 계속해 나갈 것인지, 협상을 통한 제재 완화와 안전 보장을 포기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설 것인지를 결단해야 할 것이다. 북한이 새로운 길을 처음 이야기했을 때 생각했던 방안들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선택지는 많지 않아 보인다. 중국, 러시아 등에 의존하여 안보를 강화하고 경제적 고립을 벗어나는 길은 미중 갈등 속에서 중국이 수세에 몰려 있는 현 상황에서 현실성이 떨어진다. 탄도미사일 발사 등을 재개하면서 독자적 안보를 추구할 경우 제재 강화로 인한 경제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미국이 대북압박을 계속하면서 협상타결을 미룰 수 있었던 것도 북한이 마땅한 대안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리한 입지를 바탕으로 보다 성공적인 거래를 성사시키려는 미국이 반드시 유념해 야 할 것은 북한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경제적 어려움을 감내할 수도 있는 체제라는 점이다. 미국의 요구조건을 맞춰주기 쉽지 않다는 점을 하노이에서 확인한 가운데 자신들의 요구를 수용할 가능성을 배제하고 일방적인 양보를 요구한다고 믿게 될 경우 북한 정권이 경제건설 총력 집중 노선을 포기하고 미국과 대결하면서 독자적 생존을 모색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김정은 위원장은 정권 생존에 유리하다는 판단이 설 경우 이런 길도 선택할 수 있는 지도자이며, 북한에는 김 위원장이 결단을 내리면 이런 길도 걸을 수 있는 체제가 구축되어 있다.

우리 정부의 대응 방향 

우리 정부 역시 이 점을 유념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부탁한 중재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특히 북한의 이탈을 막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미국도 이에 동참하도록 설득해야 한다. 예컨대 제재 완화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으므로 예외조항을 이용한 인도적 지원 등이 이루어지게 함으로써 미국이 북한에 대한 성의를 보이도록 할 필요가 있다.

중재의 방법은 결국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 미국과 북한이 내놓은 조건들을 절충 하는 식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영변 이외에도 플러스 알파에 대한 거래를 하도록 설득하되, 북한이 현 단계에서의 상호 불신을 이유로 영변 이외의 지역이나 핵탄두, ICBM 등을 거래 목록에 올릴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한다면, 영변을 “깨끗하게” 포기 하는 대신 훨씬 제한적인 제재 완화라도 수용하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는 결국 지 난 9월 평양 정상회담 시의 남북 합의 내용을 바탕으로 북미 양국을 중재하는 셈이 된다. 

그러므로 북한이 이 선언을 통해 이미 약속한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 의 유관국 전문가 참관하 폐기를 단행함으로써 약속을 지키는 국가라는 이미지를 미국 측에 심어주도록 설득하는 것도 중요하다. 미국 측에 대해서도 탄도미사일과 생화학무기까지 포함한 대량살상무기 제거는 북미 간 신뢰가 충분히 구축된 이후의 과제로 미뤄두고 핵문제 해결로 의제를 좁힘으로서 북미협상의 동력을 살려나가도록 설득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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